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변두리의 마을 (2)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는 눈앞의 광경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광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뭐야 여긴…….”
“아무래도 그분들이 속은 것 같은데.”
“그게 문제냐.”
“흐음. 돌아가 봐야겠군요. 그런데…….”
데미리우스의 시선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불이 피어오르는 곳.
그 말은 곧 사람이 있다는 얘기였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여기저기 많은 걸 보니 생각보다 많은 수로 예상되었다.
“저쪽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까? 혹시나 광산 대신 다른 걸 수도 있으니까요.”
“네. 형님 말대로 저쪽도 한 번 확인해보고 가죠.”
크로마제와 반키라스, 데미리우스가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그들이 향한 곳은 커다란 마을이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내들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를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뭐냐?”
“아, 이곳을 지나쳐가던 사람들입니다. 괜찮다면 안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까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여기는 안 된다. 돌아가.”
“예? 그러지 말고…….”
“내가 한 말 못 들었냐? 돌아가라고. 그리고 여기는 너희들이 올만한 곳이 아닌…….”
사내는 데미리우스가 꺼낸 금화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데미리우스는 품속에서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모두 금화가 든 주머니였다.
마른침을 삼키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끄응, 다시 생각해보니 들어가도 될 것 같구만… 그렇지?”
“으응…! 당연하지! 어서 들어가게 두자고!”
동료도 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크로마제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철문을 열어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뭡니까?”
“문을 열어줬으니까 통행료를 내야 할 것 아니냐. 금화 한 닢.”
“세상에 통행료가 금화 한 닢이나 한다고요?”
“다시 문을 닫아줘?”
“아뇨, 바로 드리겠습니다.”
데미리우스가 금화를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그러자 두 사람이 씨익 웃는다.
그러면서도 이내 입맛을 다셨다.
데미리우스가 갖고 있는 금화에 미련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만약 검이라도 들어 저들을 겁박했다간 윗선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 아쉬워도 일단은 보낼 수밖에.
“들어가라. 그리고 이곳 안에서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구할 수 있을 거다.”
“더 좋은 거요?”
“일단은 들어가 봐.”
그들에게 쫓기다시피 안으로 들어간 크로마제는 이어진 광경들에 눈을 깜빡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거기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이게 일상인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던 크로마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이길 포기한 건가.”
개중에는 더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마냥 두기에는 마음이 쓰였던 지라 크로마제는 몇몇 사람들을 부축해 주었다.
데미리우스나 반키라스도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이를 바라보던 여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곳은 처음인가보지?”
“조금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다시 도로 나가.”
“예……?”
“여기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곳이 아니야. 빠져들기 전에 나가란 얘기야.이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 없어 보여서 충고 하는 거야.”
백금발에 여기저기 문신이 있는 여인이 파이프를 물고 있다.
속살이 언뜻 비치는 옷 때문에 크로마제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반면 반키라스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여기 계속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글쎄, 둘 중 하나겠지. 돈이 없어 노예가 되거나… 죽을 때까지 취해 살거나.”
“호오… 냄새가 많이 나네 여기.”
“이곳에 산지 오래 되었습니까?”
“아하하하! 나 말이야? 이제 한 3년 됐나?”
계단에 앉아 있던 여인이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니 대기하고 있던 다른 여인들이 다가왔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옷깃을 여민 여인이 크로마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됐으니까 고개 좀 돌리죠?”
“아… 크흠…….”
“겨우 이 정도도 못 쳐다보면서 여기서 어떻게 지내려고. 당신들이 물드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만 돌아가요.”
딱!
여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사내 한 명이 다가와 은전이 든 돈주머니를 가져다주었다.
여인이 크로마제에게 다가가 이것을 건넸다.
“이 정도면 여길 나가서 돌아다니기에도 충분하겠지?”
“돈이라면 저희도 꽤 있습니다. 그보다는… 이곳에 대해 듣고 싶군요.”
“그래? 그럼 돈은 됐고… 여기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마. 그래도 이곳에 드나드는 놈들보다는 꽤 나아보여서 하는 괜한 충고야.”
“어째서요?”
“여기를 관리하는 놈들이 ‘그리드’라는 놈들인데… 상당히 악질이거든. 놈들에게 찍히기 전에 여기서 나가라는 소리야.”
“…? 사우스 왕국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라는 말입니까?”
“관계는 있겠지. 부패한 관리들이 그리드에게 돈을 받아먹으니까.”
“그렇군요.”
크로마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래도 묘한 위화감이 드는 도시인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생각해?”
“좀 더 머물러 봐도 될 것 같은데.”
“그치?”
크로마제가 품속에서 돈을 꺼내 여인에게 건넸다.
“이게 무슨 의미지?”
“여기 머물만한 곳이 있나요?”
“결국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이야?”
“궁금하잖아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그런 쓸데없는 호기심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머물만한 곳이라면 내가 마련해줄게.”
여인이 뒤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내가 관리하는 곳이거든.”
“오…….”
크로마제가 놀라 뒤편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대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아 평범한 여인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큰 건물의 주인일 줄은 몰랐다.
여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에실리아님 오셨습니까!”
“에실리아님 오셨습니까!”
“에실리아님 오셨어요!”
그들의 부름에 크로마제가 슬쩍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웃는다.
