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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36화 (336/424)

336화 실력 겨루기

헬라이번의 우려와 다르게 첼룬 왕국의 장로들은 아시테르 일행과 함께 싸울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그 전제 조건으로 첼룬 왕국의 존재를 인정해주어야만 한다는 점을 걸었다.

첼룬 왕국이 존속될 때에야 비로소 동맹국으로서의 참전을 약조한 것이다.

아시테르는 물론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아시테르는 첼룬 왕국을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다른 걱정거리를 덜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다행히 첼룬 왕국은 웨스트 왕국의 우방국으로서 침략의 의사가 없음을 약조했다.

아시테르도 그들과의 평화 협정에 동의했다.

로얄나이츠라고 해서 마냥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만은 없는데, 이번 일이 가능했던 것은 린이 두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와준 덕분이었다.

공주인 그녀가 나섰으니 다른 고위 귀족들도 함부로 견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원하게 일을 처리해버렸다.

이카루스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온 린은 아시테르를 만나자마자 그 품에 안겼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언노운 마법기사단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아시테르와 린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첼룬 왕국의 이종족들이야 아시테르와 린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질 않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린을 알아본 체이즈와 로세리아가 예를 갖추었다.

“왕국의 공주님을 뵙습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무릎을 꿇은 그들에게 다가가 린이 손을 건넸다.

“이렇게 예를 차리실 것 없어요. 두 분은 이제 웨스트 왕국의 국민들이 아닌 첼룬 왕국의 국민이잖아요?”

“하지만 린 공주님, 저희는…….”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제게 이렇게 극진하게 예를 갖추면 헬라이번님이나 다른 분들이 불쾌해 하실 수도 있잖아요?”

린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헬라이번이 손을 내저었다.

“인간들의 예법 따위에는 관심 없다.”

“그런가요?”

린이 해맑게 웃으며 아시테르를 찾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더니 더더욱 반가움이 밀려들어왔다.

“그래도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네요?”

“네. 덕분이에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구요. 당신이 만들어놓은 밥상 앞에 앉기만 했을 뿐인걸요.”

“그래도 린 당신이 아니었다면 협정은 어려웠을 거예요.”

“후후, 제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해냈을 거면서. 그보다… 이곳 생각보다 아름답더라고요? 어때요, 함께 주변 경치 좀 둘러볼까요?”

“그럴까요?”

아시테르와 린이 손을 마주잡고 첼룬 왕국을 둘러보았다.

웨스트 왕국이 아닌 첼룬 왕국이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데이트였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원들도 두 사람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한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은 첼룬 왕국과 웨스트 왕국을 이을 수 있는 가도를 만들기 위해 투입되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놀랍게도 카일리어였다.

역사적인 가도를 짓는 일을 직접 지휘하고 싶다며 카일리어가 자청해서 나선 일이었다.

그 덕에 가도를 짓는 일도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 사이 아시테르와 린은 평화로운 여유를 만끽했다.

그녀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다음은 뭐에요?”

“사우스 왕국.”

“흐음… 웨스트 왕국 내부에는 크게 관심 없는 걸까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뭐… 그건 그렇죠. 저는 솔직히 당신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더 재밌어요.”

“그럼 그렇게 할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아직 다른 로얄나이츠와 여타 귀족들이 당신을 상당히 견제하고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꽤나 큰 세력을 갖추게 되었으니까.”

“이번 일까지 알려지면 견제는 더욱 거세질 거예요. 첼룬 왕국까지 우방으로 갖게 되었으니까요.”

린이 조금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아시테르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아시테르에게 반발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엇다.

세상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좋게 봐주는 이도 있지만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나 권력에 욕심이 많은 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의 눈에 아시테르는 현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존재였다.

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이들의 행동도 함께 결정될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은 아시테르가 웨스트 왕국 내부에서 더더욱 견고하게 입지를 다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시테르는 웨스트 왕국 내부의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관심을 보이는 일이 있었다.

“검제라는 칭호, 그건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어요?”

“아주 간단해요. 검제는 말 그대로 로얄나이츠 중 가장 강한 존재를 일컫는 말이거든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겠죠?”

“결국 모든 로얄나이츠를 이기면 된다는 말인가요?”

“네. 그들 중 최강을 가리는 거니까요.”

“흐음… 역시 그렇군요.”

아시테르가 다른 한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헬라이번이 있었다.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군.”

“제가 생각했을 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헬라이번님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한 분이십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다섯 손가락…? 호오, 이거 궁금해지는군. 자네가 말하는 다섯 손가락의 강자들은 누구지?”

“한 명은 제 할아버지이고 한 명은 제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마녀 숲에 있는 마녀여왕님. 마지막으로 한 명은…….”

아시테르가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플레이아스 레큐니아였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조금 꺼려졌다.

“흐음… 재밌군. 그들 중 누가 제일 강한지 한 번 판단해 보겠나?”

“감히 그래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자리를 이동하지.”

헬라이번이 아시테르를 데리고 조용한 장소로 옮겼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자유 대련을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헬라이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고 헬라이번 역시도 아시테르와 한 번 겨뤄보고 싶은 차였다.

