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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18화 (318/424)

318화 경쟁전 시작

당장 무언가를 할 줄 알았던 아시테르 일행은 경쟁전이 시작되고 숨죽여 기다렸다.

경쟁전의 기본 방식은 영토 점령전.

정해진 기간이 다 끝날 때까지 누가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는가를 겨루는 일이었다.

경쟁전이 시작되고 다른 세력들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아시테르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부동을 지켰다.

“이렇게만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서 적들을 짓누르고 영토를 점령해야 할 텐데…….”

마음이 급해진 길고트가 참지 못하고 아시테르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낮과 밤이 바뀌는데도 아시테르는 본인이 맡은 성에 머물 뿐이었다.

그 사이 아시테르는 다른 이들의 보고를 받아 경쟁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듣고 있었다.

“크게 네 개의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카일리어가 이끄는 홍군. 파우트가 이끌고 있는 청군. 라바나스의 흑군. 마지막으로 아곤의 백군입니다.”

“역시… 그렇게 네 명이 두각을 나타내는군요.”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아시테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네 곳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이쪽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곁에 있는 반펜에게로 향했다.

“우리처럼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더 있나요?”

“북동쪽에 르브레임스의 세력이 있습니다.”

“르브레임스라… 철원의 기사라 불리는 자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르브레임스가 일군 세력도 꽤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 영토 네 곳을 규합했으니까요.”

“그럼 일단은 그쪽부터 시작할까요.”

아시테르의 말에 반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움직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나머지 네 개의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저들이 움직인다면…….”

“그럴 수 없게 미리 손을 써두었습니다.”

“예에……?”

반펜은 아시테르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아시테르는 의미 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경쟁전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아시테르를 ‘마수 사냥만’해 온 기사로 알고 있었다.

마수 사냥과 전쟁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시테르가 이런 경쟁전에는 익숙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얕본 것이다.

아시테르는 이러한 점을 이용했다.

그들이 방심하는 동안 아시테르는 이미 여러 가지로 물밑작업을 펼쳐 놓았다.

본래 마수 사냥을 하기 전, 아시테르는 이스트 왕국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온 잔뼈 굵은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모의 전쟁이라 하여도 전쟁은 전쟁.

아시테르는 경쟁전에서 이기기 위한 많은 수를 준비했다.

길고트의 눈에는 아시테르가 그저 성에 가만히 주둔한 채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 비춰 졌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보전.

이 정보전에서 우위를 가져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시테르는 이미 여러 방면으로 준비를 마쳤다.

다른 이들이 아시테르의 세력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아시테르의 사람들이 각 세력에 숨어드는 것도 쉬웠다.

그들은 그곳에서 적당히 전투를 치르는 척하며 상황이 변하는 것을 세세하게 보고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각 세력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병력은 어떻게 운용하는지도 상세히 보고 했다.

여기서 아시테르는 이들에게 적들의 정보를 받는 한편, 이쪽에서 흘리고 싶은 정보도 조금씩 흘렸다.

경쟁전이라는 중요한 상황 속에서 작은 결점이나 흠집만 보아도 그것은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물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정보라도 귀에 들어온다면.

적들은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아시테르는 이미 경쟁전 내부의 정보들을 모두 손아귀에 쥐고 컨트롤 하는 수준이었다.

“현재 라바나스와 파우트가 서로 손을 잡을 거라는 정보가 퍼졌으니 카일리어와 아곤도 곧 접촉할 겁니다. 우리는 그 틈을 노리는 거예요.”

아시테르가 이끄는 군이 르브레임스가 머무는 성에 도착했다.

르브레임스도 아시테르가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은 것인지 성에 깃발을 들어 올리고 수비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놈이 감히 나를 노리고 들다니…….”

“저희가 어지간히도 만만하게 보였나봅니다.”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감히……!”

르브레임스와 그의 수족들이 함께 분노했다.

그들은 놀랍게도 성의 이점을 활용하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이끌고 있는 병력은 총 5천.

반면 르브레임스가 이끄는 병력은 만 명이 넘는 숫자였다.

누가 봐도 먼저 공격하는 쪽은 르브레임스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르브레임스 역시도 상황을 지켜보느라 선뜻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새파란 애송이가 선수를 치다니!! 나를 어지간히도 우습게보았구나.”

르브레임스가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에 아시테르는 물론 다른 이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굳이? 지가 챙기고 있는 이점을 버려?”

“자신 있나 봐.”

“대박이네… 그 정도로 우리가 얕보이고 있는 거야?”

“뭐… 저쪽에서는 저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스트 왕국이면 몰라도 이곳에서의 우리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재밌네요.”

“됐고. 화려하게 시작해 보자.”

에스파가 활시위를 당겼다.

번쩍이는 화살들이 곧 하늘을 메웠다.

“오호……?!”

아시테르가 그 모습을 보며 놀란 표정을 보였다.

과거 아시테르는 불꽃으로 소나기를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에스파는 화살로 하늘에 비를 내리고 있었다.

“너의 마법에 착안한 기술이야.”

“대단한데……?”

