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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20화 (320/424)

320화 경쟁전 (2)

아곤은 곧바로 군을 이끌고 진격했다.

그가 향하는 곳엔 역시나 아시테르의 군대가 있었다.

“황색군…….”

눈앞으로 넘실거리는 황금빛 물결.

그 물결을 보며 아곤은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인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보에 혼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보에 혼란이라… 그 정보가 이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아곤이 들었던 것보다 5천 명 이상은 차이가 나 보였다.

이제보니 저들은 자신의 전력까지 숨긴 것이다.

“미치겠군…….”

예상보다 훨씬 더 전력 차이가 심했다.

아곤이 검을 말아쥐었다.

그래도 일단은 부딪혀 봐야 한다.

“이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괴롭혀 주마.”

아곤의 명령에 전군이 진격했다.

그들이 진군해 오는 것을 보며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뭐야? 그냥 우리랑 싸워보려는 모양인데?”

“그런가 봐.”

“어떻게 하게?”

“고민할 필요 없지.”

“그럼 빠르게 끝낸다.”

“알겠어.”

카이드가 선두를 맡았다.

그가 창을 들고 군을 이끌었다.

마주 오는 카이드를 보며 아곤이 눈을 빛냈다.

“갑작스럽게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나는 아곤이다.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말아라!”

검을 든 아곤이 빠르게 달렸다.

그의 수족들이 넓게 퍼졌다.

아곤을 따르는 기사들도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본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움직이려 했다.

“이번엔 저희들이 나서겠습니다.”

길고트와 호르콘이 나섰다.

그 외에 아시테르의 밑으로 들어온 기사들이 함께 따라 나섰다.

그들이 갑자기 선두에 서 버리니,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원들은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주군께 증명해 보일 차례네.”

“그러고보니 우리들은 주군의 군대에 지기만 했을 뿐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없구만…….”

“주군의 동료들이 대단한 자들인 것은 알겠지만, 우리들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알려 줘야지.”

“듣자하니 아시테르님은 공주님과 연인 관계라고 하더군… 그게 곧 무엇을 의미하겠나?”

누군가의 말에 기사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나도 뜻밖의 정보였다.

“린 공주님과……?”

“이제 알겠나. 지금부터 벌어질 전투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들과 어떻게 관련이 있을지 말이야.”

기사들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여기서 아시테르의 눈에 들어야 했다.

길고트와 호르콘이 무기를 꽉 쥐었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곧 군세를 이끌고 진격했다.

길고트와 가장 먼저 마주친 이는 아곤 군의 전위를 맡은 로몸이었다.

“길고트!!! 당신과 겨뤄 보고 싶었소!”

“아곤 군의 로몸인가. 그대랑 싸워 보는 것은 나 또한 영광인 일이로군.”

두 사람 모두 하이랭커의 명단에 올라가 있는 자들.

웨스트 왕국 최강 100인들 중 한명이라는 소리였다.

그들은 곧바로 무기를 부딪치며 싸웠다.

아곤의 방패라 불리는 로몸답게 상당한 수비력을 자랑했다.

반면 길고트는 앞으로 나아가는 파괴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기사였다.

그가 츠바이헨더를 휘두를 때마다 거센 검풍이 일었다.

“당신의 츠바이헨더를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소문대로 엄청나게 단단한 수비벽이오.”

연신 폭음이 들려왔지만 로몸의 전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슬로 연결한 그들의 방패진은 길고트 군의 진격을 완전하게 막았다.

오히려 로몸의 명령에 따라 방패진을 든 기사들이 앞으로 밀고 나왔다.

방패를 들어 한 몸이 된 그들을 보며 아시테르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저런 방식으로 진격을 막고 반격을 가하는 방법은 처음이었다.

다만 저 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 있었다.

“강점이 곧 약점이 될 수 있겠어.”

하나로 연결된 만큼 한곳만 완전하게 부수면 그 다음부터는 진 전체가 흔들린다.

그리고 아시테르는 길고트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길고트야 말로 다른 이들에게 상당히 저평가 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 신분과 지방이라는 위치 때문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보여 주시는 겁니까. 길고트.”

아시테르가 뒤편에서 길고트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길고트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호흡을 골랐다.

“로몸 경. 이번에는 좀 거칠 걸세.”

“호오… 드디어 나오는가……?”

로몸이 방패를 더욱 몸에 밀착시켰다.

그 사이 길고트가 양손으로 츠바이헨더를 높게 치켜들었다.

치이이잉──!!!

츠바이헨더의 끝으로 강렬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러자 길고트가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그 검을 보며 로몸뿐만 아니라 다른 방패병들도 인상을 굳혔다.

“모두 힘을 모아라!!!”

로몸의 명령에 따라 마력이 모였다.

그러자 과거 거신족인 타이탄이나 들었을 법한 거대한 방패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길고트의 두 눈에서 강렬한 한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콰라라라라라라라랑───!!!!!!!

엄청난 일격이었다.

거센 강풍이 일대를 휩쓸고 피어난 먼지가 회오리를 일으킬 정도였다.

거친 폭음에 주변 병사들조차 순간 시선을 빼앗길 정도.

“로몸님!!!”

“로몸님을 보살펴라!!”

“이때다!! 길고트님을 따라 진격하는 거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각 군 여기저기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각 군사들이 움직였다.

그 속에서 길고트와 로몸이 대치하고 섰다.

