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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70화 (370/424)

370화 다이아 군대와의 전쟁 (3)

아시테르가 중앙의 의자에 착석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자리에 앉았다.

왼쪽으로는 언노운 기사단 단원들이 앉아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웨스트 왕국의 기사들이 앉아 있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오른 편으로 향했다.

아르키나와 네이셔, 제라피너스에 이어 하야트까지 이곳에 와있었다.

네 명의 로얄나이츠가 이곳에 와있으니 그 병력의 규모도 사실상 어마무시한 수준이 되어있다.

아시테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키나…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주겠어?”

“그게… 저도 처음에는 저만 오려고 했으나… 네이셔가 자신도 데려가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 함께 오고 싶어했습니다.”

“도움이야 당연히 되겠지… 그런데 나머지 두 사람은……?”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로얄나이츠 사이에 소식이 퍼졌고… 다른 로얄나이츠들도 오고 싶어 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올 수 없게 되어 시간이 되는 로얄나이츠들만 오게 되었습니다.”

아르키나의 보고에 아시테르가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니까 결국 더 올 수 있었는데 상황상 오지 못했다는 말이다.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아시테르가 아르키나를 보며 물었다.

“아르키나 너의 힘만 빌리려 했을 뿐인데… 다들 함께 해주려 했다는 말이로군…….”

“선뜻 이해가 되지 않으신가 봐요?”

“뭐 약간은…….”

“사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번이 검제님과의 첫 작전이잖아요? 다들 검제님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아르키나의 말에 네이셔가 헛기침을 해댔다.

제라피너스도 괜히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웠다.

하야트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본국에 있는 르노어님이나 카일라이드님도 마찬가지일 테죠. 실제로 르노어님은 본국의 문제만 아니었다면 진작 이곳으로 올 기세였습니다.”

“아… 그 정도였다니…….”

“후후 아시테르님은 우리 로얄나이츠들을 통솔하는 분입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운 좋게 오른 것도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검제에 오르신 분이죠. 그런 만큼 로얄나이츠 중 그 누구도 아시테르님을 의심하거나 못 미더워 하는 자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아시테르님께 더더욱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겠죠. 예부터 역대 웨스트 왕국 국왕들께서 가장 경계했던 존재가 바로 검제였다고 하죠. 감히 말하자면 기사도보다도 더욱 강하고 질긴 것이 바로 로얄나이츠들의 충성이니까요. 아무래도 그것이 경계되지 않겠습니까.”

하야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로얄나이츠들은 각자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을 모두 쓰러트려야만 검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강한 것으로만 검제를 판단했다면 진즉에 르노어나 카일라이드가 검제의 자리에 올라섰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실력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증명해내었다.

거기다 헬라이번의 왕국을 웨스트 왕국에 끌어들여 거래를 시작하게 만든 것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었다.

이러한 업적들이 쌓이고 쌓여 아시테르가 검제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로얄나이츠들이 검제인 아시테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를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이루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검제 측에서 먼저 도움을 청해왔다.

아시테르의 곁에는 린과 언노운 기사단이 있고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도 상당했다.

그런 아시테르가 과연 몇 번이나 로얄나이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이게 몇 없는 기회란 것을 잘 알았기에, 로얄나이츠들도 앞 다투어 이곳으로 오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을 잘 모르는 아시테르로선 일단 로얄나이츠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래도 이곳에 모인 병력이 과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모인 병력이 어느 정도 된다고……?”

“약 7만 여명의 병력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로 오는 동안 식량이랑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해결 했나?”

“검제님 덕분에 첼룬 왕국과 거래를 하게 되어 많은 돈을 번 상인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거기다 노스 왕국에서도 우리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흐음…….”

두 왕국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얘기다.

7만의 병력이 말이 좋아 7만이지 이들을 유지하는 비용은 엄청났다.

군 장비며, 식량이며 여러 가지를 신경 쓰다 보면 돈이 물처럼 새어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아시테르가 생각하기에 이번 일에 이 정도 투자는 과하다는 점이었다.

아르키나와 그녀의 군사들만 있어도 충분했을 법했다.

“좋게 생각해. 그래도 아주 좋은 상황이잖아. 로얄나이츠가 무려 4명이나 이곳에 있어. 거기다 검제인 네가 있고. 매번 부족한 인원으로만 전투를 치러왔는데 이번에는 이쪽이 훨씬 더 숫자가 많아서 조금 어색하긴 한데… 가끔은 이래도 좋잖아?”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마음을 읽고 미리 선수를 쳤다.

린도 한 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로얄나이츠분들 모두 당신을 돕기 위해 달려왔잖아요.”

“싫은 게 아니야. 너무 고마워서 그렇지…….”

아시테르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에 아르키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말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검제님께 빚을 지워놓는 것도 나름 재밌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저 검제님과 함께 싸워보고 싶을 뿐입니다.”

“다이아 군대? 놈들의 대장 목이 필요하시다면 당장 출정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로얄나이츠 중 유일하게 어쌔신 부대를 이끌고 있는 제라피너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은은하게 살기를 풍기는 그를 보며 아시테르는 그의 말이 진심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것 까지는…….”

“사우스 왕국의 다이아 군대가 저희들의 상대라 들었습니다.”

