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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12화 (312/424)

312화 그 시각, 이스트 왕국은 (1)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을 점령하고나서부터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미리부터 사우스 왕국에 줄을 댄 귀족들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반면 끝까지 저항하던 귀족들은 많은 힘을 잃고 말았다.

그중에는 이스트 왕국의 5대 가문도 존재 했다.

누군가에게는 위기라면 그것을 기회로 맞이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일찍부터 사우스 왕국의 마도 공학을 받아들여 그것으로 한 자리를 꿰차려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은 평민이나 천민 신분이었다.

사우스 왕국은 이스트 왕국에서만큼은 신분을 전혀 따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스트 왕국의 평민이나 천민은 똑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은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일 뿐이었다.

허나 그것 또한 사우스 왕국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봤자 점령당한 왕국의 귀족일 뿐이다.

힘에 굴복한 적대국의 귀족들을 얼마나 대우해 주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신분에 상관없이 사우스 왕국에 우호적인 자들을 우선시했다.

천민이더라도 사우스 왕국의 정책에 잘 따라주고 사우스 왕국을 위한 일을 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그것 덕분에 천민들에게는 오히려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을 차지한 일이 기회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은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완전히 속고 말았어…….”

“제기랄… 우리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기분이오.”

“쯧…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맡긴다더니… 이번에 대거 들어온 인사들이 전부 평민 출신들인 것은 알고 있나?”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자들이 행정에 참여하며 목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낡아 빠진 사고를 가진 귀족들은 뒤로 물러나라면서…….”

“건방진……!”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소… 놈들은 사우스 왕국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귀족들이 한데 모여 한탄을 늘어 놓았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섞여 있던 귀족 중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럼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인가?”

날카로운 목소리에 귀족들이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등을 기댄 여인이 혀를 찼다.

“적국의 꾀임에 속아 기분 좋게 나라를 팔아넘긴 자들이 행복할 순 없는 거지.”

“뭐… 뭐요!?”

“말이 너무 심하질 않나 아그리나!”

“우리가 언제 나라를 팔아 넘겼다는 말인가!?”

“그럼 아닌가?”

아그리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시선이 귀족들을 훑었다.

“사우스 왕국의 공작에 넘어가 이스트 왕국을 위해 일해 온 많은 마법기사들을 쳐냈지. 거기다 좋다고 정보를 넘기기도 했고. 어디 그뿐인가? 몇몇 놈들은 요직을 보장받으며 직접 병력을 제공하기도 했다며?”

그녀의 불같은 시선에 몇몇 귀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이것만 봐도 아그리나의 말이 아주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가 보고받은 사례만 해도 서류 한 무더기는 나올 정도였다.

아그리나조차도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 중 이렇게 아둔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넘쳐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고작 그 작은 잇속 챙겨보겠다고 나라를 팔아…? 이런 멍청한… 그래서 너희들은 전보다 더 행복해졌나?”

“이보시오 아그리나! 당신이 마법기사단장에서 물러난 것은 당신의 판단인데 이곳까지 와서 화풀이 하지 마시오.”

“맞습니다. 어째서 이곳까지 찾아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우스 왕국의 밑에서 일하기 싫다고 외친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까?”

“으하하하하하!!!!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너희들은. 그래… 이런 놈들을 위해 죽어 간 나의 동료들과 수하들이 불쌍할 뿐이지.”

아그리나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엔 슬픔이 자리해 있었다.

혹시나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까 해서 찾아와 봤건만…….

역시는 역시나였다.

저들은 나라를 잃었음에도 무언가 하려는 생각은커녕 여전히 앉아서 신세 한탄을 하기에 바빴다.

치고 올라오는 평민과 천민들을 경계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저런 한심한 놈들이… 우리와 같은 귀족이라니…”

물론 아닌 자들도 있다.

그들은 현재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사우스 왕국에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우스 왕국의 빈틈을 찾아 그들에게서 다시 나라를 되찾을 기회를.

그들의 선두에는 프로메테 가문의 테오도라가 있었다.

트라이포스에 몸을 담고 있던 테오도라가 비밀 결사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우스 왕국에 대항하고 있었다.

테오도라와 달리 일단은 순응하는 척 하는 마법기사들도 있었다.

애초에 마법기사단은 이스트 왕국의 국민들을 위한 것.

이스트 왕국이 사우스 왕국에 점령당하고 나서부터 마법기사단은 제 기능을 잃은 것이나 다름 없다 생각하는 마법기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사우스 왕국의 지배하에서도 왕국민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마법기사들도 있었다.

비록 지배자가 바뀌었다곤 하나,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자들은 여전히 이스트 왕국의 국민들이었다.

그들의 뿌리는 바뀌지 않는다고 믿었다.

다만 이주해 오는 사우스 왕국의 귀족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더러운 꼴을 종종 보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부분 지역의 성주를 맡고 있는 것은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들은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아그리나가 바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장을 잃어버린 마법기사단.

