309화 신성(新星)
쿠웅!!!
거대한 체구의 마수가 결국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마수 위에서 아시테르가 검을 회수했다.
“이 정도면 마무리 된 것 같네.”
아시테르의 뒤편으로 수많은 마수들의 시체가 자리해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근래 들어 웨스트 왕국에도 마수떼의 출몰이 잦아졌다.
아시테르 일행은 이 마수들을 해치우며 점점 명성을 드높였다.
몇몇 이들은 아시테르 일행을 두고 ‘마수사냥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들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수란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마수이건간에 아시테르 일행은 거절 한 번 없이 마수들을 사냥해 주었다.
마수가 있는 곳에 아시테르 일행이 있다.
어느 장소건 어떤 마수건 간에 놈들을 처리하는데 진심인 그들의 행동 덕분에 자연스레 이들을 따르는 무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웨스트 왕국 기사들 중 마수 사냥을 담당하는 기사들이 있다.
그들에게 아시테르 일행은 이미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이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사들도 한번 씩 아시테르 일행을 보러 올 정도였다.
처음에는 다들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으나, 결국 그들도 함께 마수를 사냥하게 되었다.
아시테르 일행이 마수를 사냥하고 있으면 점점 고무되는 것을 느낀다.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하니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전투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투를 치르고 나면 모두가 아시테르 일행을 인정하게 된다.
그들 중에는 기사 바에르도 있었다.
바에르는 마수 사냥 분야에 있어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런 바에르조차 아시테르 일행의 실력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마수 사냥을 위주로 하는 기사들이 전투 기사들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소문은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야.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 우리는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가 아닌 마수를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훈련하니까. 하지만 나는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기사도에 가까워 있다고 생각한다. 마수들을 사냥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까이서 국민들을 위하는 일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후후후 마음 맞는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굉장히 기쁜 일이로군.”
바에르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그와 함께 술잔을 주고받았다.
술에 관심 없는 카이드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데 열중했다.
가이우스 또한 술엔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만히 앉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바에르가 묘한 웃음을 보였다.
참으로 신기한 조합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들의 중심에는 아시테르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바에르의 시선이 카이드에게 머물렀다.
‘헌데 저 사내의 창술은… 진짜 무서운 수준이로군…….’
그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바에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빠르기도 빨랐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창술은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꼭 한 번 겨뤄보고 싶을 정도였다.
가이우스란 사내도 굉장히 묵직한 강함을 보였다.
마수들의 공격을 연속해서 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서 가이우스란 사내가 최전방을 맡았다.
마수들의 공격을 막아 내거나 받아치는 역할이었다.
그는 상대가 어떻건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그렇게 길을 뚫으면 카이드가 마수들의 중심에서 마음껏 날뛰기 시작했다.
창이 움직일 때마다 마수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예술적인 창술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으면 곧 마수들을 이끌던 우두머리가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진다.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자리에는 아시테르가 서 있었다.
아시테르는 늘 마수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부터 먼저 노렸다.
그렇게 지휘 계통을 잃어버리면 마수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당황을 금치 못한다.
특히나 마수들 세계에선 제일 강한 존재가 곧 우두머리였다.
가장 강한 녀석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리니, 마수들도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해지는 것이다.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는 적만큼이나 죽이기 쉬운 적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을 쫓는 자들이 바에르조차 감탄을 토해 낼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들이라면…….
가벼운 술자리를 마치고 바에르가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아시테르와 가이우스, 카이드 말고도 일행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유일한 홍일점인 그녀가 마침 바깥에 머무르고 있었다.
바에르가 그녀를 향해 섰다.
“…?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기사 바에르가 린 공주님을 뵙습니다.”
바에르가 린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굽혔다.
정중하게 예를 차리는 그를 보며 린이 놀란 표정을 보였다.
“아니 저는…….”
“속이려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저희들은 공주님의 기운을 읽습니다. 이렇게 맑고 투명한 기운은 우리 왕국에서 단 한 분만 갖고 있거든요.”
“아아…….”
“겉모습을 아무리 바꾸셔도 저 정도 되는 기사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나저나… 요즘 공주님께서 어딜 바쁘게 돌아다니신다고 들었는데 그게 저들 때문이었습니까?”
“네.”
“후후 어디서 저런 사람들을 데려오신 겁니까?”
“친구에요.”
“친구라……?”
린의 말에 바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그녀가 더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굳이 저들에 대해 더 물어보진 않았다.
“그래도 뭐…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마수들로부터 안전해졌습니다. 공주님과 저 친구들이 함께 나서준 덕분에요.”
“그쵸?”
