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주사위는 던져졌다 (1)
아시테르의 말에 발끈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반대로 흥미로워하는 기사도 있었다.
“정말 감당해 낼 수 있겠나?”
“충분합니다.”
“추가 병력은?”
“따로 필요 없습니다.”
막힘없이 나오는 대답.
그렇다면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임무들을 수행하지 않은 애송이라면 모를까, 아시테르는 계속해서 많은 임무들을 수행해 왔다.
그러니 아주 객기에 찬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믿어 보도록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믿고 맡겨 두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대비책은 세워두도록 할 것이다. 무려 반절이나 되는 병력을 상대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파르울로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바로 작전을 세우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아시테르를 보며 몇몇 기사들이 혀를 찼다.
“아무리 오랜만에 나온 쓸만한 신입이라지만 너무 많이 받아 주는 것 아닙니까?”
“후후후, 그건 당신이 저 친구의 실력을 몰라서 그래. 가까이서 지켜 보면 5만 마리를 상대하겠다 말하는 것도 아주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니야.”
“5만 마리가 무슨 뉘집 개이름인가? 무려 5만이라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아직 이렇다 할 원정대도 꾸리지 못하는 녀석을 데리고…….”
“그러니 우리가 대비책을 세워두겠다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백업 토벌대를 구성해 놓으면 된다.”
“신입이라 아직 패기가 넘치는 때이질 않나! 그 패기는 우리가 꺾는게 아니야. 마수들이 꺾어주겠지.”
“그때는 현실을 좀 깨닫겠지. 그렇게 가르치는 것 아니겠나. 백날 우리들이 뭐라 말해도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저 친구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거다. 그러니 직접 경험시켜 주는 수밖에.”
파르울로가 자신의 속내를 살짝 드러냈다.
그는 아시테르의 말을 신뢰해 주면서도 작전의 완성도를 위해 백업 병력까지 붙여 주었다.
하고 싶은 대로 도전해 보되,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 주려는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걸출한 신인을 마냥 무너지게 두기엔 아까우니까.
마수 사냥 전문으로 하는 기사들 중 아시테르 같은 풍운아는 없었다.
근래 마수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활약할 기회도 많아졌다.
아시테르는 그런 때를 잘 타고나 활약한 것이다.
마수 사냥을 하며 이만큼 단기간에 이름을 날리는 것도 쉽진 않다.
파르울로는 이 젊은 새싹을 더욱 커다란 나무로 키워 놓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지나친 걱정이었을 뿐이다.
정작 아시테르는 정말로 5만 마리를 상대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어때?”
“충분하네.”
“가능합니다.”
카이드와 가이우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1만5천. 가이우스가 1만5천. 그리고 대장이 2만. 끝”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피식 웃고 넘겼을지 모르나, 말을 꺼낸 사람은 카이드였다.
카이드에게 작전이란 이런 종류였다.
문제는 이 작전에 아시테르도 동의한 것이다.
“그거 괜찮네.”
“1만5천이라… 부족하진 않은 숫자로군요.”
가이우스도 이런 순간에는 호승심이 깃든다.
린도 이제 어느 정도는 이 세 사람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 것 같았다.
“저는 뒤에서 열심히 마법을 사용해 줄게요.”
“또 대장한테만 좋은 마법들 다 걸어 주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요.”
“아주 티나. 아아주 티난다고오!!!”
“그렇게 티나요?”
“당연하지!!!”
“네 말대로 당연한 일이다. 린님이 아시테르님을 먼저 챙기는 것은.”
가이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카이드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아주 그냥 나만 나쁜놈이지.”
“이제 알았나?”
“하아?!”
은근하게 티격대는 두 사람을 보며 아시테르도 웃음을 보였다.
정말 셋이서도 문제 없었다.
헌데 여기에 아시테르를 따라온 수백 명의 기사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시테르와 함께 하기를 바랬다.
카이드에게 반한 기사들도 있었다.
그들까지 있으니 전혀 문제될 건 없을 것이다.
아시테르가 곧바로 그들을 한곳에 불러모았다.
단상 위에 올라선 아시테르가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곧 5만 마리의 오크들을 상대할 겁니다.”
“……?”
“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5만 마리라니요…? 5천 마리를 잘못 들으신 것 아닙니까?”
“에이… 바보들 같으니라고. 당연히 추가 병력들이 있겠지. 얼마나 더 많은 병력들이 오는 겁니까?”
한 기사의 말에 다른 이들도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많이 쳐줘야 천명남짓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5만 마리의 오크떼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시테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추가 병력은 없습니다. 여기 있는 인원들로만 5만 마리의 오크들을 토벌할 겁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모두가 충격적인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나 무모한 전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고작 천 명으로 5만 마리를 상대하겠다니!
몇몇 기사들이 너무 놀라 무기를 떨어트렸다.
“그 말… 진심입니까……?”
“네. 진심입니다. 혹시나 두렵거나 무섭다고 생각되시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다른 토벌대에 편입하셔도 괜찮습니다.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기사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떻게할지 고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우리들의 역할이 수비입니까? 성에서 오크들의 공격에 대비하는 겁니까?”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우리들은 오크들의 부락으로 쳐들어갈 겁니다.”
