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38화 (338/424)

338화 검제의 길 (1)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경기장 안에 모였다.

본래 이곳 경기장에서는 검투사들의 경기가 열린다.

수십 명의 검투사들이 들어가 서로 실력을 겨루며 최강을 가려내기도 하고, 흉포한 마수들을 집어넣고 검투사들이 이들을 죽임으로써 관중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것 모두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더욱 중요한 매치가 잡혀 있었다.

평소 검투사 경기에 관심 없던 귀족들조차 오늘은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검제에 도전하는 로얄나이츠라… 이건 좀 귀하군요.”

“맞습니다. 얼마만에 있는 일이지요?”

“일전에 네이셔님이 도전했었지요.”

“생각보다 빠르게 패하지 않으셨습니까?”

“후후, 본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로얄나이츠에 들어갔으니 이제는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고 싶겠지요. 로얄나이츠라 함은 웨스트 왕국 최강의 10인을 가리키니,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고 싶은 것은 기사라면 당연한 호승심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편한 마음으로 즐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첫 상대가 드폰님이라니, 나이 사십 줄에 이르러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분인데… 새로 입단한 신입 로얄나이츠께서 꽤나 고전을 면치 못하시겠군요.”

귀족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중앙을 바라보던 관중들과 귀족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 안으로 왕국의 최고 귀빈들이 입장했기 때문이다.

“국왕 폐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부우우우우우―――

웅장한 뿔피리 소리가 울리고 국왕 헤렌달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 공주인 린과 첫째 왕자인 프로도스와 둘째 왕자인 켈로리아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국민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본래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프로도스는 타고난 귀공자 같은 타입이었다.

특유의 분위기로 손까지 흔들어주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켈로리아스는 차갑고 도도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린과 같은 흑발.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문 그는 손을 슬쩍 들어 보이는 것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아한 자태의 린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를 본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웨스트 왕국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공주님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을 걸세.”

“세상에… 어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더욱 아름다워지시는 건지…….”

“그냥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구만.”

왕족들이 들어서고 모두가 착석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경기가 궁금해진 몇몇 로얄나이츠들이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10인의 로얄나이츠 중 세 명이나 이곳으로 찾아왔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로얄나이츠야말로 이 왕국을 지키는 든든한 기둥들이었다.

그러니만큼 그들의 인기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특히나 푸른 머리칼의 사내.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그가 가장 주목받고 있었다.

이 사내가 바로 이전에 다른 로얄나이츠에게 도전했던 네이셔였다.

“크하하하! 자네처럼 뭣 모르는 신입이 들어온 모양이야.”

“너무 그렇게 웃지 말아주십시오 플레임님.”

“그래도 나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나 좋다!”

“이런 패기 정도는 있어야 신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옆에 있던 제라피너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세 명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롭게 로얄나이츠로 선발된 신입에 호기심을 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풍채의 사내였다.

큰 키에 다부진 근육들로 이루어진 체격.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저 자가 바로 그 아시테르라는 인물인가?”

“제법 강해보이는군.”

“드폰 선배랑 비슷한 포지션일수도 있겠군요.”

“후후. 보아하니 노스 왕국의 투사였던 것 같은데.”

플레임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바로 가이우스였다.

가이우스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정제된 마력이 그들의 시선을 훔쳤다.

그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한 번 더 터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호오? 이건 정말 귀하군. 세상 모든 것에 관심 없는 저 여자가 여기까지 오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아르키나님입니까?”

“오래살고 볼 일이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저 여자만큼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크하하하! 그만큼 이번 경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얘기인가?”

“하기야, 회동을 하기도 전에 이런 일부터 벌였으니.”

“회동하기 전에 해야지. 하고나면 의욕이 팍 꺾일 수도 있질 않나.”

플레임의 말에 네이셔가 적극 동의했다.

그 또한 회동 전에 검제로 올라가는 길을 걸었다.

물론 그 전에 참패를 당했었다.

그 이후 회동에 참여했을 때는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네이셔에게 충격을 주었던 인물이 바로 아르키나였다.

아르키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동료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우오오오!! 아르키나님이 투구를 안 쓰고 계시다니…….”

“귀한 장면이다!”

“너무나 아름다우신 분…….”

“린 공주님과 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르키나님이 아닐까…….”

벌써 30대 초반의 나이이건만 아르키나는 20대 초반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청초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네이셔도 처음엔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그녀가 마도사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키나는 기다란 창을 사용하는 창술사였다.

거기다 그녀의 창 주변에는 속성을 띤 구슬들이 늘 머물렀다.

그것들을 이용해 전투를 치르는 전투메이지였던 것이다.

“이곳에 있었군요.”

“어서 오게, 아르키나.”

“플레임 선배께서는 늘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으시는군요.”

