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1차 브레이크 (3)
놀란 루이스올이 황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슈콰아아앙―――!!!
뒤이어 밀려온 엄청난 기운이 루이스올을 덮쳤다.
두 눈을 부릅뜬 루이스올이 아시테르를 노려보았다.
손끝부터 전해지는 이 뜨거운 고통과 묵직한 감각에 절로 이를 악물게 되었다.
아시테르는 계속 버텨볼 수 있으면 버텨보라는 듯 연격을 펼쳤다.
콰아아앙!
쿠우우우우우웅!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루이스올의 몸이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서야 루이스올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인간은… 마신급이다!”
마신이라 불리는 마수들이 몇 있다.
그들은 루이스올이 있던 세계에서도 한 지역을 지배하는 지배자들.
아시테르는 그럴만한 힘을 갖춘 존재였다.
입술을 굳게 다문 아시테르도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예 찍어 누르려는 생각이었는데 루이스올은 생각보다 자신의 검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물론 이미 여기저기 커다란 부상을 입은 탓에 제대로 된 전투는 힘들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루이스올은 멈추지 않고 아시테르에게 검을 겨누었다.
“보고 계십니까 위리놈님!”
루이스올이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돌연 눈물을 흘리던 루이스올이 다시 한 번 아시테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슈와아아아―――!!!
루이스올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달라졌다.
아시테르도 자리에 멈춰서서 검을 들어올렸다.
이카루스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루이스올을 향해 질주할 준비를 마쳤다.
환희에 가득찬 표정을 짓던 루이스올이 검을 한껏 치켜들었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녀석이 아시테르를 향해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아시테르도 검을 치켜올리며 루이스올의 검격을 쳐냈다.
뒤이어 루이스올이 마기를 개방하자 사방으로 칠흑빛 마기가 뻗어나갔다.
묘한 위화감을 느낀 아시테르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루이스올은 아시테르를 붙잡듯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루이스올 때문에 아시테르도 쉽사리 이곳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곁에 있던 카이드가 아시테르를 도우러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본 아시테르가 다급히 외쳤다.
“오지마라 카이드!”
“……?”
갑작스런 외침에 놀란 카이드가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쩌저저적―!
루이스올의 몸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에 존재하던 마기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설마…….”
루이스올의 꿍꿍이를 읽은 아시테르가 다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녀석을 선봉대의 대장으로 꼽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자 그의 영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휘이이이잉―――!!!
찬란한 빛이 순식간에 사각형의 베리어를 만들었다.
루이스올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베리어를 보며 루이스올이 피식 웃었다.
“그 사이에 내 노림수를 읽었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구나, 인간.”
키이이이이이이잉!
파바바바방―――!!! 퍼버버버벙!!!
빨갛게 달아오르던 루이스올의 몸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아시테르가 전심전력으로 폭발의 위력을 줄이려 했다.
그가 만들어낸 베리어 안에서 폭발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크으으!”
아시테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나 강한 마기를 품었는지 폭발의 위력은 대지가 요동칠 정도였다.
쿠르르릉―――!!!
파콰아앙!!!
결국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베리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한순간 터져버리고 말았다.
단신으로 막아내기에 폭발의 힘이 워낙 강대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쇄폭발의 대부분을 막아낸 터라 폭발은 겨우 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로 강한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검제님! 괜찮으십니까!?”
놀라 달려온 아르키나가 황급히 수하들을 불렀다.
그녀의 부관과 수족들이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차륜진을 완성했다.
“후욱… 후욱!”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아시테르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무리하게 영기를 사용한 탓에 호흡이 쉽게 돌아오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피해를 최대한 줄였다는 점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눈앞에서 수많은 군사들을 잃을 뻔했다.
“나는 괜찮다.”
아시테르의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몸 안이 뒤틀리는 느낌에 쉬이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아시테르의 상태를 짐작한 아르키나가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검제님을 지켜라!”
“예!”
“예!”
“예!”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하나의 진이 완성되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몇몇 기사들이 이곳으로 다가왔다.
카이드는 눈치 빠르게 그들과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벌써부터 부상이나 입다니… 방심했구만 방심했어.”
혀를 차며 빠르게 이동하던 카이드가 한쪽에서 멈춰섰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린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린 또한 아시테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던 찰나였기에 당장 카이드의 팔을 붙잡았다.
“최대한 빠르게 간다.”
아시테르가 걱정되었던 것은 카이드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린을 업자마자 빠르게 이동했다.
몇몇 마도사들이 황급히 다가와 카이드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카일라이드가 손을 휘저었다.
“우리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저 사내가 직접 모시는게 더 빠를 거다.”
카일라이드가 눈매를 좁혔다.
조금 전 폭발은 솔직히 말해 카일라이드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자신이 저 폭발을 막으려 해도 과연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헌데 아시테르는 몸을 사리지 않고 저 거대한 폭발을 단신의 힘으로 막아내었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르노어가 넌지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검제께서 지나치게 몸을 사리질 않으시네.”
