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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3화 (353/424)

353화 돌아온 손자

바이헤른의 검이 테오도라의 어깨를 스쳤다.

핏물이 튀는 와중에도 바이헤른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승기를 잡았을 때 확실히 결투를 끝내야 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테오도라보다 조금 전부터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강자에게 잔뜩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빛을 이용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스트 왕국에 저런 마도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믹이 당한 것도 계산 외의 일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자신 다음으로 강한 사내가 바로 하믹이었다.

헌데 저 의문의 마도사는 하믹조차도 막아내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을 선보였다.

“상황이 유쾌하게 흘러가진 않는군… 갑자기 정체 모를 강자의 등장이라니.”

그래도 바이헤른이 상대하지 못할 만한 실력자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눈앞에 있는 테오도라부터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묻지. 정말로 우리 사우스 왕국을 위해 일해 볼 생각이 없는가? 너라면 정말 좋은 대우를 약조해주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내가 죽더라도 우리 왕국의 마법기사로 남을 것이다.”

“…아쉽군. 하긴 네가 그런 사내라 이렇게 욕심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어.”

바이헤른이 검을 말아쥐었다.

그가 호흡을 고르며 앞으로 움직였다.

테오도라가 긴장한 빛으로 그를 살폈다.

“내가 도울게, 테오도라.”

어느새 가까이 온 세밀리아가 마법으로 테오도라를 치유해주었다.

그녀를 본 테오도라가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 세밀리아.”

“테오도라! 앞에!”

쿠우우웅――!!!

섬전과도 같은 일격이었다.

가까스로 그 일격을 피해낸 테오도라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불길의 방해가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허점을 내줄 뻔했다.

바이헤른이 검을 쥔 채로 발을 내딛었다.

“바로 이어서 간다.”

무섭도록 뻗어나가는 검격.

테오도라가 마법으로 그것을 막아내려 해도 쉽지 않았다.

세밀리아의 마법이 바이헤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방울방울 피어난 마력이 바이헤른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이를 본 바이헤른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거슬리는군.”

검끝에 실린 오러가 물방울들을 한 번에 터트렸다.

그러자 시뻘건 불길이 바이헤른을 덮쳤다.

후우우웅―――!!!

검을 휘둘러 불길을 걷어낸 바이헤른이 테오도라를 찾았다.

이제 테오도라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 증거로 그의 마법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운용하던 불의 원반도 그 수가 줄어 있다.

이를 본 바이헤른이 혀를 찼다.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인 것은 확실하군.”

저 원반들이 문제였다.

불길 속에서도 빈틈이 보이면 가차 없이 공격해온다.

거기다 어지러이 움직여 시야를 차단하기도 한다.

테오도라가 다시 집중해 불의 원반을 움직였다.

이어 사방에서 피어난 불길이 바이헤른을 포위했다.

오르카이우스가 나타나 크리울로스를 지켜준 것은 이미 보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눈앞에 있는 상대를 쓰러트리면 된다.

“조금만 더 힘을…….”

그러나 시야가 흐릿해져 왔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몸도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다.

여기저기 입은 부상들.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의 누적.

거기다 서서히 고갈되어가는 마력까지.

이 상황이 되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시테르와 함께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훈련을 했었다.

마력이 고갈되는 느낌을 잘 몰랐던 테오도라로서는 참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계까지 몰아붙였을 때, 그것을 뛰어넘고 극복해내는 것.

인간은 그렇게 성장해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테오도라는 늘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습관을 가졌다.

그렇게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소중한 가족들과 동생인 아시테르를 지켜주고 싶었다.

헌데 그런 순간은 늘 뜻하지 않게 찾아왔고, 자신은 언제나 한발 늦었다.

“하지만 이제야 겨우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어. 이번만큼은……!”

다 쓰러져가던 테오도라가 다시 한 번 정신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미 상대는 그의 눈앞이었다.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냐.”

“테오도라!”

“테오도라님!”

테오도라는 그때서야 자신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았음을 인지했다.

강자들 간의 싸움에서 찰나의 빈틈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아차 싶었던 테오도라가 이를 악물고 반격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바이헤른의 검이 한발 먼저 떨어졌다.

스가가각!

테오도라의 가슴팍에 붉은 핏물이 튀어올랐다.

놀란 세밀리아가 뛰어왔고, 바이헤른은 무심하게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그 순간.

파콰아아앙――!!!

질풍처럼 밀려든 기운이 바이헤른의 검을 격했다.

칠흑빛 마기에 검이 밀려나자 바이헤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뭐냐……!?”

기다란 창신이 눈앞에 보였다.

그것을 꼬나잡은 카이드가 창을 회전시켰다.

콰아아앙――!!!

이어진 연격에 바이헤른이 뒤로 물러났다.

새로운 적의 출현.

그런데 다루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바이헤른이 이죽거리며 그에게 말을 걸려는 때 더욱 거대한 기운이 공간을 짓눌렀다.

“음……!”

놀란 바이헤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만한 압박감을 줄 수 있을 만한 존재라니.

그때 그가 있는 곳으로 강맹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쿠우우웅!

콰라라라라라라라랑―――!!!

