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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29화 (329/424)

329화 든든한 지원군

‘던전 브레이크’라는 소동(?)으로 경쟁전은 잠시 중단되었다.

전장에 가득한 마수들의 시체를 치우고 재정비를 하는 동안 카일리어가 아시테르의 본영으로 찾아왔다.

그의 방문이 의외였던지라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포함한 아시테르의 수하들이 모두 한곳으로 모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카일리어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런 수준의 기사들이 함께 하고 있으니… 내가 이번 경쟁전에서 이기기는 힘들겠어.”

이미 파우트는 카이드에게 패하고 말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쉽게 패배했다곤 하지만 어쨌거나 패배는 패배였다.

파우트라는 강력한 카드마저 꺾인 마당에 카일리어의 용병술에 모든 것을 기대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카일리어에겐 아시테르의 전투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초거대 마수를 상대로 홀로 싸울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아시테르의 실력 또한 파우트 못지않다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직접 싸워 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비슷한 수준이라 볼만 했다.

그만큼 아시테르의 실력은 카일리어가 지켜보기에 굉장한 수준이었다.

파우트가 이끄는 군을 상대할 때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번엔 거기에 더해 다수의 실력자들과 훈련이 잘된 강병들까지도 상대해야 한다.

굳이 계란으로 바위를 쳐봐야 알까.

카일리어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순순히 인정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는 결코 아시테르를 넘을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이만한 세력을 갖추고 그런 실력까지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여러모로 따져 봐도 나의 패배겠지.”

카일리어의 입 밖으로 나온 의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시테르 또한 카일리어가 당연히 어떠한 제안을 해올 줄 알았다.

병력의 수가 밀린다면 대장전을, 용병술에 자신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판을 꾸릴 줄 알았다.

헌데 카일리어는 경쟁전을 포기하겠다는 듯 말했다.

이에 아시테르가 물었다.

“그 말씀은… 경쟁전을 여기서 멈추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단 한 번의 전투로 알았소. 나는 당신을 이길 수 없어.”

“오호… 제법 자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놈인가 보네.”

곁에서 듣고 있던 카이드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파우트와의 전투로 아직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입은 살아 있다.

겉으로는 행동과 말투가 가벼워 보여도 카일리어는 카이드를 전혀 무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검제의 제자인 파우트를 쓰러트린 인물이었다.

그 실력만으로도 이미 존중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부럽군. 대체 어떻게 저만한 인물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것인지…….”

“간단해. 나보다 강하면 돼.”

카이드는 뭐가 그리 어렵냐는 듯 말했다.

그러자 카일리어가 웃었다.

“단순한 말이로군. 하지만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게. 정말로 그렇나? 정말로 그대는 아시테르라는 사람이 단지 그대보다 강하기 때문에 따른다는 건가? 그렇다면 만약, 우리 왕국의 로얄나이츠 중 그대보다 강한 자가 또 존재한다면… 그때는 그를 따를 텐가?”

카일리어의 말에 카이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카일리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아시테르 대장 이외에 나는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카일리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그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마수들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이들이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

가시덤불로 거대한 방벽을 만들던 마녀, 엄청난 독 마법으로 광역 공격을 퍼붓던 마도사.

뼈를 들고 싸우는 특이한 검사.

거기에 더해 맨몸으로 마수들의 공격을 받아 내며 돌진하던 사내까지.

하나같이 인상적인 전투를 보여 준 인물들이었다.

그러다 카일리어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그대에게는 전군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겠소.”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엔 엔류아가 있었다.

카일리어로선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엔류아가 레이스 부채를 부치니 따스한 마력이 순풍을 단 듯 전장 가득히 퍼졌다.

그리고 그 마력은 아군의 부상을 빠르게 회복했다.

엔류아와 그녀가 이끄는 회복 마도사들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마수가 나타나자마자 경쟁을 잊고 모두를 도와준 엔류아를 보며 카일리어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엔류아에게 고개를 한 차례 숙여 보인 카일리어가 다시 아시테르를 응시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그게 뭐죠? 뭐든지 편하게 물어보세요.”

“아시테르. 당신은 어디서 온 거요? 들리는 소문대로 이스트 왕국인가?”

“아뇨.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던전에서 왔습니다만…….”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는 카일리어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답을 들은 카일리어는 되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설마… 지금 나를 놀리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카일리어의 시선이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미 언노운 마법기사단원들은 아시테르가 던전에서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반면 아곤이나 라바나스 같은 경우는 달랐다.

“던전에서……?”

“던전에서 왔다는 건 무슨 말이지? 마수들의 품에서 자랐다는 얘긴가……?”

“아니지… 그랬으면 마수들의 편을 들었어야지.”

“아무튼… 거짓말은 아닐 텐데. 뭐가 어찌된 건지…….”

그들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아시테르가 잠시 본인의 얘기를 꺼냈다.

