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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48화 (348/424)

348화 변두리의 마을 (3)

사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렌달이라면 그래도 나름 실력 있는 자들을 뽑아 만든 단체였다.

잔인하고 냉정하기로 유명한 그렌달의 실력은 사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렌달이 이렇게 쉽게 붙잡히면 안됐다.

“왜? 예상했던 거랑 조금 다른 전개인가?”

슈우우웅!

콰가가각!

옆에서 덮치려던 검은 복면인들이 반키라스의 마법에 당했다.

온몸이 뜯겨져나간 탓에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헙……!”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에실리아가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보지 못했다.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저들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간 것이다.

크로마제가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모래알들이 그렌달의 전신을 옥죄었다.

“아아아…….”

“흐으읍……!”

“사… 살려…….”

콰지지직!!!

눈앞에서 그렌달이 모두 죽고 말았다.

그제야 사내는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다.

그나마 당장 기대해 볼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그렌달이었는데, 10명이 넘는 이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당해버렸다.

“거짓이 아니었나…….”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한 명 한 명이 강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다만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문이 조금은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니 전혀 과장된 느낌은 아니었다.

사내가 놀라 자빠져 있는 동안 크로마제가 몸을 돌렸다.

일부러 딱 한 명만 살려 놨다.

중간에 살려 달라 말한 이였다.

크로마제가 그에게 다가가자 사내가 질겁했다.

“말해. 너희들의 본거지가 어디냐?”

“본거지라니…….”

“너희들 위에 또 다른 놈들이 있을 것 아니야. 걔네들 어디 있냐고. 말해주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건…….”

“말하기 싫으면 관둬. 어차피 너 죽이고 나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자… 잠깐만요!”

당황한 사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로마제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여기 뒤편으로 가보면… 커다란 건물이 있을 겁니다. 다른 건물들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따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에 다 있다는 소리인가?”

“예…….”

“고마워.”

크로마제는 약속대로 그를 살려두었다.

다만 대가로 그의 두 다리는 가져갔다.

“크아악!”

“곱게 살려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 안 봐도 너희가 여기서 뭘 했었는지는 훤하게 보이니까.”

크로마제가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반키라스도 그런 크로마제의 모습을 의외라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뭐냐 너?”

“뭐가?”

“무리하고 있는 것 아냐? 이런 건 네 성정에 안 맞잖아?”

“반키라스.”

“왜.”

“내가 예전에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뭐라고 불렸는지 아냐?”

“몰라. 뭐라고 불렸는데?”

“소악마.”

“소악마?”

“어지간히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녔거든. 아주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

“그러다 그 인간한테 참교육이라도 당한 거냐?”

“아주 제대로 당했지. 아마 그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영원히 정신 못 차리고 살았을지도 몰라.”

반키라스가 크로마제의 얘기를 듣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 또한 아시테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가늠이 잡히질 않았다.

‘아마 영원히 귀족들을 저주했을지도 모르지…….’

모든 귀족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시절.

그 생각의 틀을 깨부숴준 것이 바로 아시테르였다.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크로마제.”

“나는 원래 썩 좋은 인간은 아니었다는 거지.”

“크흐흐흐 그러네. 그건 맞네. 나도 썩 좋은 쪽은 아니었을 걸.”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아주 한심한 축이었죠.”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데미리우스가 대화에 끼었다.

그의 말에 반키라스와 크로마제가 미소를 보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오랜만에 옛날 기분 좀 내볼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우리 대장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니까요.”

“그러기엔 우리 대장도 요즘 많이 바뀐 것 같던데. 옛날 같진 않아.”

“스승님도 사람이야. 시간이 흘러가면서 바뀌게 마련인 거지.”

“뭐, 요즘 보이는 모습이 더 좋긴 해.”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걸어 가다보니 어느새 그렌달이 말했던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뒤편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에실리아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께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리드는 정말로 위험한 자들이에요.”

“쟤네 입장에서는 우리가 더 위험할걸요.”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어요. 우리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도. 덩달아 에실리아 당신과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도 걱정이 되는 거겠죠. 만에 하나 우리가 잘못되면 그쪽까지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크로마제의 말에 에실리아는 별다른 답을 내어줄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이 정확했기 때문.

에실리아는 지금도 눈앞의 사람들 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이 더 걱정되었다.

그때 크로마제가 에실리아에게 다가가 귀를 빌렸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뒤로 물러나 계세요.”

크로마제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수십의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반키라스가 발 빠르게 반응했다.

슈콰아아앙―――!!!

콰드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잿빛 마력이 그들의 몸을 으스러트렸다.

이어 크로마제의 모래벽이 문을 막았다.

슈와아아아아―――!

거대하게 몸을 이르킨 모래가 건물의 사방을 감싸 안았다.

“도망치진 못할 거야.”

이제는 데미리우스가 나설 차례였다.

그는 크로마제의 마력에다 녹색 빛 마력을 안겼다.

모래위로 번지는 녹광이 섬뜩하리만치 몸체를 불렸다.

이제 섣불리 밖으로 나서려 했다간 저 독에 중독될 것이다.

“먼저 진입한다.”

