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1차 브레이크 (2)
심상치 않은 전조가 일어나고 있었다.
붉은 게이트에서 자꾸만 강한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붉은 게이트의 몸집도 이제는 어지간한 성문 이상으로 커져버리고 말았다.
“마치 본격적으로 공격을 해오겠다는 신호같군.”
하야트가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헬레아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마기의 양이 심상치 않아요.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한 존재가 대기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흐음… 일단은 상부에 보고가 되어 있으니 다른 조치가 취해질 겁니다.”
하야트는 쉬지 않고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단은 하야트와 헬레아가 이곳의 1차 방어선이 될 터다.
마녀들과 하야트의 군대가 한곳에 주둔해 있는 동안 또다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이번에도 이곳인가요!?”
“아니요. 게이트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대체…….”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하야트와 헬레아가 동시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 하늘에도 커다란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것을 보며 하야트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늘에도 게이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군…….”
“더 큰 문제는 저기서 나오고 있는 마수들입니다.”
거대한 날개가 달려있는 마수들이 대거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적들이 하늘 위에서 나타나자 군사들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기사들은 멍하니 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마나 소드를 다룰 수 있다곤 하나 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공중에 저렇게 날아다니는 마수들을 상대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때문에 군사들은 한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게이트로 튀어나오는 마수들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도사들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급하게 마법을 준비해 마수들을 향해 날렸다.
몇몇 마법들은 마수들의 몸에 적중했지만 대부분은 허공을 날랐다.
놈들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생각보다 마법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마력을 아껴라! 마력을 낭비하지마!”
보다 못한 몇몇 지휘관들이 마도사들을 보며 외쳤다.
실력 있는 마도사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수준이 조금 부족한 마도사들은 그야말로 마력 낭비나 다름 없었다.
그때 인간들을 향해 날개 달린 마수들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키야아아오오오!”
“꺄아아아!”
놈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군사들을 공격했다.
“무엇하는 거냐!? 방패로 놈들의 공격을 막아라!”
“놈들이 낮게 내려왔을 때를 노려라!”
“그때 공격을 가하는 거다!”
지휘관들의 외침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창과 검을 들어올렸다.
몇몇 군사들은 방패를 들어 놈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콰앙!
쿠구궁!
발톱이 방패를 찍고 커다란 부리가 아군 병사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단단한 방패도 발톱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지기 일수였다.
하물며 인간이 입고 있는 갑옷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발톱에 그대로 몸이 반절 잘려나가는 이도 있었다.
그 참혹한 현장을 보며 구역질을 참지 못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래도 지휘관들의 빠른 명령 덕분에 군사들은 마수들에 충분한 저항을 할 수 있었다.
마수들도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인간들의 끈질긴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개중에는 날개를 다쳐 추락하는 녀석들도 생겨났다.
쿠웅!
마수가 바닥에 떨어지자 기사들과 군사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수 자체도 덩치가 큰데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가 건재해 지상에서도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콰아앙!
그때 누군가 이곳으로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인간들을 향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던 마수가 그대로 반절 잘려나가버렸다.
“비켜라.”
군사들 틈으로 질주한 네이셔가 마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끝에서 뻗어나간 바람의 칼날이 다른 마수를 죽였다.
네이셔는 멈추지 않고 주변에 보이는 모든 마수들을 베어넘겼다.
“흐음… 하늘을 나는 마수는 상당히 성가시긴 한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곧바로 달려오긴 했지만 네이셔 또한 어디까지나 지상에 있는 마수들만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하늘에서 마수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기로 점철된 덩어리들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에 맞은 병사들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핏물이 사방에서 튀고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를 본 네이셔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저 새끼들… 하늘에서 공격도 가능한 건가!?”
마도사들이 마법으로 놈들의 공격을 방어해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공격을 방어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
“검제님이다!”
“검제님이 오셨다!”
“검제님이 보인다!”
군사들의 외침에 지휘관들도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부터 빠른 속도로 날아온 아시테르가 게이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검제님께서 이곳에 왜…….”
“근데 검제님이 나타난다고 해서 별 수 있으려나…….”
“검제님도 검을 다루는 검사잖아? 그럼 우리랑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말아라. 검제님이 이곳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미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잖아.”
실제로 아시테르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기사들과 병사들의 표정이 훨씬 더 좋아졌다.
우렁찬 함성 소리 속에서 아시테르는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를 노리는 몇몇 마수들이 저공비행을 택했다.
“고마운 일이네.”
아시테르가 뛰어올라 놈들 중 하나를 베었다.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듯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몸이 두동강이 난 마수가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아시테르는 가볍게 뛰어올라 마수 위로 올라탔다.
갑자기 자신의 등에 탄 아시테르를 보며 마수가 괴성을 질렀다.
“시끄럽다.”
아시테르가 검으로 마수의 날개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균형을 잃은 녀석이 바닥으로 곧장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시테르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마수들을 차례로 베어냈다.
이어 일정 고도에 다다랐을 때 그가 기운을 개방했다.
