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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96화 (396/424)

396화 첫 패배

이스트 왕국이 닝고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무렵, 사우스 왕국 또한 마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마수들을 보며 아시테르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로… 마수들이 대거 나타났습니다.”

“흐음…….”

“거기다 마수들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녀석들이에요.”

“쳇… 뭔가 이번에도 진 기분이군.”

바이헤른이 옆을 살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곳에서도 게이트가 열리며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마수들이 나타나 사우스 왕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은 왜 저리 열심이야?”

“모르겠네… 그 사이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보지.”

“이스트 왕국에 붙잡혀 있었던 기억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나보구만.”

하이트레이스의 마법이 마수들의 중앙으로 떨어졌다.

그는 잔뜩 분노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마법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력적인 그의 공격에 마수들도 순간 몸이 경직될 정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와라.”

하이트레이스가 적진으로 뛰어들어 중력구를 난사했다.

칠흑빛 구체들이 마수들의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거센 폭발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며 마수들의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그런 구체를 무려 열 개나 발사한 하이트레이스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부터 자신에게 강한 살기를 드러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네놈이 이곳 인간들의 대장인 모양이구나.”

참으로 기괴하게 생긴 마수였다.

뼈다귀만 남은 팔이 무려 여섯 개나 달려 있다.

거기다 까마귀처럼 생긴 얼굴에는 반쪽만 가린 가면이 달려 있었다.

놈이 하이트레이스를 보며 웃었다.

“맞지?”

“그게 중요한가? 그보다 너… 어떻게 우리들의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크흐흐흐. 나는 너희들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사념을 너에게 전하는 거지.”

마수가 웃으며 여섯 개의 팔을 펼쳤다.

각 팔에는 여섯 개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를 본 하이트레이스가 인상을 구겼다.

“마수 주제에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거냐.”

파앙!

그 순간 마수가 대지를 박차고 하이트레이스를 향해 돌진했다.

하이트레이스의 앞에 중력장이 펼쳐졌다.

마수는 그것을 꿰뚫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콰아앙!!!

물결치듯 흐른 마기가 중력장을 때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중력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하이트레이스가 손짓했다.

허공에 생겨난 칠흑빛 창들이 놈을 향해 날아갔다.

마수가 잠시 뒤로 물러나 그 공격들을 피해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팔을 둘러보았다.

분명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다.

그런데 놈이 만들어낸 방어막을 뚫어낼 수 없었다.

“재밌구나… 인간들도 호락호락하진 않다는 건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무미건조한 말을 내뱉은 하이트레이스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무거워진 대기가 마수를 강하게 짓눌렀다.

순간 놀란 마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가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할 정도로 전해져오는 압박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까짓 것쯤은…….”

“이제 시작이다. 멍청아.”

사방에 만들어진 중력장이 놈을 옥죄어왔다.

마수가 여섯 개의 팔을 이용해 무기를 휘둘렀다.

마기가 강한 어둠을 발산하고 있었다.

헌데 이 마기는 어느 순간 뚝 끊기며 제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이 엄청난 마력에 마수의 몸이 점점 찌그러들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이아 군대 군사들도 기겁했다.

척 봐도 보통이 아니게 강해 보였던 마수였다.

헌데 하이트레이스는 그 자리에 서서 저 마수를 압도적으로 쓰러트렸다.

마수의 두 눈에서 진물 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그만… 살려줘… 살려달…….”

하지만 녀석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이트레이스가 녀석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다.

“…아직 멀었다.”

죽어버린 마수를 보며 하이트레이스가 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아닌 아시테르였다면 저 마수를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직까지도 아시테르의 수준이 어디에 도달해 있는지 가늠이 잡히질 않았다.

그날 이스트 왕국에서 봤던 아시테르의 힘은 하이트레이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하야트와 아시테르 사이에 그리 커다란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하야트 또한 강한 사내였다.

헌데 아시테르와 카이드의 전투를 보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놀랐나? 저게 바로 웨스트 왕국 최강이라 불리는 검제님일세.’

하야트가 하이트레이스의 옆에서 속삭이듯 한 말이었다.

그날 하이트레이스의 뇌리에는 아시테르의 모습이 강하게 박혔다.

그의 검술이며 그가 사용하는 힘까지.

그리고 아시테르가 그만한 힘을 사용하게끔 만드는 카이드의 존재도 새삼 놀랍게 만드는 일이었다.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하이트레이스가 생각하기에 사우스 왕국에서도 아시테르를 이길 존재는 없었다.

아니, 이미 그는 탈인간의 경지에 올라있다.

그나마 마녀여왕쯤 되어야 아시테르와 호각을 이루며 싸울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막연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아시테르의 강함은 하이트레이스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더욱 성장하기 위해 이를 갈고 발악했지만, 머릿속에 비치는 아시테르의 뒷모습은 전혀 가까워지지 않았다.

“고작 이런 정도로는 안 된다.”

다시 마음을 다스린 하이트레이스가 마법을 펼쳤다.

