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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9화 (359/424)

359화 대화 (1)

아시테르의 말에 아일리시는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러 온다고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까요.”

“어째서요?”

“지금 제 상태를 보시면 알잖아요?”

아시테르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몸.

그렇지 않아도 이것에 대해 아일리시도 의아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몸이 됐어?”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다가요.”

“흐음… 당신답네.”

아일리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 무슨 대수인가.

“그나저나 나한테는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거야?”

“간단해요. 병력을 돌려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에요. 병력을 돌려서 다시 사우스 왕국으로 돌아가주세요.”

“…이유는?”

“이제 이스트 왕국은 자유를 되찾을 겁니다.”

아시테르의 말에 아일리시가 아닌 그녀의 수석기사들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제정신인가?”

“크하하하 세상이 미쳐돌아가고 있나보군.”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겠지…….”

“닥쳐라 벌레들.”

카이드가 한 번에 그들의 입을 닫아버렸다.

그의 서슬퍼런 기세에 수석기사들도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어졌다.

반면 아일리시만은 아시테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스트 왕국의 자유를 되찾는다고?”

“네.”

“어째서? 이스트 왕국은 당신을 버리지 않았나? 내가 모를 줄 알아? 당신이 죽었을 때, 이스트 왕국은 어떻게 해서든 당신과 당신의 기사단을 깎아내리려 했어. 그런데도 당신은 그들을 위해 싸우겠다 이 말이야?”

아일리시의 말에 아시테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답을 들은 아일리시가 혀를 찼다.

“당신도 어지간히 우둔하네.”

“그래도 나의 나라에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좋아한 땅이고.”

“하지만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 왕국이잖아? 지금 당신이 이스트 왕국에서 어떤 이미지인줄은 알아?”

“대충 들었어요. 하지만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절 믿고 있어요. 저는 그 믿음에 보답할 뿐입니다.”

“…알렌시아는?”

아일리시의 입에서 알렌시아의 이름이 나오자 아시테르가 순간 움찔했다.

그의 반응을 살핀 아일리시가 말을 이었다.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 지금 그 여자가 어떤 포지션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렌시아의 선택이에요. 존중합니다.”

“그 여자가 만약 당신을 막아선다면?”

아일리시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는 린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였기 때문에 그녀 역시도 관심을 보이며 이 얘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아시테르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 선택 또한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멈출 순 없어요.”

“그 말은… 전 연인인 알렌시아도 얼마든지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아시테르의 막힘 없는 답에 아일리시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각오를 알았으니 이제 그에 상응하는 답을 내놓을 차례다.

“좋아. 그렇다면 하트 군대는 지금 이 시간부로 방향을 선회한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일리시님!”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적들의 손에 잡힌 주제에 말이 많구나.”

아일리시가 수석기사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수석기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레일리아스가 물었다.

“하지만 아일리시님. 이렇게 돌아간다면 사우스 왕국에서도 의심을 살 겁니다!”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일리시님께서 지난 번에 이스트 왕국놈들을 도와준 것 같다며 눈밖에 났는데… 이번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실이야.”

아일리시의 쿨한 답에 수석기사들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들이 멍한 얼굴을 보이자 아일리시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과거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인 아시테르를 돕기 위해 하트 군대의 병력을 뒤로 물렸다.”

“어째서…….”

“아일리시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수하들의 말에 아일리시가 손을 저었다.

“나 또한 이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어. 그리고 딱히 저 사람만을 돕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야. 양국에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지.”

아일리시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엔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국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아일리시님, 당신이 진정한 트럼프라면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고 이들과 싸워야 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병력만 자그마치 5만 여명입니다.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의 말에 카이드가 코웃음을 쳤다.

그의 반응에 와일던이 그를 노려보았다.

“넌 왜 웃는 거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뭐?”

“여기 있는 우리가 겨우 너희들 따위한테 질 것 같아서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줄 아나?”

“그럼 아니라는 말이냐?”

“크흐흐흐 그래.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카이드가 자신의 창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아시테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는 저 괴물을 죽이려면 너희 같은 놈들은 만 명이 와도 안 돼.”

“거짓말 치지 마라! 마력 하나 없는 놈을 죽이는데 무슨……!”

“애송아. 세상은 넓고 하늘을 나는 놈 위엔 내려다 보는 놈이 있게 마련인 거야.”

카이드가 이어 자신과 가이우스, 세아츠리스를 연달아 가리켰다.

“우리 셋만 있어도 너희는 다 잡을 걸?”

“뭐…?! 아무리 자신감이 넘친다지만 그딴 막말을…….”

“못 믿겠으면 보여줄까? 안 그래도 따분했는데.”