“내 이름은 에실리아. 그쪽 이름은?”
“크로마제입니다.”
“멋진 이름이네요. 숙소는 저기 위쪽으로.”
에실리아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크로마제는 반키라스, 데미리우스와 함께 여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동안 마주치는 사내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에실리아를 훑었다.
“에실리아! 우리 방에는 언제 올 건가!?”
“우리랑도 좀 술을 즐기자고!”
“이쪽! 이쪽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내내 크로마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대충 이곳이 어딘지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을 관리하는 에실리아가 어떤 여인인지도.
그때 에실리아가 고개를 돌려 크로마제를 바라보았다.
“실망했나요?”
“뭘요?”
“여기가 이런 곳이라서요.”
“제가 실망까지 할 이유가 있나요.”
“그래서 이곳에서 벗어나라 말씀드린거예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곳이거든요.”
에실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미리우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이곳에 오고나서부터 그의 시선에만 먼저 보이는 것이 있었다.
“중독된 자들이 많군요.”
“…….”
“따로 이들을 중독시키는 약을 팔고 있는 겁니까?”
“그걸 어떻게…….”
“이제 알겠군요. 이곳에 빠진다는 얘기의 진짜 의미를.”
“맞아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뭐, 좀 더 살펴볼 필요도 없겠군요.”
데미리우스가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일지 더는 안 봐도 훤했다.
그때 문이 열린 곳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부모님들은 잘 계시려나…….”
“부모님이요?”
“사실 여기로 오기 전 사우스 왕국놈들이 우리 부모님을…….”
그 얘기에 크로마제가 우뚝 멈춰 섰다.
분명 이곳으로 오기 전 알론마르레이 영지에서 들었던 얘기 같았다.
크로마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나체의 여인을 끌어안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온다.
“뭐야…….”
노인들의 모습이 눈가에 아직 선했다.
헌데 그들 중 한 명의 자식일 저 사내가 저런 모습으로 제 부모를 입에 담다니.
분노가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아쉽구만. 차리리 그때 돈을 더 부를 걸.”
그의 마지막 말이 크로마제의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크로마제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사내의 목을 틀어쥐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볼래?”
“뭐, 뭐야!? 너는 갑자기 뭐냐고!”
“알거 없고. 방금 한 말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네가 뭔 상관인데!?”
“네 부모가 보내서 왔다 이 자식아.”
털썩!
크로마제가 내던지자 사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여인이 놀라 소리치며 자리를 피하고 에실리아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크로마제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미안해요. 하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요.”
“여기는 원래 이런 곳이에요! 이런 걸 볼 수 없다면 당장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원래 이런 건 없어요.”
크로마제가 불같은 시선으로 에실리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에게도 책임을 묻는 듯한 눈빛.
에실리아도 크로마제의 살기 앞에서 전혀 움츠러드는 것 없이 꿋꿋하게 서 있었다.
“아아… 크… 크로마제라고……?”
그의 이름을 들은 사내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크로마제의 시선이 다시 사내에로 향했다.
“나를 아나?”
“지, 진짜 당신이 크로마제라는 얘깁니까!?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나를 알고 있다니 다행이로군.”
크로마제의 주변에서 모래알들이 흘러나왔다.
그의 마법을 보자마자 사내가 기겁을 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모래 마법을 쓰는 크로마제는 이스트 왕국 내부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내가 왜?”
“그, 그게…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나한테는 당신이 죄를 지은 게 없는데.”
크로마제의 마법이 서서히 사내의 목을 옥죄어 갔다.
이를 본 에실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지금 크로마제의 앞에 있는 것은 어깨에 힘 꽤나 주고 다니는 사내였다.
나름 실력에 자신 있다는 몇몇 사람들도 이 사내를 건드리는 것만큼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함부로 내쫓지 못하고 이렇게 박아두었던 건데…….
놀랍게도 그토록 실력에 자신 있어 하는 사내가 크로마제의 앞에서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그게…….”
“너 말고도 많지? 여기로 온 사람들.”
“누구를…….”
“알론마르레이에서 온 사람들. 너 말고도 여기 많을 것 같은데.”
“아마 대부분 여기로 왔을 겁니다…….”
“그랬단 말이지.”
크로마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너희들의 쾌락을 위해 부모를 팔았단 말이지…….”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협박에 못 이겨서…….”
“협박?”
“그게…….”
사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우스 왕국의 병사들이 실험체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자원하면 정당한 대가를 치러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물론 이것은 제안이 아닌 협박이었다.
사내가 말을 하던 도중 크로마제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헛소리도 정성껏 하려는 모양인데. 별로 네 사정은 궁금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썩은 내나는 곳부터 정리해야겠어.”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곳을 없애기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이유는…….”
사내가 뒤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가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시간을 번 이유.
그것은 바로 뒤에 보이는 저들을 불러들이기 위함이었다.
“왔다. 그렌달이.”
“그렌달?”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놈들입니다. 당신처럼 이곳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이들을 처단하는 역할을 하고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저 많은 사람들은…….”
사내는 말을 하다 끝을 흐리고 말았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모래가 순식간에 그렌달이라 불린 복면의 사내들을 틀어잡았다.
그것에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그렌달을 보며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크로마제가 허리를 숙여, 놀라 자빠진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