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처형식 (4)
오르카이우스는 초췌해진 크리울로스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자네는 언제나 우직하게 바보같군.”
“크흐흐흐. 그게 나란 놈인 것을 어쩌겠나.”
“훗. 나 또한 그래서 자네를 좋아했어. 어쩐지 밉지가 않은 녀석이더라고.”
“나도 그렇다. 발할라의 대장이 네놈이었음에도 나는 너를 이해하려 노력했거든.”
“그래서 이해가 되던가?”
“사람마다 누구나 입장은 다른 법이지.”
오르카이우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폴로라스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네놈은 뭐냐!? 네가 혁명군의 대장이냐!?”
“쯧… 어린 녀석이 건방지구나.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거냐?”
오르카이우스의 시선이 폴로라스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압박감이 폴로라스를 순간 짓눌렀다.
이에 놀란 폴로라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누구지?”
“네깟놈이 그걸 알아서 뭣하려고 그러느냐?”
“이스트 왕국에 있는 주요 인물들은 다 꿰고 있다. 하지만 당신 같은 마도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
“쯧… 뭐든 네놈이 다 알거라고 생각하진 말거라.”
“크음… 그래도 뭐 상관없다. 다들 뭣들하고 있는 거냐!? 저자를 죽여라!”
아군 기사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본 폴로라스가 잽싸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사들이 일제히 오르카이우스에게로 달려들었다.
“한심한 놈들.”
슈콰과과광!
채재재재쟁! 채재재재재재재재쟁―――!!!
어디선가 날아온 빛의 창이 기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눈으로 쫓아가기도 힘든 속도였다.
거기다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빛의 창은 그 마법마저도 간단히 뚫어버렸다.
“……!?”
놀란 폴로라스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십수 명의 기사들이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럴 수가…….”
저들이 평범한 기사들인가……!?
그렇지 않다.
나름 실력 좋은 정예들로 추린 기사들이었다.
그런데도 저 초로인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건방진 놈. 네놈에게도 벌을 내려주마.”
슈우우우웅!
콰가가가가가강!!!
강한 빛의 일격이 폴로라스를 때렸다.
그러나 누군가 나타나 폴로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하믹 경!?”
어깨선까지 흘러내린 백발이 인상적인 기사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르카이우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폴로라스 총사령관님.”
“오오 하믹 경! 아니지. 그대가 와주었으니 너무나 든든하구만!”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 사내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러니 자리를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나더러 대역 죄인 크리울로스를 두고 이 자리를 벗어나란 말인가!?”
“지금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하믹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폴로라스가 덩달아 인상이 어두워졌다.
지금 이곳에 있는 최강의 실력자는 바이헤른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자가 있다면 바로 하믹이었다.
그런 실력자가 지금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즉, 저 앞에 있는 사내가 그만큼이나 강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알겠네. 그럼 일단 나는 뒤로 물러나도록…….”
“누가 곱게 보내준다던가?”
슈콰과과광!!!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의 창들.
놀랍게도 하믹이 검을 들어 그것들을 쳐내고 있었다.
그의 검에서 흘러나온 오러를 보며 오르카이우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마도공학 무기라는 게 생기면서… 이제는 개나소나 오러를 만들어 제끼는 구만.”
“개나소나? 이것은 나의 평생이 깃들어 있는 힘이다.”
“허울 좋은 소리로구나. 인생이든 평생이든 노력이든, 뭔가를 쏟아담기만 하면 오러는 저절로 생겨나는 힘이더냐?”
“뭐……?”
“마도사든 검사든 결국 그 궁극을 보는 자는 결이 같다. 그것은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야. 좀 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네놈은 그저 편법을 이룬 머저리에 불과하다.”
“하! 나를 무시하려는 건가?”
“네놈이 무시받을 짓을 했으니 무시하는 것 아니냐.”
빛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하믹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오러가 번뜩일 때마다 놀랍게도 빛이 잘려나가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의 마법이 모두 막히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오르카이우스는 따로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빛을 모두 막아낸 하믹이 검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어떤가?”“뭐가 어떠냐는 거냐?”
“네놈의 마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긴장이라는 걸 하지 않는 거냐?”
“긴장!? 긴자아아앙?”
오르카이우스가 갑자기 대소하기 시작했다.
그가 돌연 크게 웃자 하믹이 인상을 구겼다.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거냐?”
“미안하군. 너무 우스운 말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내 말이 뭐가 우습다는 거지?”
“내가 네놈 따위를 상대로 왜 긴장해? 지금까지 나를 가장 전율케 만들고 긴장하게 만들었던 존재는 단 하나 뿐이다.”
오르카이우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존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날의 전투는 오르카이우스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무시무시한 마수를 상대로 테르세우스처럼 당당히 나설 수 있었을까.
아니 아직까지도 고개는 절로 저어진다.
당시 수도를 습격했던 마수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것만으로도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압도당해버릴 정도였다.