“흐음…….”
“솔직히 말해 이번 폭발을 막아낸 것으로 많은 군사들이 살았다는 점은 다행인 일이나, 만약 이 폭발을 막아내는 대신 우리는 검제님을 잃었다면… 그건 사실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네.”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검제께서도 자신 있으셨을테니 나선 것 아니겠나.”
“자신 없어도 나서실 걸세. 검제께서는 그런 분이니까.”
카일라이드의 말에 르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벽이 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고 물러날 아시테르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 벽을 넘거나 뚫어내려 할 사람이었다.
“근데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건가?”
“모르겠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검제님을 가장 먼저 잃을 수도 있네. 저 안에 어떤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지금, 검제님께서 벌써부터 나서서 힘을 소비하게 만들 수는 없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러니 르노어 지금은 그대가 나서주게. 저 마수가 죽고 뒤에 다른 마수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어.”
“좋아. 그렇게 하지.”
카일라이드의 판단에 르노어가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서자 자연스레 그의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르노어의 군대가 움직인 것은 아군 군사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르노어님이다!”
“르노어님께서 움직인다!”
“가자!”
군사들이 물밀 듯 밀고 들어오는 마수들을 역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창칼이 오가고 피가 사방으로 튀는 아수라장 속에서 르노어는 거침없이 전장으로 돌진했다.
그의 검에이 물결처럼 찰랑이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파도가 몸을 일으켜 마수들을 일시에 덮쳤다.
르노어의 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수들의 몸에 실선을 만들어냈다.
촤라라락―――!!!
핏물이 튀고 마수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냈다.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깜빡이고 나니 자신의 핏물이 허공에 튀어있을 뿐이다.
르노어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전장을 누볐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광경은 결코 잔잔하지 않았다.
마치 폭풍의 눈에 홀로 있는 듯한 르노어를 보며 동료 기사들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르노어의 뒤를 따르는 그의 기사단 또한 용맹무쌍하기 그지 없었다.
르노어만큼이나 막강한 힘을 드러내는 그들이 짐승처럼 생긴 마수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순간만큼은 이것이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살육의 현장으로 보였다.
그만큼 르노어와 르노어의 군대는 강했다.
“르노어님이 움직여주셨구나!”
아르키나가 상황 판단을 빠르게 마치는 동안 어느새 언노운 기사단도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뭉쳤다.
아시테르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에스파가 그를 찾았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뭔 일이야. 네가 이렇게 부상을 당하고.”
“별 것 아니야.”
“별 것 아니라도 일단은 쉬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에스파의 뒤편에서 걸어나온 라빈이 말했다.
아시테르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니 제대로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른 외상은 없는 것 같아 반쯤은 안심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비켜!”
창을 들고 일시에 마수들을 휩쓸어버린 카이드가 린을 데리고 이곳에 도착했다.
린은 카이드의 등에서 내리자마자 아시테르에게로 달려갔다.
“아시테르!”
“린?”
린의 목소리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를 바라보는 린의 눈동자는 이미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피를 이렇게나 많이…….”
“난 괜찮아. 그냥 속이 좀 놀란 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피를 토하면서도 속이 놀랐다는 정도로만 표현하냐.”
에스파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순간 진 바깥을 살폈다.
“다들 여기에 와있으면 어떻게 해. 전장의 상황은?”
“르노어님이 나서주었어.”
“르노어님이?”
“예. 지금 전방은 르노어님의 군대가 압도적으로 마수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헌데 정말 이게 다일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마수들의 힘이 약하긴 합니다.”
크로마제와 반키라스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요란스럽게 준비한 것 치고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수들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테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미 비체에게 들어 놈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약한 놈들부터 내보내지는 거야.”
“내보내지는 거라고……?”
“그래. 밀려나는 거지. 더욱 강한 마수들에게.”
“그럼 지금 튀어나오는 마수들은…….”
“앞으로 나올 마수들보다 약하다는 얘기지.”
린의 두 손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따스한 마력이 아시테르를 감싸주었다.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아시테르가 한쪽을 바라보았다.
선봉대의 대장을 맡았다는 루이스올은 분명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듯 보였다.
그 말은 놈들의 우두머리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서서히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될 거다. 다른 군대에서는 연락 없었어?”
“노스 왕국의 군사들이 이곳으로 오다 게이트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야.”
“흐음… 그곳에서도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겠네.”
“응. 투사들이 한데 뭉쳐 마수들과 교전중이라고 하더군.”
“북쪽에서도 나타나고 서쪽에서도 나타났다라… 설마 이어서 동쪽과 남쪽에도 게이트가 열릴려나.”
“그렇겠지.”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게이트가 또다시 요동쳤다.
이를 본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또냐……?”
게이트가 요동칠 때마다 마수들이 쏟아져나왔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기에 많은 군사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아시테르가 말했다.
“모두 준비해. 이제 2차 공격이 시작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