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습격자들 (2)
“미안하지만 그쪽은 내 상대가 아닙니다.”
에스파가 화살을 당기며 주위를 살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과 함께 온 혁명군도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테오도라였다.
과거의 아시테르가 떠오를 만큼 강렬한 마법 공격이었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불꽃이 적들을 휘감았다.
수십 개의 불꽃 원반이 날아다니며 적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에스파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지금 어디에 정신을 파는 거냐!”
분노한 와일던이 에스파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에스파는 와일던의 실력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자신 혼자였다면 모를까, 에이브릴이 곁에 있는 한 그에게 질 일은 없었다.
에이브릴의 사슬이 에스파를 보호해주었다.
그렇다고 와일던이 에이브릴을 노릴 수도 없었다.
몸을 틀기만 해도 에스파의 화살이 여지없이 날아들었기 때문.
싸움이 답답해진 와일던이 주변의 동료들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도와줄만한 사람은 딱히 없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도 언노운 마법기사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와일던의 시선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들어왔다.
“드랜다일이 저렇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고……?”
커다란 방패를 든 드랜다일의 앞에는 카이드가 서 있었다.
그의 창이 번쩍 거릴 때마다 드랜다일의 몸이 휘청거렸다.
폭음이 울리고 드랜다일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몸을 숙였다.
“제기랄……!”
처음에는 만만한 상대일 거라 생각했다.
그 다음 손속을 한 번 부딪쳐 봤을 땐 생각보다 조금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여러 번 검격을 나누었을 땐,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창술은 드랜다일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방패를 들고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서 더욱 드랜다일을 굴욕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카이드의 표정이었다.
전투에 집중하지 않는, 저 따분하다는 듯한 표정.
저 얼굴이 드랜다일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그래서 저 면상에 검격을 한번이라도 꽂기 위해 발악했다.
콰아앙――!!!
어느새 날아온 창날이 드랜다일의 검을 쳐냈다.
이어 창끝이 드랜다일의 상체를 때리고 창날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그의 팔을 베었다.
“야. 너 대체 뭐하냐?”
카이드가 드랜다일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말은 안 해도 드랜다일은 자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트럼프와도 비교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트럼프를 이기진 못해도 그들과 실력을 견줄 수 있을만한 자리에 올라왔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괴물은 그런 생각조차 완전히 잊게 만들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여야 검을 내밀 텐데 상대는 지나치리만치 압도적으로 드랜다일의 위에 있었다.
흥미를 잃은 카이드가 검을 고쳐 잡았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칠흑빛 마기가 드랜다일을 향해 뻗어왔다.
“흐으으읍!”
눈빛을 달리한 드랜다일이 이를 악물고 수비에 집중했다.
버티고 버티다보면 동료들이 도와주러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레일리아스 또한 마주한 벽에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세아츠리스를 보며 입가를 실룩이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뭐죠?”
“…….”
레일리아스로서는 태어나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전장의 한복판에 커다란 가시덤불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진영을 갈라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가시덤불은 혁명군을 보호해주었다.
쏟아지는 마법 공격 속에서도 가시덤불은 굳건히 버텨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시덤불이 만든 새장이 사우스 왕국군을 가두어버렸다.
그것을 깨트리기 위해 레일리아스가 마법을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가시덤불이 복구되는 시간은 그녀의 마법을 상회했다.
거기다 세아츠리스는 자신을 방해하는 레일리아스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녀의 마법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레일리아스는 자신의 몸을 지키는데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법으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세아츠리스의 마법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저기 솟아오른 가시덤불이 레일리아스의 마법을 완벽하게 파훼했다.
“말도 안 된다고 이건…….”
다라프네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를 무너트린 것은 이상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였다.
그가 마법을 사용하면 다라프네의 방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공격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다라프네가 만들어낸 바위들은 금세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자비토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안타까움 어린 시선이었다.
“날 왜 그런 눈으로…….”
콰드드득―――!!!
레일리아스가 만들어낸 방벽을 가시덤불이 감싸 안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압력이었다.
베리어에 균열이 일고 점점 레일리아스의 마법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이익! 여기서 질 순 없어!”
크게 소리친 레일리아스가 마지막 힘을 다해 세아츠리스에게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대기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전격이 세아츠리스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러나 전격은 어느새 생겨난 모래방벽 앞에 간단히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세아츠리스는 지금까지 가시덤불을 이용한 마법만을 사용했다.
헌데 갑자기 나타난 모래라니……!
놀란 레일리아스가 주변을 살폈다.
그때 한쪽에서 손을 든 크로마제가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어우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상관없어요.”
“세아츠리스 누님! 삐지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세아츠리스의 차가운 시선이 레일리아스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두 눈동자를 보자마자 레일리아스는 알 수 있었다.
“나를 제대로 된 상대로 생각조차 하질 않았구나……!”
세아츠리스는 애초에 레일리아스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조차 하질 않았던 것이다.
허나 이는 어쩔 수 없다.