아시테르와 헬라이번은 그렇게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일주일을 넘게 실력을 겨루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오직 둘만 알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아시테르도 헬라이번과의 결투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을 겨루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헬라이번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놀라운 힘이로구나. 지나치게 강대한 힘이야.”

“헬라이번님도 대단했습니다.”

“나와 대등하게 겨룰 정도의 실력이라니… 장담하지. 인간들 중에 너와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헬라이번의 말에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그와 대등하게 겨루었다는 말은 그만큼 헬라이번이 아시테르를 높여 말해준 것이었다.

사실은 헬라이번이 아시테르보다 조금 더 우세함을 가져갔다.

그의 광활한 마력과 어마무시한 마법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법 속에서 아시테르 또한 몇 번의 위기를 겪었다.

그래도 현재 헬라이번의 상태를 보면 일방적으로 아시테르만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 여기저기 비늘이 뜯겨지고 베인 흔적들이 난무했다.

모두 아시테르의 검에 당한 상처들이었다.

단단하기로는 여느 갑옷 못지않은 헬라이번의 비늘인데도 이 정도 상처가 남은 것이다.

아시테르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준 헬라이번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렇게 그는 첼룬 왕국을 뒤로 하고 다시 웨스트 왕국으로 복귀했다.

그런 아시테르의 곁에는 린과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첼룬 왕국과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이종족들의 나라.

그것은 웨스트 왕국의 국민들에게 불안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것들은 두 나라 사이를 잇는 가도가 완성 되고나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휘하 군사들에게 우선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그래도 아시테르를 따라 고생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이점은 두둑이 챙겨주고 싶었다.

때문에 카일리어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첼룬 왕국의 상권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거래를 트고 독점권을 얻어야 나중에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초기에는 그만한 투자가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 자금을 얼마든지 출자할 수 있었다.

부족한 이들이 있다면 아시테르 쪽에서 도움을 주었다.

애초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아시테르였기에 이러한 일들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수 있었다.

그보다 아시테르는 로얄나이츠 쪽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왕국의 수도로 복귀하자마자 검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헬라이번과의 전투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는 더욱 성장했다.

그 증거로 그동안에는 하루 정도는 실컷 싸울 수 있던 카이드도 이제는 반나절이면 포기를 선언했다.

“못 해 못 해. 아니 안 해!”

카이드가 창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주저앉았다.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엔류아가 다가와 카이드의 몸을 치료해주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무식하게 세졌잖아 우리 대장…….”

카이드가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겨우 일주일.

그 헬라이번과 겨우 일주일을 겨루었을 뿐인데 아시테르는 어느새 카이드보다 몇 단계는 위로 올라가 있었다.

이제는 커다란 벽이 아닌 커다란 산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아시테르도 검을 거두며 숨을 골랐다.

그의 몸에도 상처가 있었지만 카이드에 비해선 가벼운 수준이었다.

“이제는 카이드와 제가 합공을 해도 못이길 것 같습니다.”

“나도 붙을까?”

에스파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아시테르 오빠랑 겨뤄보고 싶은데?”

“후후, 저 또한 참을 수 없습니다!”

라빈과 크로마제가 손을 들며 나섰다.

카이드가 그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조무래기들은 빠지라는 듯한 표정.

그 표정을 읽은 에스파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도 재밌을 것 같지 않냐?”

“그럼 저는 이쪽에 붙어도 될까요?”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의 옆에 서며 말했다.

어느새 린도 아시테르의 옆에 섰다.

“나도 이쪽.”

“그럼 제가 이쪽으로 와야 공평하겠네요.”

엔류아가 반대편에 섰다.

이어 데미리우스와 자비토, 반키라스가 아시테르의 편에 섰다.

“저는 그럼 대장 편에.”

“나도 이쪽에 선다. 저 창쟁이 자식이랑 끝장을 보겠어.”

“저도 크로마제의 반대편에 서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에이브릴 쪽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뿐이었다.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에이브릴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그냥. 재밌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끼리 이렇게 겨뤄본 적은 없지 않나?”

“모두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빨리 선택해라. 현기증 나게 하지 말고.”

“그래. 빨리 선택해 언니. 어느 쪽이야?”

“당연히 이쪽이지 뭘 선택하래.”

마지막으로 에이브릴이 선 곳은 에스파 쪽이었다.

그때 먼발치에 있던 이카루스가 아시테르 쪽으로 걸어왔다.

“푸르르……!”

“그래. 너도 있었지.”

아시테르가 이카루스의 뺨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어느새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양쪽으로 나뉘어 서있었다.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시작해보면 되는 건가?”

“완전 재밌겠는데. 벌써 설레.”

카이드가 양옆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발목 잡으면 가만 안 둔다.”

“뭐래. 혼자서는 절대로 아시테르 오빠 못 이기면서.”

“제대로 서포트 해줄게 카이드. 어디 한번 아시테르를 이겨보자고.”

“어림없는 소리를 하시는 군요 에스파 오빠. 제가 있는 한 오빠의 화살은 아시테르 오빠에게 닿지 못할 거예요.”

세아츠리스가 에스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에스파가 웃었다.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얘기고.”

“아아 시끄러워. 이번엔 내가 먼저 간다!”

잠자코 있던 라빈이 가장 먼저 대지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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