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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49화 (349/424)

349화 처형식 (1)

일단의 무리가 커다란 둔덕 앞에 섰다.

그들은 말없이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프로메테 아레나였다.

그래도 나름 관리가 잘 된 상태였다.

“제가 한번씩 이곳을 관리하고 있기는 한데… 사우스 왕국 놈들이 이따금씩…….”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그보다, 아레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사르바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말없이 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강의 사정은 들었다.

아레나가 자신 때문에 폭주했고,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테오도라가 도착해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을.

아시테르가 홀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자신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린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너무 자책할 것 없어요. 그냥 상황이… 운명의 장난처럼 비극을 맞이한 것뿐이에요.”

“린…….”

“그래도 아레나님께서도 이렇게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거예요.”

아시테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시테르는 결국 아레나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애써 묻어두었던 감정이 다시 해일처럼 밀려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아시테르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슬며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시테르님…….”

“쳇…….”

“사우스 왕국놈들… 이번에는 아시테르 대장의 할아버지냐…….”

“그건 두고 볼 수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지.”

에스파가 슬며시 아시테르와 린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가 슬퍼하는 아시테르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가자 아시테르.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 너무 시간을 지체했네.”

“아니야. 오히려 이런 상황이 너무 야속하지.”

“일단은 급한 일부터 다녀온 뒤에. 할아버지만큼은…….”

아시테르와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부름에 황급히 달려왔던 사르바타는 떠나는 아시테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부디 조심하시길…….”

* * *

이스트 왕국 수도의 광장.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이 이곳으로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왕국 5대 가문인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 크리울로스의 처형식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리울로스는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을 대표하는 얼굴과도 같다.

그가 이곳에서 공개 처형을 당한다는 것은 사우스 왕국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많은 왕국민들이 5대 가문의 귀족들이 나서서 크리울로스를 변호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허나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5대 가문의 귀족들은 소극적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시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프로메테 가문이야 말로 왕국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귀족 가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보전하는 데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왕국을 위해,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몇몇 귀족들이 그런 프로메테 가문을 향해 걱정 어린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크리울로스 가주는 말했다.

“크하하하, 귀족이라고 별거냐! 우리들은 왕국민들이 존재하기에 존재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들 또한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그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 아니냐!”

프로메테 가문의 사람들은 그런 크리울로스의 말에 동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발할라가 습격했을 때도, 마수가 난동을 벌였을 때도 그들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사우스 왕국과의 전쟁에 있어서도 오르페 가문과 함께 최고의 기여도를 자랑했다.

그들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신분이 낮은 왕국민들은 지금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크리울로스는 진정한 귀족이었다.

신분이 낮은 자라고 해서 절대 천대하지 않는다.

무시하거나 홀대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가솔들과 함께 늘 사람들을 챙겼다.

어려운 이들이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직까지 프로메테 가문에 돈을 갚지 않은 일반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울로스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가정을 일으켜 왕국의 한 기둥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런 인물이 바로 크리울로스였다.

사우스 왕국의 관리들 입장에서는 그만큼이나 크리울로스의 존재가 거슬릴 수 없었다.

“드디어 저 거물을 처형장에 올릴 수 있게 되었군요.”

부지배인 푸르드카스가 만족스런 미소를 보이며 수염을 쓸었다.

그의 옆에는 총사령관인 폴로라스가 앉아 있었다.

폴로라스가 다부진 눈매로 주변을 살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준비하라고 한 것은 잘 되어가고 있나?”

“살생부 말입니까?”

“그래. 불순분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처단한다.”

“크흐흐흐. 크리울로스를 처형대에 세웠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병력도 몇 배로 늘려야 할 거다.”

“살생부에 있는 인원들을 모두 처단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군요.”

“그것만이 아니야. 크리울로스가 처단되면 이스트 왕국의 벌레들도 득달같이 일어날 거다. 그러면 놈들을 모두 죽이기만 하면 돼.”

“그걸 바라시는 게 아닙니까?”

“후후후후… 그러면 하나하나 찾을 필요도 없지.”

폴로라스가 좌중을 훑었다.

이곳 광장에만 수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에 광장이 떠나갈 것만 같다.

“으하하하!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때 뒤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폴로라스가 고개를 돌렸다.

“오, 어서 오십시오. 바이헤른님.”

제법 매서운 인상의 중년의 사내.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그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폴로라스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위기는 기회라더니… 롤스로체카 선배가 죽고 바이헤른님이 이렇게 빠르게 치고 올라올 줄은 몰랐습니다.”

“선배님은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허나 세월은 누구라도 이길 수 없지.”

바이헤른의 갑옷 가슴부위에는 커다랗게 스페이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롤스로체카가 죽고 스페이드 군대와 다이아 군대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 같은 일을 이루어낸 게 겨우 단 한 명이었다.