아시테르가 사라지고나서부터 언노운 마법기사단도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몇몇 마법기사들이 에스파에게 아시테르의 뒤를 이어 마법기사단의 대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시테르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억지로 언노운 마법기사단에 밀어 넣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개성 강한 마법기사단을 운용할 수 있는 자는 아시테르 밖에 없었다.

이들 모두 아시테르라는 사람에게 반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중심에 있던 그가 사라지니 각자의 길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가장 먼저 떠나간 이는 카이드였다.

창술사 카이드가 자리를 비우고 세아츠리스도 마녀숲으로 돌아갔다.

가이우스는 아시테르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다하는 이였다.

아시테르가 죽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시체를 확인한 것이 아닌 이상 가이우스는 아시테르가 살아있다고 믿었다.

이는 가이우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의 생각이긴 했다.

가이우스는 딸과 함께 생활하며 암암리에 아시테르를 찾았고, 다른 이들은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아시테르의 부름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크로마제도 루기아 가문으로 돌아갔다.

루기아 가문은 본래 검술이나 마법보다 재력으로 힘을 가진 가문이었다.

덕분에 사우스 왕국도 루기아 가문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재력은 아시테르와 마르체니 덕분에 더더욱 막강해졌다.

처음 아시테르와 마르체니를 돕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차후 더 많은 돈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것을 본 루기아 가문의 가주, 프라울리도 돈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생겼다.

“돈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빌려서 쓰다 가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많은 이들에게 이것을 베풀어야 한다.”

처음에는 루기아 가문의 사람들도 이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베풀수록 돈은 더욱 몸집을 불려 루기아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럼 루기아 가문은 전보다 더 큰 돈으로 선행을 베풀었다.

그런 순환이 계속 이루어지며 루기아 가문의 명성도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던 것이다.

더욱이 프라울리의 아들인 판데아는 검술의 대가로, 손주인 크로마제는 마도사계의 신성으로 불렸다.

그러니 루기아 가문은 재력뿐만 아니라 검술이나 마법측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을 점령하고 나서도 루기아 가문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다.

영지의 유지인 루기아 가문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귀족가였다.

그들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엄청난 반발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다고 루기아 가문이 대놓고 사우스 왕국에 적대적인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골치였다.

프라울리는 냉철한 사내였다.

그는 하찮은 감정에 자신을 내비치는 사내가 아니었다.

이러한 프라울리 덕분에 뒤바뀐 세상 속에서도 루기아 가문은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루기아 가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크로마제가 책을 덮었다.

“가만히 있으려니 성미에 차질 않네.”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얼마 전까지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직접 전쟁에도 참여 했던 것이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로 편안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흩어지면서 벌써 많은 마법기사들이 루기아 가문을 방문하여 크로마제를 데려가려 했다.

새롭게 창단된 마법기사단의 단장도 여럿 다녀갔다.

하지만 크로마제는 그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겉으로는 당분간 마법기사로서의 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내둘렀으나, 실제로는 크로마제 역시도 아시테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에스파가 대장 대리 역할을 하겠다면 함께 하려고 했으나 에스파는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에스파 형은 잘 있는지 모르겠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버지?”

“친구가 찾아왔다.”

“그래요?!”

친구라는 말에 크로마제가 활짝 웃었다.

이곳으로 찾아올 그의 친구라면 단 한 명뿐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가니 머리를 짧게 자른 반키라스가 앉아 있었다.

그런 반키라스의 옆에는 단아한 차림새의 여인이 함께였다.

“뭐야? 웬일로 레니엘까지 함께 온 거야?”

“이곳에 올 일이 있다가 들렸다.”

“호오… 너희 두 사람이 이곳까지 올 일이 뭐가 있을까.”

“지역 일 때문에요.”

레니엘이 크로마제를 미소를 보였다.

펜레레 가문은 줄곧 반키라스에 대한 지원을 아까지 않았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키라스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더욱 나은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다.

덕분에 펜레레 가문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다.

귀족들만 챙기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펜레레 가문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며 주변 모두를 챙겼다.

그런 사연을 들었던 반키라스도 마법기사가 되었을 때 펜레레 가문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받는 봉급을 보내 주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 어느새 두 사람을 연인 관계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던 크로마제도 판레레 가문과 연락을 취해 도움을 주었다.

레니엘이 반키라스의 애인이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남은 아니었다.

거기다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반키라스가 힘들 때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서로 티격태격하긴 해도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는 함께 사선을 넘나들며 우정을 쌓아 온 친구사이였다.

두 사람은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흩어지고 나서도 이렇게 한번씩 얼굴을 보며 지냈다.

“그나저나. 너는 얼마나 읽었냐?”

“진도가 안 나간다 진도가…….”“설마… 네게도 어려운 거냐?”

“어우… 말도 마라.”

두 사람의 시선이 레니엘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레니엘은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 다 읽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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