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이스트 왕국의 반격 (1)
왕성 주변 군사들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갑옷 위에 새겨진 문양은 이스트 왕국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 모이고 있는가?”
“예. 휘하 7개 부대 모두 집합 완료했습니다.”
“으음… 설마 이런 상황이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침음성을 흘리고 있는 사내, 베거이트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 땅에 뿌리를 내릴 줄로만 알았다.
힘들게 이스트 왕국을 점령한 만큼 사우스 왕국에서도 기를 쓰고 이곳을 지켜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무런 지원 병력도 도착하지 않다니…….”
이곳으로 오고 있던 하트 군대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돌연 회군을 택했다.
네이트워의 클로버 군대는 현재 웨스트 왕국과 대치중이었다.
그나마 이곳으로 올 수 있는 추가 병력은 하이트레이스 정도인데…….
그 또한 이스트 왕국 북경지역에 가있는 중이었다.
“하이트레이스님이 이곳으로 올 때까지 버텨내야 한다……!”
사우스 왕국에서 추가 병력을 보내올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침묵은 마치 이곳의 일은 이곳에서 알아서 해결해내라는 말 같았다.
베거이트는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7개의 부대가 적은 병력은 아니었다.
다 모아놓고 보니 얼추 2만여 명 정도 되었다.
왕성과 수도에 있는 사우스 왕국 병력 전부였다.
그때 이들이 있는 곳으로 스페이드 군대가 당도했다.
그들을 이끄는 임시 단장 조리쉬가 베거이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조리쉬.”
“크음…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흘러가고 있군.”
“이게 다 언노운 마법기사단 때문입니다…….”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겨우 기사단 하나가 등장했을 뿐인데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되다니…….”
“겨우 기사단 하나가 아닙니다… 그놈들은 괴물입니다…….”
조리쉬는 두 눈으로 직접 봤기에 똑똑히 기억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말도 안 되는 힘을.
그렇기 때문에 더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이쪽도 뭉쳐야 했다.
“비록 바이헤른님이 적들의 손에 붙잡히긴 했지만, 우리도 아직 정예 병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페이드 군대는 아직 건재하다는 뜻입니다.”
스페이드 군대의 총 병력은 4만.
그 중 광장에서 오천여 명을 잃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직 스페이드 군대의 정예는 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리쉬는 해볼만한 전투라 생각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숫자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거기다 여차하면 왕성에 있는 귀족들까지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다.
“아직 상황은 이쪽이 유리합니다. 이곳 왕성을 이용해서 수성을 펼쳐도 되고요.”
“나참… 병력은 이쪽이 훨씬 더 많은데 놈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펼쳐야 한다니…….”
“상대를 얕보시면 안됩니다. 놈들은 트럼프이신 바이헤른님까지 쓰러트렸으니까요… 거기다 이번에 살라 기사단도 놈들의 손에 당했다고 합니다.”
“살라 기사단까지……?”
인상을 찌푸리던 베거이트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살라 기사단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다.
“그건 잘 됐군. 이번 일로 하인트의 기도 제법 죽었겠어.”
“그게… 하인트는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인트가 죽어……?”
“하인트뿐만 아니라 살라 기사단원 모두 사망했습니다.”
“모두 사망했다니…!!! 그게 무슨…….”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살라 기사단의 거처를 습격했던 모양입니다.”
“크음… 놈들의 힘이 그 정도인가?”
“예. 놈들 앞에서는 숫자 1만도 ‘고작’ 1만일뿐입니다.”
“크흠… 조리쉬 자네가 하는 말이니 허튼 소리는 아니겠지… 아무튼 우리도 최선을 다해 놈들과 싸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베거이트의 마음속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 있는 병력은 자그마치 6만 여명에 달했다.
아무리 언노운 마법기사단이 강하다고 해도 6만 명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다만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곁에는 혁명군이 있다.
음지에 숨어 다양한 활동으로 사우스 왕국을 괴롭혀온 만큼, 이번에도 언노운 마법기사단과 함께 어떤 장난질을 해댈지 모른다.
“귀찮겠구만… 혁명군의 존재도 신경써야 하니…….”
“맞습니다. 놈들도 마냥 무시할 순 없습니다.”
“이번에 놈들만 일시에 처리하면 굳이 하이트레이스님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거다.”
“예.”
하이트레이스는 제이스쿠스의 뒤를 이은 다이아 대장이었다.
성정이 냉철하고 차갑기로 소문난 하이트레이스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다.
그가 이곳으로 오면 이스트 왕국에 또다시 학살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스트 왕국 사람만 죽는 것은 아닐 거다.
하이트레이스라면 분명 이쪽 사람들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물을 테니…….
“나중에 할 말이 생기려면… 이번에 꼭 놈들을 처리해내야만 한다.”
“예…….”
조리쉬가 잔뜩 굳은 얼굴로 답했다.
자신이 스페이드 군대에 속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
하이트레이스는 그런 것 따윈 가리질 않는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놈들을…….”
쿠우우웅---!!!
돌연 커다란 굉음이 왕성 전역에 울려 퍼졌다.
베거이트와 조리쉬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설마…….”
“놈들이다!! 전원 전투태세로!!!!!”
베거이트의 지휘 아래 병사들과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서둘러 성문 위와 아래쪽에 위치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마땅히 보여야 할 적들이 보이질 않았다.
