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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64화 (364/424)

364화 일섬 마법기사단과의 조우

알렌시아는 지금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살라 마법기사단이 머무는 건물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거기다 이곳을 지키는 마법기사들과 다른 기사들도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다.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수천 구의 시체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광경은 살아 있는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이 땅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고 그 위에 누군가 서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인가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 크로마제가 알렌시아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었다.

크로마제는 아시테르가 가장 힘들 때 그를 버리고 떠난 알렌시아가 원망스러웠다.

이는 크로마제와 함께 있는 반키라스도 마찬가지의 감정이었다.

“호오, 이게 누구야.”

“너희 둘… 여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다시피 살라 기사단을 몰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냔 말이야!”

알렌시아가 두 사람에게 은근한 노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감정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크로마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여기 있는 살라 기사단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서 그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왕국 국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학대하는…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그래. 그런 건 나도 동의해. 솔직히 말해서 살라 기사단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감정도 딱히 좋진 않아. 그래도 이렇게 대책 없이 살라 기사단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알렌시아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피며 말했다.

살아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크로마제와 반키라스 둘이서 이렇게 만들었다면 두 사람의 흔적만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다른 마법의 흔적들도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예.”

“어째서? 너희는 지금까지 줄곧 음지에 숨어 있었잖아?”

“맞아요. 그랬었죠.”

“근데 왜 갑자기 나서기 시작한 거냐고… 내가 너희들을 데려가려 할 때도 고집스럽게 거부했잖아.”

“네. 그때의 선택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만약 당신을 따라갔었다면 평생 후회로 남았을 겁니다.”

“뭐?”

“이봐 너. 감히 우리 단장님께 그게 무슨 무례냐.”

일섬 마법기사단의 수석기사장 피뢰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크로마제는 그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냐 크로마제? 여기서 일섬 마법기사단이랑도 싸울 거야?”

“아니. 그럴 순 없어. 우리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살라 기사단이었지 일섬 마법기사단은 아니니까.”

“그러냐… 좀 아쉽네.”

사실 크로마제보다 반키라스가 더더욱 이들에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에 살기마저 실린 그를 보며 피뢰르가 얼굴을 구겼다.

“너. 계속 그딴 눈빛을 보이면 호되게 당할 거다.”

“으흐흐흐. 네깟 실력에 날?”

“얕보지마라. 나는 일섬 마법기사단의 수석기사단장이자 글렉시드 가문의 피뢰르다. 너는 누구냐?”

“이름 없는 가문의 반키라스다.”

“반키라스?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로군.”

“다행이야. 내 이름이 아직 더렵혀지진 않아서.”

반키라스가 일부러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를 본 피뢰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자가 정말……!”

“가만히 있어 피뢰르.”

알렌시아의 만류에 피뢰르가 조용히 물러섰다.

그녀는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너희 둘이서 만들어냈을 리는 없으니… 나머지 언노운 마법기사단 단원들은 어디에 있어?”

“글쎄요. 그걸 당신이 알아서 무엇하게요?”

“크로마제. 나도 한 때 너희와 함께 생사를 고락한 동료야. 그러니까 얘기해줘. 지금 이 일을 그대로 두면 너무나 커질 거야.”

“이스트 왕국과 사우스 왕국이 다시 전쟁이라도 할까봐요?”

“…그래.”

알렌시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게 제일 먼저 든 걱정이었다.

자신의 남편인 칸은 그런 문제로 지금도 바깥의 외출을 금하고 있다.

칸의 기사단인 돌풍 마법기사단도 칸이 움직이질 않으니, 최소한의 임무들만 수행하며 존속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칸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알렌시아 역시도 칸이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택해 왔다.

그때 크로마제가 알렌시아의 앞에서 대놓고 피식 웃었다.

“전쟁을 걱정하는 이유는요? 우리 왕국 국민들이 또다시 많이 죽을까봐? 그게 아니면… 기껏 사우스 왕국의 비위를 맞춰가며 이것저것 쌓아올렸는데 그것들이 다시 무너질까 봐요?”

“…….”

“아닌가요? 그동안 사우스 왕국 밑에서 이것저것 많이 해드셨잖아요. 체르도네 가문의 힘이 왕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던데.”

이번에는 알렌시아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참다참다 못한 피뢰르가 결국 실력 행사에 나섰다.

슈파아앙!

순간적으로 뻗어나간 빛줄기가 칠흑빛 물결에 막혔다.

새하얀 이빨을 드러낸 칠흑빛 마력이 빛줄기를 물어뜯어 버렸다.

“해보자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일섬 마법기사단을 아니꼽게 보던 반키라스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겨우 두 사람만 있을 뿐인데 이들은 일섬 마법기사단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어보였다.

그게 더욱 기분이 나빠진 피뢰르가 알렌시아를 보며 소리쳤다.

“저놈들의 무례함을 참고 계실 겁니까!? 당장 이자들을 체포해야 합니다. 살라 기사단을 죽인 놈들이기도 하니 사우스 왕국에 넘기면 분명 크게 보상해줄 겁니다!”