검으로 막아냈지만 바이헤른의 몸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말도 안돼!”

바이헤른은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의 주변을 살폈다.

단순히 공격을 막아냈을 뿐인데 이만큼이나 힘에 밀렸다.

바이헤른의 시선이 자신을 공격한 자를 찾았다.

그때 위쪽에서 오러의 다발이 쏟아져 내렸다.

바이헤른이 검을 어지러이 휘두르며 오러를 쳐냈다.

그 사이 드러난 틈을 아시테르가 빛의 속도로 파고들었다.

콰드드등――!!!

본능이었다.

잔뜩 민감해져 있는 본능이 바이헤른의 검을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가까스로 그 검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밀려드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크하악!”

바이헤른이 고통 어린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잠깐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검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이를 본 바이헤른이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지금은 고통에 아파할 겨를도 없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놓는 순간 당한다.

쏟아지는 검격들을 막아내느라 바이헤른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저 많은 검격들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다.

허초 같지만 단 하나의 허초도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의 쾌검이었다.

이어 아시테르의 검이 일순간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바이헤른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찰나의 틈을 파악하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든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바이헤른이 이를 악물고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쏟아지는 공세속에서 가까스로 잡은 반격의 틈이었다.

어떻게든 이것을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은 바이헤른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피슈슛!

스가가강―――!!!

입고 있던 갑옷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핏물이 터져나왔다.

고통을 인지할 틈도 없이 바이헤른의 몸 여기저기에 핏물이 흘러나왔다.

“크아아악!”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검격들.

그 중심엔 바이헤른이 있었다.

아시테르의 검에는 자비따윈 없었다.

그는 바이헤른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베어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카이드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워후… 우리 대장이 많이 화가 났나본데…….”

“그야 당연하지. 자기 형을 건드린 놈인데 화가 안날 수가 있겠냐.”

에스파가 옆에서 아시테르의 무자비한 손속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가족을 잃는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그러니만큼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도 강하게 남아 있을 터.

애석하게도 상대는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만 테오도라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 테르?”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의 뒷모습이 시야에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 환상이라도 보이는 것일까.

그때 귓가에 세밀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오도라… 보여?”

“세밀리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헛것일까……?”

세밀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도 사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당신의 동생이 살아 돌아왔어…….”

“정말… 아시테르가 맞단 말이야?”

“응… 믿기 어렵게도 아시테르가 살아 있었어…….”

“아, 아아…….”

테오도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가움보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쿠우우웅―――!!!

한 차례 폭음이 터지고 바이헤른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한참 검을 휘두르던 아시테르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바이헤른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끝은 아닐 테지?”

“너… 너는 누구냐?”

어깨를 움켜쥔 바이헤른이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르카이우스도 정보에 없던 존재인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도 그랬다.

헌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 사내는 오르카이우스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항상 자신감을 드러내었던 바이헤른조차 아시테르 앞에서는 위축될 지경이었다.

그만큼 그의 검술은 위협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아시테르다.”

아시테르가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의 두 눈에 피어난 살기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바이헤른님을 지켜라!”

“적을 죽여라!”

“합공하는 거다!”

뒤편에 있던 기사들이 아시테르를 향해 일시에 뛰어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테오도라가 크게 외쳤다.

“아시테르! 조심해라!”

테오도라만이 아니었다.

살아돌아온 손자의 모습에 한참동안이나 넋이 나가있던 크리울로스도 덩달아 소리쳤다.

“조심 하거라 아시테르!”

그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아시테르를 향해 달려들던 기사들이 일시에 무릎을 꿇었다.

복종의 맹세나 예를 차리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 그들의 몸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이건 무슨 마법인거냐!”

그들은 입에서 피가나고 두 눈이 붉게 충혈될 정도로 강하게 힘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점점 더 바닥으로 짓눌리고 있었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꿈쩍도 하지 못하고 바닥을 기었다.

개중에는 바위에 찍어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피를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아시테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광경에 헛웃음을 흘리던 바이헤른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뭐야? 괴물이야? 아니며 인간의 모습을 한 마수냐?”

“둘 다 틀렸다. 나는 저 위에 있는 크리울로스님의 손자. 내 할아버지를 건드린 대가는 너희들 모두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아시테르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이헤른이 입가를 실룩댔다.

“거짓말 치지마라. 크리울로스의 손자는 테오도라 한 명 뿐이다. 그런데 네놈이 크리울로스의 손자라고?”

“…너희들은 나의 어머니를 재앙의 마녀라 부른다지?”

“……!”

그때서야 바이헤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그를 보며 아시테르가 검끝을 내렸다.

“너희들은 편하게 죽을 수 없을 거다.”

“마… 말도 안 돼! 너는 죽었어! 네놈은 죽었단 말이다!”

발악하듯 소리치는 상대를 보며 아시테르가 슬쩍 한쪽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러니 네놈들은 이제부터 긴장해야 할 것이다.”

“으, 으윽……! 기고만장하지마라! 내가 지칠 때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네깟 놈쯤은……!”

퍼억!

아시테르가 발로 바이헤른을 걷어 차버렸다.

그리곤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일단 여기 있는 사우스 왕국 놈들부터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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