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처형식 (2)
처형대의 기사들이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처형식을 시작한다고 해서 곧바로 목을 내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빌었다.
기적이 있다면 크리울로스의 목숨을 살릴 수 있기를 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기적이 눈앞에서 일어날 거란 희망은 갖지 않았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으니까.
슈슈슉――!
파바바방!!!
그때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었다.
모두 사우스 왕국의 군사들이 서 있던 자리였다.
“적습이다!”
“적들이 나타났다!”
“모두 대비하라!”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대기하고 있던 사우스 왕국군이 움직였다.
스페이드 문양을 가슴에 새긴 기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군중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몇몇 마도사들이 쉴 새 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 폭발 속에서 처형대의 기사들이 휘청거렸다.
화르르륵――!
거센 불길이 처형대의 기사들을 격했다.
“헙!?”
놀란 기사들이 처형대 아래로 떨어졌다.
팡!!!
빠르게 뛰어 오른 바이헤른이 가장 먼저 폴로라스를 보호했다.
그의 검이 날아오는 화염구를 베어버렸다.
“화염이라…….”
그 상황을 지켜보던 크리울로스의 얼굴이 굳었다.
이 불꽃과 마법만 봐도 그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곳까지 온 것이냐… 여기는 함정이거늘…….”
크리울로스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아직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테오도라를 찾고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 쓴 십수 명의 마도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처형대를 지키고 있는 기사들을 노렸다.
콰드드득――!
파콰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릉!!!
동시 다발적으로 쏟아진 마법들.
그러나 가까스로 완성된 베리어가 처형대를 지켰다.
이를 본 폴로라스가 크게 웃었다.
“어림 없다! 너희들의 힘으로는 이 베리어를 뚫지 못할 거다!”
처형식은 방해되어선 안된다.
그러니만큼 이곳 주변에 미리부터 마도사들을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처음부터 베리어를 만들어놓으면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치밀하게도 놈들이 나타나고나서부터 베리어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당황하는 혁명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라! 한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여!”
폴로라스의 명령에 군사들이 움직였다.
그러나 군중들이 돌연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쉽게 잡지 못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허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크리울로스가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혁명군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여주는 왕국민들을 보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아직 모두다 굽힌 것은 아니로구나… 이 나라의 뿌리는 아직 건재하다……!”
“뭐라고 하는 거냐! 닥쳐라!”
옆을 지키고 있던 기사 한 명이 크리울로스의 목을 때렸다.
“크윽……!”
짧게 신음한 크리울로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으니 남아 있는 힘도 없다.
폴로라스가 옆에 있는 크리울로스를 바라보며 조소를 흘렸다.
“혹시 희망의 불씨라도 보았나?”
“후후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너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희망의 불씨가 꺼지는 것을 보게 될 거다.”
“내가 본 불씨는 너희들이 볼 수 있는 그런 불씨가 아니다만.”
“쯧… 아무튼 너는 이 자리에서 네 손자까지 죽는 것을 보게 될 거야.”
폴로라스는 슬쩍 크리울로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쳇… 그래도 오래 굴러먹은 귀족이라 이건가. 표정으로는 하나도 읽어내질 못하겠군.’
여기 나타난 이들은 분명 혁명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을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간부급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나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크리울로스의 손자인 테오도라였다.
트라이포스 출신에다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실력자.
그는 혁명군 내부에서도 거물 축에 속한다.
가장 먼저 그를 붙잡고 끄집어내야 나머지 혁명군 수뇌부들도 잡을 실마리가 생길 터다.
“이미 이곳에 와있는 것 같군요.”
“어떻게 압니까?”
“마력의 파동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간부급이라 불리는 자들이 여럿 온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덮쳐왔다.
이어 주변 여러 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 이 불꽃은…….”
타오르는 불꽃이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주변의 기사들을 휩쓸었다.
“끄아아아아!”
“살려줘!”
“뜨… 뜨거워! 너무 뜨겁단 말이다!”
불길에 휩싸인 기사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아수라장이 된 불바다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
그가 처형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자인가.”
한눈에 저 사내가 테오도라임을 알아본 바이헤른이 손짓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발의 기사가 뛰쳐나갔다.
“가거라, 마르파이테. 가서 너의 실력을 보여주고 와라.”
바이헤른의 오른팔과도 같은 실력자였다.
폴로라스도 흥미진진하게 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콰아아앙――!!!
불길이 치솟고 그 속에서 마르파이테가 검을 휘둘렀다.
마법공학으로 도움을 받은 오러 소드였지만 그 위력은 엄청났다.
테오도라의 불길을 휘감은 마르파이테의 검이 앞으로 나아갔다.
휘리릭!
검을 피한 테오도라가 다시 불길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초열의 지옥.
마르파이테도 이번엔 섣불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양옆으로 날아든 원반이 마르파이테의 빈틈을 노렸다.
“음!”
쿠우웅―!!!
마르파이테가 막아낸 원반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그 원반의 수가 순식간에 수십 개로 불어났다.
