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로얄나이츠의 힘 (3)
중앙의 상황을 지켜보던 네이셔가 시원한 웃음을 보였다.
“진짜… 클라쓰는 여전하시구만.”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하야트를 보며 네이셔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적들의 중앙이 뚫렸다! 하야트님의 군대를 보조한다!”
명령은 재빠르게 여러 곳으로 하달되었다.
군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내며 진격했다.
그들의 선두에 네이셔가 있었다.
콰아앙!!!
쿠릉!
네이셔가 검격을 휘두르면서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얼음 조각이 날아가고 검날이 기사의 목을 베었다.
그런 네이셔의 모습을 보며 사우스 왕국 간부 중 한 명이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웨스트 왕국의 로얄나이츠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천하통일도 가능할 거라더니…….”
그 말이 과연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싶었다.
로얄나이츠 한 명 한 명이 이토록 뛰어난 실력을 지녔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기껏해야 트럼프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아래일 줄로만 알았다.
헌데 막상 이렇게 전투를 치러보니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벅찬 상대로구나……!”
문제는 상대 진영에 로얄나이츠만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그들의 존재도 신경쓰였지만 바로 밑에 있는 직속 부하들도 상당히 신경 쓰였다.
개개인의 뛰어난 무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선을 무너트리고 있는 그들을 보며 간부들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실력 차이가 날 수가 있는가……?”
성벽이 없는 상태였다면 정말 진즉에 방어선이 뚫리고 난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허나 사우스 왕국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출진하라!”
지금까지 성벽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예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갑옷까지도 마도공학 장비로 무장한 중무장 보병들이었다.
두두두두두―
그들이 걷는 소리가 들리고 네이셔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거냐?”
네이셔가 차분하게 전선을 살폈다.
중앙쪽은 이미 전선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하이트레이스가 뒤로 물러나면서 아군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반면 오른쪽 날개를 맡은 아르키나는 의외로 고전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창병을 막아설 카드가 상대에게 꽤나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해주어야겠군.”
네이셔도 정예 본대를 이끌고 움직였다.
그들이 노리는 곳은 당연히 마도공학으로 무장한 적군이었다.
저들을 무너트리면 이쪽도 전선이 붕괴될 터다.
“나를 따르라!”
네이셔의 우렁찬 함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이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이어 네이셔의 직속 수하들도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총공격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사우스 왕국의 간부들도 적들의 기세를 읽고 대응에 나섰다.
군사들이 쉴 새 없이 뒤엉키고 하늘은 수많은 빛깔로 뒤덮였다.
가장 뒤편에서 전장을 살피고 있던 에스파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게 강대국 간의 전쟁이구나…….”
무려 10만이 넘는 병력이 이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주먹을 꽉 말아쥔 에스파의 곁으로 에이브릴이 다가갔다.
그녀는 살포시 에스파의 주먹을 감싸주었다.
“전황을 어떻게 읽고 계십니까?”
가이우스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시테르는 그동안 말없이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얄나이츠가 가진 힘은 실로 막강했다.
솔직히 말해 아시테르의 예상을 상회하고 있었다.
특히나 하야트의 전투 스타일은 더더욱 놀라웠다.
단순히 단신의 힘으로 중앙군을 뚫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군사들을 이용해 커다란 차륜진을 만들었다.
회전하는 기사들이 서로의 빈틈을 매우며 끊임없이 적들을 압박했다.
거기다 양옆으로 회군한 병사들이 적진의 맥을 정확히 끊고 있었다.
숱한 전쟁 경험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할 전법이었다.
하야트는 전장에 서서 이 모든 것들을 파악해내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수하들이었다.
부관들은 하야트가 무슨 명령을 내릴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군사들을 이끌었다.
덕분에 전차에 압박 받고 있던 아르키나도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아르키나의 부진은 예상 밖이었지만, 그녀도 곧 자신의 진가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전장에 합류하겠습니다.”
아시테르의 표정을 읽고 있던 가이우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전쟁은 우리들이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알겠습니다.”
“우리들 도움 없이도 충분히 승리할 것 같은데?”
“응. 다이아 군대로는 이 병력을 막아낼 수 없어.”
다이아 군대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 훈련이 잘 된 강병들이었고, 사우스 왕국의 대표 무력 집단이라 불릴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웨스트 왕국의 군대가 더욱 강했을 뿐이다.
특히나 그들을 이끌고 있는 총지휘관 하야트는 하이트레이스가 넘어서기엔 너무나 거대한 산이었다.
중앙부터 시작된 붕괴는 곧 양쪽으로 번졌다.
전선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우스 왕국도 감춰두었던 비밀 병기들을 차례로 풀었지만, 결정적 한 방을 먹인 것은 제라피너스의 부대였다.
후방부터 중요 요인들을 말살하는 제라피너스의 부대는 사우스 왕국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아군의 뒤를 노리는 암살자들.
그것만큼이나 섬뜩한 것이 없다.
성 안의 기사들이 학살당하고 제라피너스가 닫혀 있던 나머지 성문을 열어주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성벽에 배리어를 치고 있는 마도사들부터 깔끔하게 척살했다.
“전쟁은 끝났다.”
