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45화 (345/424)

345화 혁명군

“대장님. 이걸 좀 보시겠습니까?”

“이게 뭐냐.”

“최근 들려온 소식 중에…….”

사내가 미처 다 설명하기도 전에 대장이라 불린 자가 종이를 낚아챘다.

종이를 모두 펼쳐든 사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인데, 이곳은 아주 잔칫집이구나.”

“무슨 내용인데 그러십니까?”

“별 것 아니다. 웨스트 왕국에 검제가 탄생했다고 하는구나.”

“검제요…? 웨스트 왕국에 그런 것도 있습니까?”

“있었지. 아주 예전에는.”

“검제가 무엇입니까?”

“간단하다. 우리로 치면 군단장인 셈이지.”

“흐음… 그럼 웨스트 왕국에는 지금까지 그런 사내가 없었단 말입니까? 이유가 궁금해지는군요.”

“놈들에게는 로얄나이츠라는 기사단이 있다. 그 안에 포함된 기사들은 각자 개성이 강하지. 그 개성 강한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과연 전세계에 몇이나 될 것 같나?”

사내의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검제는 들어본 적 없어도 로얄나이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사우스 왕국에 트럼프가 있다면 웨스트 왕국에는 로얄나이츠들이 있다.

그 수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밝혀진 적 없으며,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 또한 정체를 온전히 드러낸 적이 없다.

“로얄나이츠 한 명 한 명이 우리 마법기사단장급이라 하던데…….”

“뭐, 어느 정도 실력 격차는 있겠지만 비슷할 거다.”

“쯧, 웨스트 왕국의 국력이 더욱 강해졌군요. 검제의 탄생이라니… 그럼 대체 얼마나 괴물이라는 걸까요… 그런데 검제의 이름은 안 써져 있나요?”

“아쉽게도. 이름이나 정체에 관한 것은 없다.”

“그렇군요.”

잠시 다른 대화로 활기를 찾았던 이곳이 이내 정적만이 감돌았다.

대장, 후카스가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어떤가?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전투는 계속될 거다. 물러나선 안 돼. 우리들은 지금 귀족이나 왕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눈빛들.

몸이 성한 이들이 없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후카스 또한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

하지만 나아가야만 한다.

자신들이 멈춰서면 이스트 왕국은 영원히 독립할 수 없다.

“핍박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후카스의 말에 모든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제가 선두에 나서겠습니다.”

“또? 안 되네. 자네는 지금까지도 선두에 서서 싸우질 않았나.”

“그렇지만 제가 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후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후카스도 더는 다른 이들이 선두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는 자신이 나서서 부탁하기도 전에 먼저 이렇게 나서준 것이리라.

“테오도라… 기억해야 하네. 자네의 몸이 상하면 나는 크리울로스님을 뵐 면목이 없네.”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무거워지는 테오도라의 곁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이제는 그의 연인이자 아내가 된 세밀리아였다.

그녀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자 테오도라가 미소를 보였다.

“네 곁에는 내가 있잖아.”

“고마워 세밀리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몇몇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왕국이 망하면서 테오도라의 가문인 프로메테도 힘을 잃고 말았다.

마수들이 수도에서 난리를 칠 때, 발할라가 왕국을 전복시키려 할 때도 프로메테 가문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로메테 가문은 쇠퇴의 길을 걷고 말았다.

쏟아 부은 힘을 복구할 겨를도 없이 사우스 왕국과 전쟁이 벌어졌고 이스트 왕국은 망해버리고 말았다.

충격적이게도 많은 귀족들이 사우스 왕국과 손을 잡았다.

그들은 사우스 왕국의 지원을 받아 이스트 왕국 내에서 더욱 힘을 키웠다.

반면 프로메테 가문을 포함한 다른 5대 가문은 조금씩 세력을 갉아 먹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테오도라는 세밀리아와 혼인식을 올릴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세밀리아의 가문은 사우스 왕국 손에 무너지고 말았다.

몰래 혁명군에 무기와 다른 것들을 지원하다 걸려버리고만 것이다.

어느 누구도 세밀리아의 가문을 도와줄 수 없었다.

섣불리 나섰다간 줄줄이 엮여서 당해버리고 만다.

사우스 왕국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세밀리아의 가문이 스스로 모든 것을 뒤집어 쓴 것도 있었다.

세밀리아가 포함되어 있는 혁명군 또한 울분을 삼키며 그녀의 가문이 몰락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제기랄… 빨리 나가서 싸웁시다.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겠어.”

“진정들하게.”

잠시 분위기가 들끓어 오르자 후카스가 이내 그들을 말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흥분해봤자 좋을 것은 없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서 혼인을 올렸으니 저희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확고합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다들 후카스 대장말대로 진정하세요.”

테오도라와 세밀리아도 그들을 안정시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정이 딱해 다른 이들은 연신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나 테오도라는 트라이포스에 들어가 이제껏 신분을 숨기고 살아왔다.

세밀리아 역시도 나중에는 트라이포스에 들어가 신분을 숨겼다.

