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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4화 (354/424)

354화 언노운 기사단의 부활

아시테르의 명령이 마침내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렸습니다, 그 명령을.”

데미리우스가 가장 먼저 마법을 펼쳤다.

항상 캐스팅 시간이 늦어 기다려줘야 했던 데미리우스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미리 끌어올려두었던 마력을 한꺼번에 변환시키며 한쪽을 독지대로 만들어버렸다.

사우스 왕국의 기사들이 몰려 있던 자리였다.

거뭇하게 피어난 독구름이 삽시간에 그들을 감싸버렸다.

이어 늪지대로 변한 독지가 기사들의 다리를 끌어당겼다.

“헙!?”

“이게 뭐야!?”

“마도사! 마도사 어딨어!? 이것들 좀 어떻게 해줘봐!”

그러나 그들이 독지에 잠식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뭇하게 피어난 세상에서 끔찍한 비명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데미리우스 또한 사우스 왕국에 안 좋은 감정들이 가득했기에 그의 손속에도 사정이 없었다.

얼굴이 녹아내린 기사가 걸어 나오기 전까진 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무도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이 에스파가 가만히 서서 수십 개의 화살을 쐈다.

화살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여기저기 폭발하는 화살들을 보며 사우스 왕국 기사들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무슨 마력 화살에 저런 위력이……!”

“속임수다! 화살로 보이는 것처럼 위장해 다른 마법을 펼치는 거다! 주변을 경계해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외쳐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화려한 투구를 걸친 이들에게는 여지없이 에스파의 화살이 날아왔다.

폭발적이고 위력적인 화살과 다르게 지휘관들을 노릴 때는 날카롭고 빠른 화살을 발사했다.

심지어 화살은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신기에 가까운 마법을 보며 사우스 왕국 기사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까다로운데 커다란 뼈를 들고 안쪽에서부터 진형을 붕괴시키는 마도사가 있었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덤벼.”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라빈은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녀가 자세를 낮게 고쳐 잡자 십수 개의 커다란 뼈들이 지면을 뚫고 올라왔다.

그것에 휘말린 기사들이 비명을 토해냈다.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사가 피를 왈칵 쏟아냈다.

그의 고통을 빠르게 끊어주는 뼈의 검이 목을 스쳐지나갔다.

“아…….”

“마녀다! 진짜 마녀가 나타났어!”

자신의 뼈를 무기로 사용하는 라빈을 보며 사우스 왕국 기사들이 소리쳤다.

그들이 보기에 라빈은 정말로 구전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녀의 모습이었다.

기괴한 마법을 사용하는 덕분에 그들은 빠르게 기사들의 머릿속에 공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반면 카이드는 존재 그 자체가 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는 무지막지한 창술을 선보이며 수백의 병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었다.

이곳에 있는 병력만 1만이 넘는데 언노운 마법기사단 앞에서는 그저 오합지졸들에 불과했다.

몇몇 실력 있는 기사들이 나서려 해도 소용없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원들 한 명 한 명이 이미 그들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

거기다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바로 세아츠리스의 마법이었다.

그녀의 가시덤불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사우스 왕국 기사들을 단번에 제압했다.

다른 마법으로 그것을 막아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화염이 짓쳐들고 얼음송곳들이 떨어지는데도 가시덤불은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단원들이 나서서 사우스 왕국 마도사들을 정리했다.

“무지막지하구만…….”

처형대 위에서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실력을 지켜보던 오르카이우스가 그저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저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실력자들이었지만 개중에 몇몇은 오르카이우스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최선두에 있는 아시테르는 그 실력조차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네 손자 녀석 말이다… 못 보던 사이 아주 괴물이 되어 있구나.”

“괴물은 인간의 심성을 잃은 자에게나 하는 말이고.”

“아니 이 쓸데없이 우직한 친구가 이 상황에서도 지금… 아니 뭐 됐고, 지나치리만치 강해졌다 저 아이는.”

“테르세우스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가?”

“장난하나? 두 사람 모두 나를 상회하는 실력자들이야. 내가 감히 비교하려 들 수가 없지.”

“그렇구만…….”

“음?”

그때 오르카이우스의 뒤편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흑발에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여인이 뒤편에 서 있었다.

“그대는 못 보던 사람인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린이라고 합니다.”

“린?”

“네. 그렇게 경계하실 것 없어요. 저 또한 아시테르의 동료니까요.”

“호오…….”

그러나 오르카이우스는 섣불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때 다른 이가 나타나 린의 신분을 증명해주었다.

“언니는 아시테르 오빠의 애인이에요.”

“응……?”

“뭐라!?”

세아츠리스의 폭탄 발언에 오르카이우스는 물론 크리울로스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린도 순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때 세아츠리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어때요? 어차피 알려질 일인데. 그리고 아시테르 오빠를 구해준 것도 언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받을 일인데요.”

“…아시테르를 구해주었다고?”

크리울로스의 시선이 린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자 린이 쑥스러움에 슬쩍 시선을 피했다.

