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1화 (351/424)

351화 처형식 (3)

테오도라는 조용히 바이헤른을 쳐다보았다.

사우스 왕국의 트럼프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과거 전쟁을 벌였을 때, 이들이 이스트 왕국에 가장 커다란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마법기사단장급 이상.

거기다 이제는 과거의 트럼프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트럼프들이 자리해 있다.

테오도라가 마력을 갈무리하며 불꽃을 피워냈다.

이에 바이헤른이 흥미로운 미소를 보였다.

“계속 해볼 생각인가? 뭐, 나는 상관없다. 그렇지 않아도 따분했거든.”

“…결국엔 너만 넘으면 된다는 얘기로군.”

테오도라의 불꽃이 더욱 강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바이헤른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검술이라면 저 불꽃도 베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바이헤른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전진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테오도라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불꽃이 넘실거리며 바이헤른을 향해 삽시간에 뻗어나갔다.

“흠!”

휘콰아아앙―!!!

단 한 번의 일격에 불꽃이 흐트러졌다.

바이헤른의 오러에 불꽃마저 베이는 것이다.

하지만 테오도라는 한 번 더 마법을 선보이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적은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검사다.

마도사로서는 어쩌면 최악의 상대라 할 수 있지만, 거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전투였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도라는 상대와의 거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바이헤른이 아무리 빠르게 접근해와도 테오도라의 불꽃이 몸을 일으키며 이를 방해했다.

“성가시구만……!”

주변이 온통 불바다로 번졌음에도 바이헤른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력이 전신을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불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바이헤른 침착함을 잃이 않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테오도라의 위치를 쫓았다.

확실히 테오도라의 마법은 까다로웠다.

공격을 가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불꽃 원반이 검로를 방해한다.

접근하려 해도 불기둥이 몸을 일으켜 흐름을 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방어만 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테오도라의 불꽃은 자신뿐만 아니라 뒤편의 아군까지도 위협하고 있었다.

영악하게도 상대는 자신을 포함한 사우스 왕국 군사들 모두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혁명군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바이헤른이 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을 고쳐잡은 바이헤른이 테오도라를 향해 뛰어들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얘기가 있질 않은가!

바이헤른은 연속으로 검격을 쏟아부었다.

콰과과과과광!!!

파콰아아아아아아앙―!!!

검에서 흘러나오는 오러가 빗발치며 테오도라를 압박했다.

“크읍……!”

테오도라도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실력자가 방어를 등한시하고 공격해온다.

몸에 두른 마력 때문인지 테오도라의 마법 공격은 온전하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반면 그의 검에 테오도라가 당한다면 금방이라도 치명상이었다.

테오도라는 불의 갑주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호오!”

눈빛이 살아난 바이헤른이 검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격들.

거칠게 넘실거리는 화염.

그 속에서 테오도라가 바이헤른의 빈틈을 찾았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른 수십 개의 원반들이 테오도라의 전신을 공격했다.

“하아… 하아…….”

연이어 고위 마법을 펼치니 제아무리 테오도라라고 해도 지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확실하게 상대에게 먹혀들었다.

그 증거로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바이헤른이 처음으로 인상을 와락 구기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새끼……!”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이 테오도라를 쏘아보고 있었다.

테오도라는 침착하게 상대를 살폈다.

상대가 이성을 잃을수록 이것은 기회였다.

그때 바이헤른이 피식 웃었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

“지금 너와 내가 대등한 입장으로 싸우는 것이라 생각하나?”

“그게 무슨 소리냐?”

“보여주마. 너와 내가 어떻게 다른지를.”

바이헤른이 수신호를 보내자 기사들이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들의 검이 향하는 곳에는 크리울로스가 있었다.

“아…….”

“봤냐? 순순히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라. 그렇게만 한다면 처형식은 멈춰주지. 너도 알고 있었을 것 아니냐. 애초에 이 처형식은 네놈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다는 것을.”

“크윽…….”

테오도라의 얼굴도 보기 좋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고 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인 크리울로스의 목숨을 상대가 쥐고 흔들고 있는 이상, 테오도라 역시도 그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내가 재밌는 제안을 하나 하지.”

“……?”

“그냥 그러고 있지 말고 네 손으로 너의 동료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떻겠나? 그럼 나 바이헤른의 이름을 걸고 네 할아버지는 살려두도록 하겠다.”

“뭐라고……?”

“왜? 흥미로운 제안이 아닌가? 너는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너의 동료들인가, 그게 아니면 네 할아버지인가.”

“너…….”

“크하하하하하! 진작 이럴 걸 그랬구만!”

크게 웃음을 터트린 바이헤른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폴로라스가 서 있었다.

“들었습니까, 폴로라스님!”

“아아. 들었습니다.”

“귀공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지 않습니까!?”

“크흐흐. 정말로 테오도라가 동료들을 죽인다면 크리울로스의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폴로라스의 눈짓에 기사들이 검을 크리울로스의 목 가까이로 가져갔다.