아시테르가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그 사이 길고트와 가이우스가 전방으로 나아갔다.

자비토가 그들의 후위를 맡았다.

“아시테르. 너는 가만히 있어.”

“……?”

“네가 벌써부터 이런 자리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얘기야.”

“맞아요. 이곳은 우리들로도 충분합니다.”

“이곳에서 서서 지켜봐주십시오. 우리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그리고 우리들의 비밀병기는 아직 실력을 발휘할 때가 아닙니다.”

“크흥. 나는 상관없으니 한바탕 날뛰고 온다!”

카이드가 창을 들고 대지를 박찼다.

그는 한번에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카이드의 검은 마기가 전장을 뒤덮었다.

쏟아지는 화살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길고트가 츠바이헨더를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가이우스는 그 옆에서 쏟아지는 마법들을 받아치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단하군요… 대체 어떻게 하면 맨몸으로 마법을 받아칠 수 있는 겁니까?!”

“당신도 대단하군. 검의 위력이 이런 잔상을 남길 정도라니.”

가이우스가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지가 움푹 꺼질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바닥을 휩쓸고 지나갔다.

과연 길고트의 검은 한 번 한 번이 파괴적이고 위력적이었다.

그를 본 르브레임스도 혀를 찼다.

“길고트도 다죽었군. 겨우 저런 애송이에게 붙다니.”

“그래도 길고트는 방심할 수 없습니다. 저 자의 검술은 기사들의 차징도 밀어낼 만큼 위력적입니다.”

“알고 있다.”

“그나저나 르브레임스님… 상대의 전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뭐가 심상치 않다는 말인가?”

“이상하게 우리 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뭐……?!”

르브레임스가 그때서야 전장을 살폈다.

놀랍게도 르브레임스 군이 숫자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 전선이 밀려나고 있었다.

르브레임스가 생각하기에 군사들의 질도 양도 이쪽이 훨씬 우위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전투를 시작해 보니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이드에게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받아온 이천 명의 군사들.

그들은 이번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눈에 띄는 몇몇 기사들도 있었다.

“뭐야……?”

창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맘껏 뛰어다니며 이쪽의 전열을 무너트렸다.

거기다 갑자기 나타난 모래 골렘들이 기사들의 방패를 부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도사들이 만들어낸 베리어는 날카로운 송곳처럼 보이는 것에 산산조각나 버리고 말았다.

대지에서 우뚝 솟아난 나무덩굴들이 기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가시덤불에 갇힌 기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으아악─!!”

“이게 뭐야?!”

다른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르브레임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갇힌 기사들의 몸이 점점 대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두 잠에 드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디선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과 기사들이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데미리우스가 새롭게 익힌 마법이었다.

그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무려 천 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이럴 때보면 진짜 같은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니까.”

데미리우스의 마법을 본 라빈이 뼈를 툭툭 두드리며 나왔다.

그녀를 본 누군가가 질겁한 표정을 보였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자기 몸에서 뼈를 꺼내 싸우는 마도사가 있다고…….”

“나를 알아?”

“그런데… 이스트 왕국에 있어야 할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어째서 이곳에 있기는… 우리 대장이 여기에 있으니까 여기로 온 거지.”

“대장…? 뼈의 마도사가 대장으로 따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호오… 당신 우리들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라빈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그때서야 다른 이들의 면면들을 살폈다.

“가시덤불을 다루는 마도사… 검은 마력을 두른 창술사…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활을 쏘는 마도사와 모래 골렘… 이제보니 모두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른 이들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우스 왕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굴러온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라 하면 한때 사우스 왕국에서도 공포의 대상으로 불렸던 존재들이다.

“아… 아아…….”

그제서야 사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많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다.

“고작 만 명으로 이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하란 말이냐……?!”

사내는 결국 검을 버리고 투항하고 말았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덩굴에 갇혀 있던 자들도, 안개 속에서 늪에 빠졌던 이들도 결국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카이드는 어느새 르브레임스 앞에서 창을 겨누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제일 강하냐?”

“내 이름은 르브레임스. 그대의 이름은 뭐지?”

“카이드.”

“그렇군… 그대의 귀신같은 창솜씨는 이미 봤다.”

르브레임스가 창을 들어올렸다

놀랍게도 그 또한 창을 사용하는 창술사였다.

“호오…….”

자신 말고 창을 사용하는 자는 오랜만에 보는지라 카이드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르브레임스가 호흡을 고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한 수 배우겠다.”

“얼마든지.”

파앙─!

르브레임스가 대지를 박차고 창을 찔러 넣었다.

이를 악문 그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르브레임스가 생각하기에 전황을 바꾸려면 눈앞에 있는 카이드를 쓰러트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르브레임스는 카이드의 상대가 아니었다.

현격한 실력 차이 때문에 르브레임스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창을 놓친 르브레임스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가 졌다…….”

“덕분에 재밌었어.”

카이드가 창을 회수했다.

상처투성이인 르브레임스와 다르게 카이드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것을 보며 르브레임스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실력 차이가 이렇게까지 날 줄은… 대체 당신 같은 괴물은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마. 상대가 나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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