테오도라의 진짜 마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마르파이테 뿐만 아니라 동료를 위협하는 다른 적들까지 한꺼번에 공격을 시작했다.
“건방진!”
이에 대노한 마르파이테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 사이 다른 마도사들이 테오도라의 불길을 꺼트리려 노력했다.
화콰아아아아아앙―――!!!
쿠르르릉!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고 마르파이테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바이헤른이 의외라는 시선을 보였다.
“실력 있는 마도사라더니… 제법이군요.”
마르파이테라면 충분히 눈앞의 테오도라를 압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니 오히려 마르파이테가 밀리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 다른 혁명군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히 나타난 그들을 보며 폴로라스가 미소를 보였다.
“계획은 성공이다. 역시나 크리울로스의 처형을 막아내기 위해 쥐새끼들 모두가 뛰쳐나왔구나!”
이제 저들을 모두 잡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혁명군은 사우스 왕국군과 싸우는 와중에도 일반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대피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폴로라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알아서 족쇄를 차고 싸우려 들다니. 멍청한 것들.”
그가 수신호를 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만 명의 정예기사들이 움직였다.
거기다 다이아 군대까지 움직이고 있으니 혁명군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편안하게 구경만 하면 된다.
“자아, 이곳에서 잘 지켜봐라. 당신을 구하러 온 불나방들이 어떻게 타죽는지를.”
“…….”
크리울로스 또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혁명군은 사우스 왕국과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나가야 할 존재들.
벌써부터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 저들과 전투를 벌여선 안 됐다.
아직 많은 것들이 준비되지 않았다.
너무나 성급하다는 생각이었다.
“대체 이 늙은이의 목숨이 뭐라고…….”
낮게 읊조리는 크리울로스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의 시선이 테오도라에게로 향했다.
마르파이테는 결국 다른 기사들과 함께 테오도라를 공격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테오도라라고 해도 마르파이테와 수준급 기사들의 협공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른 혁명군도 이는 마찬가지.
그들이 준비했던 기습도 생각만큼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겪고 있음에도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우리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어르신을 지켜내는 거다!”
“모두 조금 더 힘내라!”
“테오도라를 도와!”
여기저기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고군분투하는 혁명군들의 모습이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피를 토하고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개중에는 목이 베이고 몸이 커다란 바위에 짓눌리는 자들도 있었다.
“끄으으으으으… 분하다 분해…! 나도 저만한 힘이 있었더라면… 테오도라님에게 조금 더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아요. 이렇게 함께 싸우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에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사내의 옆에 세밀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여러 곳에 물 감옥을 형성하며 사우스 왕국군의 발목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거기다 치유의 물방울로 혁명군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테오도라 쪽에는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나질 않았다.
테오도라 단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제는 스무 명이 넘는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들 모두 보통 실력이 아닌 자들이었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테오도라가 말없이 위쪽을 바라보았다.
온 몸이 포박된 채로 크리울로스는 무릎을 꿇고 있었고, 바이헤른과 폴로라스가 그 옆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윽……!”
인상을 와락 찌푸린 테오도라가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폭발하듯 치솟은 화염이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위험을 느낀 마르파이테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반응이 늦은 몇몇 기사들은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르파이테가 테오도라를 보며 말했다.
“놀랍구나. 겨우 한 사람이 이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너 같은 인재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망한 왕국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냐.”
“…….”
“그러지 말고 우리 왕국에 서는 것이 어떻겠나? 너라면 차기 트럼프까지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다.”
콰르르르릉―――!!!
다섯 개의 커다란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불기둥을 타고 올라간 테오도라가 처형대 앞까지 뛰어올랐다.
그를 본 바이헤른이 자연스럽게 손을 검에 가져갔다.
이어 그의 안광이 폭사되었다.
슈콰아아아앙―――!!!
한줄기 오러가 일직선을 그렸다.
화염을 두르고 있던 테오도라가 순간 피를 내뿜었다.
“헙……!”
아무리 지쳤다지만 테오도라 역시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마도사였다.
화염 방벽은 바이헤른의 검에 꿰뚫리고 말았다.
“테오도라!”
놀란 크리울로스가 소리쳤고, 폴로라스가 그런 크리울로스를 압박했다.
“조용히 해 영감. 이제부터가 진짜 재밌을 거니까.”
“테오도라아아아!”
크리울로스가 발악하듯 몸부림치며 테오도라를 외쳤다.
다행이 치명상은 피한 테오도라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바이헤른이 그런 테오도라를 내려다보았다.
“호오, 곧바로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크읍…….”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고통에 테오도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거리 같았는데 갑자기 처형대가 훨씬 높고 멀어보였다.
그건 아마 저 위에 서있는 바이헤른 때문일 터다.
마르파이테도 강자였지만 저 위에 서있는 바이헤른은 그보다 한 차원 위의 강자였다.
“저게 트럼프라는 건가…….”
바이헤른의 가슴팍에 새겨진 커다란 스페이드 문양.
그게 황금색으로 새겨진 이는 단 한 명밖에 없다.
바이헤른이 테오도라가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실망이로군. 트라이포스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그가 테오도라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