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여왕의 유희 (1)
아시테르와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곧바로 붉은 협곡으로 향했다.
따로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새삼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나저나 되게 오랜만 아니야? 이렇게 우리끼리만 모여서 마수들 사냥하는 건.”
에스파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동료들을 살폈다.
그의 말대로였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완전체로 모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새삼 추억에 잠기네.”
“시작은 우리 셋이었잖아.”
“뭐래? 네 명이었지. 데미리우스 오빠까지.”
“다들 미안하지만… 시작은 저부터예요.”
세아츠리스가 자신을 직접 가리켜 말했다.
사우라 떼를 눈앞에 두고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보며 헬라이번과 장로들은 미심쩍은 눈을 하고 있었다.
“긴장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자신감이 지나친 것 같아 보이긴 한다.”
“훗. 제대로 당해봐야 저런 웃음이 안나오지.”
“사우라는 무리를 지어 움직일 때 진정한 무서움이 나오는 녀석들이지.”
여러 말들이 뒤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아시테르가 선두에 먼저 나섰다.
이를 본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뒤따라 나왔다.
“하여간 마수들 잡는 데엔 가장 우선이라니까.”
“차후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위협이 될 수 있는 녀석들이야. 가만히 둘 수는 없지.”
“그건 동감합니다아.”
카이드가 창을 들었다.
먹이를 노리는 사우라 떼가 서서히 이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움직임에 실컷 웃으며 떠들던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눈빛도 덩달아 바뀌기 시작했다.
“자아, 사냥 개시.”
“일단은 이쪽 지역부터.”
데미리우스가 양 팔을 뻗었다.
그의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나며 주변으로 퍼졌다.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데미리우스의 독이 퍼지자 다가오던 사우라 떼가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녀석들의 코에서 핏물이 새어나온다.
사우라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독으로 가득해진 대지 위에서 사우라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흐음… 독인가.”
장로들 중 한 명이 데미리우스의 마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수백 마리의 사우라가 죽음을 당했다.
독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번에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러다 데리미우스 형 혼자 다 해먹겠네.”
에스파가 팔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아귀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이 나타났다.
이를 본 하피오가 눈썹을 꿈틀였다.
“활?”
다크 엘프들 또한 뛰어난 궁술로 유명한 종족이었다.
마법도 잘 다루지만 궁술이야말로 그들의 주특기 중에 주특기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하피오는 에스파를 좀 더 눈여겨보고 있었다.
“어디 실력 한 번 볼까.”
인간이 다루는 활.
그것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이었다.
호기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에스파가 가볍게 위로 떠올랐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그의 움직임에 하피오도 눈을 크게 떴다.
헌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에스파의 활에서 다섯 개의 화살이 동시에 쏘아져 나갔다.
헌데 화살에 담긴 마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지랑이와 함께 날아간 화살들이 마수가 아닌 대지에 꽂혔다.
“일부러……?”
처음부터 화살은 마수들을 노리고 날아가지 않았다.
하피오는 그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화살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폭발에 휘말린 마수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어 대지를 뒹굴었다.
이어 에스파는 엄청난 속사를 선보였다.
빠르게 날아간 수십 개의 화살이 사우라의 머리에 꽂혔다.
놀라울 정도의 실력에 하피오도 순간 감탄을 흘리고 말았다.
뒤이어 쇠사슬이 나타나 다가오는 마수들을 모조리 쳐냈다.
파밧!
대지를 박찬 에스파가 허공의 쇠사슬을 타고 날아다녔다.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 에스파를 보며 하피오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꼭 한 번 겨뤄보고 싶은 수준의 궁술이었다.
우위를 가려보고 싶은 호승심은 어느 종족에게나 있게 마련.
하피오가 에스파의 궁술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체이즈는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자신의 뼈를 꺼내는 라빈을 보며 처음에는 기함을 토했다.
세상에 태어나 저런 식으로 무기를 꺼내는 것은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거기다 그 뼈를 이용해 마수들을 도륙내고 있었다.
라빈이 무자비하게 마수들을 사냥하는 동안 크로마제도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가 만들어낸 모래더미가 마수들을 덮쳤다.
슈와아아아―!!
모래가 날카로운 가시 모양으로 일어나며 마수들을 찔렀다.
뒤이어 모래주먹이 날아가며 마수들을 강타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지. 나의 새로운 마법.”
그동안 크로마제도 놀고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마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크로마제의 주변으로 커다란 마법진이 생겼다.
환한 빛무리 사이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오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빛내며 크로마제의 마법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래로 만들어진 골렘이었다.
모래를 계속해서 쏟아내는 골렘이 크로마제를 바라보았다.
“가서 마수들을 죽여.”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래골렘이 움직였다.
아시테르는 잠깐 멈춰 서서 모래골렘을 지켜보았다.
과연 모래골렘은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할지 궁금해진 것이다.
우선 골렘답게 기본적으로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 이후 녀석이 쏟아내는 모래가 해일처럼 몸을 일으켰다.
