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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22화 (322/424)

322화 계책 (2)

아시테르와 가이우스는 곧바로 라바나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얇은 실선 사이로 언뜻 비치는 이가 있었다.

완전 무장을 한 그녀가 아시테르를 맞았다.

“나를 보자고 했다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감사하지. 덕분에 수월하게 로몸이 지키는 성을 함락할 수 있었으니까.”

“저는 크게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라바나스님이 이끄는 군사들이 강했던 것이지요.”

“…….”

라바나스가 말없이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투구에 가려져 있으니,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순 없었다.

거기다 투구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마법을 걸어놓은 모양.

정체를 숨기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쓰는 느낌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아곤이 실력을 중시하긴 해도 눈치가 둔한 사람은 아닌데…….”

“별 것 없습니다. 각지에서 저의 잔존 세력들을 이용해 정보를 교란했을 뿐입니다.”

“정보를 교란했다라…….”

“아마 지금쯤 로몬의 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라바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녀도 아곤의 군대가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곤이 군대를 이끌고 움직였다는 것은 곧 전면전을 치를 거란 얘기입니다.”

“그렇겠지. 로몸이라는 커다란 기둥을 빼앗겼으니까.”

“현재 아곤의 병력은 모두 이곳으로 향하는 상태. 자연스럽게 본래의 거점을 지키는 병사들은 최소한으로 남게 됩니다.”

“당신이 그 자리를 수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믿지?”

“비록 제가 아곤에게 패배했다곤 하나, 그것은 단순 세력의 크기에서 비롯된 패배일 뿐 개개인의 질을 따진다면 이쪽이 우위를 차지한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흐음… 믿기 어렵군. 더군다나 당신은 마력이 없다면서?”

“저는 마력이 없지만… 여기 제 수하는 다릅니다.”

아시테르가 일부러 가이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라바나스 역시 가이우스를 눈여겨보던 참이다.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가이우스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직하게 아시테르를 지킬 뿐이었다.

주변을 함부로 살피며 다른 이들을 경계하게 만드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바나스는 알 수 있었다.

가이우스는 현재 누구보다도 아시테르를 철저히 살피고 있었다.

그게 아시테르가 여유만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였다.

“대단한 호위를 두었군.”

“호오… 알아봐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시테르도 조금은 놀랐다.

그는 당연히 라바나스가 가이우스의 실력을 시험하려 들 줄 알았다.

가이우스는 본래 다른 이들의 공격으로 마력을 만들어 내는 인물.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진가는 누군가와 겨루었을 때야 비로소 드러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소의 가이우스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처럼 한눈에 그가 강한지 알아보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굳이 검을 섞어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과연 한 무리의 수장이십니다.”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내로군.”

나라바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얇은 실들을 걷어 내고 마침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양쪽 허리춤에 있는 두 자루의 검이 가장 먼저 시선에 들어왔다.

“적진 한복판에 와 있으면서도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어. 거기다 신기하리만치 당당하기까지 하네.”

“제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째서? 너와 너를 따르는 수하들은 이미 아곤에게 패배했다. 그것에 대해 느끼는 책임은 없나?”

“그것 아십니까?”

“……?”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입니다.”

“그 말은… 네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는 말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라바스도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아하하하하!!! 배포가 큰 건지 아니면 황당하리만치 무게만 잡는 것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잡히는 자로구나. 너는 이미 경쟁전에서 패배했다. 단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글쎄요.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걸요.”

“재밌는 자로구나. 어떤가? 내 밑으로 들어와 나의 수족이 되는 것은? 나는 그대의 기개가 마음에 든다.”

“흐음… 저 또한 당신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시테르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발끈했다.

“지금 감히……!”

“적당히 까불어라!!!!!”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라바나스님은 곧 로얄나이츠에 입단하실 몸이다. 좀 더 예의를 갖춰라.”

수하들이 한 마디씩 하자 라바나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그녀의 단 한 마디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라바나스의 카리스마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를 본 아시테르는 더더욱 라바나스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아곤에게 전투 상황들을 들었을 때도 라바나스는 영리하게 전투를 치르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막상 이곳으로 직접 와보니 단기간에 조성한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요새를 구성해 놓고 있었다.

병사들이나 기사들의 기개도 보기 좋았다.

아곤과는 확실히 다른 부류의 지휘관이었다.

라바나스가 아시테르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자들이 한둘이었는 줄 아나?”

“꽤 많았을 것 같습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한 분이시라.”

“그래. 하지만 그들 모두 나를 탐냈지만 갖진 못했다. 왜일까?”

“그들은 당신을 담을 수 없는 그릇이었나보죠.”

“잘 아는 군. 그런데 그 말은… 감히 네가 나를 감당해 낼 수 있다는 말이냐?”

“못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우습구나. 고작 아곤에게도 패배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럼 내기라도 하시겠습니까?”

