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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61화 (361/424)

361화 살라 기사단의 몰살 (1)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카르텔에 도착했을 땐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알렌시아는 아시테르가 도착하기 전에 카르텔을 떠났다.

아시테르는 말없이 카르텔을 살폈다.

호화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동안 아시테르가 봐왔던 광경들과는 사뭇 다른 그림들이 눈앞에 보였다.

“인간 위에 인간이 존재하는 거냐……?”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아츠리스도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족갑과 수갑을 한 이들 중에는 어린 마녀들도 있었다.

인간들은 그들을 짐승처럼 부렸다.

어떤 대우를 당했는지 그녀들의 표정엔 일말의 감정조차 보이질 않았다.

비단 마녀들만이 아니었다.

어린 소년소녀들도 커다란 우리 안에 가둬져 있었다.

“대놓고 노예를 사고 파는 모양이네요.”

이를 바라보는 린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이스트 왕국 수도 근처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카이드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벨제부트보다 더한 곳이로구만.”

그가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지로 숨어들 수 있는 건물.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처에 눈알이 뒤집힌 인간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약에 취한 그들을 보며 카이드가 까득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아, 나는 저런 놈들이 싫은데…….”

아무튼 카르텔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이런 주제에 누구를 관리 감독한다고?”

에스파도 치가 떨린다는 얼굴이었다.

아시테르는 차가운 표정으로 걸음을 이었다.

주변에 들어오는 광경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눈에 담았다.

살라 기사단이 만들어 놓은 처참한 광경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더더욱 죽일 이유가 충분하네.”

그때 그들의 눈앞에서 사람들을 학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본 아시테르가 한발 먼저 움직였다.

텁.

아시테르가 몽둥이질 하고 있는 기사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기사가 돌아본다.

“앙? 넌 뭐냐?”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가 아시테르를 노려보았다.

아시테르는 말없이 어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인지 바짝 야위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 아이를 왜 그렇게 때리고 있는 거지?”

“그야 잘못했으니까 때렸겠지?”

아시테르의 옷이 제법 고급진 것을 본 기사가 한 수 접어주었다.

“이 어린 아이가 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크하하하! 천한 천민이 감히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니까! 거기다 더럽게 내 신발에 침을 흘렸잖아.”

“겨우 그 정도의 이유야?”

“그것만으로도 이미 귀족을 모욕한 것이다.”

“…사우스 왕국 사람인가?”

“크음…….”

기사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다 이내 말을 이었다.

“이스트 왕국의 귀족이다.”

그의 답에 아시테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속으로는 내심 사내가 사우스 왕국의 귀족이기만을 바랐다.

같은 이스트 왕국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기만을 바란 것이다.

“그렇군. 이스트 왕국의 사람이었나…….”

“그러는 너는 누구지? 이 근처에서는 못 보던 얼굴인데.”

“알 것 없어. 그보다는…….”

콰득.

아시테르가 손에 힘을 주자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아시테르가 힘을 꽉 주어 그의 팔을 짓누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 개새끼가 지금 뭐 하는……!”

“어린 아이를 그렇게 막 대하는 손을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있나?”

스각!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사내의 팔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동작을 취할 수 없었다.

“그거 움직이면 바로 죽는다?”

“바로 죽여도 될 것 같다만.”

어느새 다가온 카이드의 창이 상대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가이우스의 주먹이 기사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분명 저만치 먼 곳에 있었는데 단숨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대가 범상치 않음을 깨달은 사내가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아시테르가 사내를 보며 물었다.

“살라 기사단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

“내… 내가 살라 기사단인데…….”

사내가 자신의 어깨를 보여주며 말했다.

붉은 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본 아시테르가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뿌렸다.

“안내해. 그럼 목숨은 살려줄게.”

“당신들은… 정체가 뭐야……?”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묘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네가 알 건 없고. 어디야? 안내나 해.”

카이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를 바라보던 사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심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자신들이 어찌할 방도가 없지만 동료들 모두가 있는 곳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다 이곳은 살라 기사단의 안방격인 카르텔이었다.

카르텔에서 감히 살라 기사단을 건드리다니, 사실 이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살라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하인트와 부단장인 케페르도는 성정이 불같다.

‘좀 더 안으로 가기만 하면…….’

당장 동료 몇 붙는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하인트와 케페르도가 있는 곳까지 속내를 들키지 않고 가야 했다.

은연중에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이 순순히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엔류아.”

아시테르의 부탁에 엔류아가 사내의 팔을 치료해주었다.

이대로 피를 계속 흘렸다간 안내를 다 하기도 전에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악마 같은 새끼…….’

사내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속으로 욕했다.