“응!? 놈들은 어디에…….”
“워후-! 많이도 모였네!!”
그때 창을 짊어진 사내가 아래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본 조리쉬가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저 자는……!”
“아는 자인가?”
“언노운 마법기사단에 속해 있는 자입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 역시 나타났구나!”
베거이트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창을 든 사내 이외엔 어느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설마 여기에 혼자 나타난 것인가?”
“뭐… 그래도 되지 않겠어?”
카이드가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며 적들을 살폈다.
척 봐도 수천의 병사들이 성위에 자리해 있었다.
“흐음… 개전 시작으로는 안성맞춤이겠구만.”
그가 맡은 임무는 가장 정면에서 마음껏 날뛰는 것이었다.
사실 이 임무만큼 카이드에게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카이드가 창을 한껏 당겼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흘러나오자 조리쉬가 크게 외쳤다.
“놈이 공격을 시도한다! 대비하라!!!”
조리쉬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마도사들이 성벽의 베리어를 강화했다.
이를 본 카이드가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이래야 재밌지.”
마기를 한껏 끌어 모은 창이 앞으로 돌진했다.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뚫을 것만 같은 맹렬한 기세였다.
쿠르르르르르르릉---!!!
겨우 개인의 힘일 뿐인데 베리어가 크게 일렁였다.
놀란 마도사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말도 안 돼!!!”
“베리어에 흠조차 안 생겨야 하는데 이렇게나 흔들거린다고……?”
“뭣들하고 있는 건가!! 집중을 잃지마!!”
그러나 몇몇 마도사들은 이미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었다.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카이드가 다시 창을 한껏 당겼다.
“두 번째로 갑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이번에도 거센 마기가 베리어를 격했다.
마도사들이 베리어를 재구성하는 동안 성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적이 계속 공격하게 두지 마라!!!”
안에서 말을 탄 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카이드는 여전히 창을 끌어당길 뿐이었다.
“혹시 도와줘야 되냐?”
“흥.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거 다행이네.”
“네가 강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나도 어디 가서 무시 받을 실력은 아니야.”
“누가 뭐라냐? 너 강해 임마.”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창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거대한 마기가 대기를 갈랐다.
이를 지켜보던 자비토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괴물 같은 자식…….”
아시테르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카이드라면 충분히 자신이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카이드도 아시테르 못지 않은 괴물이었다.
“아시테르만큼이나 성장해가는 게 말이나 되나.”
곁에서 자비토가 지켜보기엔 딱 그러했다.
아시테르가 성장하면 카이드도 그에 따라 성장한다.
다만 그럼에도 카이드는 여전히 아시테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카이드가 아시테르를 배려해 약한 척을 하고 있느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자신이 카이드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것만큼이나 카이드 또한 간절함이 보였다.
카이드는 ‘그럼에도’ 아시테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쯧…….”
괜히 혀를 찬 자비토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말을 탄 기사들이 이쪽으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자비토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커다란 송곳들이 대기에 생겨났다.
슈우우우웅--!!
파바바박!!
콰과과곽!!!! 퍼버버벅!! 퍼버벅!!!!
수십 개의 송곳이 기사들의 몸에 꽂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자비토는 계속해서 마법을 퍼부었다.
“막아내라!!!”
“방패로 막아!!”
“견뎌낼 수 있다!! 멈추지 마라!!”
“적은 고작 둘이다!!!”
“크아아아악--!!!”
“크헙!!!”
누군가의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비명소리도 전장에 울려 퍼졌다.
송곳을 방패로 막아낸 기사의 팔이 기이한 모양으로 꺾였다.
핏물이 여기저기 튀고 부서진 갑옷의 파편들이 튀었다.
군마들이 피를 보고 더욱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자비토는 그 자리에 서서 바로 다음 마법을 펼쳤다.
“송곳니의 환희.”
자비토의 주변으로 퍼진 마력이 일순간 대지를 적셨다.
대지에서 솟구쳐 오른 커다란 송곳니들이 기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호오… 둘이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네.”
카이드의 창이 그대로 전방으로 향했다.
또다시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카이드를 상대하는 마도사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수십 명의 마도사들이 동시에 구축해낸 베리어였다.
겨우 창술사 한 명이서 뚫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자신의 실력을 맹신하고 있는 것 같군.”
카이드를 바라보는 베거이트의 솔직한 평이었다.
물론 카이드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대 이상으로 어마무시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단신의 힘으로 이 베리어를 흔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인간의 범주에 있는 이상 이 베리어는 깨지지 않을 터다.
“큰일 났습니다. 베거이트님!!”
뒤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거이트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쪽으로 향했다.
“왜,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기라도 했나?”
“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뻔하지. 이쪽에 저렇게 두 명을 보냈다면 다른 곳에서 분명 수작을 부릴 것이라 생각했다.”
베거이트가 이만 등을 돌렸다.
보아하니 이곳은 더는 크게 신경쓸 것 없어보였다.
어차피 자비토와 카이드 둘이서 이 성벽을 뚫어낼 순 없을 테다.
그는 귀족들이 있는 왕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귀족들 중 누가 우리들에게 반기를 든 거냐? 이참에 그들까지도 처리해야겠구나.”
“그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인데 그렇게 망설이는 거냐?”
“그들의 선두에 있는 자가… 히스링 군단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