“내기?”

“제가 이기면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아시테르가 라바나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라바나스가 코웃음을 쳤다.

“내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나 말하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충성할 주군이 아니면 결코 내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 때문에 전하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내 얼굴을 알고 있다.”

“그 또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기세가 너무도 당당해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라바나스가 잠시 생각에 잠기려는 때 아시테르가 먼저 도발을 해왔다.

“설마… 이제 와서 물러설 생각은 아니시죠?”

“내가 왜? 그럼 내가 이기면? 내가 이기면 너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지?”

“제가 당신의 밑에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제 휘하에 있는 3천의 수하들도 함께. 그리고 이것도.”

아시테르가 품속에 넣어 두었던 무언가를 꺼냈다.

무지개 색 광채를 내는 꽃이었다.

이를 본 라바나스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이것은…….”

“이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린 공주님의 힘을 한 차례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라바나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웨스트 왕국에서 린 공주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라바나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다. 무슨 내기를 할 생각이지?”

아직 어떤 내기를 할지 정하지도 않았지만, 라바나스는 내기가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누가 봐도 라바나스가 유리한 상황이었다.

아시테르는 적진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이곳에서 그가 당당하게 내걸 수 있는 내기는 무엇일까.

워낙 영민한 사내이니 미리 무언가를 준비해 놨을 수도 있다.

라바나스가 아시테르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제가 이곳에서 살아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면 됩니다.”

“…? 네가 이곳에서 살아 나간다라…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이냐? 이 많은 수의 병력을?”

라바나스가 어이없어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아시테르는 더욱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군… 좋다. 네가 정말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내가 네 앞에 무릎을 꿇고 이 투구까지 벗으며 충성을 맹세하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너의 세 치 혀로 너의 가치와 쓸모를 증명하며 내가 죽이지 못하도록 해볼 생각이었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나는 네가 없더라도 충분히 로얄나이츠에 오를 수 있으며, 경쟁전은 비록 모의 전쟁이긴 해도 전쟁은 전쟁. 얼마든지 상대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후후후, 그 말은 그대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시테르가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벌써부터 라바나스의 수하들이 살기를 풀풀 풍겨대고 있었다.

그동안 아시테르가 라바나스에게 무례를 범했다 생각했으니 명이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들 가운데엔 뛰어난 실력자들도 있었다.

거기다 아시테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가장 강한 상대는 바로 라바나스였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예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라바나스가 마력을 흘려보내며 말했다.

“말장난도 정도껏 했어야지.”

“글쎄요… 말장난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끝까지… 입만 산 자로군.”

“그런데 제 말을 너무 가볍게 들으신 것 아닙니까?”

“뭐?”

“전쟁은 분명 ‘이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을 텐데요.”

“……?”

아시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몇몇 기사들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라바나스님… 적들의 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적들……?”

“예…….”

“적들이 어떻게 기습을 한단 말이냐? 그보다 겨우 그 정도로 호들갑 떨 것 없다. 기습 공격을 가해왔다고 해도 쉽게 이 요새의 성벽을 넘을 수 없다.”

“그게… 이미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터라… 안에서 다리를 내려 주었습니다.”

“……?!”

라바나스의 두 눈이 놀라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도 그녀를 보며 웃었다.

분노한 라바나스가 아시테르를 쏘아보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지?”

“보다시피. 제 병력들이 안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 요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야?”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라바나스, 당신이 불러들였잖아요.”

“뭐? 설마…….”

라바나스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전 몇몇 기사들을 받아 준 적이 있었다.

“겨우 열 명도 안 되는 기사들이다.”

“그들뿐만이 아니죠. 잊으셨습니까? 로몸과 그의 수하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식량들과 재물들까지 모두 이 성 안으로 들이셨잖아요.”

“설마…….”

라바나스의 말에 아시테르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라바나스와 연락을 취하기 전부터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그녀의 군에 잠입해 있었다.

거기다 패잔병으로 위장한 아시테르의 병사들이 투항하듯 라바나스 군에 합류했다.

조금이라도 세를 불려야 하는 라바나스 흑군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로몸의 군대.

그가 이끄는 군대는 모두 이곳에 붙잡혀 있었고, 아시테르는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이용해 그들을 일시에 풀어 주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당신들이 가져온 그 상자들 안에는 우리 병사들과 무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무기 더미 안에 몸을 숨긴 병사들의 수가 백을 훌쩍 넘는다.

라바나스의 군사들은 바쁜 나머지 몇몇 상자만 검사해보고 다른 것은 그냥 통과시켜 버린 패착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아시테르는 다양한 방법으로 라바나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수하들을 이 요새 안으로 들이는데 성공했다.

“지금 이 안에 있는 나의 병력은 2천.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은 오천 명. 마지막으로 아곤이 이끌고 온 병력의 수는 이만 오천 명 정도.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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