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하야트의 시체
날이 밝자마자 르노어와 카일라이드, 카이드는 군사들과 함께 게이트 앞에 대기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 모두 아시테르에게 출진 신고를 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보인 르노어가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카일라이드도 그와 함께 가기 위해 뒤를 따랐다.
카이드가 뒤를 돌아보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가서 한바탕 날뛰고 오겠다 대장.”
“그래. 마음껏 휘젓고 와라.”
카이드가 피식 웃었다.
카이드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니 남은 군사들도 게이트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전신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끝나고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차가운 대지에 발을 디딘 르노어가 침음성을 삼켰다.
“이곳이 바로 어비스 던전인가…….”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던 르노어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마수 군단이라도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건만 놀랍게도 이곳 또한 전쟁터였다.
마수들끼리 싸우고 있는 광경을 보며 카일라이드도 어이없어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와… 완전 대박이네 여기도!?”
카이드가 두 눈을 빛내며 마수들의 상황을 살폈다.
게이트에서 인간들이 튀어나왔음에도 마수들은 이쪽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르노어와 카일라이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때 먼저 움직인 것은 카이드였다.
“나는 가서 좀 놀다 올게.”
두 사람이 말릴 새도 없이 카이드가 홀로 튀어 나갔다.
창을 들고 마수들의 사이로 파고든 카이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녕?”
한창 전투를 이어가던 마수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것보다 어째서 인간이 이곳에 있는지 그것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다.
“인간!?”
“그래. 나 인간이야.”
파아앙!!!
창을 휘둘러 마수를 베어낸 카이드가 다른 쪽을 쳐다보았다.
여기도 저기도 마수들 천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간지럽던 차였는데 너무나 잘됐다.
창에서 뻗어 나간 마기가 주변 마수들을 덮쳤다.
“크아아아!”
“쿠웨에에에에에!”
마수들의 비명이 들렸다.
카이드는 멈추지 않고 춤을 추듯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자기들끼리 싸우던 마수들도 카이드의 존재가 가장 위험하다 판단했는지 돌연 방향을 바꿨다.
놈들이 카이드를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각종 공격들이 이어지고 카이드는 웃으면서 그것들을 피해냈다.
“으하하하하! 이런 공격들 말고 더 재밌는 건 없나!?”
뭐가 그리 신난 것인지 카이드는 창을 꼬나잡으며 더 거칠게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하들이 르노어와 카일라이드에게 물었다.
“카이드님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괜히 마수들 사이에서 힘을 빼는 것은 아닐지…….”
“저는 검제님께서 저런 사람을 왜 곁에 두시는 건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들의 말에 르노어가 피식 웃었다.
“모르는 소리 말아라. 저 녀석은 지금 마수들의 이목을 일부러 끌어주고 있는 거다.”
“예?”
“저놈은 최종적으로 간결하게 창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지금 보아라. 놈은 최대한 화려하게 날뛰고 있는 중이지 않나.”
“아…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
르노어의 말대로 지금 카이드가 선보이는 기술은 화려하고 컸다.
마수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카이드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 틈을 타 움직이면 될 것 같구나.”
르노어가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도 천천히 움직였다.
주변은 온통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대체 여기서 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르노어와 카일라이드의 군대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동안 카이드는 여전히 수많은 마수들과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르노어님, 저기…….”
부관이 르노어를 불러 한쪽을 가리켰다.
마수들의 시체만 즐비하게 널렸었는데 이제는 인간들의 시체도 보이기 시작했다.
갑옷을 보아하니 모두 웨스트 왕국 군사들이었다.
“여기서 전멸한 것인가…….”
죽어 있는 그들을 보며 르노어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카일라이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이 지금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비켜라!”
기사 중 한 명이 검을 들고 뛰쳐나갔다.
몇몇 마수들이 인간들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기 때문.
기사들은 황급히 달려나가 시체를 먹는 마수들을 쫓아냈다.
르노어는 홀로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었다.
마수들에게 시체가 먹혔다 해도 수가 한참 모자랐다.
“죽은 지 오래된 이들이네. 아마 다른 이들은 더 깊숙한 곳에 간 모양인데…….”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하야트의 시체가 보이질 않아.”
“…….”
르노어는 하는 수 없이 군사들을 이끌고 더욱 안쪽까지 향했다.
그러자 서서히 마수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카이드가 아무리 시간을 끌며 놈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곤 하지만 이곳은 마수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 대기하고 있던 마수들이 이쪽으로 공격해온 것이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그만이다. 모두 진을 만들어라.”
르노어의 명령에 군사들이 서둘러 움직여 진형을 갖췄다.
마수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지만 르노어의 군사들은 차례로 진형을 바꾸며 효율적인 전투를 치렀다.
1열이 마수들의 공격을 막아내면 2열이 튀어나와 놈들을 공격했다.
뒤이어 3열이 또다시 튀어나와 마수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식이었다.
거기다 중앙에 위치한 카일라이드의 마도사 군단이 마법을 펼쳤다.
