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검제의 길 (4)
아르키나의 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수십 개로 늘어난 빛의 검들이 모두 아르키나를 노렸다.
혹시나 마법으로 속임수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였으나 놀랍게도 검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말은 결국 모두가 허초가 아닌 실초라는 얘기였다.
덕분에 아르키나도 방어를 하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라도 놓치면 치명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공격을 가하는 아시테르도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르키나는 침착하게 자신의 공격을 모두 방어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섞이는 묵직한 공격들은 본능적으로 흘려낸다.
그러면서도 얕은 공격들은 막아내며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다.
간간히 들어오고 있는 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후우웅―!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자 다시 한 번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 속에선 아르키나의 오러 구슬마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다.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아시테르의 특이한 힘에 아르키나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려 해도 아시테르가 대체 어떤 식으로 자신의 힘을 무력화시키는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아르키나의 오러 구슬이 사방으로 산개했다.
늘 창의 주변을 맴돌던 때와는 다른 상황.
쉴 새 없이 공격을 몰아치던 아시테르도 잠시 아르키나의 공격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아르키나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녀의 많은 공격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만난 중 가장 특이한 전투스타일을 구사하는 만큼, 아르키나의 힘은 아시테르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고 있었다.
“아니, 뭐하는 거야!?”
“또 도졌구만.”
“크흐흐흐. 우리 대장도 나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상대의 공격을 친절하게(?) 기다려주는 아시테르를 보며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자신만은 아시테르를 이해한다며 카이드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사이 아시테르의 지척에 다다른 아르키나가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오러 구슬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며 사방팔방에서 공격을 가했다.
아시테르의 주변으로 진공으로 이루어진 벽이 생겨났다.
이를 본 아르키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마법사들이나 쓸 법한 베리어를 만들고 있었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힘은 일반 검사들이 사용하는 오러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특별한데 전투 스타일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니크했다.
“정말… 당신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도 한 몫하고 있군요.”
“그래서 지금 마음껏 개방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르키나의 오러 구슬을 모두 깨트린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특이한 힘도 힘이었지만 아시테르의 검술 또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검술이었다.
웨스트 왕국 내에서 특이한 검술을 사용하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특이한 검술이 이만큼이나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르키나가 창을 들어올렸다.
쿠웅!!!
조금만 느렸더라면 어깨가 완전히 박살났을 터다.
분명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어느새 아시테르의 검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거기다 특이한 힘이 뒤이어 다가와 이차적인 공격을 가했다.
매번 이런 것도 아니었다.
오러를 다루는 검사처럼 한 번에 폭발적인 일격을 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치열하게 검격을 주고받는 아시테르와 아르키나를 보며 관중들이 뜨겁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반면 베리어를 치고 있는 마도사들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수십 명의 마도사들이 달려들었는데도 두 사람의 힘을 막아내는 게 버거울 정도.
“단순히 힘의 여파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새로운 로얄나이츠님도 정말 대단하질 않나?”
“솔직히 기대 이상이야… 화끈할 때는 또 얼마나 화끈하게 싸우냐.”
“어떻게 생각하나? 아시테르님이 아르키나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에이… 그래도 아르키나님이야. 아시테르님이 분명 강한 것은 맞지만 아직은 아르키나님께는 안될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이미 저분이 아르키나님보다 우세에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들이 아시테르와 아르키나의 대결을 점치는 동안, 전투는 점점 극에 치닫고 있었다.
아르키나가 순간적으로 마력을 산개했다.
그녀의 위로 떠오른 황금빛의 오러 구슬들.
그것들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 기술까지 막아낸다면 인정하겠습니다.”
“얼마든지 들어오십시오.”
아시테르도 진심으로 이 대결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승패를 떠나 순수한 무를 겨루는 자리였다.
아시테르는 아르키나라는 강자를 만나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오러 구슬들.
그것들은 아르키나의 뜻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공격을 가해왔다.
이번에는 그 오러 구슬들이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먹만한 크기였다면 지금은 사람 몸집만한 크기를 하고 있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여섯 개의 오러 구체들.
그것들이 회전하며 대기를 완전히 뒤틀고 있었다.
르노어가 아르키나의 기술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였다.
“이번에는 신입 친구가 고생 좀 하겠군.”
“아르키나를 대표하는 기술이지만, 그 위력은 상상이상이지.”
“그만큼 저 친구가 대단하다는 얘기겠지. 저 기술을 꺼낼 정도라니…….”
르노어도 아시테르의 검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 또한 검의 길을 걷는 자.
아시테르의 검술에 호기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그가 어떤 식으로 아르키나의 기술에 대응할지 궁금했다.
아시테르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요란하게 다가오는 오러 구체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눈빛을 달리했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저 기술을 막는다’가 아니었다.
저 기술을 베어버린다.
그 한 문장만 머물고 있었다.
자세를 고쳐 잡은 아시테르가 유미르의 검술을 머릿속에 그렸다.
영롱한 빛의 반월이 뻗어나가는 일검.