재앙의 마녀라 불리는 아레나.

그녀를 막다 전사한 롤스로체카에게는 그에 걸맞은 장례를 치러주었다.

제이스쿠스도 그때의 전투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그러나 사우스 왕국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했다.

국왕은 제이스쿠스를 명예 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바이헤른과 하이트레이스가 트럼프에 올랐다.

어떻게 보면 세대교체를 이룬 것이다.

“그래도 바이헤른님이 이렇게 와주시다니 정말로 든든합니다.”

수도 부근에 배치된 병력들은 모두 바이헤른의 병사들이었다.

새롭게 개편된 스페이드 군대.

그들은 모두 마법공학 무기를 갖고 있었다.

마법공학 장비로 무장한 군대라니…….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었다.

더군다나 저들은 바이헤른이 직접 키운 사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훈련의 질도 상당히 높았다.

그런 자들이 이스트 왕국 수도에서 사우스 왕국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다.

거기다 뒤이어 다른 부대까지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들이 이번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낼까요?”

“드러낼 겁니다.”

“흐음… 혁명군이라니, 참 귀찮은 쥐새끼들이로군요.”

“개중에는 마법기사였던 자들과 트라이포스의 일원들도 있습니다.”

“쯧…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오면 제가 다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이헤른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그가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우스 왕국의 무관 학교에서 전무후무한 성적으로 졸업한 천재가 바로 그였으니까.

거기다 본신의 실력도 롤스로체카와 비교했을 때 전혀 뒤처짐이 없었다.

그때 광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동요는 더욱더 커졌다.

쇠사슬의 철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족갑과 수갑을 찬 채로 걸어 들어오는 노인.

잔뜩 야위고 여기저기 멍과 상처로 가득하지만 그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

크리울로스는 말없이 왕국민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았다.

바글바글하게 커다란 광장을 채운 사람들.

건물 위로 올라가 있는 이들도 있었다.

“빨리 가라!”

뒤에서 누군가 크리울로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크리울로스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야유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크리울로스의 몸에 손을 댄 기사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커다란 처형대 위로 크리울로스를 데려갈 뿐이었다.

“무릎을 꿇어라.”

기사들이 크리울로스의 무릎을 강제로 굽혔다.

크리울로스가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르릉―!

눈앞에서 두 개의 검이 교차했다.

새하얗게 빛나는 검날과 햇살이 겹쳐 보인다.

“날이 좋구만.”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었다.

처형식은 본래 예정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시작되었다.

폴로라스가 천천히 처형장 위로 걸어 올라갔다.

그를 보는 이스트 왕국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죽일 듯이 살기어린 눈빛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폴로라스로 하여금 더더욱 흥분케 만들었다.

“너희들이 그런 눈빛을 보여 봤자다. 그래봤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지나가듯 혼잣말로 중얼거린 폴로라스가 마침내 무릎 꿇고 있는 크리울로스의 옆에 섰다.

“폴로라스…….”

“오랜만에 보는 군요 크리울로스. 그런데 못 보던 사이 많이 야윈 것 같습니다?”

“후후. 너처럼 배에 더러운 기름칠을 하는 것보다야 지금 내 모습이 훨씬 더 나을 것 같구나.”

“이야, 과연 한 가문의 가주다우십니다. 그런 모진 고초를 겪었음에도 그 기세만큼은 살아 있군요.”

“크하하하하! 그럼 겨우 너 같은 애송이한테 기가 죽을 줄 알았더냐?”

“아쉽군요. 한번이라도 살려달라 애원했으면 제가 생각 좀 해봤을 텐데.”

“똥밭에서 수천 번을 구른다 해도 네놈들 손에 내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과연…….”

폴로라스가 그런 크리울로스를 내려다보며 한껏 비웃어주었다.

아무리 저렇게 말한다 한들 폴로라스에게서 나오는 것은 코웃음뿐이었다.

그는 곧이어 자신이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쳐들었다.

종이 안에는 크리울로스의 죄명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개중에는 폴로라스를 포함한 몇몇 관리들이 몰래 추가한 항목들이었다.

수많은 죄명들을 대며 폴로라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 사우스 왕국은, 크리울로스의 처형을 명한다.”

이렇게 커다란 목소리로 죄명을 하나하나 들이밀며 처형을 말하는 것은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

이곳엔 이스트 왕국의 평민들만 모여든 것이 아니다.

폴로라스가 마련한 상석에는 사우스 왕국의 귀빈들도 앉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스트 왕국의 전국왕이나 왕족들, 5대 가문의 귀족들도 자리해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과시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아주 톡톡할 것이다.

이상으로 모든 말을 마친 폴로라스가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이제부터 크리울로스의 처형식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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