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로얄나이츠의 힘 (1)
하이트레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반면 간부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하야트와 아르키나는 사우스 왕국에도 소문이 나있는 강자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이번 일에 웨스트 왕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간부들의 시선이 하이트레이스에게로 모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적들의 군세가 조금 많다곤 하나, 상대는 로얄나이츠입니다. 만약 노스 왕국의 병사들과 합공을 하기라도 하면…….”
“이미 로얄나이츠들의 군사들만으로도 힘든 싸움이 될 텐데…….”
간부들의 반응에도 하이트레이스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수성을 택하면 돼. 그 이후에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된다.”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기사 수성에만 집중한다면 제아무리 로얄나이츠의 군대라도 이쪽의 방어선을 뚫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이트레이스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 적들은 상당히 먼 거리를 왔다. 군량이나 장비들을 더 조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지. 반면 우리들은 이미 준비를 갖춰놓은 상태다. 급한 것은 저쪽이니 수성에만 집중하면 저들은 알아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
하이트레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몇몇 간부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다시금 배치했다.
성벽 위로 올라간 병사들은 모두 마도공학으로 만든 활을 들었다.
이들의 활은 다른 평범한 궁병이 쏘는 화살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가고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뒤이어 지상 병력을 저지할 기사들을 배치해 두었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 다이아 군대다. 사우스 왕국 최고의 무력집단이 어딘가? 바로 트럼프 군대다. 다이아 군대에 걸맞은 위상을 보여라.”
하이트레이스가 간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물들었던 간부들의 표정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사내는 제이스쿠스에게 인정받은 사내였다.
거기다 실력도 뛰어나 사우스 왕국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다.
그런 하이트레이스를 따르는 간부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 자리를 쟁취한 자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이 쫄 이유가 없잖아?”
“맞아. 우리들도 다년간의 전투로 강해졌잖아.”
“전투 경험으로 따져보면 우리들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거다.”
“모두 정신 차려라. 하이트레이스님의 명성에 먹칠하면 내가 먼저 너희들을 죽일 거다.”
간부들이 의기를 다지며 한 마디씩 했다.
로얄나이츠가 쳐들어왔음에도 하이트레이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간부들과 다른 지휘관들도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하이트레이스는 강한 자신감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하이트레이스는 가장 선두에 서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의 무심한 표정으로 상대의 전력을 살폈다.
“숫자가 대략 6만이라고?”
“예!”
“수성전을 선택하면 우리들의 두 배나 많은 전력이 와도 충분히 상대해낼 수 있다.”
하이트레이스가 주변을 슬쩍 살폈다.
총 세 종류의 깃발이 올라가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곳에 세 개의 군대가 왔다는 말인데…….
중앙은 하야트의 군대, 왼쪽은 아르키나의 군대, 그리고 오른쪽은 처음 보는 군대였다.
“오른쪽에 있는 군대는? 파악 되었나?”
“예. 자세히 알아본 결과, 저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네이셔라는 신참 로얄나이츠입니다.”
“신참?”
“네. 말이 신참이지 네이셔도 다년간 로얄나이츠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렇군.”
고참이 둘, 신참이 하나.
하이트레이스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상대해 볼 만한 전력이었다.
물론 그것이 하이트레이스의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 선 하야트가 조용히 말을 몰았다.
그는 성벽 앞에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이아 군대의 수장과 얘기를 하고 싶네만.”
“말하라.”
성벽 위에 있던 하이트레이스가 밑으로 내려왔다.
그를 본 하야트가 미소를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은 인상이로군.”
“그대가 하야트인가?”
“호오, 나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렇네. 나의 이름은 하야트. 검제님을 모시는 10명의 로얄나이츠 중 한 명이네.”
“검제를 모신다라… 그러기엔 검제란 자가 나타난 건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 그대도 한 사람의 기사라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그럼 그대는 무엇에 관심이 있지?”
“오로지 강해지는 것. 강하다는 자들을 모두 내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나의 희열이다.”
하이트레이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야트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이를 본 하이트레이스가 물었다.
“왜 웃는 거지?”
“젊은 친구의 혈기가 대단해서 웃었네.”
성벽 위의 병력을 바라보던 하야트가 하이트레이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먼저 나의 주군의 뜻을 전하도록 하지.”
“당신의 주군이라면 검제를 뜻하겠군.”
말없이 하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 경고네. 지금이라도 이곳을 포기하고 사우스 왕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또한 쓸데없는 피는 흘리지 않고 돌아가도록 하겠네.”
“…설마 그 검제라는 자가 아시테르인가?”
슈우우웅―!
콰아아아앙!!!
어디서 나타난 건지 하야트의 검이 하이트레이스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조금만 늦었다면 하이트레이스가 치명상을 입었을 터다.
하야트의 차가워진 시선이 하이트레이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검제님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거라.”
순간 달라진 기세에 하이트레이스도 입가를 실룩였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가?”
“네놈 따위가 비견될 수 있는 분은 아니시지.”
