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46화 (346/424)

346화 변두리의 마을 (1)

오랜만에 돌아온 이스트 왕국의 모습.

예전과 크게 달라질 것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스트 왕국의 변두리는 그저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다.

세심하게 모든 영토를 다스리던 국왕과 달리 사우스 왕국의 관리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 했다.

그들에게 이스트 왕국은 그저 돈을 벌어갈 영토에 불과했을 뿐.

때문에 천민이나 평민 계급들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져 갔다.

개중에는 마법기사를 그만두고 화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거 완전 개판이 따로 없구만… 이럴 거면 우리 쪽 애들도 여기로 와도 되겠는데?”

변두리 영지를 둘러보던 카이드가 코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들이 걷는 거리는 지나치리만큼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도 나이가 지긋한 이들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여기가 그래도 이 정도로 사람이 없는 영지는 아니었는데…….”

크로마제도 의문을 드러내었다.

알론마르레이는 크로마제도 과거에 방문한 적 있는 영지였다.

그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때 눈에 띄게 수척한 초로의 노인이 보였다.

그는 희멀건 동공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누구십니까?”

“아, 저희는…….”

“그것보다 혹시 먹을 게 좀 있습니까? 너무 먹질 못해서… 염치없지만 조금만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시력을 잃은 노인은 아시테르 일행이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린이 품에서 먹을 것을 꺼내 그에게 다가갔다.

“이것 밖에 없지만 괜찮으시다면 조금이라도 드세요.”

그녀가 노인의 손에 말린 육포를 놓아주었다.

노인은 곧바로 육포를 입으로 가져갔다.

혹시나 그가 체할까 싶어 린이 미리 담아두었던 물을 건넸다.

“천천히 드세요.”

“고맙습니다… 너무나 고마워요…….”

“근데 여기는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가요?”

“이곳도 원래는 사람이 꽤 있는 곳이었습니다. 헌데 사우스 왕국 놈들이 이스트 왕국을 지배하고나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떠났어요. 거기다 그나마 있던 젊은이들은 노역에 끌려가서…….”

“노역이요?”

“이 근처에 광산이 있는데… 그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젊은이라면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다 끌고 가버리는 바람에… 여기는 노인네들밖에 안 남았습니다.”

노인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아… 그래서 계속…….”

거리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몇몇 건물에 언뜻언뜻 비치는 사람들도 모두 주름살 가득한 이들이었다.

“제가 잠시 다녀올까요.”

아시테르의 마음을 읽은 크로마제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반키라스도 같이 움직였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어딜 가겠다는 거야?”

“당연히 그 광산이죠.”

“아서라.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간 일만 커져. 거기다 지금은 크리울로스님의 처형을 막으러 가는 중이잖아. 서둘러야지.”

“그래도 명색이 마법기사인데 이런 일을 모른 척 지나갈 순 없지 않습니까? 먼저 출발하십시오. 처리하고 금방 뒤따라가겠습니다.”

“크흠…….”

마법기사라는 말에 노인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가 부들거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법기사… 그대들이 마법기사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내 아들도… 내 아들도 자랑스런 왕실기사였소.”

“왕실기사였다는 말은…….”

“자랑스럽게 싸우다, 나보다 먼저 가버렸지…….”

“혹시 아드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베드롱이라고 합니다.”

베드롱이라는 이름에 아시테르의 가슴이 순간 무겁게 내려앉았다.

여기서 이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베드롱이… 파비오시안 베드롱이 확실합니까……?”

“맞습니다. 제 아들을 알고 계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들어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아시테르의 가슴을 더욱 차갑게 쓸어내렸다.

“베드롱 형님의 아버지셨군요…….”

그러고보니 베드롱은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헌데 여기서 베드롱의 아버지를 만났다.

시력을 잃은 그를 이곳에 둘 순 없었다.

“베드롱 형님의…….”

크로마제도 베드롱은 잘 알고 있었다.

제 9기사단 막사로 놀러 갈 때마다 환하게 그를 맞아주던, 동네 형 같은 사람이었다.

아시테르만큼이나 크로마제가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이번만큼은 제가 나서서 이쪽 일을 해결하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감사합니다.”

“반키라스. 데미리우스 형.”

아시테르의 부름에 두 사람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네.”

“말씀하십시오. 대장.”

“두 사람도 크로마제와 함께 가줘요.”

“알겠습니다.”

“이곳은 내가 금방 수습할게요.”

“예.”

크로마제와 반키라스, 데미리우스가 한 조로 움직였다.

그들은 가장 먼저 광산의 위치를 물었다.

이어 그곳에 대한 정보를 몇몇 사람들에게 빠르게 확인하며 행동을 신속하게 했다.

그 사이 아시테르는 베드롱의 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챙겨주었다.

사우스 왕국의 횡포를 못 이겨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베드롱의 아버지도 포함이었다.

아시테르는 마침 르네마리아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이우스의 딸과 함께 여러 사람들을 함께 보살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들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다행이 르네마리아는 권력과 전혀 관계를 두지 않았기에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을 지배하게 되고 나서도 크게 변화를 맞이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보다 세금을 더 많이 걷어갈 뿐이었다.

허나 그 정도로는 르네마리아에 커다란 타격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르네마리아의 주인, 사르바타의 수완도 만만치 않은 지라 그들은 사우스 왕국의 고위 인사층까지 단골로 만들어 나날이 사업을 번창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이스트 왕국의 어려운 이들을 끊임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아시테르 역시도 사르바타가 몇 번이고 소식을 전해온 덕분에 이쪽의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르네마리아가 있어 다행이네.”

“진짜… 사르바타님이 아니었으면 벌써 여럿 힘들었을 걸.”