“으하하하하-!! 첫 출정에 다이아 군대라니!! 역시 우리 검제님!”

“상대는 하이트레이스, 제이스쿠스의 뒤를 이은 다이아 대장이군요. 사우스 왕국에서도 굉장히 뜨겁게 떠오른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어차피 우리들이 모인 이상 다이아 군대도 별 것 없습니다.”

네이셔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속에서는 어떻게 싸우던 이쪽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였다.

“저희들이 나서겠습니다.”

“맞습니다. 이번에는 저희들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주십시오.”

“다이아 군대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선물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로얄나이츠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아시테르는 굳이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다이아 군대에게 웨스트 왕국의 힘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부탁하지.”

아시테르의 말에 로얄나이츠들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자체적인 경쟁이었다.

누가 다이아 군대를 상대로 가장 커다란 공훈을 올리느냐.

네이셔와 아르키나가 시선을 마주했다.

“자신 있나요?”

“자신 있죠! 이번에는 지지 않을 겁니다.”

“너무 열 올리지 마요. 그러다 다른 사람이 공을 가로챌 것 같으니까.”

아르키나의 시선이 제라피너스에게로 향했다.

어쌔신 부대를 다루는 만큼 제라피너스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사실 이 세 사람보다 가장 큰 공훈을 세울 유력한 후보는 바로 하야트였다.

카일라이드나 르노어처럼 하야트도 오랫동안 로얄나이츠를 지내온 거물급 인사였다.

린조차 하야트가 이렇게 움직여주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마녀여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에도 하야트는 움직이지 않았었다.

“솔직히 하야트님이 움직이실 줄은 몰랐어요.”

“대충의 얘기는 들었습니다. 공주님과 검제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시는지.”

“…르노어님 아니면 카일라이드님이 얘기하셨겠군요.”

“후후, 그만한 대업을 위해 움직이시는 거라면 기꺼이 힘을 보태야 하질 않겠습니까.”

하야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사실 하야트를 직접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로얄나이츠 중 하야트는 칩거를 택했고, 루시진은 부상을 이유로 아시테르와 겨루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 한 것은 하야트와 루시진 모두 아르키나가 인정하는 실력자들이라는 점이었다.

린이 하야트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어쨌거나 함께 해주어서 고마워요.”

“다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것은… 저는 공주님을 좋아하지만 공주님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제가 따르는 분은 오직 한 명뿐일 겁니다.”

하야트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도 아시테르를 검제로서 충분히 인정하고 있기에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다.

언노운 기사단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로얄나이츠를 바라보았다.

이번 전투에 그들이 나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다만 웨스트 왕국의 로얄나이츠들이 나서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묘한 흥분이 일었다.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로얄나이츠는 차후 벌어질 전투에 대해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저물었던 날이 밝고 로얄나이츠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려 7만의 병력이 일시에 움직였다.

그중에서 제라피너스는 자신의 1만의 병력을 데리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하야트는 말없이 다이아 군대가 있는 곳으로 군을 이끌었다.

네이셔와 아르키나가 그런 하야트의 양옆 날개를 맡아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군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 소식은 하이트레이스에게도 전해졌다.

“하이트레이스님. 노스 왕국측에서 군사들의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노스 왕국측에서? 이그트가 아직도 포기하질 않은 모양이로군.”

하이트레이스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수하가 고개를 저었다.

“이그트의 병력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움직였다는 말이냐? 설마 노스 왕국의 국왕인 파쿠황이 직접 움직였다는 말이냐?”

“그게 아닙니다. 노스 왕국을 통해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 이쪽까지 온 모양입니다.”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이라고……?”

의외의 병력이 등장하자 하이트레이스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다이아 군대의 간부들은 이미 중앙 막사에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선 하이트레이스가 곧바로 물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파악되었나?”

“지금 파악중입니다만… 아무래도 웨스트 왕국의 로얄나이츠가 나선 모양입니다.”

“…웨스트 왕국의 로얄나이츠가 나섰다고…? 웨스트 왕국 국경에도 모습을 잘 비추질 않는 작자들이? 노스 왕국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이트레이스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나마 정말로 로얄나이츠가 이곳으로 왔다면 비교적 약한 축에 속하는 할라드나 네이셔 정도일 수는 있겠다 싶었다.

헌데 문제는 하이트레이스의 머릿속에 남는 의문이었다.

“만약 로얄나이츠가 이곳으로 왔다고 해도… 그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무슨 이득을 볼게 있다고…….”

쿠웅!!

“하이트레이스님!!!”

잔뜩 긴장한 낯빛의 간부, 펜드록스가 하이트레이스부터 급하게 찾았다.

하이트레이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큰일 났습니다!! 적들의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다른 간부가 답답하다는 듯 먼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꾸물대지 말고 말해봐!!”

“그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적의 규모는 대략 6만 명쯤 됩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이야?”

“로얄나이츠가… 웨스트 왕국의 로얄나이츠가 무려 세 명이나 움직였습니다. 심지어 가운데의 깃발은 은색 사자 문양입니다……!”

“은색 사자……?”

“로얄나이츠 하야트가 움직였다는 말이냐……?”

“옆에 무지개빛 구슬문양은 아르키나일 겁니다…….”

펜드록스의 보고에 간부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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