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준비
결과는 카이드 팀의 패배였다.
다른 이들도 훌륭하고 뛰어났지만 아시테르와 세아츠리스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가까스로 데미지를 입힌다 하여도 린의 능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엔류아의 장점은 한 번에 많은 수의 아군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반면 린의 장점은 회복뿐만 아니라 다른 부가적인 능력치도 상승시켜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런 점에서 아시테르가 전위에 서고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서포트를 시작하니, 반키라스나 자비토, 데미리우스가 한결 수월하게 마법을 사용하며 공격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 쪽에도 전위를 설 수 있는 카이드와 가이우스가 있었다.
그러나 아시테르의 공격은 가이우스의 단단한 방패마저도 뚫어버릴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거기다 카이드의 공격은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에 잔뜩 방해받았다.
에스파가 이를 화살로 견제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데미리우스가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자비토가 라빈과 에스파를 동시에 상대했다.
반키라스는 그저 크로마제를 괴롭혔을 뿐이다.
그렇게 전투가 흘러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승패의 양상이 기울었다.
“하아… 결국엔 지고 말았어.”
“세아츠리스랑 아시테르가 붙어 있는 건 반칙 아냐? 거기다 린 공주님의 마법은 또 뭐야? 뭐 저러냐?”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반키라스 자식… 끝까지 나만 물고 늘어지다니…….”
크로마제가 반키라스를 보며 눈을 흘겼다.
반키라스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바탕의 실력 겨루기가 끝이 났다.
카일리어의 지휘로 첼룬 왕국과의 가도 연결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 아시테르와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다시 수련에 진입했다.
특히나 아시테르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필요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과의 전투도 분명 아시테르에게는 자극이었지만 역시나 헬라이번의 전투만큼은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헬라이번과 겨루었을 때 아시테르도 덩달아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깨달음과 감각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차례였다.
그것들을 끝낸 후에 검제의 자리에 도전해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헬라이번과의 전투를 그렸다.
온몸으로 느낀 전투였으니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이 났다.
아시테르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전투를 그렸다.
드래곤으로 변한 헬라이번.
그의 무시무시했던 마법들.
그 사이를 헤쳐 나가는 자신의 모습.
검술의 움직임을 다시 살폈고 힘의 운용이 효율적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기술의 쓰임은 적절했는지, 부족했다면 어떤 점에서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그리고 또 그렸다.
헬라이번의 전격 마법이 쏟아질 때는 더욱 빠른 스피드가 필요했다.
휘몰아치는 칼바람 속에서는 자신의 검술에 군더더기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니 헬라이번을 지키던 견고한 방패가 떠올랐다.
그것을 뚫어내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의 집중.
그것이 필요했는데 쉽게 이루어내지 못했다.
아시테르의 방대한 영기는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칠 뿐이었다.
“힘의 집중이 필요한 때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니다. 내재된 힘이 강할수록, 집중된 힘일수록 더욱 거대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다.”
헬라이번의 목소리가 아시테르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이어 그의 몸에 웅크리고 있던 영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그렸던 대로 아시테르가 움직임을 시작했다.
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듯, 검 끝이 이리저리 흔들렸다가 날카로운 직선을 그리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직접 움직이며 쓸모없다 생각되는 습관들을 버렸다.
움직임은 간결하게, 그러나 힘의 이동은 막힘이 없어야 했다.
아시테르가 발걸음을 일정한 박자로 내딛었다.
그러다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어 아시테르의 검도 변칙적으로 변했다.
후우우웅!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영기가 거세지자 아시테르의 눈앞에 수많은 검이 나타났다.
검의 잔상 같아 보이지만 이것 모두 진검이었다.
또다시 전격 마법이 몰아친다면 이것으로 응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테르가 호흡을 내뱉으며 일검을 내질렀다.
파콰아아아앙!!!
이어 강렬한 기운이 태풍처럼 전방을 휩쓸었다.
형형한 안광을 뿜어낸 아시테르가 몸을 돌리며 검을 횡으로 베었다.
반월 모양으로 뻗어나간 진공 형태의 검기가 벽에 선명한 일(一)자를 그렸다.
머릿속에 그려진 헬라이번의 견고한 방패를 뚫었는가.
이는 충분히 뚫을 수 있을만한 공격이었는가.
되뇌고 또 되뇌었다.
아시테르가 한 발 내딛으며 이번엔 검끝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쿠르르릉!!!
용이 승천하듯 영기가 뻗어 올라갔다.
그의 일격에 헬라이번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시테르는 가상의 헬라이번을 상대로 연속해서 검격을 쏟아냈다.
한편, 그의 검격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카이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제 저걸 누가 막아 내냐…….”
카이드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 역시도 나름 천재라 자부했다.
수많은 전투를 겪었다곤 하나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더해지는 것은 노련함이었지 실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은 달랐다.
노련함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감각과 실력도 함께 성장시켰다.
그들의 것을 흡수하고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을 터득해 나갔다.
그런데 아시테르를 지켜보고 있으면 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든다.
“2인자 자리라도 지키려면 바짝 몸을 불살라야겠구만…….”