인간의 힘으로 과연 저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재앙이 다가온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치면서 테르세우스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도 잠시.
발은 지면에서 떨어질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테르세우스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전투를 선보이며 한때나마 그 괴물을 압도했다.
단신의 몸으로 저 마수를 압도할 수 있다니!
그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며 오르카이우스도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왜 많은 이들이 테르세우스를 이스트 왕국의 요새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저 한 명의 존재만으로 사우스 왕국은 이스트 왕국을 침범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 요새는 결국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때를 기억하면 오르카이우스는 아직까지도 가슴이 쓰라렸다.
테르세우스의 죽음에 자신도 일조한 것만 같은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갑자기 테르세우스의 죽음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불쾌한 기분이었다.
“괜히 생각나게 해서는…….”
오르카이우스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순백의 세상이 펼쳐졌다.
“그걸 아느냐?”
“…….”
순백의 세상 속에서 하믹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빛으로 가득한 것인지, 어둠 한 점 보이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속에서 수많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콰르르르르릉!
빛무리가 소낙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믹은 검을 들어 그것들을 모두 막아내었다.
이어 일보 내딛으며 검을 치켜 올렸다.
휘콰아아앙!
거친 오러가 검끝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새하얀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뒤이어 낙뢰처럼 쏟아진 빛무리가 하믹을 덮쳤다.
“크으으윽!”
묵직한 충격에 하믹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어 빛무리가 회전하며 하믹의 사방을 노렸다.
검으로 모두 막아내려 해도 무리였다.
오러를 통과한 빛이 하믹의 몸에 데미지를 주었다.
“끄아아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하믹이 결국 비명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르카이우스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정한 오러는 이 공간을 깨트릴 수 있다. 하지만 네놈의 오러로는 결코 이 공간을 깨트릴 수 없어.”
“뭐……!?”
“이게 진짜와 가짜의 차이다.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일대일에서는 당연히 검사가 마도사보다 앞선다. 하지만 네놈은 나의 수준에 한참 모잘라.”
“그 말은… 네가 초월급을 넘어선다는 얘기냐?”
“나는 이미 그 경계의 선을 보고 온 존재다.”
콰르르릉!!!
콰라라라라라랑―――!!!
빛무더기가 쏟아지자 결국 하믹의 몸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하믹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오러는 무기의 힘을 빌린 것.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오러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기의 힘을 빌려도 오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검사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자신은 무기의 힘을 빌려서라도 오러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러면 된 거라 생각했다.
나머지는 차차 성장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 안일한 생각이 오늘의 패배를 불러왔다.
상대는 자신의 오러가 ‘진짜’가 아님을 간파해내었고, 그것은 결국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깨달음의 깊이에서부터 이토록 차이가 나는데 눈앞의 상대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가.
빛의 폭격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하믹이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끄으으으…….”
“그래도 잘 싸웠다.”
“당신은 누구지…? 마법기사단장 중에서도 당신 같은 인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마법기사단장이라… 그리운 이름이긴 하구만.”
오르카이우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력으로 장악한 자신의 공간을 거두었다.
그러자 다시 세상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믹 경!”
“하믹 대장님!”
“하믹님!”
놀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하믹처럼 강한 기사가 이토록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다니……!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오르카이우스의 모습이었다.
그의 몸에는 자그마한 상처도 없었다.
“하믹님이 이토록 처참하게 깨졌단 말인가……?”
“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장이 아닐까!?”
“저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오르카이우스다.”
“뭐!?”
“빛의 마도사 오르카이우스다! 과거 테르세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던 그 마도사!”
누군가 오르카이우스를 기억해내며 외쳤다.
그러자 오르카이우스의 얼굴이 덩달아 찌푸려졌다.
“저런. 나를 알고 있는 자가 있었나.”
“크흐흐흐. 네놈도 꽤 유명했으니까.”
“시끄럽다.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은가?”
“급한 대로 지혈은 했다. 그래도 아파 죽을 것 같군.”
“세월은 못 이기는 건가. 네 입에서 그런 나약한 말이 나올 줄이야.”
“세월을 누가 이길 수 있겠나.”
크리울로스가 오르카이우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쿠우우웅!
그때 커다란 울림이 광장을 휩쓸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바이헤른의 공세 속에 테오도라가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를 보며 크리울로스가 안색을 굳혔다.
“이보게, 오르카이우스…….”
“말하지 않아도 네가 무슨 말을 할지 안다.”
“부탁을 좀 해도 되겠나.”
“흐흐흐. 크리울로스 네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내가 나설 자리는 없을 것 같군.”
“뭐라……?”
지켜보라는 듯 오르카이우스가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미 오르카이우스가 크리울로스의 곁에 있는 이상 그의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오르카이우스가 이곳을 비우면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카이우스는 크리울로스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기 전까진 곁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에 곧 다른 이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나저나… 아주 살벌한 기세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