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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27화 (327/424)

327화 던전 브레이크

카이드와 파우트가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할 때, 다른 쪽에서도 전투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카일리어가 이끄는 홍군이 아곤의 거점을 노리는 중이었다.

“바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카일리어님.”

“일단 저들의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살펴봐야겠다.”

카일리어가 눈앞에 있는 기사, 뤼밥에게 병력을 딸려 보냈다.

뤼밥 또한 가볍게 적들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전초전을 시작했다.

그의 상대는 길고트와 호르콘이었다.

반가운 상대가 나타나자 뤼밥이 미소를 보였다.

“이여! 동기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뤼밥인가!? 거기는 어떤가?”

“우리? 아주 좋지!! 그러는 황군은 어떤가? 긴장감이 맴돌진 않나?”

“이쪽도 아주 여유롭다.”

“호오… 우리들을 앞에 두고 여유롭다고?”

“여유롭지 않을 이유가 없질 않은가?”

호르콘이 뤼밥을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던 뤼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표정이 굳지 않고 여유가 언뜻 비추고 있었다.

“자신 있나보군.”

“우리를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하하하하!!! 자네와 호르콘이 있는데 어떻게 얕볼 수 있겠나. 일단은 한 번 검부터 섞어 보자고! 그동안 실력이 녹슨 것은 아니겠지?!”

“얼마든지.”

뤼밥이 선두로 나섰다.

황군에서는 길고트가 앞으로 나섰다.

길고트는 적진을 파고들 때 가장 큰 강점이 드러나는 기사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뤼밥이었기에 군사를 정면으로 충돌시키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을 양쪽으로 나뉘어 운용했다.

뤼밥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기사가 반대쪽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다.

호르콘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달렸다.

이들이 벌이는 것은 말 그대로 전초전.

작은 규모의 신경전일 뿐인데 벌써부터 전투의 양상이 치열했다.

카일리어가 먼발치서 황군의 실력을 살폈다.

“제법 훈련을 잘 받은 군사들이군. 아곤의 군사들인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아곤의 강병들답군. 그렇다면 이쪽도 공격력을 더해 볼까.”

카일리어가 다른 지휘관들에게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선두에 있는 기사들 모두 높은 수준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본 아곤이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섰다.

“저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당신한테는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이 아곤. 그렇게 쉬운 상대는 아닐 겁니다.”

아곤의 뒤로 페레스와 탈렌, 로몸이 섰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본격적인 실력 행사가 필요한 시점이라 느꼈다.

아곤이 수하들과 함께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홍군과 황군의 물결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누가 우세랄 것도 없었다.

양측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상대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전투를 지켜보던 카일리어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성에서의 전투를 포기하고 이런 넓은 평야를 택하다니… 어지간히 전투에 자신이 있나보다 싶었는데 과연… 평야를 택할 만했어.”

카일리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대의 전투력은 뛰어났다.

특히나 길고트와 호르콘의 힘이 저렇게 강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곤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헌데 예상외로 길고트와 호르콘이 잘 버텨 주며 싸움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길고트의 힘이 생각 외입니다. 하이랭커에 꼽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저런 파괴력을 지닌 기사였다니…….”

“생각 외일 수밖에, 저 자의 실력은 저 정도가 아니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일리어님. 설마 그 사이 길고트의 실력이 더 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 눈에는 그래 보이는군. 딱히 내게 실력을 숨길 필요가 없었질 않나?”

길고트의 말에 벤페스트가 금방 수긍했다.

그가 곧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카일리어가 벤페스트를 말렸다.

“아직 자네들이 나설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여기서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전초전은 말 그대로 전초전이야. 벌써부터 전투를 본격화할 필요는 없지.”

카일리어는 매의 눈으로 전장을 끊임없이 살피고 있었다.

제법 짜임새 있어 보이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다.

아시테르의 군대와 아곤의 군대는 분명 따로 놀고 있었다.

그 예로 아곤이 이끄는 군사들과 길고트가 이끄는 군사들은 단 한 번도 한데 뒤엉키지 않았다.

마치 서로의 영역이 있는 것처럼 철저히 자신들의 구역을 지키며 싸우고 있었다.

“역시 그랬군. 갑자기 여러 군사들을 뒤섞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급하게 병력을 합쳐댔으니 따로 군사 훈련을 할 시간은 없었을 터.

당연히 그 빈틈이 전장에서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카일리어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따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아시테르 또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상황에 맞게 시시각각 변하는 카일리어의 군대를 보며 아시테르도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상대 진형 옆구리에서 많은 기마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로서도 보고받지 못한 내용이었다.

“저렇게나 많은 기마병들이 있었나?”

한손에 랜스를 든 그들이 아시테르 군을 향해 돌진했다.

어쩌면 카일리어가 이 순간을 위해 남겨 둔 한 수 일지도 몰랐다.

아시테르는 로몸과 다른 이들에게 그들을 막을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전열은 빠르게 움직였다.

허나 랜스를 든 기마병들도 방향을 선회했다.

“오호…….”

이를 본 에스파가 턱을 매만졌다.

기마병들이 또다시 양쪽으로 갈라지며 원을 그렸다.

