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살라 기사단의 몰살 (2)
두 눈을 부릅 뜬 하인트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시테르에게서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이 기운은 뭐란 말인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 때문에 두 눈가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아시테르가 검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인트뿐만 아니라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인다.
섬광 마법기사단 때부터 지나가며 마주치던 얼굴들이었다.
그들 역시도 지난 작전에 참여해 제 9기사단을 죽이고 호의호식 했을 터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울분이 끓어오른다.
“당신들 모두 이곳에서 온전히 살아나갈 생각은 버리십시오.”
아시테르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끌어올리자 주변 일대의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강한 마력으로 압박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강대한 힘이 살라 기사단의 몸을 짓눌렀다.
중력에 짓눌린 그들의 몸이 점차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이건 대체 무슨 마법이지……!?”
“제기랄! 몸이 저절로…….”
버티려 해봐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점점 몸이 짓눌려 바닥을 기었다.
그 모양새가 꼭 아시테르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여기서 힘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수십명을 압사시켰다.
이 광경을 본 하인트가 순간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는지 보지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저것을 마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고민부터 머릿속을 뒤죽박죽 흔들었다.
그래도 생각을 길게 할 수는 없다.
상대가 적의를 먼저 드러내었고 아군 기사들을 죽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은 당연했다.
“모두 죽여라!”
하인트의 외침에 살라 기사단이 다시금 전의를 다지며 언노운 기사단을 공격했다.
마도공학 무기를 든 이들이 가장 먼저 뛰쳐들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아시테르였다.
쿠우웅!
어느새 아시테르의 앞으로 튀어나온 가이우스가 형형한 안광을 보였다.
“감히… 누구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인가.”
가이우스가 마력을 끌어모아 자신의 두 주먹에 담았다.
활처럼 휜 그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순간 거력을 담은 주먹이 함께 대기를 격했다.
쿠우우우웅!
콰라라라라라랑―――!!!
대기가 요동치고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끄아아악!”
“으아아아!”
“크허헉!”
“아아아악!”
팔이 떨어져나가고 다리가 잘려나갔다.
가이우스의 주먹이 보인 파괴력에 살라 기사단이 순간 주춤했다.
단순히 마법을 막아내는 탱커 역할인 줄로만 알았는데 상상 이상의 마법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이우스의 마법에 시선을 빼앗길 틈도 없었다.
“뭐하냐? 니들.”
어느새 지척에 이른 카이드가 거침없이 창을 휘둘렀다.
창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핏물이 그곳을 수놓았다.
넘실거리는 마기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에스파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카이드의 창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것 같은데?”
“하여간 저 괴물같은 자식.”
“야 자비토. 아직도 너는 카이드가 네 라이벌이냐?”
“당연하지. 나는 카이드를 뛰어넘는다.”
“그래 열심히 노력해봐라… 나는 포기하련다.”
에스파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카이드의 창술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검사와 창술사는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도 그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들었다.
에스파에게는 카이드가 그러했고, 아시테르가 그러했다.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니 이건 뭐 헛웃음만 새어나올 정도였다.
“저걸 누가 막아낼 건데?”
아시테르의 일검에 하늘이 순간 갈라지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들었다.
쿠롸라라라라랑―――!!!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십수 명의 기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아시테르를 향해 집중적으로 마법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쏟아지는 마법 공격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쿠우웅!!!
퍼버버벙!!! 콰라라랑!!!
빛이 마법을 상쇄시키고 나아가 적들을 베었다.
스강―!
아시테르를 향해 뛰어들었던 기사들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빈틈을 보았다 생각한 기사가 검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아시테르의 검이 그의 복부를 꿰뚫고 지나간다.
“크하아악!”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 기사가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어느 검로로 들어오는 건지 전혀 보질 못했다.
두 눈을 부릅뜬 기사가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그게 사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시테르는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감히 그를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간단히 손을 휘두르는 정도로도 수십의 기사들이 고꾸라질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하인트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화염 마법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고보니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은 화염 마도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프로메테 가문의 불꽃을 사용하는 자인데…….”
“그런데 저 모습은 흡사 수십년 동안 수련해온 검사의 모습입니다.”
“내 말이 바로 그거다.”
하인트와 케페르도가 전장을 살폈다.
이건 말이 안 되도 지나치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거대한 가시덤불이 아군을 공격하고 모래 골렘들이 날뛰고 있었다.
겨우 한두 기 쓰러트리고 가시덤불을 잘라냈다고 해서 좋아할 수도 없었다.
쿠구구궁―――!!!
쿠구구구구구!!!
새하얀 뼈들이 가시처럼 사방에서 돋아났다.
저런 마법을 사용하는 이는 라빈밖에 없었다.
라빈의 곁에서 그녀를 보조해주는 이가 바로 자비토였다.
자비토의 마법이 발동될 때마다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심지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는 강철 가시조차 거대한 구멍이 뚫리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자비토가 라빈을 지켜주니 그녀의 움직임을 더더욱 감당해낼 수 없었다.