쿠우우우우―――!!!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무거워진 공기가 마수들을 일시에 짓눌렀다.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에 마수들이 당황해 괴성을 질러대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에 결국 하늘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놈들 중 하나를 붙잡은 아시테르가 안전하게 대지로 내려왔다.
그가 잠시 움직였을 뿐인데 일순간 하늘에 공백이 생겼다.
아시테르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탓이다.
“우와아아아!”
“검제님 만세!”
“검제님께서 마수들을 처리하셨다!”
“대단해……!”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찬사를 쏟아냈다.
지휘관들도 아시테르의 신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반응을 뒤로 하고 아시테르는 곧바로 세아츠리스를 찾았다.
이미 아시테르가 있는 곳 근처로 와있던 세아츠리스가 눈짓으로 답했다.
“부탁할게 세아츠리스.”
“맡겨두세요.”
세아츠리스가 양팔을 벌리자 대지위로 굵은 줄기들이 뻗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적들이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가 올라가면 된다는 아시테르의 말에 세아츠리스가 자청해 나선 일이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거대한 계단이 하늘로 이어졌다.
뒤늦게 세아츠리스가 하려는 것을 이해한 마도사들이 그녀의 마법을 도와주었다.
세아츠리스 개인의 힘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다른 마녀들과 마도사들이 도와주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지형이 바뀌고 있었다.
“선봉대는 나를 따라라.”
네이셔가 만들어진 길 위로 발을 내딛었다.
이 길의 끝은 하늘이었다.
그들은 세아츠리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계단 위에서 하늘을 나는 마수들과 용맹히 싸웠다.
가까워진 인간들이 불쾌했는지 놈들이 아예 이곳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관없다.
놈들의 몸에 검이 닿을 수만 있다면 그다지 무서울 것도 없었다.
네이셔와 그의 수하들이 거대한 계단 위에서 하늘을 나는 마수들과 싸우고 있을 때 아시테르는 붉은 게이트 앞에 섰다.
“이제 오는 거냐.”
이곳에서 느껴지던 거대한 마기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 정도 되는 크기로 몸집을 키운 붉은 게이트가 결국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시로 터지는 스파크 속에서 대규모의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미 붉은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시테르가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라라라랑―――!!!
새하얀 빛줄기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마수들 중 가장 선두에 있던 녀석이 아시테르의 검격을 받아내었다.
이에 아시테르의 눈썹이 순간 꿈틀였다.
자신의 일격을 저렇듯 간단하게 막아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인사가 제법 거칠군. 이게 인간이라는 존재인가?”
거구의 마수가 형형한 눈빛으로 아시테르를 노려보았다.
주걱턱처럼 커다란 턱이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푸른 로브를 뒤집어 쓴 마수가 커다란 검을 들어올렸다.
“네가 인간들의 대장인가?”
“그렇다.”
“흐음… 인간들도 제법 강하구나.”
마수가 웃었다.
그러자 뒤편에 시립해 있던 늑대처럼 생긴 마수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이어 도마뱀을 닮은 마수들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시테르의 뒤에 시립해 있던 기사들이 마수들을 향해 일제히 뛰어들었다.
아시테르는 홀로 서서 눈앞에 있는 마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서 가장 강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습격에서 가장 강한 마수는 바로 눈앞에 있는 저녀석일 터다.
놈도 아시테르를 인지한 상황이라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내 이름은 루이스올. 여기 있는 선발대의 대장이다.”
“선발대의 대장이라고?”
“그렇다.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은 만큼 왕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자신을 루이스올이라 소개한 마수가 이쪽을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검신의 중앙은 칠흑색이었고 겉은 금색과 붉은색이 절묘하게 조화된 특이한 검이었다.
마수도 양손으로 들 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아시테르도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푸르르!”
동시에 이카루스가 아시테르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시테르는 자연스레 이카루스의 위로 올라탔다.
그러자 이카루스의 갈기가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이카루스를 본 루이스올이 입을 열었다.
“특이한 녀석이로군.”
아시테르의 마력을 받은 이카루스의 안광이 푸르게 물들어갔다.
한 차례 투레질을 한 이카루스가 빠르게 움직였다.
아시테르도 어느새 검을 뽑아 번쩍 들어올렸다.
루이스올은 그 자리에 서서 아시테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후우우웅―!
아시테르의 검끝에 환한 빛무리가 일었다.
환하게 빛나는 검의 형상을 보며 루이스올이 눈빛을 달리했다.
“마력이 아닌 영기를 사용하는 자였군.”
거기다 영기의 양이 심상치 않다.
루이스올의 검에서도 강한 마기가 폭사되었다.
슈콰아아아―――!!!
후우우웅!
콰르르르릉―――!!!
두 개의 검이 부딪히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센 충격이 일었다.
이카루스를 탄 아시테르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검에 실린 위력은 루이스올이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도 칠흑빛 검신이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놀랍군.”
인간 세상에 발을 들이자마자 처음 상대하는 인간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스올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기 위해 양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아시테르의 검이 환한 빛줄기를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