피뢰르의 말에 크로마제는 헛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그가 이내 불같은 시선으로 피뢰르를 쳐다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냐? 우리를 누구한테 넘겨?”

“너희들은 감히 사우스 왕국에 반기를 든 자들이다. 그러니 그에 합당한…….”

“피뢰르, 조용!”

알렌시아의 외침에 피뢰르가 말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그러나 알렌시아에겐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움직였다면… 대체 누가 너희들을 이끄는 거지? 에스파인가? 하지만 에스파는 더 이상 이쪽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 같은데. 거기다 에스파는 레프레시아 가문과 혼인을 할 생각이잖아? 이럴수록 더욱 입장만 난처해지는데 어째서…….”

“에스파 형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거짓말하지마. 에스파가 아니라면 누가 너희를 움직일 수 있지? 카이드가 갑자기 우리 왕국의 일에 발 벗고 나섰을 리도 없고.”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우리가 누구의 명령에 움직이는지.”

크로마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알렌시아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사람은 죽었는데…….”

“잘 생각해봐요. 죽지 않고 살아 있었잖아요. 그냥 당신이 그런 스승님을 버리고 왔을 뿐이지.”

“아냐… 내가 그 사람을 버리다니…….”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을 마음대로 왜곡이라도 한 건가요?”

“그럴 수가…….”

당황한 알렌시아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반면 크로마제나 반키라스는 그런 알렌시아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어쩌다 당신이 사우스 왕국 밑에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스승님의 일을 방해하려 한다면… 그때는 저희가 먼저 나서서 당신을 막을 겁니다.”

“당신뿐만이 아니야. 형님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다 부숴버릴거다.”

반키라스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알렌시아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보단 아시테르가 살아서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소식만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그럼 지금 아시테르는 어디에…….”

“살라 기사단 중 살아남은 자들을 쫓아갔습니다.”

“안 돼…….”

알렌시아가 황급하게 몸을 돌렸다.

크로마제가 가리킨 곳은 그녀의 기사단 중 일부가 향했던 곳이었다.

알렌시아가 일섬 마법기사단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자 반키라스가 그들을 막고자 했으나, 크로마제가 이를 말렸다.

“왜 말려? 이대로 알렌시아가 아시테르 형의 일을 방해하도록 둘 셈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사이잖아. 오히려 지금 만나게 두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러다 아시테르 형이 하던 것을 멈추기라도 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걸. 너는 아직도 우리 스승님을 모르냐?”

“하긴… 이번에는 좀 다르긴 하겠네.”

“그리고 알렌시아 저 사람도 느껴봐야지.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후회되는 선택이었는지.”

“쯧… 나는 아직도 저 여자 얼굴만 보면 배알이 꼴려.”

“너는 왜 그렇게 알렌시아를 싫어하는 거냐?”

“체르도네 가문의 딸이잖아. 너는 체르도네 가문이 얼마나 악독하고 지독한지 잘 모를거다.”

“그래?”

크로마제가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반키라스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의 일부를 얘기해주었다.

그동안 알렌시아는 아시테르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움직였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아시테르가 그 중심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그리고 그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 또한 붉은 피로 대지가 온통 적셔져 있었다.

거기다 뒹굴고 있는 시체들은 모두 사우스 왕국 기사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을 본 건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알렌시아님 저기…….”

수석기사장 피뢰르가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기사단원들을 데리고 왔던 부기사단장 콜로츠네스가 알렌시아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알렌시아님.”

“콜로츠네스… 이곳의 상황은?”

“보다시피 사우스 왕국의 기사단이 궤멸 직전까지 갔고… 저기…….”

콜로츠네스는 아시테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도 차마 시선을 계속 두기 힘든 곳이었다.

“저건…….”

“살라 기사단을 이끄는 하인트 단장이었을… 겁니다…….”

사람의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하인트를 보며 알렌시아는 거북함을 느꼈다.

온갖 전장을 다녀봤지만 한 사람에게서 저토록 많은 피가 흘러내린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아시테르가 몸을 돌렸다.

“왔어? 알렌시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도 순간 주춤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아시테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를 제외한 모든 언노운 마법기사단 단원들이 이곳에 있었다.

단순 전력으로 비교하자면 여기 있는 일섬 마법기사단 만으로는 이들을 상대하기에 벅찼다.

“아시테르… 네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야?”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러 왔어.”

“그럼 그것들만 찾아가면 되지,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해?”

죽은 하인트를 보며 알렌시아가 인상을 와락 구기고 말았다.

딱히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막상 저런 끔찍한 모습으로 죽은 걸 보니 조금은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그 잃어버린 것엔… 나의 왕국도 있으니까.”

아시테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반면 그의 말을 들은 알렌시아는 그 자리에서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뭐…?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이스트 왕국을 다시 되찾겠다는 말이야.”

“누구한테서?”

“당연히 사우스 왕국한테서.”

“농담도 정도것 해. 네가 무슨 수로?”

알렌시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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