여기저기 나타나는 새하얀 뼈도 문제였지만 마법을 먹어치우고 다니는 저 괴생명체도 문제였다.
누가 부리는 것인지 살라 기사단이 쏟아내는 마법들을 마음껏 먹어치우고 있었다.
“저건 마치 예전 테르세우스님의 마법 같지 않은가…….”
처음 테르세우스를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그는 어떠한 마법이든 손쉽게 흡수해냈다.
그리곤 자신만의 공간에 그 마법들을 저장한다.
저장된 마법은 곧 테르세우스의 마법이 되고 만다.
일회용이며 즉발성이지만 테르세우스는 귀신같이 그 많은 마법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크으으음…….”
하인트는 저도 모르게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있는 8천 여명의 병력이면 충분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이 천명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거기다 아시테르를 포함한 몇몇은 감히 이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이제와서 아차 싶었나?”
어느새 그들의 뒤로 다가온 에스파가 차가운 낯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언제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놀란 케페르도가 당장에 검을 뽑았다.
사우스 왕국 왕실에서 직접 하사받은 특별한 검이었다.
번쩍이는 그 검을 보며 에스파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 검으로 날 잡아보려고?”
“못할 것 같나?”
“응. 못할 것 같은데?”
에스파가 화살을 튕기듯 활을 쐈다.
케페르도가 순간 검을 움직여 화살에 반응했다.
이어 두 개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팅! 파앙!
두 개의 화살을 모두 쳐낸 케페르도의 시선이 에스파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이어 날아오는 화살은 네 개였다.
그 다음은 여덟 개.
그것들을 모두 피해내니 수십 개의 화살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미친…….”
케페르도가 검을 들어 그것들을 모두 방어해내었다.
그 빈틈을 에스파가 놓칠리 없었다.
방대한 마력을 실은 화살이 케페르도의 상체를 꿰뚫었다.
“크헙!”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긴 했지만 공격에 보기좋게 당한 케페르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때 하인트의 마법이 케페르도를 보호했다.
여기저기 흐르는 전격들을 보며 에스파가 활을 거두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당신을 찢어죽이고 싶은데, 아쉽게도 당신은 내 몫이 아니라서 말이야.”
에스파가 뒤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백구의 시체가 뒹구는 곳 한가운데에 아시테르가 있었다.
“살라 기사단. 사우스 왕국에 충성하는 개들. 너희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동료들을 죽이고 이스트 왕국민들을 죽여 왔다. 죄 없는 자들은 사살하기도 했으며, 그들을 가두어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살라 기사단에 대한 정보는 테오도라와 사르비타가 충분히 모아주었다.
그들이 가져다 준 정보를 보며 아시테르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우스 왕국에 점령당하기 이전부터 그들은 이스트 왕국의 국민들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토록 잔인무도하게 동료들과 이웃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을 짐승으로 여기는 그들에게 순수한 분노를 느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잔혹한 짓을 하는게 동료들을 배신했던 섬광 마법기사단이라는 점이 더욱 아시테르를 분노케 했다.
“배신자들이 호의호식하는 세상. 이게 과연 올바르게 흘러가는 세상인가? 아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라를 지키려는 자들을 배신하고 등에서 검을 찔러넣은 주제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기들만 행복하겠다고? 절대 그럴 순 없어.”
콰아아앙!!!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자 무거운 중력이 적들을 짓눌렀다.
그 속에서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다.
과거 섬광 마법기사단에 있던 자들이 아시테르를 향해 마법 공격을 펼쳤다.
확실히 이스트 왕국의 옛 정예들답게 마법의 수준이 높았다.
슈우우우우웅!!!
파콰아아아앙!!!
아시테르의 검에서 뻗어나간 영기가 마법들을 반으로 갈랐다.
“너희는 죽어 마땅하다.”
어느새 적들 가까이로 다가온 아시테르가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의 목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아시테르에게는 일말의 감정 동요도 없었다.
“아…….”
“으아…….”
겁에 질린 기사들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몇몇 기사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아시테르는 그들도 가볍게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 있는 기사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버렸다.
“저런 미친…….”
이를 본 하인트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저 괴물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
그런 것 따윈 없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뭣들하고 있는 거냐? 겁 먹지 마라! 저놈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퍼부어!”
그와 동시에 하인트가 마력을 끌어올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위 마법을 펼쳤다.
하늘이 울음을 터트리고 뇌전이 아시테르를 강타했다.
그것을 신호로 수십 가지의 마법이 아시테르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검을 쥐고 수라의 모습처럼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적들이 아니었다.
해맑은 웃음을 짓던 제 9기사단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들.
행복하게 지내던 모습들.
아시테르를 반겨주며 때로는 동네 형들처럼, 때로는 인생 선배처럼 살갑게 대해주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묵혀오고 감춰왔던 감정이 요동쳤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아시테르조차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두들…….”
아시테르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제 9 기사단.
그들의 모습을 애써 지워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검에 다시 한번 그들을 새기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