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다이아 군대와의 전쟁 (2)
하이트레이스의 차갑게 식은 시선이 아시테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시테르 역시도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하이트레이스의 시선을 받아냈다.
“본국으로 돌아가라? 그 말은 곧 우리더러 여기서 떠나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웃기는 군. 그러니까 네 말은 네놈이 나의 목숨을 거머쥐고 있으니 내 목숨을 빼앗기 전에 나더러 떠나라는 말 같은데…….”
슈와아아아아---!!!!
하이트레이스의 안광이 번뜩이더니 곧 강렬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잔잔하게 분노한 그가 애써 기운을 감추지 않고 개방한 것이다.
후우우우우우웅---!!!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이를 느낀 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아시테르가 쓰는 기술과 비슷했다.
중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마법.
점점 무거워지는 공기 때문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가장 먼저 괴로워했다.
반면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유연하게 하이트레이스의 마력을 견뎌내고 있었다.
툭.
아시테르가 발로 바닥을 때리자 옥죄이던 무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단번에 자신의 마법을 풀어낸 아시테르를 보며 처음으로 하이트레이스가 표정에 변화를 보였다.
“내 마법을 풀어?”
“비슷한 힘을 사용할 줄 알아서요.”
“…재밌네.”
하이트레이스가 손바닥을 펼치자 칠흑빛 구체가 허공위로 떠올랐다.
그것을 본 세아츠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렸고 가이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두 사람보다 앞서 아시테르가 먼저 팔을 휘저어 그들을 말렸다.
“괜찮아.”
하이트레이스가 무심한 표정으로 아시테르에게 마법을 날렸다.
저벅저벅.
스가아앙-!!! 파바바바방!!!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간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자, 검은 구체가 그 자리에서 폭발해버렸다.
이를 본 하이트레이스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비록 전력을 다한 일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간단하게 파훼될만한 마법은 아니었다.
하이트레이스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수십 개의 칠흑빛 구체가 강한 마력을 풍기며 떠올랐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대화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처음부터 대화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곤란한데요.”
“네놈도 이걸 원한 게 아닌가?”
하이트레이스가 아시테르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 순간 단단한 모래방벽이 솟구쳐 오르며 하이트레이스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더는 못 참겠는데요.”
“그냥 부딪혀보면 안됩니까.”
“얘들아…? 침착해… 상대는 지난번처럼 몇천 명 수준이 아니야. 훠어어얼씬 더 많다?”
에스파가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를 말리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각 지휘관들의 위치를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튀어 나오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하이트레이스의 간부들도 하나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의 수는 총 열세 명.
이쪽에서 하나씩 붙잡고 싸워도 수가 불리했다.
물론 세아츠리스나 가이우스라면 여럿을 달고도 능히 싸울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에이브릴이나 데미리우스, 라빈 등은 비교적 평범한 수준에 속했다.
무려 수만에 달하는 병력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아시테르 또한 그리 판단했기 때문에 이만 몸을 돌렸다.
“돌아갈까요?”
아시테르의 명령에 크로마제가 곧바로 마법을 거두었다.
반키라스도 위협적으로 내뿜던 마력을 금세 거두어들였다.
데미리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력을 끊었다.
“올 때는 너희들 마음대로였을지 몰라도 갈 때는 아니다.”
하이트레이스의 말에 간부들과 기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사우스 왕국 군사들이 언노운 기사단을 에워싸는 형국이 되었다.
아시테르가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쿠우우웅---!!!
묵직한 기운과 함께 기사들의 몸이 순간 내려앉았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를 본 간부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하이트레이스님의 마법……!?”
“상대도 중력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였나!??”
“아냐… 그러기엔 마력이 느껴지질 않는데…….”
놀라움도 잠시 세아츠리스가 만들어 낸 가시덤불이 땅에서 솟구쳐 나오며 진영을 완전히 헤집어놓았다.
혼비백산 흩어진 기사들과 병사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려봤을 땐 이미 커다란 가시덤불로 시야가 가려진 뒤였다.
“대체 정체가 뭡니까 저자들은…….”
“이 정도면 초위급 마법입니다.”
“저들 중 초위급이 아닌 마도사는 없어보였어. 새삼스럽게 놀랄 필요 없다.”
“하아? 모두가 초위급 이상의 마도사였다고?”
“그래. 심지어 이 가시덤불을 만들어낸 마도사는 마력의 끝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마녀 숲의 마녀여왕이라도 왔다는 말이냐?”
“어쩌면 그 자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그때 하이트레이스의 몸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몸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빛나자 강대한 마력이 뻗어 나가며 가시덤불을 깔끔하게 부숴버렸다.
쿠우우우우웅---!!!
콰지지직--!! 콰라랑!!!!
격렬한 폭음과 함께 감춰졌던 언노운 기사단의 모습이 보였다.
“데리미우스 형.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대장.”
아시테르의 말에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발산하며 짙은 독무를 만들어냈다.
호기롭게 그들의 뒤를 쫓던 기사들이 독무를 마시자마자 기침을 해대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위험함을 느낀 간부들이 손을 들어올렸다.
일순간 멈춘 기사들에게 간부들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너희는 우측으로, 너희는 좌측으로 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라.”
간부들의 상황 파악은 빠른 편이었다.
그들의 명령에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다이아 군대는 기껏 안으로 들어온 언노운 기사단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을 올려 추격했다.