크리울로스가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정말, 정말 고맙다… 내 손주의 은인이라니……!”

크리울로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형당하기 전까지도 미동하나 없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진심으로 린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이를 보던 오르카이우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자기 핏줄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친구라니까…….”

그러면서도 오르카이우스 또한 웃고 있었다.

상황은 금세 정리되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막강한 힘 앞에 사우스 왕국군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혁명군까지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전투에 가담하는 바람에 고작 1만 여명의 기사들과 병사들로는 결코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들의 패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요 지휘관들이 목숨을 잃었고 폴로라스와 바이헤른마저 적들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아시테르는 무참하게 패배한 바이헤른의 앞에 서 있었다.

“죽여라. 더 이상 나를 비참하게 하지 말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바이헤른이 검을 놓으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자신이 이겨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 백번을 싸워도 백번 모두 패할 터다.

그토록 노력해서 하늘에 닿았다 생각했건만,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드는 감정은 분노보단 억울함이었다.

그토록 강해지겠다 노력해왔건만 세상에 저런 존재가 또 있다는 것에 대한 야속함.

그것이 가장 강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이스트 왕국에 너 같은 존재가 있었다니… 나 참, 웃기지도 않는 군.”

“무슨 말이지?”

바이헤른의 시선이 다른 이들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도 문제였지만 그가 이끌고 있는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더 문제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법기사단의 단장급들이 즐비한 기사단이라…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물어봐라.”

“과거에 너희들도 전쟁에 참전했었나?”

바이헤른의 질문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이헤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놈들이 있었다면 이스트 왕국이 그토록 쉽게 무너지진 않았겠지.”

바이헤른은 그때서야 왜 선배들이 이스트 왕국의 저력을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저런 강자들이 나타난다.

거기다 아무리 강하게 억압해도 이스트 왕국의 국민들은 사우스 왕국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기회만 온다면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사람들로 넘쳐났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혁명군이 사람들 사이로 숨으니 용감하게 시민들 모두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해주려 했다.

“우리가 이스트 왕국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한때 자만했던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바이헤른과 함께 붙잡힌 마르파이테가 분함에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바이헤른님! 정신차려야 합니다! 적들을 앞에 두고…….”

“아니. 이제는 우리 왕국이 긴장해야 될지도 모르겠구나.”

바이헤른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다 카이드를 보았다.

칠흑빛 오러를 몸에 두르고 창을 휘두르던 기사.

그 옆에는 온 몸으로 모든 마법을 받아내던 가이우스가 있었다.

저들만으로도 문제인데 요새를 완전히 무너트린 가시덤불의 주인, 세아츠리스도 있었다.

바이헤른이 처형대에 있는 폴로라스를 쳐다보았다.

폴로라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며 재차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 사이 린은 크리울로스의 부상을 치료해주었다.

“놀랍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에요.”

“아니… 솔직히 말해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울 따름이야.”

오르카이우스가 순수한 감탄을 내놓았다.

린은 크리울로스의 부상뿐만 아니라 오르카이우스의 부상까지도 치료해주었다.

그런데 치유되는 속도도 그렇고 치유된 뒤의 몸 상태는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허참…….”

엔류아가 부상당한 시민들을 돕는 동안 린은 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크리울로스도 문제였지만 테오도라의 부상이 더욱 심각했다.

그의 옆에는 세밀리아가 붙어 있었는데, 그녀는 회복만을 전문으로 하는 마도사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녀는 테오도라의 상처가 더욱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느새 가까이로 다가온 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한 번 살펴봐도 될까요?”

“당신은…….”

“긴장하실 것 없어요. 아시테르의 동료에요.”

“네…….”

세밀리아가 슬쩍 몸을 비켜주었다.

테오도라의 가슴팍에는 관통당한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기다랗게 그어진 검흔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린이 그런 테오도라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전신이 환한 빛무리로 물들었다.

이어 빛무리가 빠르게 퍼져 테오도라의 전신을 감싸안았다.

“아…….”

벌어진 상처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넘쳐흐르던 핏물도 조금씩 멎어간다.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며 세밀리아가 눈물을 흘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던 테오도라의 상태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빠른 속도로 테오도라를 치유하는 린을 바라보며 세밀리아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요.”

“뭘요. 저도 아시테르가 그토록 슬퍼하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치유를 마친 린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나 그녀의 마법은 명불허전이었다.

온몸에 상처로 가득했던 테오도라의 몸이 상당히 말끔해져 있었다.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고통도 꽤나 사그라들었는지 테오도라의 얼굴이 평온을 되찾았다.

눈을 뜬 그가 린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제수씨.”

“네?”

“조금 전 저편에서 한 얘기를 들었어요.”

“아…….”

린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테오도라가 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민망하네요. 저는 아시테르의 형인 테오도라라고 합니다.”

“아,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시테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분이라고…….”

“후후. 그 녀석이 그렇게 얘기하던가요?”

“네. 그리고 이렇게 보니 두 사람, 웃는 모습이 똑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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