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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90화 (390/424)

390화 첼룬 왕국의 전력

아시테르가 회복하기 위해 전선의 뒤편으로 물러났을 때 게이트에서 또다시 마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군대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인간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수가 형형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위는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하다.

그 말은 인간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여기서 전멸했다는 말이다.

놀라운 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1차로 나간 군대가 제법 인간들의 영토를 집어삼켰을 줄로 알았는데 이제보니 이곳을 벗어나질 못한 상태였다.

“놀랍구나 놀라워…….”

인간들의 능력이 이 정도였던가.

그게 아니면 1차로 내보낸 열등종들의 문제였던가.

뭐 아무렴 상관없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차례였으니까.

“시작해보자꾸나.”

쿠웅!

커다란 검을 내려치자 대지가 한 차례 울렸다.

그러자 뒤에 시립해 있던 망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기를 받은 마수들의 시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카이드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시체가 움직이잖아…….”

“네크로맨서인가?”

“이럴 수가… 이 많은 군대를 다시 일으키다니…….”

“저 녀석이 2차로 튀어나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로군.”

언노운 기사단이 전장을 살피며 말했다.

놈의 손짓에 따라 망자들과 되살아난 시체들이 움직였다.

죽음의 군대를 보며 웨스트 왕국 기사들과 병사들도 기가 질린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작 반나절 전에 전멸시킨 군대가 눈앞에서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고통도, 감정도 없는 언데드 상태였다.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렇게나 많은 수를 일으킨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였다.

눈앞에서 믿기 어려운 광경은 또 한 번 벌어지고 있었다.

그롸아아아아―――!!!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게이트에서 커다란 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회백색의 커다란 뼈가 움직이자 날개가 펼쳐졌다.

큼지막한 송곳니가 보이고 드래곤의 모습을 한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본드래곤…….”

숨결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생명체가 독기를 견디지 못해 녹아내려 버린다는 괴물이었다.

뒤를 이어 칠흑빛 기사들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까지 전투를 지켜보던 언노운 기사단이 나서려는 찰나, 강대한 기운이 이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마력은…….”

“마침내 왔나 보군요.”

세아츠리스가 뒤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을 뛰어넘어 마녀여왕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마력량.

이만한 수준의 마력량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몇 없다.

쿠우웅―!!!

성체의 드래곤이 전장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크와아아아!”

한 차례 울음을 터트린 헬라이번이 눈앞의 본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마침 놈도 헬라이번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우리 종족을 능멸하다니!”

잔뜩 분노한 헬라이번이 번뜩이는 용안으로 적장을 찾았다.

독특한 검을 들고 있는 검은 로브의 사내도 헬라이번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래곤인가. 근데 반쪽짜리로군.”

단번에 헬라이번이 하프 드래곤인 것을 알아본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쪽짜리라곤 하나 드래곤은 드래곤.

결코 쉽게 볼 수 있을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인간들이 믿고 있던 비장의 무기가 바로 저 녀석이었나.”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드래곤은 한 마리만 있어도 그 강함은 상식을 초월한다.

실제로 헬라이번이 드래곤 피어를 울리자마자 하급 언데드들은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이지를 상실한 언데드들이건만 우습게도 본능적인 습관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최상위 포식자가 눈앞에 있으니 온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하여간 쓸모가 없는 놈들이로군.”

혀를 찬 벨로가 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서 한 차례 진동이 울리자 상위 언데드들이 진격했다.

어차피 벨로가 이끄는 죽음의 군대는 상위 언데드가 메인이었다.

하급 언데드들은 그저 죽지 않는 시체들 수준에 불과했다.

일반적 수준인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조금 더 실력 있는 자들에겐 그저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벨로가 이끄는 상위 언데드들은 다르다.

놈들은 강한 마기를 지닌 만큼 그에 걸맞은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하위 언데드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던 기사들의 질주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벨로가 위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냐. 움직여라.”

그롸아아아아아아―――!!!

벨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본드래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커다란 뼈를 들어 올리자 헬라이번이 한발 먼저 응수했다.

콰아앙!!!

헬라이번의 발톱이 녀석의 뼈를 쳐냈다.

“크롸아아아!”

입가에서 뻗어 나간 불길이 본드래곤을 집어삼켰다.

헬라이번의 꼬리가 본드래곤을 연이어 강타했다.

쿠우웅!!!

쿠과가강!!!

헬라이번의 꼬리도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로 이루어져 있건만, 본드래곤의 뼈 또한 굉장히 단단한지 이렇다 할 상처도 생기질 않았다.

투콰아아아아아!!!

헬라이번이 주변으로 브레스를 내뿜었다.

섬광처럼 뻗어 나간 마력의 불길이 언데드 진영 한복판을 지나갔다.

화마에 휩쓸린 언데드들이 몸부림쳤다.

딱히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멈추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헬라이번의 브레스는 언데드 종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 당한 것을 복수하려는 듯 본드래곤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렸다.

이를 본 헬라이번이 기가 차 웃었다.

“설마 드래곤 브레스를 따라 하겠다는 거냐?”

그리고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본드래곤의 입가에 응집한 마기가 대량으로 발사되었다.