“누가 알겠어. 수도의 가장 큰 상인 길드장이 우리 대장의 후원인이라는 걸.”

“그렇게 되는데 우리 아시테르의 도움도 컸을 걸?”

그들이 노인들을 챙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먼발치서 사우스 왕국의 갑옷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노인들은 화들짝 놀라 아시테르 일행에게 일단 몸을 숨기라 말을 전했다.

그들의 재촉에 언노운 마법기사단원들도 일단은 몸을 숨기는 쪽을 택했다.

괜히 나서서 자신들이 일을 키우는 것보다야 가만히 넘길 수 있는 문제라면 그렇게 하는 게 좋아보였다.

아시테르를 비롯한 언노운 마법기사단 단원들은 각각 건물로 들어갔다.

이윽고 사우스 왕국의 병사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야!? 노인네들 뭐 구경났어? 갑자기 왜 다 몰려 있어?”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해야 돼? 이제 뭐 나올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러게. 돈도 없을 것 같고… 노예로 팔 수 있을만한 애들도 없고…….”

기사들이 눈알을 굴렸다.

그러고 보니 몇몇 노인들의 손에 먹을 것이 쥐어져 있었다.

“어라? 우리들은 먹을 것을 가져다준 적이 없는데 뭐 어떻게 먹을 걸 갖고 있지?”

“그러게… 아직까지도 숨겨놓은 게 있었나?”

“건방져 건방져… 우리가 이렇게 먹을 것들을 가져왔는데 서운하잖아 이러면.”

그들은 오물통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것들을 걷어 차보이며 말했다.

이를 본 아시테르나 다른 이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런 것들을 가져와 노인들께 먹였다는 말인가.

그때 사우스 왕국 기사들의 입에서 더욱 충격적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자식새끼들에게 팔려온 거나 다름없어. 크하하하. 세상에 제 부모 목숨을 돈으로 환산해서 받아가다니… 아주 미친 것들 아니냐?”

“내말이 바로 그 말이다. 마법 실험용으로 쓴다고 말을 해줘도 파는 새끼도 있더라.”

“어휴, 이래서 자식새끼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건데…….”

“우리들이 원한 일이오.”

그때 잠자코 앉아 있던 노인이 손을 들어말했다.

이에 사우스 왕국 기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들이 원했다고?”

“우리들은 이미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오. 그런 주제에 자식들의 등에 업혀 짐만 될 순 없지. 그럴 바엔 차라리 아들놈 돈이나 쥐어서 보내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다른 노인들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들의 표정을 살피던 사우스 왕국 병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슬퍼하는 모습이나 보이던가? 아닐걸? 그저 히죽히죽 웃으면서 돈이나 벌었다고 좋아했을걸?”

“그래도 상관없지.”

“뭐?”

“내 자식놈이 좋아하면 그게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나.”

“쯧!”

기사와 병사들이 혀를 찼다.

그들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에스파.”

“응.”

“어쩌면 광산에 끌려갔다는 얘기가 진짜가 아닐 수 있겠어.”

“응…….”

“한번 알아봐줘.”

“만약에 정말로 저분들의 자식들이 그랬다면…….”

“일단은 알아만 봐줘.”

“다녀올게.”

에스파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동안 카이드나 가이우스는 사우스 왕국 기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들 모두 평범한 수준의 사람들이라 딱히 카이드의 이목을 끌진 않았다.

다만 그들의 다음 행동이 문제였다.

놈들은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닌 듯, 재미로 노인들을 때렸다.

이어 오물에 가까운 것들은 노인들에게 뒤집어 씌워버렸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았던 아시테르는 오히려 가만히 그들의 만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 모든 것을 끝낸 사우스 왕국 병사들이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아주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노인들이 언노운 마법기사단에게 나오라는 듯 손짓했다.

“어라? 근데 대장은?”

“이미 가버렸지…….”

“벌써?”

“머리끝까지 화난 것 같던데.”

“쯧… 그래도 잘 참았네.”

아시테르가 섣불리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노인들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기 있는 사우스 왕국놈들을 죽이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노인들의 앞에서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노인들은 새로운 걱정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언제라도 사우스 왕국 병사들이 복수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거기다 노인들은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숨기기 위해 갖은 수모를 아무 말 없이 감내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아시테르는 조용히 움직였다.

사우스 왕국 병사들의 앞에 아시테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뭐냐 넌?”

“어디 소속이야? 아니지, 지나가던 이스트 왕국놈인가?”

“근데 저런 옷은 못 보던 건데… 혹시 귀족인가?”

“귀족은 건드리면 조금 귀찮아지는데…….”

그들이 중얼거리는 동안 아시테르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광산이 있나요?”

“광산? 광산은 무슨…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너 광부였냐?”

“광산은 없고, 환락가는 있지.”

“환락가요?”

“그래. 거기를 가면 천국을 맛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

“천국이라…….”

“왜, 너도 관심 있냐?”

스각―!

보이지도 않는 속도.

이죽거리던 사내의 목이 핏물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헙!?”

“뭐… 뭐야!”

“이런 미친놈이!”

놀란 병사들이 허겁지겁 칼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아시테르의 손속이 훨씬 빨랐다.

그는 단 한 명만을 남기고 모든 사우스 왕국 병사들을 죽여 버렸다.

노인들을 폭행하며 오물을 뒤집어 씌웠던 자들은 특히나 고통스럽게 죽음을 선사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기었다.

이미 그의 바지춤은 오줌으로 흥건해 있었다.

“그 환락가라는 곳은 어디인가요?”

아시테르가 서늘한 검을 그의 목 가까이에 겨누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