어떻게 자신의 부모가 던전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기연인 비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자신이 태어난 어비스 던전에 관해 얘기 했을 땐 많은 이들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 던전이 있었을 줄은…….”

“아포칼립스의 문이라… 그 문이 정말 열리기라도 한다면 인류에게는 재앙이 아닙니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마수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저편에 마수들의 나라라도 있는 걸까… 마수들이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래 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좀 의문이 풀리는 군요.”

“그렇다면 아시테르님의 다음 행보는 무엇입니까? 이번 경쟁전에서 승리하면 아시테르님께서는 로얄나이츠의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겁니다. 웨스트 왕국에서 로얄나이츠란 존재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자들인데… 그 힘으로 과연 무엇을 하실지…….”

“우선은 사우스 왕국과 전쟁을 펼칠 것 같습니다.”

“흐음… 역시 그렇게 되는 겁니까. 혹시 복수라도 하려는 건…….”

“복수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하려는 것은 이스트 왕국의 독립을 도와주는 겁니다.”

“이스트 왕국의 독립이라…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차후 아포칼립스의 문이 열린다면 가장 큰 우방이 되어줄 곳은 바로 이스트 왕국이 될 테니까요.”

아시테르의 말에 카일리어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아시테르가 이스트 왕국에서 왔다는 사실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아시테르 당신은 이스트 왕국의 복수가 아닌,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재장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위해 로얄나이츠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겁니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우스 왕국은 분명 제 어머니를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저는 그 슬픔과 분노, 원망하는 마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우스 왕국의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 끝에 결국 무엇이 남겠습니까. 인류는 결국 힘을 합쳐야 할 겁니다. 인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마수들과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요.”

“과연…. 바라보는 곳이 달랐군요.”

카일리어는 아시테르에 대해 조금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시테르가 로얄나이츠에 올라 이스트 왕국의 복수를 대신하려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이스트 왕국을 되찾기 위해 웨스트 왕국의 힘이 낭비되는 것은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 때문.

그러나 애초 아시테르가 바라보는 곳은 카일리어조차 예상하지 못한 더 먼 곳이었다.

“좋습니다. 그런 뜻이라면 저 또한 당신을 따르도록 하죠.”

“예……?”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시테르님께서는 결국 미래 닥쳐올 재앙과 싸우기 위해 힘을 모으려는 것 아닙니까? 그 뜻에 저도 동참하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카일리어님은…….”

“제 신분이나 가문이 신경 쓰이는 거라면 그리 유념치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들은 이러한 일에 중요치 않으니까요.”

카일리어가 아시테르를 향해 예를 차렸다.

이제 곧 로얄나이츠에 오를테니 아시테르의 신분도, 지위도 그만큼 올라선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그가 로얄나이츠에 예를 차린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저 또한 당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생각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부려 주십시오.”

“부리다니…….”

“당신은 로얄나이츠를 넘어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검제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는 분입니다. 그런 분을 모시는 거라면 가문과 저에게도 영광으로 남을 겁니다.”

카일리어의 말에 라바나스나 아곤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검제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검제는 말 그대로 로얄나이츠 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오른 사내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로얄나이츠를 이끄는 대장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는 웨스트 왕국에서 왕과 함께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제라… 아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저 아곤 또한 아시테르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아시테르님께 마음을 바쳤습니다.”

“후후후, 이번 경쟁전에 참여한 세력들 모두 아시테르님의 산하로 들어간다면… 장담컨대 다른 로얄나이츠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전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파우트 또한 제가 충분히 설득해 보이겠습니다.”

카일리어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에 아시테르도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카일리어가 웃었다.

“어차피 아시테르님께서 린 공주님과 결혼이라도 하신다면… 장차 왕이 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하지만 저는…….”

“웨스트 왕국은 그런 것들을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지… 다른 귀족들이 정통성 같은 것들을 따져서 무엇하겠습니까? 아시테르님은 이미 로얄나이츠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그 말은 즉, 얼마든지 린 공주님과 혼인할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카일리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로얄나이츠는 많은 것들을 납득 시켜 주는 지위였다.

“뭐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로 로얄나이츠가 되었으니… 이제 그 하프 드래곤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놈을 잡으러 가면 되는 건가?”

카이드의 말에 카일리어가 두 눈을 꿈뻑였다.

그 또한 카이드가 말하는 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설마… 헬라이번을 말하는 건가?”

“아, 그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헬라이번과의 전쟁이라니…….”

“일단 그 녀석부터 잡으러 가는 것 같던데? 아냐?”

카이드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그쪽부터다.”

“재밌겠네.”

재정비가 끝나기도 전에 카일리어는 경쟁전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가 경쟁전을 포기하게 되면서 아시테르는 자연스럽게 로얄나이츠에 입단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입단을 축하해 주는 가운데 아시테르가 모두의 앞에서 폭탄 같은 발언을 꺼내 버렸다.

“한 달 안에 헬라이번의 왕국을 무너트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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