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5화 (355/424)

355화 뜻밖의 정체

아시테르와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광장에 나타나 사우스 왕국군을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덕분에 무덤덤하게 지내던 이스트 왕국의 왕국민들마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돌아왔다는 소식만큼이나 그들에게 반가운 것은 없었다.

이스트 왕국을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법기사단이었다.

명성 높은 마법기사단도 많았지만 결국 몇몇은 사우스 왕국의 탄압 아래 해체하고 말았다.

개중에는 사우스 왕국의 밑으로 들어가 활약하는 자들도 있었다.

섬광 마법기사단이 그러했고 순록의 마법기사단이 그러했다.

일섬 마법기사단도 요즘에는 사우스 왕국의 부탁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건 좀 의외로군요.”

“뭐, 알렌시아님이라고 좋아서 그렇게 하는 거겠습니까. 가문의 압박과 여러 상황들이 그 분을 그쪽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거겠죠.”

“칸은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돌풍 마법기사단의 단장님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다라…….”

“그래도 여전히 비난의 화살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칸님의 배우자인 알렌시아님이 워낙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통에…….”

“배우자요?”

“…? 모르셨습니까? 칸님과 알렌시아님은 이미 결혼을 마친 사이입니다.”

사르바타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때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어 그냥 넘겼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제는 아시테르가 딱히 신경 쓸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아무튼… 히스링 군단장님과 다른 분들은 아직까지 이스트 왕국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여러 귀족들과 왕족들이 이미 사우스 왕국 편에 섰기 때문에 그들까지 속이느라 애먹고 있는 형국이긴 합니다.”

“가장 두려운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죠.”

이스트 왕국이 사우스 왕국에게 손쉽게 넘어간 이유는 바로 내부의 적들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사우스 왕국의 끄나풀이 되어버린 귀족들 때문에 이스트 왕국의 정보는 매일같이 사우스 왕국으로 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전쟁을 준비함에 있어서도, 적들이 이쪽의 작전을 모두 알고 있으니 쉽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사우스 왕국군이 침략했을 땐 우습게도 안쪽에서부터 문을 열어 두 팔 벌리고 환영해주었다.

설마하니 마법기사단까지 사우스 왕국의 꾀임에 넘어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튼 사우스 왕국의 침략을 허용한 것은 안쪽부터 무너졌기 때문이 컸다.

이 때문에 아시테르는 그들부터 싹을 잘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적들도 문제지만, 배신자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시테르의 단호한 태도에 사르바타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거기다 그때 나라를 배신한 이들은 사우스 왕국의 도움을 받아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다.

“동료들을, 이웃들을 팔아먹고 행복하게 잘 살게 둘 순 없습니다. 그들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르바타의 말에 다른 모두가 동의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크리울로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찌할 생각이냐?”

“당연히 사우스 왕국군을 몰아낼 생각입니다.”

“이스트 왕국에서?”

“예.”

“하지만 이곳은 전장으로 삼기에 너무나 좋지 않다. 그 이유는…….”

“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압니다. 저 또한 또다시 수도 한 복판에서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크리울로스는 말없이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이전에 봐왔던 손자의 모습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크리울로스만이 아니었다.

“못 보던 사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 제수씨가 치료해준 덕분에.”

테오도라가 린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부드러운 인상에 잘 생기기까지한 그가 그렇게 웃으니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예의 있게 인사를 받아줄 뿐이었다.

“이번에 사우스 왕국의 트럼프를 건드렸으니 아마 사우스 왕국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맞아. 당연히 그렇겠지.”

“아마 지금쯤 더욱 강한 군대를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지 몰라. 우리들이 벌인 일의 여파로 죄 없는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르고.”

“절대 그런 일이 벌이지지 않도록 해야지.”

아시테르는 이미 모든 생각을 마친 상태였다.

그의 어머니인 아레나의 무덤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평소 그의 생각에는 반하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할 때는 확실하게 해주어야 했다.

사우스 왕국을 변수로 남겨둘 수는 없다는 판단.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정말 전쟁을 벌일 생각이었다.

“일단 혁명군 쪽은 형이 규합해주었으면 좋겠어.”

“혁명군을?”

“응. 사우스 왕국과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잖아. 우리들에게 많은 힘이 될 거야.”

“그래. 그쪽은 내게 맡겨라. 선두에 서는 사람들이 언노운 마법기사단이라고 하면 아마 모두들 망설임 없이 함께 하고자 할 거다.”

테오도라가 뒤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에는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은 혁명군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지금 상황에서 언노운 마법기사단만큼이나 든든한 아군은 없었다.

음지에서 활동해온 만큼 이들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 실력은 시간이 지나도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소문은 결코 거짓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혁명군 사람들은 동료들을 얼마든지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은 테오도라의 동생이었다.