그런데 이제는 두 사람의 혼인조차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정이 딱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이곳으로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게, 폴로라스 그 지독한 새끼가… 결국 어르신을 처형대에 올리려 합니다!”

사내의 말에 테오도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세밀리아도 놀라 테오도라의 얼굴부터 살폈다.

사내가 말하는 ‘어르신’은 바로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인 크리울로스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르신을 어떻게 처형대에 올린단 말이야!?”

“테오도라의 정보가 샌 모양입니다. 누군가 테오도라의 이름을 이용해 엮어낸 듯합니다.”

“어찌 그럴 수가…….”

“어르신께서 몰래 테오도라를 만나러 갔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모양입니다.”

“아…….”

테오도라가 짧은 탄식을 흘렸다.

세밀리아가 그런 테오도라의 팔을 쓰다듬었다.

“테오도라는 줄곧 우리와 함께 있었으니 당연히 아니겠고… 결국 누군가가 함정을 파놓았다는 말인데…….”

“폴로라스 그 자식 아니겠습니까.”

쿵!

주먹을 내리친 후카스가 이를 갈았다.

“그 새끼가 결국 어르신까지 건드리려 하는구나!”

이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밀리아 역시도 이들과 함께 분노하고 있었다.

세밀리아의 가문이 망하고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인물이 바로 크리울로스였다.

그는 아내와 사별하고 나서도 나라의 정세에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사별의 슬픔은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고 힘든 와중에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도우려 했던 것이다.

프로메테 가문 사람들의 기질이 그러한 것일까.

그런 가주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크리울로스의 기구한 운명에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스러운 딸은 마녀로 화해 사우스 왕국의 커다란 산을 통째로 날려버렸으며 수많은 적군을 죽였다.

뒤이어 손자 또한 사우스 왕국의 계략에 당해 행방불명이 되었다.

아레나에 이어 두 번째 행방불명.

헌데 이번에는 모든 것들이 그의 죽음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손자 한 명은 혁명군에 가담해 사우스 왕국과 마지막까지 싸울 것을 다짐했다.

크리울로스 역시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이 살아 숨 쉬는 한 사우스 왕국 밑으로 들어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전했다.

그러니만큼 사우스 왕국은 크리울로스의 존재가 마땅히 거슬렸고, 어떻게 해서든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런데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렇다 할 명분이 없던 와중에 결국 크리울로스를 결정적인 증거로 잡아넣었다.

“어르신을 구하러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구하러 가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어르신이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사람의 가죽을 쓰고 있다면 무조건 구해야 합니다.”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목숨입니다.”

“폴로라스가 두렵겠나!? 나는 어르신의 죽음이 더더욱 두렵네.”

그들은 테오로라의 마음을 대변하듯 말해주었다.

실제로도 그들은 크리울로스를 구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였다.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던 후카스가 손을 들어올렸다.

“일단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파악해보자고.”

“예!”

“예!”

“옙!”

“그리고 다른 부대에도 연락을 취해 보고. 아마 많은 병력들이 처형장에 배치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시지요.”

후카스의 명령에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후카스는 테오도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어르신은 우리들에게도 은인 같은 존재다. 결코 놈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두지 않아.”

“예.”

“최선을 다해보자.”

테오도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테오도라이리라.

그 복잡한 심경을 십분 헤아릴 수 있기에 후카스도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직 세밀리아만이 테오도라의 곁에 남아 조용히 손을 잡아주었다.

* * *

혁명군이 크리울로스의 처형 소식을 듣고 분주해질 때 아시테르도 노스 왕국에서 이 같은 소식을 들었다.

파쿠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시테르가 찻잔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뭐라고요?”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 크리울로스의 처형식 날짜가 정해졌다고 합니다.”

“……!”

“……!?”

다른 이들 또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는 린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파가 황급히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럴게 아니라 곧바로 이스트 왕국으로 가봐야 하는 것 아냐?”

“서둘러야 할 것 같군.”

“이대로 둘 순 없습니다!”

“선 제대로 넘네 그것들…….”

“이래서 사우스 왕국 놈들은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언노운 마법기사단 모두가 공분했다.

파쿠황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둘러 가봐야 할 것 같구만. 우리들의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우리 노스 왕국은 자네의 동맹 요청에 응하겠다. 시건방진 마수들이 우리들의 세상을 넘보려 한다면 함께 싸우도록하지.”

“감사합니다!”

아시테르가 파쿠황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파쿠황도 아시테르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 말고 이그트에게 감사하게.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된 건 이그트의 입김이 강하게 불어닥친 덕분이니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친우에게는.”

“이번에는 나도 돕도록 하겠다. 아시테르.”

“뭐?”

“이번에는 나 또한 도우러 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후후. 그런 판세에 끼어드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지.”

“고맙다 이그트.”

“우리도 도움 받았는데 그 정도도 못할까.”

이그트의 시선이 카이드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에게 향했다.

모두 노스 왕국의 던전브레이크를 막아준 사람들이었다.

노스 왕국에 돌아오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들었다.

개중에는 강한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 던전도 있어 여간 애를 먹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아시테르와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개입하면서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파쿠황도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일이 먼저 벌어진 덕분에 아시테르의 제안도 한층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