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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92화 (392/424)

392화 공격대

한순간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재로 사라졌다.

처음 보는 엄청난 마법 때문에 웨스트 왕국 군사들과 첼룬 왕국 군사들도 일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되기라도 한 것처럼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벨로 또한 갑자기 증발한 언데드 군단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심지어 그의 몸통도 반절이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드래곤의 마법이라 이건가…….”

난생 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벨로의 눈에는 빛이 번뜩임과 동시에 수많은 언데드들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헬라이번의 번뜩이는 두 눈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리석은 망자의 왕이여. 감히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하지 말거라.”

헬라이번의 주변으로 고대 룬어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이를 본 벨로가 검을 꽉 말아쥐었다.

“내게 감히라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슈와아아――!!!

벨로가 검을 휘두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어둠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헬라이번이 마법으로 벨로의 공격을 차단하려 했다.

파콰아아앙―――!!!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헬라이번의 마법을 집어삼키듯 몸을 불린 어둠이 헬라이번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음!”

고대 마법을 파훼한 어둠이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헬라이번을 공격했다.

헬라이번의 방대한 마력이 커다랗고 단단한 베리어를 만들어냈다.

쿠우우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베리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둠은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해서 몸집을 불렸다.

마치 무언가를 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몰아치는 어둠의 소용돌이를 보며 많은 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위급 마법을 구사하는 헬라이번이 저 어둠을 어쩌지 못해 피해 다니는 형국이 펼쳐진 것이다.

척 봐도 저 어둠은 굉장히 위험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때 헬라이번의 베리어가 결국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벨로가 환희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네놈만은 데리고 가주마!”

모든 마기를 다한 일격이었다.

심지어 저 어둠은 벨로의 마지막 생명력이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한 일격이니만큼 무조건 헬라이번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헬라이번의 존재는 마수들에게도 상당히 껄끄럽고 위험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

“크하하하하!”

벨로가 만들어낸 어둠이 헬라이번을 집어삼키려들 때 누군가 헬라이번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희들!? 뭐 하는 거냐! 비키거라!”

그들을 알아본 헬라이번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우리들은 모두 헬라이번님께 목숨을 빚진 자들입니다.”

“저희들보다 헬라이번님이 멀쩡히 살아계시는 게 이 전쟁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헬라이번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눈앞에 짓쳐오는 어둠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힘을 쏟아냈다.

어둠은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 삼켜버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헬라이번은 순간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저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작 저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헬라이번이 울부짖듯 포효했다.

거대한 드래곤의 포효는 보는 이들마저 순간 울컥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 상황은 모두가 보았다.

헬라이번을 위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든 전사들의 모습.

“우리 기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종족이라고 해서 우리들과 다른 게 아니었군…….”

“결국 우리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똑같은 것을 보며 똑같은 것들을 느끼는 것 아니겠나.”

그들의 희생을 본 몇몇 기사들이 고개를 떨구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헬라이번의 포효엔 슬픔이 가득했다.

반면 벨로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을 다한 일격이었다.

당연히 헬라이번을 죽일 때까지 저 어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자발적으로 헬라이번을 대신해 죽는 것을 택한 존재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수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위 포식자가 죽으면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그뿐이다.

“제기라아아아아알!”

분노한 벨로도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그의 몸이 재가되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 벨로가… 나 벨로가……!”

망자들의 왕이라 불렸던 벨로치고는 볼품없는 최후였다.

재가 되어 벨로가 사라지자 주인을 잃은 언데드 군단도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그들을 유지하던 망자의 왕관도 더이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끄… 끝난 건가…….”

망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웨스트 왕국 군사들과 첼룬 왕국 군사들이 마침내 병장기를 쥐었던 손에 힘을 뺐다.

언데드 군단이 남긴 광경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죽은 동료들의 시체 중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모두 벨로의 힘에 의해 되살아나 아군 군사들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이 때문에 몇몇 군사들이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 등을 맞대고 싸웠던 동료를 향해 창칼을 휘둘렀으니 그럴 만했다.

거기다 언데드 군단 때문에 이번엔 웨스트 왕국군과 첼룬 왕국군도 꽤나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앞으로 어떤 마수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너무나 힘든 싸움이 되고 말 겁니다.”

“맞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게이트가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검제님. 사우스 왕국 측에서 연락을 전해왔습니다.”

기사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돌렸다.