그것은 아버지인 유미르가 비체에게 배운 검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비체에게 배운 검술 중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 있었다.
검을 꽉 말아 쥔 아시테르가 검을 들어올렸다.
“후우…….”
호흡을 한 차례 고른 아시테르가 한순간 안광을 폭사했다.
뒤이어 거력을 담은 영기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아시테르가 힘껏 검을 내리쳤다.
후콰아아아아아아앙―――!!!
거센 폭음과 함께 아시테르의 일검이 공간을 갈랐다.
여섯 개의 오러 구체들에 균열이 일었다.
오러 구체들 틈에서 아르키나의 모습이 보였다.
섬전과도 같이 파고든 그녀가 창을 내질렀다.
그리고 마치 이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아시테르가 검을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쿠우웅!!!
두 번째 폭음이 터졌다.
아시테르의 검 끝에서 퍼진 영기가 하늘로 승천하듯 회오리쳤다.
그 여파의 한가운데에 있던 아르키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힘에 대항하는 것은 무리였다.
파콰과가가각!!
마력에 내성이 있는 갑옷조차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르키나가 창을 다시 한번 꼬나잡았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만든 영기의 폭풍 속에서 앞으로 전진했다.
창술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창을 내질렀다.
일직선으로 뻗어온 창이 아시테르의 목을 스쳤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마지막 일격은 순간 아시테르조차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영기의 폭풍 속.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텐데도 불구 아르키나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털썩.
아르키나가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아시테르가 영기를 거두었다.
그는 쓰러진 아르키나를 살폈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대단했습니다…….”
마지막 일격은 정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였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문득 카이드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카이드 또한 잔뜩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아르키나는 그와 같은 창술사.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창술을 구사하는 인물이었기에 카이드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일격. 너도 봤나? 카이드.”
“크흐흐… 봤지. 두 눈으로 아주 확실하게 봤지!”
“어때? 너라면 막아낼 수 있었을 것 같아?”
“미친 소리. 대장이 못 막아내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후후. 그런가.”
“그보다… 대단한 여자였다. 다음번에는 내가 저 여자랑 겨뤄봐야겠어.”
“네가 질 것 같은데?”
“알아. 그래도 이길 때까지 한다.”
웬일로 카이드도 순순히 아시테르의 말에 동의했다.
카이드도 사실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의 로얄나이츠들은 그런대로 해볼 만한 존재들이었다.
자신과 막상막하를 이루거나 한수 아래인 자들.
그런데 아르키나는 조금 달랐다.
카이드조차 한 번씩 침을 꿀꺽 삼키게 정도로 긴장되게 하는 일격들을 지녔다.
전투를 지켜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잔뜩 흥분해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님의 승리입니다!”
그때 한쪽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이윽고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걸출한 신인의 등장 수준이 아니었다.
폭풍을 몰고 오는 주역이었다.
아르키나를 쓰러트렸다면 이제 남은 이들은 겨우 단 둘 뿐.
웨스트 왕국 최고의 검사라 칭송받는 르노어와 최고의 마도사라 불리는 카일라이드.
두 사람은 조용히 아시테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시테르 또한 고개를 돌려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재밌군. 정말 여기까지 왔어.”
“도전을 받아보는 것이 얼마만이지?”
“아르키나 이후에 처음입니다.”
“그렇군… 그럼 얼마 되지도 않은 건가?”
카일라이드가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르노어가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흘흘… 오랜만에 내가 나서는 것도 큰 즐거움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나보단 자네가 더 근질거리는 것 같구먼.”
“알아보셨습니까?”
“검사들의 고질병 아닌가. 뛰어난 검사를 보면 검을 나눠보고 싶어하는.”
“후후, 저 친구의 검술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
“예. 특이한 검로를 지녔습니다. 거기다 힘의 배분 또한 지금까지 봐온 검사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아르키나가 패배한 요인은 거기에 있었나?”
“그건 아닐 겁니다. 저 자는 분명 아르키나보다 몇 수 위에 있었습니다.”
르노어가 바라본 전투의 양상은 딱 그러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아시테르가 아르키나의 모든 힘을 이끌어내는 듯 보였다.
일부러 상대가 최고의 실력일 때 무너트리고 싶어서였을까.
아니, 그런 악취미를 지닌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이었을 터다.
상대가 최고의 힘을 내면 얼마만큼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자신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내고 이겨낼 수 있을지.
어쩌면 저 아시테르라는 사내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왔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가 재밌는 존재라는 것은 확실했다.
르노어의 표정을 살핀 카일라이드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오랫동안 봐왔지만 르노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결국 자네도 한 사람의 검사였구만. 좋네. 그럼 자네가 최후의 1인으로 나서기로 하지.”
“선배님께서는…….”
“어차피 저 친구가 자네를 뛰어넘는다면 나 또한 저 친구와 붙어보나마나겠지. 더군다나 알아본 바로 저 친구의 수련 상대가 아주 기상천외하더군.”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크흐흐흐. 바로 헬라이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