“대단하군요 길고트… 내 방패에 이렇게까지 흠집을 낸 사람은 처음입니다.”

“내 일격을 이렇게 막은 사람도 그대가 세 번째로군.”

“세번째……

“부끄럽지만 이미 나의 공격은 두 번이나 막혔어서…….”

“이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아낸 자가 둘이나 더 존재한다는 말이오……?”

길고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은 맨몸으로 막아 냈고 한 명은 창으로 막아 냈지.”

“……!”

“이제야 눈치챘나.”

“길고트 당신이 그쪽에서 주력 기사가 아니란 말인가……?”

“부끄럽지만… 이쪽엔 나보다 강한 자들이 즐비하다. 우습게도 나는 이곳에 몸을 담고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는 것을…….”

로몸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아시테르 군에서 길고트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다.

하기사 이쪽에 가장 많은 정보가 있는 자는 길고트였다.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력자.

그나마 아시테르와 다른 두 기사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진 않았다.

때문에 길고트가 모종의 거래를 한 이후 아시테르의 편에 선 줄 알았던 것이다.

헌데 이 모든 것은 지레 짐작일 뿐이었다.

“큰일이로군… 아곤님께서도 그렇게 알고 계실텐데…….”

“로몸. 세상은 넓다. 아곤 경도 곧 그것을 깨닫게 되겠지.”

“크음… 그렇게나 자신이 있는 건가?”

“크하하하하!!! 주군의 군대를 막아 내려면 우리들에게 쩔쩔 매면 안 되네. 뒤에 더 괴물 같은 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길고트의 말에 로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길고트가 괜히 말을 부풀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에 로몸은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호르콘을 맡았던 기사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쪽의 전선도 급격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는 결국 전선에 구멍이 생긴 것과도 마찬가지.

호르콘의 군세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본래 호르콘은 빠른 기동으로 유명한 기병들을 주력으로 하는 기사였다.

그들이 안으로 파고드니 병사들도 혼비백산 흩어지고 말았다.

이어 한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저쪽도 끝난 모양이로군.”

쓰러져 있는 아곤.

그 앞에는 카이드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전투의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카이드였기에 그가 나서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다… 내가 패배하다니…….”

“그래도 꽤 강하다 너.”

카이드가 입가에 맺힌 핏물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가 사용하는 순백색의 검.

그 검의 깊이가 카이드에게 몇 번이고 닿았다.

때문에 카이드도 아곤을 쓰러트리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겨내고 말았다.

“하나만 물어보지.”

“뭔데?”

처음에는 카이드가 자신에게 말을 낮추는 것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의 창술을 보고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이 정도 창술을 구사하는 자라면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닐 터.

“그대가 따르고 있는 아시테르라는 자. 그자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우리 대장?”

“그래. 내가 보기에 아시테르라는 인물은 속에 수백 마리의 구렁이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영악한 자이다. 수많은 정보들을 차단하고 이용해 온 것이 그 증거. 그렇게 머리를 잘 쓰는 자에게 당신 같은 강자가 붙다니… 대체 그자는 당신에게 무엇을 쥐어준다 말한 거지?”

“없어.”

“뭐라……?”

“딱히 나에게 준다고 한 건 없어. 나 역시도 우리 대장에게 뭔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 그럴 리가… 군신의 관계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희생이 있으면 보상이 있게 마련이고…….”

“개소리하네. 나랑 대장은 그런 관계가 아니야.”

“그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흐음… 멈추면 잡아먹히는 사이?”

“뭐……?”

“너라면 가능하겠냐? 언제든 널 잡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인간을 밑에 수하로 거두는 것.”

“……?”

“우리 대장은 그게 가능하더라고.”

카이드가 의미모를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이 순간 소름이 돋아 아곤은 아무런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고 너 대단한 착각을 하는 중인데. 우리 군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아시테르 대장이야. 나도 다른 녀석들도 아시테르 대장을 이겨 본 적이 없어.”

“뭐…? 그대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말인가……?”

“마력을 모두 잃었을 때 잡아먹어 볼까 했는데… 실패했지 뭐냐. 아, 아쉬워.”

카이드가 입맛을 다시며 전장을 떠났다.

전투가 끝났으니 이제 그의 즐거움도 끝이었다.

남은 일은 다른 이들이 처리해 줄 것이다.

아곤 군은 결국 완파당하고 말았다.

전의를 모두 상실한 아곤의 군사들은 그 자리에서 투항하고 말았다.

아곤 역시도 더는 무의미한 일이란 것을 잘 알았다.

그보다 그는 눈앞에 있는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미지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나는 산도적같은 놈일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로군.”

“순백의 검이라 불리는 아곤 기사. 맞습니까?”

“이명은 부르지 마십시오. 괜히 부끄러워지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전투는 훌륭했습니다.”

“지금 놀리는 겁니까?”

“카이드가 저렇게 부상을 입은 것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숫적 열세와 전황이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당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좋은 전투를 이끌어냈습니다. 만약 사기가 저하되어있지 않고 병력도 온전한 상태였다면 우리들은 굉장히 힘든 싸움을 할뻔 했습니다.”

“이제와 그런 위로는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패배했고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을 뿐.”

아곤은 깨끗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아시테르는 이 전투의 승리자였다.

비겁했다느니, 치사했다느니 그런 단어들은 필요 없었다.

애초에 마수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인 아시테르에게 패배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그런 것들을 극복해 내고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낸 아시테르의 능력이 대단한 것이라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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