“물론입니다. 사실상 국민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위협은 마수들로부터의 위협 아니겠습니까. 전쟁은 먼 얘기로 느껴지지만 마수들은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공주님의 이 행보가 앞으로의 일에 있어서도 상당히 좋은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딱히 그런 걸 생각하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좋은 쪽으로 향하고 있지요.”
바에르가 한쪽에 있는 아시테르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이 과연 린 공주에게 어떠한 존재가 되어 줄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가요? 경께서 보기에 아시테르는 로얄나이츠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로얄나이츠요?!”
놀란 눈이 된 바에르가 린을 돌아보았다.
린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흐음… 로얄나이츠라… 공주님께서도 알다시피 로얄나이츠는 정말 괴물 같은 자들이 모여 있는 집단입니다. 웨스트 왕국의 정점들이 모인 곳인데… 글쎄요. 저는 무어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공주님께서도 알다시피 로얄나이츠는 벌써 몇 년째 인원 변동이 없질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특히나 마수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들 중에서 로얄나이츠가 나오기란…….”
바에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린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었다.
“사실 저는 장담할 수 있어요. 아시테르는 분명 로얄나이츠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아하하하하!!! 이제 보니 이미 답이 내려진 질문이었군요.”
바에르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카이드의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겨 아시테르라는 사람에 대해선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마수들의 우두머리를 베어 버릴 수준이라면 분명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카이드나 가이우스와 같은 실력자들이 믿고 따르고 있다.
그런 존재라면…….
“뭐,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군요.”
바에르가 웃으며 말했다.
반절은 진심이었고 반절 정도는 린의 기분에 맞춰 주기 위한 답이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는지 린은 바에르의 답에 활짝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 *
“이번 원정대의 대장을 맡아 주었으면 하네.”
시민장 파브라칼라오가 눈앞에 있는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가 그를 보며 물었다.
“정말 제가 대장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대에게 꼭 부탁하고 싶었네.”
“하지만…….”
“지금까지 마수 사냥 성공률이 백퍼센트라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들었네.”
“네. 그렇습니다.”
“기사가 된 햇수나 신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네. 자네의 지금까지 임무 기록이 자격을 증명해주니까. 거기다 마수사냥꾼이 이번 토벌에 대장을 맡는다는 소문 때문인지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네.”
파브라칼라오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살아있는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는 마수사냥꾼.
그와 함께 싸우기 위해 많은 기사들이 줄을 서서 임무에 지원하고 있었다.
“워후… 우리 대장 인기 많네.”
카이드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린도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겨우 반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수많은 임무들을 수행해 내며 이만한 존재로 우뚝 올라섰다.
이제는 마수 사냥과 관련된 일이라면 아시테르의 이름부터 거론될 정도였다.
파브라칼라오도 아시테르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대장을 맡아 주세요.”
린도 뒤편에서 슬쩍 거들었다.
아시테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제가 이번 토벌대의 대장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파브라칼라오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그는 아시테르가 더욱 많은 몸값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일반 수준의 기사를 고용하는 비용으로 아시테르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허나 파브라칼라오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마수 사냥은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실력 있는 자들에겐 부르는 게 값이었다.
때문에 그들 중 뒤에서 따로 돈을 챙기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딱 선임비용만 받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시테르는 함께 갔던 병력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모두 소탕했습니다.”
“버… 벌써……?”
족히 이틀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시테르는 단 하루 만에 마수들을 씨까지 말려 버렸다.
그의 전투를 직접 목격한 기사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무용담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때 마침내 대형 임무가 떨어졌다.
기사 수천 명이 동원되는 임무였다.
오크들의 도시라 불리는 파르카무를 함락하는 일이었다.
상대는 무려 10만 마리의 오크들.
오크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크들과 함께 하는 다른 마수들도 존재했다.
아시테르는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도 일반 기사가 아닌 지휘관급이었다.
구면인 바에르는 아시테르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반면 아시테르를 탐탁지 않아 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쯧. 아직 애송이인 자를…….”
“그러게나 말일세. 벌써 이 자리에 올라올만한 급은 아닐 텐데…….”
“너무 그러지 말게. 들어보니 아주 굵직굵직한 임무들도 수행해 냈던데. 그만하면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겠나?”
바에르와 함께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 있는 기사들이었다.
때문에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들 틈에 있으면서도 아시테르는 전혀 기가 죽거나 밀리지 않았다.
“그럼 물어보지. 자네 쪽에선 얼마나 많은 수의 오크를 감당할 수 있겠나? 원한다면 만 마리. 아니 오천 마리 정도로 줄여 줄 수도 있네.”
파르울로라 불리던 기사가 아시테르에게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던 아시테르가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5만. 그 정도는 상대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
“객기도 정도껏 부려야지!”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