파콰아앙!!!
쿠와아아아아아앙―――!!!
화염구가 마수들을 습격하고 얼음 송곳이 놈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마도사 한 명이 카일라이드에게 다가왔다.
“카일라이드님……!”
“그래. 나 또한 느끼고 있다.”
사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아시테르에게 주의를 들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어비스 던전 안은 마소가 희박해 마력이 쉽게 모이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마법의 위력이 평소에 미치지 못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평소대로 마법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로 몇몇 지역에서는 마법을 거의 펼치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했었다.
“그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 것도 같군…….”
그래도 초위급 마도사들은 위력적인 마법을 캐스팅해낼 수 있었다.
르노어가 카일라이드에게 말했다.
“무리할 것 없네. 마도사들은 마력을 아끼면서 우리들을 보조해주는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하긴… 지금 애써 마법을 펼치는 것은 어쩌면 마력낭비일지도 모르겠어.”
카일라이드도 르노어의 말에 동의했다.
르노어와 카일라이드는 마수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안쪽으로 진격했다.
마수들도 딱히 체계적으로 공격을 가해오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마수들의 수준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들이 또 이곳으로 침입해 오다니… 그때의 경고로는 부족했었나.”
사자의 머리를 하고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마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한쪽 손에 검을, 다른 한쪽 손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뜨거운 콧김을 뿜어낸 녀석이 형형한 눈빛으로 르노어를 바라보았다.
“모두 죽여라.”
녀석이 명령을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마수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모두가 갑옷을 입고 무장한 마수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르노어도 수신호를 보냈다.
진형이 다시금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난 마수들과는 다르다. 모두 긴장해라.”
르노어의 경고에 수하들의 눈빛도 한층 달라졌다.
무장을 한 마수들은 놀랍게도 한데 뭉쳐 달려들었다.
하나의 창처럼 진형을 갖춘 그들을 보며 웨스트 왕국 군사들도 마른 침을 삼켰다.
르노어는 놈들보다 사자의 머리를 한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 따로 움직였다.
“네놈이 인간들의 대장인가보구나.”
“그렇다만.”
“겁을 아주 상실했군. 감히 위리놈님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다니!”
“관심없네. 그보다 이쪽으로 들어온 인간들을 못 봤는가?”
르노어의 물음에 마수가 웃었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그가 입맛을 다셨다.
“여기까지 온 인간들이라면 모두 마수들의 먹이가 되었다. 위리놈님께서 직접 놈들을 처단하셨지.”
“…….”
“개중에 몇 놈은 특이한 힘을 썼는데… 아, 그보다 마녀라 불리던 여인들은 맛이 남달랐었다.”
마수의 얘기에 르노어가 표정을 달리했다.
잔잔한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휘콰아아앙―――!!!
검끝이 매섭게 파고들어 마수를 공격했다.
오러 블레이드의 힘에 마수의 검이 튕겨져나갔다.
놈은 커다란 도끼로 르노어를 노렸다.
그러나 이미 상대의 수를 읽어낸 르노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러 도끼마저 튕겨냈다.
오러 블레이드가 물결치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수를 베어냈다.
마수가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분노한 그가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강렬한 마기가 르노어를 사방에서 옥죄었다.
그러나 르노어는 고고히 서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동안은 잔잔한 물결의 검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한 차례 안광을 폭사한 르노어가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의 오러가 높은 파도가 되어 마수를 공격했다.
엄청난 위력의 검술에 이번에는 마수도 형편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인간 주제에 이런 힘을 갖고 있다니…….”
르노어의 검을 막아내던 마수도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검은 전혀 상대에게 닿질 않고 있었다.
칠흑빛 마기는 파도에 막혀 흩어져버렸다.
헌데 파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공격해왔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파도는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크와아아아아앙!”
마수가 거칠게 포효하며 르노어의 흐름을 끊어놓고자 했다.
다름대로 자신 또한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마수였다.
여기서 한낱 인간에게 질 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뿐이었다.
르노어와 마수와의 실력 차이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
르노어의 무심한 검이 마수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우오오오!”
“와아아아!”
이를 본 아군 군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역시나 르노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광경이었다.
저토록 강해 보이는 마수조차 르노어의 상대는 아니었다.
마수를 베어낸 르노어가 검을 거두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르노어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딱 들어맞았다.
조금 더 움직이니 그들의 눈에 또다시 인간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한 구의 시체에 르노어와 카일라이드가 다가갔다.
커다란 덩치의 모습 그대로 숨을 거둔 하야트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그를 보며 르노어와 카일라이드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하야트는 두 팔이 잘려나가고 두 개의 다리도 함께 잘려나간 상태였다.
“성한 곳이 없군…….”
“이렇게까지…….”
이를 악문 르노어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하야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동안 카일라이드는 마법을 사용해 시체들을 한곳에 모았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자네의 마음은 알지만 검제께 약속 드리지 않았나.”
“그래… 돌아가야지…….”
죽은 하야트를 보며 르노어가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