“으하하하! 나는 솔직히 드폰이 빨리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 차례까지는 와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은 접으십시오. 네이셔도 할라드의 벽을 넘진 못했습니다.”

“쳇… 그 얘기는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붙는다면 할라드 정도는 이길 자신 있습니다.”

“후후,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신입도 분위기가 장난 아닌 걸?”

그때 가이우스의 뒤를 이어 세아츠리스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순간 헛바람을 들이켰다.

숨이 막힐 정도의 미모를 지닌 세아츠리스.

거기다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조차 남달랐다.

“평범한 인간은 아니로군요.”

“아아… 아르키나 너도 느끼고 있는 것이냐.”

그들의 눈매가 좁혀지는 이유.

그것은 세아츠리스에게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마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감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놓고 마력을 흘려내는 것만으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저런 동료를 곁에 두는 건지.”

“보아하니 본인은 전위를 서고 저 여자는 뒤편에서 보조를 하는 모양입니다.”

“놀랍군요… 솔직히 말해서 아시테르란 녀석보다 저기 있는 저 여자 분이 더 강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네이셔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단하게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기야 아시테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오해를 할만도 했다.

곧바로 카이드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장내로 들어서니 순간 좌중이 숨을 죽였다.

카이드에게서 흘러나오는 위험한 기운.

단지 그가 안으로 들어섰을 뿐인데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저게 진짜인가요?”

“창술사인가…….”

“저 자가 바로 아시테르였나보군.”

“이것 참…….”

카이드는 전신에 칠흑빛 오라를 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몇몇 기사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한 차례 피식 웃어 보인 카이드가 흘러내던 마기를 갈무리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묵직하게 누르던 압박이 사라졌다.

“우리들을 상대로 시험이라도 한 것인가.”

“쯧… 어떠냐, 네이셔? 너는 저 자를 이길 수 있겠는가?”

“당연합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제라피너스는 본능적으로 카이드가 위험한 존재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이 긴장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아직 몇 수 아래인 네이셔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는 플레임과 아르키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과연… 검제의 길에 도전해볼만한 수준이라 이건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군요.”

“…….”

세아츠리스와 가이우스만으로도 대단한데 카이드는 더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멀리서 가늠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 이들의 진짜 실력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저들이 자신들 못지않은 실력자라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야 원…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인 건가.”

“당장 눈앞에 있는 드폰도 분명 느끼고 있을 걸세.”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마 그럴 리가! 드폰이라면 지금 들끓고 있겠지.”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드폰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강자들을 보며 피가 끓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카이드에게로 향했다.

“그대가 아시테르인가?”

“…? 나?”

“그래. 네가 이곳에서 가장 강해보이는데… 그대가 아닌가?”

“미안한데 사람 잘못 짚었다. 저기 오네. 우리 대장.”

카이드가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금발을 한 차례 쓸어 넘기며 여유롭게 걸어오는 사내.

그의 허리춤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만큼의 포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느낌이었다.

드폰이 아시테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 나쁠 정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저게 너희들의 대장이라는 말이지?”

“그래. 우리들의 대장 어비스 아시테르다.”

“호오… 저 자가 바로 새로운 신입. 알았다. 실례했군.”

“별말씀을.”

카이드가 창에 가져갔던 손을 슬쩍 뗐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말해 카이드도 이런 것에 참전할 수 있다면 참전하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드폰도 상당히 강해 보여 재밌겠지만 진짜는 뒤편에 있었다.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렸던 자들.

저들이 또한 풍기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다.

“재밌네. 강한 사람들이 많구만 이 왕국은.”

헬라이번은 거대한 벽 같은 존재였다.

싸워보면 재밌겠지만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들과는 꼭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을만한 상대들.

허나 아쉽지만 지금 이곳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었다.

카이드를 비롯한 가이우스와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며 예를 갖추었다.

“다녀올게.”

아시테르가 그들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내 경기장 위로 올라선 아시테르는 드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시테르라고 합니다.”

“자네가 바로 아시테르였나. 우선 로얄나이츠에 입단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첫 상대로 내가 나설 수 있어 굉장한 기쁨이네.”

“혹시나 제가 무례했던 것은 아닌지요……?”

“크하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로얄나이츠가 회동 전에 이렇게 검제의 길에 도전해봤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저들은 자네의 수하들인가?”

드폰이 뒤편의 카이드와 다른 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의 동료들입니다.”

“후후. 그런가.”

그러기엔 아시테르가 나오자마자 저 세 사람이 예를 차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이미 마음으로부터 깊이 아시테르를 따르고 있다는 뜻.

결코 눈앞에 있는 상대가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얘기였다.

다만, 당장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뭐…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보면 알겠지. 자네가 얼마만큼 대단한 사내인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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