“하! 그건 완전 자살행위 아닙니까?!”
“미친 짓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데…….”
“수비도 아닌 공격이라니! 이 인원으로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그들의 말에 아시테르가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곳 주변에는 5만이나 되는 오크들을 막아 낼만한 좋은 지형이 없습니다. 지나치게 탁 트인 평야만 있어서 천 명으로 모든 오크들을 막아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무조건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공격을 하겠다는 겁니까?”
“가끔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야밤을 이용한 기습 작전은 더더욱 다수를 상대하기에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죠.”
“밤을 틈탄 기습이라…….”
“그치만 밤이라면 오크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아군을 알아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들은 약속된 장소에 모여서 다가오는 오크들만 처리하면 됩니다.”
“그게 무슨…….”
다들 아시테르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아시테르는 그런 기사들을 위해 추가 설명을 이어 갔다.
그것들을 모두 들은 기사들은 곧 놀란 표정들을 보였다.
“자아, 이제 다시 묻겠습니다. 이 작전에서 빠질 분들 있으십니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랐다.
우물쭈물하거나 눈치를 보는 이들도 없다.
모두가 한번 해보자는 눈빛이었다.
물론 몇 명쯤은 아직도 아시테르의 말에 반신반의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시테르가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디 한번 저와 함께 전설을 써내려가 보시겠습니까?”
아시테르의 마지막 말이 그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랬다.
그들에게도 무모하게 받아들여질 일이면 다른 이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 무모하고도 험난해 보이는 전투를 승리해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전설이라 불릴만한 일의 첫줄을 써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고무된 몇몇 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잔뜩 고양된 함성은 다른 이들의 가슴마저 뜨겁게 만들었다.
무려 천 명이나 되는 기사들의 마음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의 화술을 지켜보던 린도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런 식으로 기사들을 데려가게 될 줄은 몰랐다.
당연히 무모한 일이라며 많은 기사들이 이 작전에서 빠질 줄 알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빠지는 사람 한 명 없이 이 작전이 수행되었다.
그들은 이틀을 걸어 이동했다.
아시테르 군이 공격할 곳은 서쪽에 자리한 오크들의 부락이었다.
5만이나 되는 오크떼가 머무는 만큼 그 지형도 상당히 넓었다.
허나 5만이라고 해봤자 모든 오크들이 전투원인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아직 어린 오크도 있을 것이고 늙은 오크들도 있을 것이다.
아시테르는 작전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전투 준비를 하며 대기하기를 8시간.
마침내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다른 기사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개중에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도사들이 뒤로 빠졌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할 일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 전장 전체를 사용할 겁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드가 재밌겠다는 듯 창을 들고 섰다.
가이우스는 아시테르의 곁에 붙어 있었다.
린도 마찬가지.
그들을 보며 기사들이 말했다.
“믿겠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대장님을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아니겠습니까.”
“모두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말고 아시테르 대장님의 명령에 따라주십시오.”
기사들이 저들끼리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시테르가 그들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밤이 무르익었을 때 아시테르와 카이드가 먼저 움직였다.
가이우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의 움직임은 가볍고 날랬다.
그 동안 수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기사들은 아시테르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냈다.
동시에 마도사들이 마법을 사용해 부락을 밝히던 불들을 꺼트렸다.
“시작하자 카이드!”
“예썰!”
아시테르와 카이드가 부락 한 가운데에서 한바탕 시원하게 칼부림을 펼쳤다.
카이드의 마기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퍼지며 오크들을 덮쳤다.
이어 아시테르가 검을 내리찍었다.
후우우우웅───!!
대기가 무거워지며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쿠웨에에에에──!!!”
“취에에엑!!”
“취르!!!! 취르르르륵!!!!”
놈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힘에 바닥까지 짓눌린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이어 창공을 가른 검기가 오크들의 몸을 두동강내었다.
적들의 기습이 시작되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그러나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적들의 모습.
이미 잔뜩 흥분한 오크들은 그것들이 보일 때마다 무기를 무차별로 휘둘러대었다.
카앙!!
콰라라랑!!!
쿠우웅!!!
여기저기 오크들의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시테르의 검이 번쩍이고 카이드의 창날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가이우스가 지나가는 곳마다 오크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에도 기사들의 함성은 끊이질 않았다.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함성이 들리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어둑해진 숲 사이사이로 인간의 형체가 보였다.
“취에에에!!”“취르륵!!”
분노한 오크들이 그것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상대도 반격을 가해온다.
기습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면 당황한 오크들이 그곳으로 반격을 가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작전이 정말로 먹혀들 줄은 몰랐다.
오크들이 공격하고 있는 것은 오늘 급하게 만든 허수아비들이었다.
급하게 만드느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못 쓰는 갑옷쯤은 입혀두는 정성을 보였다.
헌데 캄캄한 어둠속이라 그런지 오크들은 이 허수아비가 적인 줄 알고 마구잡이로 공격해대고 있었다.
숲은 현재 오크들로 가득 메워진 상태.
큰 동작으로 허수아비를 공격하면 아군 오크들도 함께 공격을 당했다.
오크들의 지능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닌데다, 빛도 없는 어두운 숲속이라 놈들은 동족을 공격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상잔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