아마 이것도 설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이번엔 크리울로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는 이 길로 히스링 군단장님을 만나 뵈러 가보겠습니다.”

“흐음… 히스링 군단장을?”

“네. 저는 선두에 설 수 있지만 중심이 되진 못할 겁니다 마법기사들의 중심이 되어줄 수 있는 분은 히스링 군단장님뿐입니다.”

“크으으음…….”

크리울로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히스링이 움직인다면 다른 마법기사단도 함께 움직여줄 것이다.

그들은 왕족이나 국왕보다도 히스링을 더 따르는 존재들이었다.

히스링이 더 이상 사우스 왕국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들 역시도 음지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아마 히스링이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그들 역시도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히스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더군다나 왕과 왕족도 더는 저항하기를 포기한 바람에 히스링 역시도 끝까지 나서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히스링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동안에도 사우스 왕국의 눈을 피해 힘을 키워 왔다.

크리울로스에게 그 소식을 들은 아시테르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히스링 군단장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 혁명군을 남몰래 도와준 것도 히스링님이었습니다.”

“당연하지. 내 아버지다. 아버지는 절대 사우스 왕국에 굽히지 않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자비토가 한껏 어깨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

“왜? 우리 아버지 얘긴데.”

“그러고 보니 네가 있었구나 자비토.”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그래. 이제는 정말 다 컸구나.”

“세월은 할아버님도 빗겨갔나 봅니다. 아직도 이렇게 정정하신 걸 보니.”

“쯧… 예전에는 말도 별로 없던 녀석이 넉살이 늘었는걸.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그 아이는 레프레시아 가문의 아이인가?”

크리울로스가 라빈을 알아보며 말했다.

라빈도 크리울로스에게 한껏 예를 차렸다.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이자, 아시테르의 외할아버지였으니 라빈에게도 크리울로스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히스링 단장님을 만나 마법기사단을 설득하고, 혁명군과 함께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슬슬 노스 왕국에서도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아시테르가 지도를 펼쳐들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이스트 왕국의 북쪽 지역이었다.

“노스 왕국이 이쪽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키면 사우스 왕국군도 자연스레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만약 이스트 왕국의 병력이 저쪽으로 가게 되면 아무런 저항 없이 노스 왕국의 군대가 국경을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의 설명에 크리울로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노스 왕국의 군대가 움직일 것은 어떻게 안 것이냐?”

“제가 부탁했습니다.”

“누구에게?”

“친구에게요.”

“허어…….”

“할아버님. 아시테르가 말하는 친구는 노스 왕국의 왕자인 이그트님입니다. 노스 왕국 전사장인 이그트님이 직접 군대를 몰고 움직인다면 사우스 왕국도 당연히 병력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에스파가 친절하게 말을 보태주었다.

아시테르는 이어 지도에서 사우스 왕국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사우스 왕국에서도 더는 이스트 왕국으로 지원오지 못할 겁니다.”

“이유는?”

“사우스 왕국 서쪽 국경에 지금쯤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이? 어째서?”

테오도라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린이 나섰다.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 그동안 아시테르는 웨스트 왕국에 있었어요.”

“저는 현재 웨스트 왕국의 검제입니다.”

“……!?”

“……!?”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이미 주변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웨스트 왕국에 새로운 검제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들려온 바 있었다.

그리고 그 검제가 놀랍게도 웨스트 왕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를 두고 사우스 왕국의 관리들은 비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웨스트 왕국도 이제 국운이 다한 모양이군. 이방인이 검제가 되다니!’

‘그럴 만하지. 강대국이라고 말만 했지 사실은 평화주의자들이잖나.’

‘로얄나이츠라고 하는 자들도 사실은 거품 아닌가?’

이스트 왕국을 점령하고 한껏 자신감에 취해 사는 이들이었으니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헌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아시테르였다니.

모두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검제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도 강하게 움직일 겁니다.”

“와아… 검제의 권력이 그렇게나 강한가요?”

“로얄나이츠들의 정점에 서있는 존재를 바로 검제라 일컬어요. 때로는 국왕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게 바로 검제라는 존재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겁니까?”

“아, 경황이 없어서 미처 소개하지 못했네요. 할아버지 그리고 형. 이쪽은 웨스트 왕국에서 온 하이시아 린이에요.”

“하이시아? 설마 웨스트 왕국의 하이시아 가문을 말하는 게냐!?”

크리울로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테오도라는 영문을 몰라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웨스트 왕국에 하이시아 가문이라면 딱 하나 밖에 없다.”

크리울로스의 시선에 린이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예를 차렸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요… 죄송해요. 할아버님, 그리고 테오도라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하이시아 린. 웨스트 왕국의 공주입니다.”

웨스트 왕국의 공주라는 말에 이번엔 테오도라조차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