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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32화 (332/424)

332화 헬라이번의 과거

잠깐의 헤프닝(?)도 끝이 났다.

체이즈와 로세리아가 바깥의 인간들을 데려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헬라이번을 비롯한 장로들이 빠르게 한곳으로 모인 것이다.

온몸에 붉은 비늘이 돋아난 헬라이번.

그는 한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덩치와 키를 갖고 있었다.

거기다 양쪽으로 돋아난 뿔은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다.

“체이즈.”

“헬라이번님…….”

“네가 인간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헬라이번의 시선이 아시테르와 언노운 기사단에게로 향했다.

그러다 세아츠리스에게서 시선이 멈추었다.

“헌데 너는 인간이 아니로구나…….”

헬라이번의 시선을 받은 세아츠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헬라이번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지진 않았다.

갖고 있는 마력의 양도 그리 크진 않아 보였다.

다만 지켜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카이드 역시도 헬라이번에게서 위험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너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헬라이번이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과 다른 기운을 풍기는 인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헬라이번 또한 아시테르를 경계하고 있었다.

익숙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미지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

그에게는 오히려 세아츠리스보다 아시테르가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네가 인간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인가보구나.”

“맞습니다. 제 이름은 아시테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보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온 거지?”

“이곳 첼룬 왕국을 다스리는 헬라이번님입니까?”

“그렇다. 내가 이곳의 주인이다.”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니… 과연 내가 그것에 응할 것 같나?”

“첼룬의 미래가 걸려있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시테르의 말에 헬라이번이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내게 협박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협박이 아닙니다. 그저 확실히 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헬라이번이 아시테르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 이내 헬라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디 한번 대화를 나눠보자꾸나.”

“감사합니다.”

“감사하기엔 아직 이르다. 무슨 얘기가 오갈지는 아직 모르는 것 아닌가?”

“괜찮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때문인지 헬라이번은 특히나 아시테르를 경계하고 있었다.

헬라이번을 따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의장이라고 해봤자 높은 언덕에 굵은 돌들을 앉을 수 있게 박아넣은 것 뿐이었다.

아시테르와 헬라이번이 서로 대립해 앉았다.

둘의 뒤로는 각기 수하들이 시립했다.

헬라이번이 팔짱을 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거지?”

“첼룬 왕국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뭐?”

“이곳이 특이하다는 것 정도는 조금 전 직접 눈으로 봤으니 알 수 있었습니다. 헬라이번님께서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겁니까?”

“무엇을 하고자 한다라… 글쎄. 크게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로군.”

“왕국을 세운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가?”

“네. 헬라이번님의 대답에 따라서 저희들의 방향도 달라질 테니까요.”

“쯧…….”

헬라이번이 혀를 찼다.

불쾌한 기색을 대놓고 내비추면서도 그는 아시테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뜻이 없었다. 인간들에게 차별받는 이종족들을 보호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종족들을 보호한다고요……?”

“네놈들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아직 여러 이종족들이 존재한다. 다만 그들이 모습을 숨기는 것은 이 세상의 지배종이 되어 버린 인간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인간들은 참으로 우습지 않나?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면 무조건적으로 경계하고 배척하려 든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드래곤과 인간의 피가 섞인 존재. 인간들의 세상에서 난 그저 버림받아야 할 존재였다. 이용당하고 또 이용당하다 결국엔 자신들과는 다른 종이라며 나에게도 검과창을 겨누었다.”

헬라이번이 이를 악물었다.

오래된 일이어도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헬라이번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이유는 결정적으로 인간들 때문이었다.

본래 헬라이번은 친구라 믿을 수 있는 인간을 따라 왕국의 기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인간의 피가 더욱 많은 활동하고 있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헬라이번은 몇몇 친한 이들에게만 자신이 하프 종족임을 밝혔다.

마수와 인간의 피가 섞여 있는 존재.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친구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고 곧 헬라이번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들은 헬라이번을 믿는다며 헬라이번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곤 헬라이번이 인간들의 세상에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존재답게 헬라이번은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함께 기사단에 들어온 인간들보다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는 헬라이번 때문에 몇몇 인간들이 그를 질투하게 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헬라이번이 사랑하는 여인을 이용해 함정에 빠트렸고 분노한 헬라이번은 그들에게 복수를 가했다.

몇몇 친구들이 헬라이번의 편을 들어주었으나 세상은 그에게 냉정하고 가혹했다.

더군다나 이상하리만치 상황에 맞게 그가 사실은 이종족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더욱 헬라이번에게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헬라이번은 그때까지도 인간이나 친구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단지 몇몇 인간들 때문에 그가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허나 그게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쟁터마다 보내지며 전쟁 병기로 쓰여지던 헬라이번.

그는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친구들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일이었다며 스스로를 위했다.

수년을 전쟁터에서 보내온 헬라이번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미 죽은 뒤였다.

헬라이번은 가족을 지켜 주겠다던 친구들의 약속을 떠올려다.