마도사들의 목을 취한 제라피너스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전장을 훑었다.
과연 사우스 왕국의 다이아 군대였다.
앞뒤로 적들이 나타나고 포위된 상황이건만 그들은 한데 모여 끝까지 응전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죽음일 뿐이었다.
잠시 군사들을 물린 하야트가 하이트레이스에게로 다가갔다.
“전쟁은 이미 끝난 듯하군.”
“아니. 내가 살아 있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수하들을 개죽음으로 내몰 생각인가?”
“개죽음이 아니다.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죽는 것이라면.”
“순순히 투항하면 목숨을 취하진 않겠다. 그러니 투항하라.”
“그럴 순 없지.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흐음…….”
하야트가 하이트레이스와 뒤편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도 하이트레이스를 따라 끝까지 전쟁을 치를 각오였다.
본래라면 이런 각오를 다진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6만이 넘는 군사들이 죽는 것은 하야트로서도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거기다 저들을 쓰러트리는데도 아군의 희생이 강요될 것이다.
“목숨을 바쳐 임무를 수행하려는 자네의 고집은 알겠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야. 과연 자네의 아집이 저 뒤에 있는 수만의 군사들의 목숨 값을 대신할 수 있을까? 자네 수하들의 뒤엔 그 가족들이 있네. 그것을 생각하게.”
“…….”
“이곳은 이스트 왕국의 영역이야. 우리는 지금 사우스 왕국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그러니 그대가 이곳에서 물러난다 하여도 크게 자네의 명성을 해치진 않을 거야.”
하야트의 말에 하이트레이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뒤편에 있던 그의 간부가 입을 열었다.
“하이트레이스님, 분하지만 저자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 모두가 목숨을 바쳐 이곳을 지켜야 할 만큼 이곳은 대단한 장소가 아닙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들이 사우스 왕국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하이트레이스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현재 이스트 왕국 내부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저희가 여기서 모두 죽고 이대로 웨스트 왕국과 이스트 왕국이 손을 잡고 우리 왕국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간부들의 말에 하이트레이스도 잠시 숨을 골랐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살짝 변화가 스쳤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던 하이트레이스가 이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무기를 놓았다.
“…좋다.”
마침내 하이트레이스가 응전을 포기했다.
그와 함께 다이아 군대도 더는 싸울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자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하야트는 승전보를 들고 아시테르를 찾았다.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적군 2만이 죽고 4만의 포로를 붙잡았습니다.”
“수고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네 명의 로얄나이츠가 한데 입을 모아 말했다.
아시테르가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한 것은 없다. 모두 그대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지 않습니다. 검제님께서 지켜봐주고 계신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검제님께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군사들의 사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검제라는 칭호가 갖고 있는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기에, 웨스트 왕국 군사들의 사기는 전투 전부터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로얄나이츠라는 거대한 기둥만으로도 이미 군사들의 사기가 드높았는데, 아시테르의 존재는 그것을 더더욱 끌어올려 버린 것이다.
어찌되었건 다이아 군대를 격파한 것은 정말 커다란 공훈이었다.
아시테르는 그들의 공훈을 크게 치하해주었다.
린 역시도 로얄나이츠들에게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이아 군대도 이곳에 발이 묶여버렸으니, 남은 것은 이스트 왕국 수도뿐이군.”
그래도 그곳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히스링 단장이었다.
전대 마법기사단장들과 형인 테오도라까지 함께였으니 크게 변수가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카이드와 자비토도 그곳에 남겨두고 왔다.
여차하면 카이드가 그들을 도와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카이드만으로 괜찮겠어? 그 녀석이 강한 건 맞지만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낼 순 없을 텐데…….”
“그래서 부르라고 했어.”
“뭘?”
“카이드도 혼자가 아닌 것 알잖아.”
“설마 그쪽 사람들을 부르라고 한 거야?”
“응.”
아시테르가 웃으며 답하자 에스파가 입가를 실룩대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이 재밌던 린이 에스파에게 슬쩍 물었다.
“대체 뭔데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아시테르가 말한 사람들 때문에요.”
“그게 왜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카이드가 원래 뭐하던 놈이었는지…….”
린이 맑은 눈동자를 꿈뻑거리며 에스파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스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카이드는 원래 무법지대 벨제부트의 주인이었던 놈이에요. 아시테르는 지금 카이드가 그들을 끌어다 싸우는 것을 허락해주었다는 얘기고요.”
“네…? 무법지대요?”
“말도 마요. 거긴 온갖 범죄가 일어나도 상관없는… 오직 힘의 논리로만 지배받는 세상이었어요. 사실 이스트 왕국 도처에 그런 작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긴 하죠.”
“재밌네요. 힘의 논리로 지배받는 세상이라니…….”
린이 하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툭툭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파가 뒤로 깍지를 끼며 몸을 뒤로 젖혔다.
“뭐, 그것도 사실 예전의 얘기에요. 그곳 주인이 바뀌면서 거기도 꽤나 바뀌었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저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요.”
“네? 주인이 바뀌었어요? 그게 누군데요?”
“여기 있잖아요.”
에스파가 턱짓으로 아시테르를 가리키며 웃었다.
아시테르도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