반키라스가 앞장서서 안으로 향했다.

대기하고 있던 복면의 사내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가볍다.

반키라스가 마법으로 응수하며 그들의 습격을 간단히 막아냈다.

이어 모래가 휘몰아치며 나머지 사내들을 정리했다.

“관계없어 보이는 자들은 어떻게 파악하지?”

“일단은 무기를 든 자들부터.”

“오케이. 무기를 든 놈들부터 조져보도록 하지.”

반키라스의 섬뜩한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천장에 붙어 있던 이들이 뛰어내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조심해요!”

뒤에서 보고 있던 에실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콰가가각!!!

그러나 그들의 검은 단단한 모래 방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크로마제가 손짓하자 모래 위로 송곳들이 올라서며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키야… 확실히 너는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좋다.”

“그럼 뭐 하냐, 네 공격은 막아내기가 힘든데.”

“나는 마냥 공격에 특화된 거고.”

“아니지. 진짜 공격에 특화된 사람은 저기 있잖아.”

크로마제가 앞서 나가는 데미리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독 마법으로 순식간에 2층과 3층을 휩쓸어버렸다.

중독된 자들이 바닥을 기었고,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는 그들을 가볍게 지나쳤다.

“누가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

그때 위편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상을 찌푸린 크로마제가 반키라스를 쳐다보았다.

눈짓을 주고받던 두 사람, 이내 크로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내가 처리할게.”

크로마제가 만들어낸 모래알들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가 위쪽으로 손짓하자 모래알들이 빠르게 날아갔다.

파바바방!!!

퍼버버버버버버버벙―――!!!

모래알 폭격에 맞은 물건과 계단들이 형편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 위에 있던 자들도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너희가 그리드라는 놈들이야?”

어느새 가까이로 다가온 반키라스가 한 명의 머리채를 잡고 물었다.

목 쪽에 있는 뱀 문신이 눈에 띄었다.

문신을 한 사내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너흰 뭐냐. 감히 우리를 건드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러니까 대답이나 먼저 해. 너희가 그리드냐고.”

“그렇다! 우리가 바로 그리…….”

스각!

사내의 목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반키라스의 날카로운 마법이 그의 숨통을 빠르게 끊은 것이다.

“크로마제!”

“왜?”

“몸에 뱀문신을 한 녀석들. 모조리 죽여라.”

“오케이.”

빠르게 신호를 주고받은 그리드 단원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키라스, 크로마제의 상대가 아니었다.

거기다 뒤편에는 데미리우스도 있었다.

순식간에 그리드 단원들을 정리한 크로마제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적들은 더 남아 있다.

“벌써 백 명은 넘게 죽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데? 수가.”

“그러게. 엄청 많네.”

“진짜 대장은 어디에 있으려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위쪽에서 제법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거?”

두 사람이 동시에 위쪽을 바라보았다.

제법 높게 지어놓은 탓에 아직도 층수가 꽤 남아 있었다.

“그래. 저기는 내가 빠르게 가서 정리하고 올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까? 나는 바깥을 좀 맡도록 할게.”

“이따 보자고.”

반키라스가 위로 올라가고 크로마제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미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이곳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쪽이 진짜 이곳의 주인인가요?”

“미안해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에실리아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로마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람은 잘 안 믿어서요.”

“뭐?”

“그리고 그건 데미리우스 형님도 마찬가지거든요.”

“지금 그게 무슨…….”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복면인들이 서있던 곳이 순식간에 늪지로 변했다.

미리부터 이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놓았던 데미리우스가 한순간에 독지로 바꾼 것이다.

이에 당황한 복면인들이 우왕좌왕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어 다가오는 모래주먹에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이 같은 광경을 본 에실리아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위쪽에 기대를 걸고 있는 거라면 꿈 깨세요.”

“아니. 위에는 그리드의 대장인…….”

슈우우웅―!

투콰앙!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거구의 사내.

온몸이 문신으로 덮여 있는 사내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이를 본 에실리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데닉스……!?”

“대장!”

“대장님!”

데닉스의 시체를 본 그리드 대원들이 소리쳤다.

크로마제가 죽어 있는 데닉스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이쪽은 정리된 건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는 그리드는 이것으로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약에 중독된 이들을 어떻게 하냐는 문제만 남았는데…….

“무슨 약인지만 알면 중독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다.”

“에? 그게 정말이에요 데미리우스 형?”

“문제없지.”

“와아…….”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 다 지들이 선택한 일인걸.”

반키라스의 뾰족한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크로마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벌써 상황이 다 정리된 모양이네.”

그때 에스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파 형?”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너희가 먼저 잘 처리했구나.”

“스승님은요?”

“아시테르는 우리들에게 전적인 판단을 맡기고 떠났어.”

“흐음… 그렇군요…….”

“어떻게 할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얼추 듣긴 했는데.”

에스파가 옆에 있는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크로마제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근데 그 실수가 아주 잘못된 거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죠.”

“호오…….”

“여기서 노동이나 시켜야겠네요.”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반성할 기회를 주겠다는 거잖아?”

“네. 그래도 인간이니까요.”

크로마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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