지난번까지는 반나절이었지만 이제는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카이드도 아시테르의 검격을 보며 머릿속에서 모의 전투를 그려보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참패였다.
그건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시테르를 상대로 반나절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의 일격을 가까이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돋고 손가락은 떨려온다.
몸이 절로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테르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 줄.
그의 힘이 성숙의 경지에 다다를 법도 하건만, 아시테르는 아직까지도 무서운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하여간 괴물이라니까 괴물.”
같은 편이라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이 아시테르를 저렇게 강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것에 대한 고찰도 해보았지만 카이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만 두기로 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목표를 세웠다.
“대장을 상대로 반나절은 버텨보기. 그래, 일단은 거기서 부터다.”
눈앞에 쫓아갈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단순하게 눈앞의 상대를 목표로 삼으면 된다.
아시테르처럼 막연한 상대를 그리지 않아도 된다.
카이드가 자신의 창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창대가 많이 낡았고 창날도 이가 다 떨어져나갔다.
나름 괜찮은 창이라 오랫동안 썼지만 이제는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너는 오래 버텼다.”
“새로운 창을 쓰는 것은 어때?”
어느새 카이드의 곁으로 다가온 아시테르가 물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생기를 띠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 사이에도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새였다.
그 사이 아시테르는 카이드의 창을 찬찬히 살펴봤다.
대체 어떻게 이런 창을 들고 그렇게 싸웠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대체 이런 상태의 창을 들고 어떻게 그렇게 싸워온 거야? 그렇지 않아도 첼룬 왕국에 무기를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드워프가 있다고 하던데.”
“호오……?”
“그분에게 부탁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냥 찾아가기만 하면 되나?”
“그래도 무기를 만들 재료 정도는 가져가는 게 낫지 않을까? 네 힘을 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재료로는 어림없을 것 같은데.”
“그건 또 그렇네.”
“그리고 수고비도 챙겨가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카이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카이드 또한 아시테르처럼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아시테르는 자신이 돈을 갖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길 좋아했고, 카이드는 쓸모없는 돈이라며 한쪽에 쟁여두는 편이었다는 점이다.
카이드는 곧바로 벨제부트에 연락을 취했다.
대기하고 있던 지파장들이 곧바로 돈을 준비해 카이드에게 보낼 준비를 했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자신이 깨달았던 점들을 토대로 언노운 마법기사단까지 훈련을 시켜주었다.
최근 비체나 유미르와는 겨루어본 적이 없으니 헬라이번이 아시테르의 머릿속에 머무는 가장 강한 상대였다.
어비스 던전에서 쏟아져 나올 마수들 중 헬라이번만한 강자가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난번 이스트 왕국을 습격한 마수들만 해도 엄청난 강자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언노운 마법기사단 역시도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각오해.”
“옛날 생각이 나서 좋기는 한데…….”
“윽, 그때도 지옥이었는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스승님! 저는 좋습니다! 마음껏 굴려주십시오! 우오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더욱 많은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너는 의욕만 너무 앞서는 게 문제야, 크로마제. 시끄러우니까 차분하게 마음 좀 가라앉혀라.”
“너는 너무 가라앉아 있다, 반키라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열의를 보이란 말이다!”
“아아 됐고. 설마 뭐 이쪽 근처에도 시련의 던전이 있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고. 대신에 우리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을 줄 분들을 좀 모셔왔지.”
“아앙?”
“실력 향상에 도움을 줄 분들……?”
아시테르도 그동안 홀로 수련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자신만 강해져서는 소용없었다.
함께 강해져야 많은 이들을 지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았다.
마침 아시테르의 도움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준 분들이 있었다.
“호오… 오랜만이로구나, 친구여!”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노스 왕국의 왕자인 이그트였다.
마음 같아선 노스 왕국의 절대자인 파쿠황을 모셔오고 싶었지만 그는 일국의 왕이었다.
그래도 이그트 또한 어느새 파쿠황 못지않은 강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정제된 그의 투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 헬라이번이 보낸 장로들이 도착했다.
“우리들 또한 돕겠습니다.”
다크 엘프인 하피오는 에스파에게 더욱 많은 궁술을 알려줄 수 있다.
리저드 종인 헤저락은 같은 창술사인 카이드에게 관심을 보였다.
“저희들도 훈련에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길고트와 다른 기사들도 훈련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아시테르도 그들의 그런 마음을 환영했다.
지금은 부단히도 강해져야 할 시기였다.
아시테르는 이들과 훈련을 함께 하면서도 검제가 될 준비를 차근하게 마쳤다.
정식으로 검제의 길에 오르기 위한 절차를 밟았고 마침내 그의 첫 상대가 정해졌다.
“로얄나이츠 드폰님은 거대한 도끼를 무기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늘 전장의 선두에 서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카일리어가 아시테르의 곁에 붙어서 드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도끼에서 흘러나오는 오러는 아무리 견고한 방패라도 반 토막이 나버리고 맙니다. 거기다 빈틈없는 수비력은…….”
카일리어의 설명을 들으며 아시테르 또한 드폰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 상대하는 로얄나이츠였으니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최대한 변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봤을 때 이 녀석은 우리 대장의 상대가 아닌데.”
카이드가 자신의 코를 후벼 파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