세아츠리스의 실력은 점점 마녀 여왕급에 도달하고 있었다.
초위급을 한참 넘어선 그녀는 극의급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초위급을 넘어선 레일리아스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아, 뭐야… 이쪽도 벌써 끝나있네.”
드랜다일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온 카이드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레일리아스는 세아츠리스의 마법에 완벽히 구속되어버리고 말았다.
굵은 줄기가 솟아올라 레일리아스를 가두었다.
다라프네는 이미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와일던도 곧이었다.
다른 기사들은 데미리우스나 라빈이 전담하고 있었다.
엔류아에 더해 린까지 붙어주니 라빈은 혼자서 무쌍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뼈검으로 추는 춤은 보는 이들마저 기가 질리게 만들어버렸다.
반면 자비토는 그런 라빈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질 못하고 있었다.
쿠우웅!!!
화아아아아아아앙――――!!!
한쪽에서 수십 개의 꽃이 피어났다.
이를 지켜보던 카이드가 피식 웃었다.
“너희는 이제 끝났다.”
뒤편에서 레일리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카이드가 뒤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뭐라고 하는 거냐 넌.”
“이제 우리 아일리시님이 본격적으로 나설 거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사우스 왕국의 트럼프가 얼마나 강한지 몸소 느껴보라는 말이다!”
“바이헤른인가 뭔가 하는 놈도 별거 없더만 뭐.”
“……?!”
바이헤른의 이름이 나오자 레일리아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때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속으로 누군가 뛰어들었다.
“은근히 저 인간도 변태라니까.”
“카이드. 가이우스님의 포지션이 저런 걸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
“아니, 상대 공격을 맞으러 일부러 들어가는 게 변태지 그럼 정상이야?”
카이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꽃봉오리 속으로 뛰어든 사람은 바로 가이우스였다.
그는 그 속에서 마력을 개방하며 아일리시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본 에스파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가이우스는 저 속에서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 있는 것이 보인다.
아주 똑똑히.
아일리시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낸 가이우스가 손을 끌어 모았다.
그러자 그녀의 공격으로 생겨난 방대한 마력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슈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라라라라아아아앙!!!
한곳으로 끌어모았던 마력을 방출시키자 커다란 굉음이 일었다.
이에 시선을 빼앗긴 엔류아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놀란 린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엔류아?”
“아, 저곳에 아는 언니가 있어서요!”
“아일리시를 말하는 거야?”
“네! 인사하러 가게요.”
“인사? 구해주러 간다던지 뭐 그런 게 아니라?”
“아시테르님과 다른 동료 분들이 아일리시 언니를 죽일 리 없어요.”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예전에 아일리시 언니가 우리를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우리 마법기사단은 은원관계가 확실한 편이에요.”
엔류아가 보란 듯이 한쪽을 가리켰다.
가이우스가 만들어낸 마법은 아일리시를 빗겨나갔다.
물론 그것이 아일리시를 향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그것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인사가 거칠었다면 죄송합니다. 우리 대장님께서 당신을 만나고자 찾아왔습니다.”
가이우스가 멀쩡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일리시도 결국 어이가 없어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네요. 가이우스 씨.”
가이우스는 말없이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때 아일리시의 시선이 뒤편으로 향했다.
“근데… 이거 의외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이우스 당신이라면 아시테르만 따를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아니면 이번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은 누구죠? 설마 에스파 씨인가요? 아니면 저기 있는 저 미치광이 창술사?”
그녀의 물음에 가이우스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오직 한 분만 따릅니다.”
“아, 설마…….”
그때 아시테르가 가이우스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아시테르를 보고 있으면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헌데 아일리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당신…….”
이전에는 지켜보고만 있어도 몸이 저릿해질 만큼 강렬한 마력이 아시테르에게서 흘러나왔었다.
헌데 지금은 그가 가까이 있는데도 마력 한 줌 느껴지질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한 점은, 아시테르에게서는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아일리시.”
“당신… 살아 있었어?”
“네. 덕분에요.”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이에 아일리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살아 있으면서 왜…….”
“그동안 사정이 좀 있었거든요.”
“쳇… 살아 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덜 슬퍼할 걸.”
“네? 저를 위해 슬퍼해주셨나요?”
“내가 왜? 나는 엔류아가 걱정되었던 것뿐이야.”
그때 아일리시의 시선에 엔류아가 보였다.
아시테르의 옆에 서있던 엔류아가 슬쩍 눈치를 봤다.
아시테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엔류아는 그제야 아일리시에게로 달려갔다.
“아일리시 언니!”
“엔류아!”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자매 같아 보였다.
반가움의 해후를 나누는 동안 아시테르가 다른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모든 공격이 멈추었다.
혁명군과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멈추니 하트 군대의 기사들도 덩달아 공격을 멈추었다.
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이쪽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엔류아를 안은 아일리시의 곁으로 아시테르가 걸어갔다.
“대화를 나누러 왔어요. 아일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