“나를 속인 거냐…….”

헬라이번이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왕실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상당한 권력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헌데 그들은 헬라이번을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그가 처벌을 받아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헬라이번의 아내가 붙잡혀 갈 때도 그들은 묵인했다.

그 순간, 굉음이 터지고 왕국에 거대한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마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분노한 헬라이번은 그들에게 화를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마수들이야말로 그가 가장 마음 편하게 죽일 수 있는 존재들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때 비로소 자신의 힘을 개화할 수 있었다.

헬라이번의 모습이 점점 용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몸집도 거대해졌다.

헤츨링 수준의 몸이었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헬라이번의 브레스에 수많은 마수들이 죽고 그의 날갯짓에 마수들이 날아갔다.

모습이 용처럼 변한 헬라이번이 수도에 쏟아지는 마수들을 싸그리 쓸어버렸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마력.

창과 검도 튕겨낼 정도의 단단한 비늘.

하늘 위로 우뚝 솟아난 두 개의 뿔까지.

붉은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이 갑자기 세상에 나타나자 인간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기 바빴다.

뒤이어 마수들을 상대하던 인간들이 헬라이번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너희들…….”

“헬라이번!!! 결국 네놈 또한 마수였구나! 우리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네놈의 그 흉포한 성정을!!”

“뭐라……?”

그때부터였다.

인간들의 창과 검은 마수가 아닌 헬라이번에게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마도사들이 마법으로 헬라이번을 폭격했다.

헬라이번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철저히 이용당하고 사랑하던 여인마저 잃었다.

그런 와중에 인간들은 자신 또한 ‘마수’라며 사냥을 외치고 있었다.

그동안 인간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업적을 쌓아왔다.

허나 인간들은 자신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려워하고 위험한 존재로 치부했다.

자신의 행동은 결국 무의미한 짓거리였을 뿐이었다.

결국 머리 끝까지 분노한 헬라이번은 주변 모든 인간들을 공격했다.

헬라이번과 인간들의 싸움은 무려 이틀이나 계속되었다.

헬라이번 혼자 인간들과 싸웠다면 어림없었겠지만 어째서인지 마수들은 헬라이번을 공격하지 않았다.

헬라이번 또한 더는 마수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인간들을 공격했다.

그렇게 왕국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을 죽였다.

분노에 이성을 잃었던 헬라이번은 뒤늦게 나서야 자신이 만들어놓은 광경을 살폈다.

아름다웠던 수도의 구조물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수풀로 뒤덮여 있던 대지는 인간과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해 있었다.“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인간들에게 복수를 했다고 해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 한켠이 아려오고 있었다.

그 때 그와 함께 싸웠던 마수들이 헬라이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인간은 그들을 단순한 마수라 생각했지만 사실 이들은 지능을 가진 이종족들이었다.

그렇게 헬라이번은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이종족들을 거두어들임과 동시에 꽤 오랜 세월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곤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인간들에게 차별받고 버려지는 이종족들을.

헬라이번은 그런 이종족들을 위해 새로운 왕국을 세웠을 뿐이다.

이종족들이 안심하고 평등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첼룬 왕국은 과거 헬라이번에게 멸망당한 왕국 위에 다시 세워졌다.

왕국을 세우던 날 헬라이번은 죽어가던 친구의 모습을 기억했다.

“나는 그저 네가 미웠을 뿐이다… 네 모습이 달랐던 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어… 무섭도록 강해지고 성장하는 네가 두려웠고… 승승장구하던 네가 질투났을 뿐이야… 미안하다. 나는 그토록 못난 인간이었어…….”

하반신의 반절이 날아가 피를 흘리던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헬라이번은 한 때나마 가장 친한 친구로 여겼던 인간을 가슴 속에 묻어 두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한동안 헬라이번은 자신의 왕국에 인간이 들어오는 것을 절대 허락지 않았다.

인간이 근처에 오면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다.

헬라이번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만큼은 자신의 왕국에 스며들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의 씨앗은 들이지 않는 것이 낫다 판단했다.

수많은 인간들이 헬라이번의 손에 죽었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고 인간들은 헬라이번의 왕국을 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편성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헬라이번은 이종족들과 함께 그들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로 다시 쳐들어오진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우습게도 인간들은 저들끼리 싸우기도 바빴다.

“같은 종족임에도 신분을 나뉘어 차등을 두는게 바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 인식을 바꾸어 준 것이 바로 체이즈와 로세리아였다.”

체이즈와 로세리아는 웨스트 왕국에서 활동하던 용병들이었다.

그것도 꽤나 유명한 용병단 출신이었다.

그들은 우연하게 이곳으로 흘러들어왔고 헬라이번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두 사람이 사실은 이종족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우라 떼와 싸우다 흘러들어왔음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 부모까지 헬라이번에게 두 사람을 죽이지 말아 달라 간청했다.

결국 헬라이번은 체이즈와 로세리아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고, 그때부터 첼룬 왕국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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