이스트 왕국보다 사우스 왕국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의 상황은?”

“놀랍게도 네 개의 트럼프 군단이 모두 출격했습니다.”

“네 개 군단 모두?”

“예. 저도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확인해봤는데… 정말로 네 개 군단 모두 움직였습니다. 거기다 사우스 왕국의 마도공학 무기들도 각 진영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기사의 보고에 여러 로얄나이츠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나 사우스 왕국과 인연이 질긴 이스트 왕국쪽 사람들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우스 왕국이 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거지?”

“자기들도 위기의식을 느꼈나?”

“아니면 이쪽의 치열한 전투라도 훔쳐봤나 보지.”

“나는 당연히 그놈들이 뒤통수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우스 왕국에 대한 각각의 견해들이 오갔다.

뭐가 어찌 되었건 그들이 네 개의 군단을 움직여준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사우스 왕국의 병력이 부족했더라면 이쪽에서 그 병력을 채워 넣을 뻔했다.

“정말 다행이야.”

“이스트 왕국도 방금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다른 기사에게 보고를 받은 카일라이드가 말을 꺼냈다.

계속 얘기해보라는 듯 아시테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스트 왕국 또한 모든 마법기사단을 움직였습니다.”

“이스트 왕국이……?”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모든 마법기사단을 움직였다고요? 그랬다간 이스트 왕국의 치안이나 다른 것도 무너질 텐데…….”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히스링 군단장입니다.”

“거기다 히스링 군단장이 바로 움직였다라…….”

“부단장으로는 검제님께서도 잘 아는 인물입니다.”

“칸인가?”

“아니요. 검제님의 혈육이신 테오도라님입니다.”

카일라이드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인 테오도라가 많은 입김을 불어 넣었을 것 같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이스트 왕국은 아시테르에게 최고의 성의를 보여주었을 터다.

이스트 왕국의 독립에 가장 커다란 공훈을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아시테르였으니 말이다.

비록 그가 이스트 왕국에 머물고 있진 않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아시테르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스트 왕국의 왕족과 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시테르로서는 더이상 이스트 왕국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들은 아시테르에게 보은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진짜… 다들 감동이네.”

“역시 테오도라님!”

“과연 스승님의 형님이십니다. 거기다 히스링 군단장님도 너무나 멋지십니다.”

언노운 기사단 단원들이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모두가 나서주었으니 이제는 이쪽 차례였다.

예상했던 대로 아포칼립스 문을 통해 이쪽 세계로 건너온 마수들은 사방에서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오는 마수들을 상대하려 아시테르는 미리부터 촘촘한 포위망을 씌워놓았다.

마녀여왕이 그 포위망의 중심을 맡아주었다.

“두 번째 웨이브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반격에 나설 차례입니다.”

“맞습니다. 전장을 계속 이곳으로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이제 모든 준비가 갖춰졌으니 놈들에게 한 방 먹이러 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얄나이츠들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사실 언제까지고 놈들의 공격에 대비하기만 할 순 없었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놈들이 더이상 이쪽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면 놈들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이제 우리는 게이트를 열고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게이트 안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몰라. 어떤 마수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

“각오하고 있는 바입니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로얄나이츠들의 각오가 남달랐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이는 하야트와 루시진이었다.

“공격대의 선봉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후후. 물론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로군요.”

“검제님의 명령이시라면.”

하야트와 루시진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어 아시테르가 헬라이번을 쳐다보았다.

“이번 전쟁으로 첼룬 왕국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병력을 정비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헬라이번님도 조금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테르가 헬라이번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수를 쓴 건지 저 단단한 헬라이번의 팔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쯧. 부끄러운 일이로군.”

헬라이번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안타깝게도 아시테르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의 말대로 첼룬 왕국은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첼룬 왕국의 군사들은 강했지만 불사의 언데드 군단은 끈질겼다.

하지만 덕분에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 마녀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콰트로 마녀 중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사실 하야트와 루시진 군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마도사의 존재였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실력 있는 마도사들이 필요했다.

마녀들이라면 그 빈자리를 충분히 메워주고도 남는다.

본래라면 카일라이드의 마법군단을 일부 떼어주려 했지만, 고맙게도 마녀들이 먼저 나서주었다.

그녀들 역시 이 일을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

마녀들이 먼저 나서서 말해준 덕분에 아시테르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당장 내일 게이트 안으로 선봉대가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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