팔을 자른 것도 본인이면서 이렇게 치유까지 시키다니.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 최후에 웃는 것은 자신일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살라 기사단 본거지까지 데려갔던 사내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시작하자.”

아시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래로 된 파도가 몸을 일으켰다.

크로마제의 마법이 밀어닥치자 방심하고 있던 살라 기사단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빈이 뛰어올랐다.

그녀의 마력이 공간을 장악하자 이곳에 수없이 많은 뼈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새하얀 뼈들 사이로 붉은 핏물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몸이 꿰뚫린 살라 기사단 단원들 사이로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걸었다.

크로마제의 마법과 라빈의 마법만으로도 이미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강렬한 등장을 알렸다.

카이드가 창을 어깨에 걸치고 주변을 살폈다.

“쥐새끼들이 많네. 눈치 보는 놈들인가?”

그가 크게 창을 휘두르자 강렬한 마기가 수평으로 뻗어나갔다.

콰라라라라라랑!

담벼락을 무너트린 카이드의 마기가 뒤편의 적들까지 덮쳤다.

살라 기사단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기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이를 본 반키라스가 마법을 펼쳤다.

날아오는 마법들을 모두 먹어치운 그의 마법이 주변을 살폈다.

“뭐야!?”

“마법을 먹어치우다니……!”

“괴, 괴물이다…….”

“들은 적 있어… 예전에 언노운 마법기사단에 마법을 먹어치우는 특이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가 있다고 말이야!”

그때서야 그들은 눈앞에 있는 이들이 누군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기사 소수의 인원으로 갑작스럽게 살라 기사단 안마당까지 쳐들어 올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언노운 마법기사단이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등장은 그만큼이나 이들에게 파급력이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네 아주.”

귀를 후비던 카이드가 창을 들고 뛰어들었다.

그사이 아시테르는 세아츠리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줘.”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세아츠리스가 방대한 마력을 발산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거대한 가시덤불이 순식간에 솟구쳐오르며 주변 일대를 에워쌌다.

그녀의 엄청난 마법에 순간 적들조차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그때 백여 명의 기사들이 마도공학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이를 본 크로마제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들이… 마도공학 무기를 들어?”

이 발칙한 상황에 크로마제가 제대로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모래들이 단숨에 그들을 포박했다.

이어 몸을 일으킨 모래 골렘들이 나머지 기사들을 짓뭉개버렸다.

자비토는 라빈과 함께 적들의 중앙을 휘젓고 있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누구 하나 쉽지 않은 강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엔류아가 곧바로 치유 마법을 사용하며 동료들을 보조해주었다.

순식간에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이 당하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들의 대장격인 하인트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지금 이 상황은…….”

하인트는 작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가시덤불이, 아니 이건 덤불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굵직한 나무 기둥들이 얽히고 얽혀 커다란 방벽을 세운 느낌이었다.

거기다 모래 골렘들까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라고?”

“예. 저들의 마법을 알아본 수하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과거의 잔재들 아닌가? 근데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최근 광장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닐지…….”

“우리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하인트의 시선이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제법 있었다.

그중 하인트조차 놀라게 만든 얼굴이 섞여 있었다.

“너는… 아시테르……?”

하인트가 아시테르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아시테르도 마침 하인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군요.”

“네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너는 분명 죽었는데……!”

“제가 죽은 걸 직접 확인하셨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저를 죽이기 위해 그날 국경지역까지 오셨다죠?”

아시테르의 말에 하인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과거 섬광 마법기사단이 죽인 제 9기사단.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까지 그들은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순간 오한이 들 정도였다.

“하인트님. 왜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케페르도가 물어왔다.

케페르도는 그날의 전투에 없었다.

그 뒤로 새롭게 뽑힌 부단장이기 때문.

그때 하인트가 이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래, 과거 섬광 마법기사단일 때가 아니다.

이제는 살라 기사단으로 거듭났고, 기사단의 인원도 전보다 훨씬 더 많다.

거기다 병력의 질도 훨씬 좋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하인트 자신이 전혀 움츠러들 이유가 없었다.

비록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강하다곤 하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좋아. 충분히 해 볼만 하다.”

하인트가 곧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생각해보니 언노운 기사단을 붙잡는다면 그것만큼이나 월척인 것은 없다.

혁명군보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훨씬 더 사우스 왕국에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렇지 않아도 음지로 숨어든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건만, 알아서 기어나왔으니 오히려 이것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고맙다.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줘서.”

“별말씀을. 저 또한 감사합니다.”

“…? 네가 나한테 감사할 이유가 뭐가 있지?”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요.”

슈와아아아아!!!

아시테르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세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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