그러나 그들을 잠시 붙잡아 두는 것도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데미리우스의 독마법부터가 문제였다.
여기저기 독지로 바뀌니 추적하는데 자꾸만 길을 돌려야 했다.
거기다 세아츠리스나 크로마제처럼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마도사들까지 있다 보니 더더욱 쉽지 않았다.
발 빠른 추격 부대로 따라잡으려 하면 라빈이 나서서 이들을 정리해주었다.
새하얀 뼈로 아군 군사들을 모두 깨부숴버리는 라빈을 보며 기사들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간부 중 한 명이 가까스로 언노운 기사단을 앞질러 과감하게 그들을 가로막았다.
“여기서 멈춰야 할 거다.”
아시테르를 바라보는 기사의 이름은 쿠베라.
하이트레이스의 수족 중 한 명이었다.
쿠베라가 창을 들어 아시테르를 향해 겨누었다.
창끝에 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니 마도공학 무기였다.
“금방 길을 열겠습니다.”
가이우스가 앞으로 질주했다.
그를 본 쿠베라가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쿠우우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쿠베라의 창이 튕겨져나갔다.
가이우스의 주먹이 쿠베라의 가슴팍을 노렸다.
콰아앙!!!
가까스로 일격을 막아낸 쿠베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묵직한 일격이었다.
가이우스의 주먹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파바바바박!!!
퍼버버버버버버벙!!!
“크으윽……!!!”
입술을 질끈 깨문 쿠베라가 창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가이우스는 어지간한 공격쯤은 그냥 몸으로 받아내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해도 쿠베라의 공격은 가이우스에게 이렇다 할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가이우스의 주먹에 쿠베라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크하악!”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쿠베라가 바닥을 뒹굴었다.
쿠베라를 날려버린 가이우스가 멈추지 않고 돌진했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의 기류가 흘렀다.
“오??”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가이우스는 마력의 기류와 함께 앞으로 돌진했다.
일단은 막아보려 했던 사우스 왕국 기사들과 병사들이 우후죽순 쓰러지고 말았다.
가이우스의 새로운 마법을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빛냈다.
“대체 언제 익힌 마법이지?”
“숨겨 두었던 비장의 마법 중 하나입니다.”
가이우스가 아시테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이우스가 한바탕 질주한 덕분에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포위망에 구멍이 생겼다.
언노운 기사단은 그 구멍 사이로 여유롭게 통과했다.
“크아아아--!!!”
부상으로 무릎을 꿇은 쿠베라가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그러나 기사들은 그를 먼저 보호하는 것을 택했다.
언노운 기사단은 더 이상 자신들을 쫓아오지 않는 사우스 왕국 기사들을 보며 속도를 늦췄다.
그때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곁으로 붙었다.
“근데 이래도 돼? 다이아 군대와 대화를 하려던 것 아니었어?”
“뭐, 상관없어.”
“처음부터 대화를 할 생각은 없었던 것 아냐?”
“반절 정도는? 상대가 정말 대화를 할 생각이 있어보였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러기엔 너도 대화를 하겠다는 투는 아니었는데…….”
“그냥… 눈빛을 보니까 알겠더라고. 하이트레이스는 대화보다는 전쟁을 택할 것 같았어.”
“나참… 근데 뭐 상관없긴 하겠다. 어차피 나중에 사우스 왕국과 전쟁을 치르려면 미리부터 병력을 줄여놓는 것도 중요할 것 같으니까.”
“글쎄… 종국에는 우리는 사우스 왕국의 힘도 빌려야만 할 거야.”
“사우스 왕국의 힘을?”
“사우스 왕국이 갖고 있는 마도공학 무기란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해. 그것만 있으면 일반 기사들과 병사들도 1.5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우스 왕국에서 선뜻 그 힘을 내놓으려고 할까?”
“설득해봐야지.”
“왠지 설득이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게 될 것 같다. 이건 내 기분탓이야?”
에스파가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노운 기사단원들 모두 미소를 보였다.
그들 역시도 에스파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사우스 왕국만큼이나 아시테르와 적대적인 세력은 없었으니 아시테르 또한 그들을 살갑게 대할리 없었다.
이스트 왕국의 독립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아시테르는 곧바로 사우스 왕국으로 곧장 쳐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시테르와 언노운 기사단은 곧바로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 주둔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이아 군대의 병사들이 더는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한 후였다.
헌데 막상 그곳에 도착한 아시테르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가를 실룩거리며 린을 돌아보았다.
“분명… 아르키나만 왔다고 하지 않았어……?”
“아르키나의 이름만 보이길래… 이 정도로 왔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나도…….”
아시테르와 린이 헛웃음을 지으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수천 개의 깃발들.
심지어 각기 다른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시테르와 언노운 기사단은 곧바로 주둔지로 향했다.
그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다름 아닌 네이셔였다.
쿵!!
“검제님과 공주님을 뵙습니다!!!”
한 쪽 무릎을 바닥에 굽힌 네이셔가 두 사람을 향해 예를 차렸다.
아시테르가 네이셔를 보며 말했다.
“네이셔… 네가 어째서 이곳에…….”
“검제님께서 저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는 소식을 들어서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습니다!!”
“아?”
“저뿐만이 아닙니다. 아르키나님을 포함한 세 명의 로얄나이츠가 이곳에 와있습니다.”
“그럼 여기에 총 네 명의 로얄나이츠가 있단 말이야……?”
아시테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자신의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이를 본 린이 참지 못하고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