이곳은 전쟁터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힘을 갈고 닦는 연무장이 되기도 했다.

다행이 이곳에는 마음껏 상대할 수 있는 마수들이 넘쳐났다.

그것 때문인지 하이트레이스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이아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다른 트럼프 군대들도 좀 더 수월하게 마수들과 전투를 펼칠 수 있었다.

하이트레이스의 눈부신 활약으로 남부 전선도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을 때 마침내 중앙에선 던전으로 들어갈 선봉대가 꾸려졌다.

하야트와 루시진, 그리고 콰트로 중 한 명이 군사들을 이끌었다.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커다란 게이트 앞에서 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출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길을 열어두고 군사를 보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아시테르의 말에 그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들이 아직까지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반대로 이쪽에서 공격에 나선 것이다.

하야트와 루시진이 가장 먼저 게이트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뒤이어 그를 따르는 군대와 마녀들도 출진했다.

아시테르는 뒤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까?”

“괜찮을 거라고 믿어. 곧바로 우리들도 뒤를 이을 거니까.”

“그래도 걱정이네… 하야트님과 루시진님이 강한 것은 맞지만… 저 안에도 어떤 마수들이 있을지 모르니…….”

“그러니까 이쪽도 준비를 서둘러야지.”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검제님. 동서남북으로 게이트가 열리며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쪽은 괜찮은데… 남부와 북부가 밀리는 것 같습니다.”

“동쪽은?”

“그쪽에는 의문의 검사가 나타나 마수들의 우두머리를 죽였다고 합니다.”

“의문의 사내?”

“네. 검에 빛을 담아내는 검사라고 하는데… 그 강함의 정도가 히스링 군단장 이상이라고 합니다.”

“히스링 군단장님보다 위라고?”

아시테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검에 빛을 담아내는 검사에 히스링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은 그가 알기로 단 한 명밖에 없다.

“아시테르……!”

린도 눈치챘는지 환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의 두 눈이 순간 붉게 충혈되었다.

“좀 더 자세히…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라.”

“네. 그게…….”

보고를 하던 기사가 들은 그대로를 설명해주었다.

달빛이 비추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아름다운 검술, 다부진 근육질 체격.

거기다 히스링 군단장과 아그리나 단장이 아는 눈치인 사내.

그렇다면 단 한 명밖에 없다.

아시테르가 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버지…….”

유미르가 맞았던 것이다.

아포칼립스 문 안으로 들어가 소식이 끊겨버렸던 아버지가 살아 있다.

그 한 문장이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것만으로 아시테르는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당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던 린이 그의 손을 감싸주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니… 거기다가 마수들의 우두머리까지 물리쳐 주시고…….”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강하신 분이니까.”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이런 말을 내뱉어놓고 유미르를 보기 위해 달려가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일을 내팽겨치고 달려온 아들을 유미르가 그리 반겨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꾸중이나 들을 터다.

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던 유미르였다.

그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시테르는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아무튼 아버지가 동쪽에 합류해 주셨다면, 이스트 왕국에도 커다란 힘이 되겠어.”

“그렇겠지.”

“으하하하! 축하한다 아시테르! 아버지께서 무사히 돌아오셨다니!”

“이제 거리낄 게 뭐가 있겠어요.”

“승기가 굳혀지고 있습니다!”

모든 전장에서 마수들을 상대로 수월하게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제 중앙군이 던전으로 들어가 놈들을 물리치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착실히 준비를 이어가던 때.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게이트 밖으로 누군가 빠져나왔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루시진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한쪽 팔이 잘리고 몸 여기저기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이를 보고 놀란 카일라이드가 서둘러 치유 마도사를 불렀다.

“루시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검제님을… 검제님을 불러다오…….”

“알겠네. 조금만 기다려주게!”

“크학!”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루시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소식을 들은 아시테르가 루시진이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루시진님!”

“검제님을… 뵙습니다…….”

루시진이 부들거리며 고개를 움직였다.

아시테르가 그런 루시진을 붙잡았다.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후후… 이런 볼품없는 모습으로 뵙게 되어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검제님… 저 안은 살아 있는 지옥도나 다름 없습니다…….”

“살아 있는 지옥도……?”

“아직 이곳으로 나오지 않은 괴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방심하지 마십시오… 특히나 머리에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는 괴물… 그 녀석은… 살아 있는 재앙이나 다름 없습니다…….”

“머리에 커다란 뿔……?”

아시테르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떠올렸다.

꿈속에서 나타나 자신을 바라보며 웃었던 마수, 위리놈이었다.

“설마… 그 자가 직접 움직였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닌 놈입니다…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야트는 전사했고… 마녀들은 놈들의 손에 붙잡혔습니다. 다른 군사들도 마수들의 손에…….”

루시진은 말을 모두 끝마치지 못했다.

허망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어떻게든 살아 돌아와 이 말들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야트와 다른 기사들도 루시진에게 뒤를 부탁한다며 그 괴물들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이제야 뒤늦게 수많은 감정들이 루시진을 찾아와 괴롭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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