크리울로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손주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테오도라아! 뭘 망설이는 거냐!? 내 목숨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자랑스러운 프로메테의 핏줄들은 모두 왕국을 위해 죽어갔다! 나 또한 오늘의 죽음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길 터! 망설이지 마라! 멈추지 말거라!”

“…….”

그러나 테오도라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던 폴로라스가 다시 한 번 손짓했다.

“망설이고 있다라… 뭐, 가볍게 보여주는 정도는 괜찮으니, 손이라도 하나 자를까요.”

폴로라스의 얼굴이 사악하게 물들어갔다.

그가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스각―!

망설임이라곤 일말도 없는 검격이었다.

“크으읍!”

크리울로스가 고통 때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왼쪽 손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시뻘건 핏물이 처형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끄으으으……!”

붉게 충혈된 크리울로스의 두 눈이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왼쪽 손을 바라보았다.

폴로라스가 크리울로스의 귀 가까이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지말고 협조를 좀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솔직히 저만한 전력은 탐나거든요.”

“개같은 소리 하지 말거라.”

“쯧… 하여간 고집 있는 늙은이라니까…….”

팔이 잘리고도 작은 신음 하나밖에 안 내는 크리울로스를 보며 폴로라스도 혀를 찼다.

정말 지독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를 바라보던 테오도라의 눈빛에도 살기가 감돌았다.

바이헤른이 그런 테오도라의 앞을 저지했다.

“어떻게 할 셈이냐? 네놈의 불꽃은 어디를 향해 있지?”

테오도라의 시선이 한순간 뒤편의 동료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지금도 사우스 왕국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애초에 숫자부터 크게 차이가 나는 전투였다.

그러니 속도전으로 승부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나를 위해 이곳으로 와 준 동료들이다. 그들의 마음을 저버릴 수는 없어.”

“흐음… 그것 참 아쉽게 되었구만.”

테오도라의 선택에 바이헤른은 진심으로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직접 상대해보니 테오도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저만한 실력자가 등을 돌린다면 적들에게도 상당한 타격이 되었을 터다.

하지만 상관없다.

테오도라가 없다고 해서 이쪽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쉬운 일을 조금 더 번거롭게 해야 할 뿐.

“잘 들어라. 너의 선택으로 네 할아버지는 죽는 거다.”

바이헤른이 위쪽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크리울로스를 죽이라는 신호였다.

이를 본 폴로라스도 혀를 찼다.

“쯧… 아무래도 당신 손자는 당신을 버리는 것을 택한 모양이야.”

“크흐흐… 아니. 내 손자는 나의 뜻을 잘 헤아렸다. 그러니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지.”

“나참, 끝까지 말은… 죽여라.”

폴로라스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순간 새하얀 빛이 검날을 눈부시게 빛냈다.

크리울로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씨를 보았으니 이 목숨이 끝나도 여한이 없다. 걱정 없이 나의 딸의 곁으로 갈 수 있겠구나.”

후우우웅!

쩌저정!

콰과과과과가가가가강―――!!!

그때 갑자기 쏟아진 새하얀 빛무리가 처형장을 덮쳤다.

이어 새하얀 세상이 처형대 위로 펼쳐졌다.

“뭐… 뭐냐!?”

갑자기 벌어진 일에 폴로라스는 물론 다른 기사들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폴로라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빨리 크리울로스를 죽여라!”

자신이 모르고 있는 일이라면 결국 이 상황의 원인은 단 하나였다.

적들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것.

그러니 그들의 목적인 크리울로스 먼저 죽여야 했다.

허나 폴로라스의 명령에 대답을 하는 기사들이 없었다.

“너희들 지금 뭐하고…….”

폴로라스가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서있던 두 명의 기사들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를 본 폴로라스는 순식간에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자네였나.”

크리울로스만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한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나? 재미없군.”

“이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자네 말고 누가 더 있겠나.”

“크흐흐흐… 내 솔직히 그냥 두고 볼까 하다가… 더 이상 친우를 잃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쯧… 친우들에게 검을 겨누었던 놈이… 무슨 바람이 일어서?”

“나는 그저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뿐이라네. 뭐, 나의 열등감도 한 몫 했지만. 아무튼… 그 녀석이 그렇게나 지키고 싶어 했던 이 왕국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실망했겠군.”

크리울로스가 자조어린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누군가 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맞아. 몹시도 실망했다. 인간들의 추악함은 드러나도 드러나도 끝이 없더군.”

“본래 그런 것 아니겠나. 모든 인간들이 같을 순 없는 거지.”

“그런데도 너희들은 이 추악한 세상을 위해 몹시도 노력하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이 세상도 살아갈 만하지 않겠나.”

“쯧…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해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인간들은 그들을 까내리지 못해 안들이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시체도 파내 베어버릴 녀석들이지.”

“그러는 자네도 인간이 아닌가.”

“…….”

“인간은 언제든 변할 수 있네. 자네가 지금 나선 것처럼.”

크리울로스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우뚝 서있는 사내.

그는 과거 크리울로스, 테르세우스와 함께 절친하게 지냈던 오르카이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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