카이드가 자신의 마기를 개방했다.

그러자 숨막힐 듯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졌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진득한 마기였다.

이에 카이드를 상대했던 드랜다일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설마… 조금 전에는 전력이 아니었던 거냐……?”

“너희들 따위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겠냐?”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한쪽을 쳐다보았다.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아직 5만의 병력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병력을 눈앞에 두고도 카이드나 다른 단원들은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모두 자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아시테르와 함께라면 이 정도는 두렵지도 않았다.

아시테르를 바라보던 아일리시가 묘한 표정을 보였다.

“그 사이에 더욱 강해지기라도 했나 보네? 저 인간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카이드가 어떤 성정을 지니고 있는지는 아일리시도 잘 알고 있다.

카이드는 자신보다 강한 이가 아니면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마음으로 아시테르를 존중해 그를 따를 순 있지만, 진실이 아니면 자신보다 강하다는 말은 입에도 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카이드의 자존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카이드는 이미 아시테르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아시테르가 비록 마력을 잃긴 했지만 그를 상회하는 힘을 얻었다는 얘기였다.

아시테르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아일리시가 자포자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더 강해지기라도 했다는 말 같잖아.”

“아마 그럴 겁니다.”

“미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예전에도 인간 같지도 않게 강했는데 지금은 더 하다고?”

“그러게요.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기는…….”

에스파만큼이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게 아시테르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면 모를까, 아시테르가 한 말은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일리시는 알 길이 없지만 이번에 아시테르가 한 말은 정말이었다.

비체를 만나 이런 힘을 얻게 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아일리시가 두 팔을 들어 병력을 물렸다.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아시테르가 지난번보다 더욱 강해졌다면 이제는 사우스 왕국이 긴장해야 할 차례였다.

테르세우스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강한 존재가 이스트 왕국에 나타났다는 얘기니까.

거기다 과거에는 테르세우스라는 뛰어난 존재 뒤에 마법기사단이 가려질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시테르라는 거대한 존재 곁에 그를 충분히 받혀줄 만큼의 뛰어난 실력의 강자들이 즐비했다.

아일리시는 어쩌면 이미 이스트 왕국은 사우스 왕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이제는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의 손아귀에…….’

여기까지 생각하던 아일리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생각까지는 아직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그 불길한 미래를 현실로 그려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단순히 이스트 왕국의 독립만 바라진 않을 것 같은데…….”

아일리시가 생각하기에 아시테르는 분명 사우스 왕국에 거대한 원한이 있을 것이다.

아시테르의 어머니가 사우스 왕국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제 9기사단 사람들도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만 봐도 사우스 왕국은 이미 아시테르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헌데 이제는 이스트 왕국까지 점령해 마음껏 그들을 유린했다.

그런 화려한 전적들이 있으니 아시테르의 분노가 사우스 왕국으로 향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아일리시가 느끼기에 그것은 곧 재앙의 시작일지 몰랐다.

눈앞의 이런 괴물들이 사우스 왕국을 향해 진군해 온다면, 거기에 더해 음지로 숨었던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들까지 함께 뜻을 모은다면…….

지금의 사우스 왕국으로서는 막아낼 방도가 없다.

단순히 이스트 왕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현재 사우스 왕국은 노스 왕국의 병력들과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과도 대치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이렇게 이스트 왕국까지 들고 일어난다면…….

“가만… 뭔가 이상한데…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고……?”

아일리시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가 모습을 감춘 시간들.

그 공백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때 아시테르가 아일리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일단은 이스트 왕국의 독립. 그것만 생각할 겁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순순히 병력을 물릴게요. 하지만…….”

“뒷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역시. 당신인가요? 노스 왕국과 웨스트 왕국을 움직인게.”

아시테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와 딱히 감출 필요도 없다.

오히려 아일리시와 다른 이들이 이 얘기를 퍼트려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시테르가 원하는 바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노스 왕국은 그렇다 쳐도 웨스트 왕국까지…….”

“…….”

“이번에도 운이 좋았나요?”

“운이 아니라 실력이에요.”

이번 질문의 답은 아시테르가 아닌 뒤편에서 나왔다.

슬쩍 앞으로 걸어나온 린이 웃으며 아일리시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를 본 아일리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까지는 아시테르에 가려져 몰랐지만, 린의 용모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내보내는 그녀를 보며 아일리시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당신은 누구죠? 언노운 마법기사단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제가 바로 웨스트 왕국의 공주입니다.”

“……?”

“웨스트 왕국의 병력은 제 힘으로 움직인 거에요. 여기 있는 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린의 말에 아일리시는 물론 다른 이들까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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