훈련을 잘 받은 기사들인지 대열에 흐트러짐이 없다.

이렇게 전열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을 보니 훈련도 하루 이틀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곤 군대의 빈틈을 포착하여 무서운 기세로 밀고 들어갔다.

양측 옆구리를 돌파당한 아시테르 군대가 반으로 나뉘었다.

허리가 끊기니 아곤의 군대와 길고트의 군대도 살기 위해 뭉칠 수밖에 없었다.

전장을 바라보던 에스파가 슬쩍 다가왔다.

“어떻게 할까? 이제 슬슬 우리도 나설까?”

“저 정도 상황은 얼마든지 타개할 수 있을 거야.”

“흐음… 그럼 이쪽도 전력을 아끼고 상대 전력을 파악하는 걸로?”

“저렇게나 많은 수의 기마병이 있었다는 건 확실히 의외긴 하네. 거기다 선두에 있는 기사도 상당한 수준이야.”

기마병들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을 보며 아시테르가 눈을 반짝였다.

일찍부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상치 않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저 기사는 누굴까?”

“저 기사의 이름은 진제프. 카일리어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자입니다.”

“진제프라…….”

창을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카이드의 창이 거칠고 난폭하다면 진제프의 창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휘두르고 베는데 특화된 카이드와 달리 진제프는 찌르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아마 카이드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당장에 달려들었을 터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잠시 카이드를 생각하던 아시테르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카이드를 걱정하다니…….

물론 상대가 검제의 제자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시테르가 생각하기로 웨스트 왕국에서 카이드를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것이다.

그때 가이우스가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시테르님.”

그는 곧바로 아시테르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아시테르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시테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가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놀란 라바나스가 그를 따라나섰다.

“아시테르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이곳 근처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해요.”

던전 브레이크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엔류아가 몸을 일으켰다.

마수들에게 당한 사람들을 치료해주기 위해 그녀 또한 이동할 채비를 시작했다.

라바나스가 다급히 아시테르를 붙잡았다.

“던전 브레이크요? 흔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겁니다. 경쟁전을 치르고 계시는 아시테르님께서 신경쓰실 필요는…….”

“이미 전멸했다고 합니다.”

“그럼 아시테르님께서는 이곳에 계십시오. 저희들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쿠우웅──!!!

그때 한쪽에서 지축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 때문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저… 저게 뭡니까……?”

소리가 들린 곳에선 거대한 여우가 자리해 있었다.

회색빛과 붉은 빛깔이 맴도는 털.

검은 눈자위 안에 있는 백색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시테르는 녀석을 보자마자 검을 빼들었다.

놈이 흘리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준비하겠습니다.”

가이우스 또한 아시테르의 곁에 붙었다.

“아우우우우우───!!!!”

여우가 포효하자 숲 전체가 들썩였다.

여기저기 모습을 보인 짐승형 마수들이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카일리어 또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수 사냥 기사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 어째서 마수들이 이곳에 있는 거지?”

“그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수 사냥 기사들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전멸?”

“예… 삼백 명이 넘었는데 모두…….”

“군사를 돌려라.”

“예?”

“군사를 돌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일리어님. 이제야 막 저들의 허리를 끓고 승기를 타려는 순간입니다.”

“내 말 못 들었나? 군사를 물려라. 그리고 우리는 저 마수들부터 상대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카일리어님!!”

“다시 생각할게 뭐가 있지? 우리 군사들이 더러운 마수들 손에 죽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전세를 확실히 뒤엎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진제프님과 기마병들이 투입되고 적들도 혼란을 겪으며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승기를 굳혀야 하지 않습니까?”

“쯧… 그대는 그대가 누군지 잊었나? 경쟁전에 참여한 기사이기 이전에 우리들은 웨스트 왕국의 기사들이다.”

카일리어는 더는 들어볼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버렸다.

뒤에서 아시테르가 등을 돌린 카일리어 군을 쫓아오면 어떻게 하냐는 등의 말이 들려왔지만 모두 헛소리였다.

아시테르 군은 카일리어보다 훨씬 더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마수 사냥 전문으로 하는 기사들이었어서 그런가… 반응 한 번 엄청 빠르군.”

카일리어가 두 눈으로 아시테르 진영을 살폈다.

그들은 이미 군사들을 이끌고 마수들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런 것도 과연 마수라고 할 수 있는가…?”

카일리어는 난생 처음 보는 초거대 마수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저렇게 거대한 여우 마수라니…….

그때 마수가 다섯 개의 꼬리를 퐐짝 펼쳤다.

꼬리 끝에서 형성된 검은 구체가 사방으로 쏘아져나갔다.

콰아아앙!!!

콰르릉!!!!

여기저기 거센 폭발이 일었다.

폭발에 휘말린 기사들과 병사들이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여우는 그것을 즐기며 또다시 검은 구체를 만들었다.

“뭘 웃고 있는 거야?”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한 인간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환한 빛무리와 함께 검은 구체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크르르릉──!!”

여우가 눈앞에 있는 아시테르를 보며 낮은 울음을 토해 냈다.

녀석 또한 아시테르에게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끼며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테르가 본격적으로 영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하자 주변 대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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