“우오오오오!!!”
“뭐야 저게!?”
“이야… 저런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야?”
모래골렘의 전투를 지켜보던 아시테르와 다른 이들도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내었다.
마수들 사이를 누비는 모래골렘을 보며 크로마제도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력은 상상 이상으로 잡아먹었지만 모래골렘의 전투력은 실로 뛰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반키라스가 크로마제의 어깨를 툭 쳤다.
“겨우 이 정도냐?”
“그럼 뭐 너는 더 대단한 마법이라도 익힌 거냐?”
“당연하지. 깜짝 놀라지나 마라.”
“어디 한 번 구경 좀 해보자.”
반키라스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뻗어나갔다.
거대한 먹구름처럼 생긴 반키라스의 마력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렸다.
“야 설마…….”
뒤에 이어진 광경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반키라스의 마력이 마수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력만 먹을 수 있는 것 아니었어……?”
“계속 강해지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이런 것도 가능하더라고.”
몸집을 점점 불리던 마력이 주변에 보이는 마수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 광경이 너무나 기괴해 지켜보던 헬라이번과 장로들마저 순간 질색할 정도였다.
“인간들 중에 특이한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더니, 저건 좀 심하군…….”
“보기에 썩 좋은 광경은 아니야.”
“마법으로 마수들을 집어삼키는 건가…….”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강한 걸.”
“그건 그렇네.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 천 마리의 사우라 떼와 싸우는데도 전혀 밀린다는 느낌이 없어.”
“오히려 압도하고 있는 느낌이로군.”
장로들은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싸움을 보며 서서히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저들이 어째서 그토록 자신 있어 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때 사우라 떼의 뒤편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헬라이번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던전 브레이크다.”
“이곳에서 종종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긴 했지만… 저런 식으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것은 처음 보는군요.”
“심지어 하나가 아니야.”
푸른 게이트의 옆으로 붉은 색의 게이트까지 나타났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수많은 마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했다.
헬라이번과 장로들도 서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저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이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오? 던전 브레이크다!”
“두 개나 되는데?”
“마침 지루해지던 참인데 잘 됐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도 되겠는 걸.”
어느새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한곳으로 뭉쳤다.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위시한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던전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크롸아아아!!!”
“캬오오!!!”
사우라 떼가 아시테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카이드가 창을 말아쥐며 앞으로 나섰다.
“방해된다. 꺼져라 이것들아.”
슈콰아아아앙―!!!
파바바바방!!! 퍼버버벙!!!!
창을 일자로 휘두르자 거센 마기가 뻗어나갔다.
마기에 휩쓸린 사우라들의 몸이 잘려나갔다.
한 번의 창격으로 수십 마리의 사우라를 베어버린 카이드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쿠르르릉!!!!
카이드의 창이 번쩍 거릴 때마다 거센 폭음이 들렸다.
사우라 떼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사이 마침내 열려버린 던전 게이트에서 다른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에스파가 활의 방향을 돌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화살을 쐈다.
던전 게이트에서 나오던 소형 마수들이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때 아시테르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세아츠리스!!”
“맡겨두세요.”
가시덤불이 뻗어나가 커다란 몸집의 마수를 옭아맸다.
몽둥이 비슷한 것을 들고 있던 트윈 트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놈의 가까이로 다가간 아시테르가 과감하게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빛무리와 함께 트롤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이어 아시테르가 정면을 바라보며 힘을 개방했다.
후콰아아앙!!!!
던전 게이트로 빠져나오던 마수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 거대한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마수들은 없었다.
바닥에 짓눌린 마수들을 보며 헬라이번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마법이 아니었다.
“평범한 녀석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힘을 잇고 있는 자였나.”
헬라이번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발도르 왕국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보여주는 발도르 왕국의 힘을 보며 헬라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군…….”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마수들이 피를 토해냈다.
그 엄청난 검격을 보며 카이드도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간다아!”
카이드가 어지러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마기가 주변의 마수들을 베었다.
가시덤불이 위로 솟구치며 날아다니는 마수들을 떨어트렸다.
그 사이 가이우스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다가오는 마수들을 막았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찰진 타격음이 들리며 마수들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키야아아!”
“그워어어어어어어어!”
마수들이 가이우스를 향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집중 공격을 당했음에도 가이우스는 멀쩡하게 두 발을 디고 서있었다.
“네놈들 것은 돌려주겠다.”
가이우스의 두 눈에서 형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그가 뻗은 주먹에서 강렬한 기운이 광선처럼 쏘아져나갔다.
파콰아아앙!!!
대지를 긁으며 뻗어 나간 강대한 마력.
그것에 휘말린 마수들의 몸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다.
가이우스의 주변으로 가시덤불이 춤을 추듯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세아츠리스가 양팔을 감으며 나직이 주문을 읊었다.
“여왕의 유희.”
콰드드드드득!
촤라라락! 촤르르르르―!!!
가시덤불이 마수들 사이에서 광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