이를 보고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군대가 움직였다.

“막아라!”

대륙에 마녀들의 숲이 있다면, 그 이전에는 엘프들의 숲이 있었다.

그만큼 숲과 가장 친밀도가 높은 엘프들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몇 없는 고대종 하이엘프들이 숲의 힘을 빌렸다.

이 일대의 숲은 마녀여왕의 마력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숲의 모든 것들이 마녀여왕의 것은 아니었다.

엘프들의 기운에 반응한 숲이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헬라이번님과 함께 싸우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오랜 친구여.”

하이엘프 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의 나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웨스트 왕국 군사들도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나무가 몸을 일으킨 것도 놀라운데 나무의 줄기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걷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아츠리스의 마법처럼 나무의 줄기들이 엮이고 엮여 날아오는 본드래곤의 브레스에 맞섰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몸을 일으킨 나무의 수는 대략 300.

그러나 나무들은 언데드들을 상대로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엘프들은 나무에 올라 활시위를 당겼다.

파바바박!

퍼버버버벙!

엘프들이 쏘는 활이 언데드들의 몸에 박혔다.

활에 맞은 언데드들의 몸에서 씨앗이 발화되고 나무줄기가 피어올랐다.

그 특이한 광경에 이번엔 에스파도 두 눈을 반짝였다.

“세상에, 저런 활을 사용하다니…….”

“저건 또 뭐냐…….”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 활에 맞은 자리에서 꽃이 피고 나무가 피어나고 있어!”

“참나… 기가 막힌 광경이네…….”

“몸에서 뼈를 뽑아대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에스파의 말에 라빈이 눈을 흘겼다.

솔직히 미리 알고 있으니까 다행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라빈의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충분히 마수로 오인할 만하다.

쿵!

쿠구구궁!!!

갑옷을 입은 하이오크들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들을 본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 순간 어리둥절했다.

게이트에서는 분명 죽음의 군대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언데드들이 아직도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하이오크 무리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그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

“아군이다! 공격하지마라! 첼룬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첼룬 왕국이 도착했다!”

“아군이다! 공격 중지!”

첼룬 왕국의 문장을 달고 있던 이종족 군사들이 대거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수는 웨스트 왕국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나 제각기 특이한 능력들이 있는 군대였다.

엘프군이 후방을 맡아 보조를 시작했고, 전방은 하이오크 군대가 나섰다.

뒤를 이어 적들의 후방에 침투한 다크엘프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어디 한 번 전투를 시작해볼까!”

“대장! 우리들은 뭘 하면 됩니까!?”

“나만 따라라!”

성인 평균 키에 반절만한 크기의 종족도 전장에 참여했다.

처음 그들을 보고 무시했던 병사들은 곧 자신들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수인족인 그들의 전투력은 사실 기대 이상이었다.

특이한 맹수를 타고 다니는 수인족이 빠르게 이동하며 언데드들을 죽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온다.

이종족들의 전쟁은 지금까지 보여준 인간들의 전투와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능력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알았다.

첼룬 왕국 군사들의 전투를 보며 새삼 감탄하는 자들도 있었다.

“저렇게 강했다니…….”

“지금까지 첼룬 왕국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다크엘프들은 끔찍하리만치 강한데요…….”

“선조들이 왜 첼룬 왕국을 경계했는지 알 것도 같군.”

이종족들의 힘에 언데드 군단의 기세도 서서히 꺾이고 있었다.

벨로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특히나 본드래곤이 마음껏 날뛰어 주어야 하는데 그 앞을 가로막은 헬라이번의 무력이 압도적이었다.

“이건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군…….”

그럼에도 벨로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사실상 그의 군대가 제대로 활약하는 것은 지금부터였다.

쓰러졌던 언데드들이 다시 일어나고 죽은 인간들의 시체도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상관없다.”

벨로의 머리 위로 칠흑빛 왕관이 생겨났다.

그가 검을 번쩍 들어 올리자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르며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시체들이 움직여 벨로의 앞에 계단을 쌓아주었다.

그곳을 오르며 벨로가 인간들을 쳐다보았다.

“나는 망자들의 왕 벨로다. 내가 있는 한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벨로의 마기가 사방으로 뻗치자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와이번 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 기괴한 모습들이 웨스트 왕국 군사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놈들은 하늘 위에서 전격을 내리치고 불을 뿜는 등, 마법을 사용할 줄도 알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헬라이번이 웃었다.

“하늘이라면 이쪽도 있지.”

저놈들이 뼈만 남은 와이번이라면 이쪽에는 진짜 와이번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와이번을 타고 전투를 치르는 와이번 기사들도 존재했다.

첼룬 왕국의 최고 무력집단이라 할 수 있는 와이번 기사단이 출격했다.

드워프가 만든 장비들로 완전히 무장한 그들이 언데드들을 향해 용맹히 뛰어들었다.

와이번들이 빠르게 비행하며 언데드들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그 위의 기사들도 검을 휘두르며 하늘에 떠 있는 언데드들을 공격했다.

그 사이 헬라이번은 다시 한 번 본드래곤을 완전히 제압하며 마침내 벨로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콰아아앙!

“이제는 네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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