“재밌네. 얼마 전에 이곳에 왔다가 꽁무니 빠지게 도망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도망? 우후후후후.”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던 하야트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이트레이스는 하야트가 웃건 말건 자신이 할 말만을 남겼다.
“아무튼 우리들은 이곳에 끝까지 남아 싸울 생각이다.”
“역시 그런가.”
“내가 받은 임무는 바로 이곳 국경을 지키는 것. 나와 나의 군대가 있는 한 너희들은 이곳을 넘어갈 수 없을 거다.”
“그건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아무튼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 그건 무슨 말이지?”
“그런 게 있네.”
하야트가 먼저 몸을 돌렸다.
상대가 완강하게 의사를 표현했으니 더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어 보였다.
하이트레이스도 다시 성벽 위로 올라섰다.
본진으로 돌아온 하야트가 아시테르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검제님의 뜻을 전했습니다만… 역시나 상대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럼 하는 수 없겠군요.”
“예.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야트의 시선이 성 쪽으로 향했다.
2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일 정도로 높게 세워진 성벽이었다.
거기다 두텁기까지 하다.
“어떤가요? 자신 있나요?”
“검제님은 그저 지켜 봐주시면 됩니다.”
하야트가 전방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이트레이스와 다이아 군대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적의 도발에 응해주지 않는 쪽을 택했다.
성벽 자체도 높고 두터운 데다 마도사들의 베리어가 덮고 있어 상대측도 공성하기에 상당히 곤란한 지경일 것이다.
하이트레이스는 성벽 위에 서서 적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웨스트 왕국군은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기보단 적은 병력으로 소모전을 벌였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지 하이트레이스는 되짚어 보고 있었다.
적들의 계략을 알아야 미리 눈치채고 응전할 수 있다.
“뭔가를 노리는 건가. 아니면 기다리고 있는 게 있나.”
웨스트 왕국이라면 분명 커다란 공성 무기가 존재할지 모른다.
하이트레이스는 곧바로 수하들을 풀었다.
그들의 임무는 웨스트 왕국이 정말로 공성 무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느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하이트레이스는 좀 더 성벽을 강화시켰다.
“밤에도 경계를 늦추지 마라.”
“예!”
“예!”
이곳으로 들어오려면 이 길 밖에는 없다.
그러니 몰래 잠입하려 든다면 미리부터 와있어야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하이트레이스는 내부 경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혹시나 아시테르와 내통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이 저들의 활로를 열어주게 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이트레이스는 웨스트 왕국군 상대로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는 하야트나 아르키나, 네이셔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철옹성같이 보이는 성을 보며 네이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네이셔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선두에 나섰다.
그가 맡은 곳은 좌측.
네이셔가 생각하기에 이쪽이 가장 방어선이 약한 곳이었다.
그가 먼저 병력을 이끌고 나섰다.
네이셔가 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그의 검신에 붉은 화염이 불타올랐다.
“진격!”
네이셔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군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성벽 위에선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네이셔가 말을 박차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화르르릉―――!!!
안개처럼 퍼진 불꽃이 날아드는 화살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네이셔가 성벽을 향해 크게 일검을 휘둘렀다.
쿠우우웅!
쩌러어어어엉―――!!!
묵직한 울림과 함께 베리어가 흔들렸다.
그 사이 네이셔의 군대가 성벽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적들을 막아라!”
“적들이 올라서지 못하게 해라!”
성벽 위의 다이아 군대 병사들이 크게 소리치며 응전했다.
그러나 네이셔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적들의 공격을 철벽같이 수비해냈다.
화살과 마법이 방패에 튕겨나간다.
이를 본 다이아 군대의 기사들이 놀랍다는 얼굴을 보였다.
“방패로 마법을 튕겨낸다고?”
화살이나 다른 병장기를 튕겨내는 것 정도는 흔하게 봐왔으나 마법을 튕겨내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방패의 성능을 확인한 네이셔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첼룬 왕국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온 방패였다.
드워프들이 만든 방패에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다.
전방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드워프가 만든 방패를 들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선두에 있는 한 어지간한 마법쯤은 피해를 입지 않고 돌파해낼 수 있을 터였다.
이를 지켜보던 하야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이셔가 자신감 있어 하더니 저런 한 수가 있었나.”
“저도 이만 움직여보겠습니다.”
몸이 근질거렸던 아르키나가 하야트에게 말했다.
하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이셔보다 더 빠르게 성벽을 공략해주는가?”
“네이셔보다는 빠르겠지만… 하야트님보다 빠를지는 자신 없군요.”
“후후후. 그럼 부탁하겠네.”
하야트의 부드러운 웃음을 뒤로하고 아르키나가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했다.
그녀의 손짓에 몇몇 부대가 옆으로 빠져나왔다.
“시작해.”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그들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여러 마도사들이 마력을 끌어모아 시전하는 대규모 마법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세아츠리스가 흥미를 보였다.
“일전에 우리들을 고생시킨 마법이네요.”
“아아… 맞아. 그랬었지.”
아시테르도 그 광경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