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발라크
고투퍼스가 죽었다.
화산 지대의 절대자라 불리던 존재의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수하들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카이드는 창을 들어 놈들을 향해 겨누었다.
“더 싸워볼 놈들 있냐? 나는 얼마든지 환영이야.”
카이드가 놈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마수가 없었다.
사실상 고투퍼스도 어떻게 하지 못한 인간을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카이드가 싱거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나름 재밌었네.”
고투퍼스와의 전투는 카이드에게도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나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투퍼스가 이미 상당히 지쳐 있었다는 정도.
카이드가 뒤늦게 찾아와 마무리 한 기분이었다.
“끝났군…….”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네.”
르노어와 카일라이드가 주변 아군들까지 챙기며 돌아가려 했다.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진득한 마기가 퍼져왔다.
단언컨대 이곳에 들어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강한 마기였다.
“와오…….”
심지어 이번엔 카이드조차 전율이 일 정도였다.
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다가오는 녀석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조금 전 상대했던 고투퍼스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서둘러서 뒤로 빠진다!”
카일라이드도 그것을 느꼈기에 군사들을 재촉했다.
르노어 역시도 이번에 다가오는 존재는 굉장히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먼저 가들.”
그때 카이드가 최후방에 서며 말했다.
이에 르노어와 카일라이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네도 빨리 오게.”
“그래. 지금은 일단 물러나야 하는 때야. 이미 우리들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태평한 소리들 하고 있네. 저놈이 우리들을 곱게 보내줄 것 같아?”
카이드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득한 마기가 전해져오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해지는 마기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놈의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였다.
“왔다.”
카이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놈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온몸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르노어와 카일라이드를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빨리 가라고!”
“이보게…….”
“당신 안 그런 척해도 지금 부상이 심각하잖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돌아가서 치료부터 받아. 그리고 옆에 마도사 할배! 저 검사 할배 잘 부탁해. 다 나으면 나랑 싸워야 되니까 꼭 살려.”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오히려 앞으로 내달렸다.
앞에 다가오고 있는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금 전 상대했던 고투퍼스보다 강할 거라는 사실이다.
“자, 가보자고 어디 한 번.”
늘 아시테르의 뒤를 쫓아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이드도 강해져 있었다.
문제는 놀랍게도 세상은 상상 이상의 강자들로 득실거린다는 점이다.
아시테르도 강했지만 마녀여왕과 헬라이번, 르노어 등 아직도 뛰어넘어야 할 존재들이 많았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그들을 무작정 따라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서야 카이드는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나는 나다울 때 제일 강해진다는 거지.”
카이드가 그동안 강해져 온 방법.
그것은 전투에 또 전투를 더했던 방법이었다.
이것도 평범하게 실행해선 안된다.
약한 놈들을 상대로 매일 전투해봤자 절대 강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강한 놈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그것에서 살아남는다.
그것만큼이나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길은 없다.
“그러니까 가보자고!”
카이드의 전신에서 마기가 폭발했다.
이쪽으로 와볼 테면 와보라는 일종의 도발이었다.
역시나 상대도 그 도발에 응해주었다.
놈이 이곳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드가 가볍게 인사차 공격을 날렸다.
휘아아아앙―――!!!
마기가 뻗어 나가며 눈앞의 적을 공격했다.
상대에게 이런 공격이 먹혔을 거란 생각은 않는다.
다만 놈이 어떻게 나올지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휘콰아아앙―――!!!
반대편에서 칠흑빛 마기가 대지를 긁으며 날아들었다.
카이드가 창을 들어 마기를 막아냈다.
콰아아앙!!!
묵직하다.
카이드가 힘으로 밀릴 정도로 묵직한 일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격을 담을 수 있는 이가 또 있다니.
놀란 카이드가 앞을 바라보았다.
“과대 포장된 싱거운 녀석은 아닌 모양이네.”
그의 눈앞으로 거대한 체구의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양쪽에 달린 커다란 날개.
이마 중앙과 턱에 돋아나 있는 단단한 뿔.
툭 튀어나온 입에선 커다란 송곳니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온몸에 갑옷을 두른 마수가 형형한 눈빛으로 카이드를 내려다보았다.
놈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카이드가 입가를 실룩거렸다.
“월척이다 이건.”
따로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카이드가 당장 창을 겨누며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놈도 카이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창과 검이 부딪히자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다.
충격파 때문에 카이드의 마기가 순간 일렁이며 흩어졌다.
“뭐 이런……!”
콰앙!!!
뒤이은 타격이 카이드를 날려버렸다.
바닥을 한 차례 뒹군 카이드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와, 이거 골때리는 새끼네…….”
카이드가 고개를 들어 놈을 올려다보았다.
저런 거구의 몸을 가지고 이렇게나 빠른 움직임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수가 그대로 카이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앙!!!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으로 검을 내리찍으니 카이드의 몸이 그대로 찌부러지는 기분이었다.
“크합……!”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소리가 자연스럽게 새어나왔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문 카이드가 창을 회전시켰다.
놈의 검을 튕겨낸 카이드가 몸을 회전시키며 위로 올라섰다.
“크아아아아!”
커다란 외침과 함께 카이드가 창을 휘둘렀다.
수십 개의 마기 다발이 마수를 공격했다.
뒤이어 카이드의 창이 변화무쌍하게 마수의 전신을 가격했다.
놀랍게도 마수는 갑옷을 이용하여 카이드의 창을 받아내고 있었다.
마수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은 카이드가 곧바로 창을 회수했다.
그리곤 회전력을 더해 다시 한번 힘껏 내질렀다.
파콰아앙―――!!!
몰아치던 마기가 마수의 손아귀에 막혔다.
놈이 카이드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재밌는 놈이로구나. 인간이 어떻게 마기를 다룰 줄 아는 거지?”
“나도 몰라 새꺄.”
“마기는 마수의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힘이다.”
“호오, 그래? 그럼 내 몸에 마수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지.”
카이드가 창을 튕겨내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마수는 여유로운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눈빛이다.
그의 표정에 카이드가 피식 웃었다.
“뭐냐 그 표정은. 내가 뭐 그런 얘기를 들으면 충격이라도 받을 줄 알았냐?”
“후후 별 상관없는 모양이로군.”
“그래.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얘기야. 세상엔 그딴 것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거든.”
카이드가 다시 창을 겨누며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마수도 검을 들어 카이드의 공격을 받아주었다.
카이드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수에게 이렇다 할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으하하하! 세상 재밌네…….”
카이드가 광소를 지으며 희열에 가득 찼다.
놈의 거대한 마기가 뱀처럼 카이드를 옥죄이려 들었다.
그러나 카이드도 쉽게 당해주진 않았다.
그는 창을 회전시키며 놈의 마기를 흘려보냈다.
그리곤 다시 마기를 끌어 올려 반격에 나섰다.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 속에서 마수가 검을 휘둘렀다.
콰라라랑―――!!!
놈의 일격에 대지가 요동쳤다.
가까스로 놈의 공격을 피한 카이드가 대지를 박찼다.
창은 또다시 여러 갈래로 움직였다.
수십 개로 늘어난 마기의 창날이 한꺼번에 마수에게로 날아들었다.
파콰아앙!!!
마수는 두 개의 날개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감쌌다.
카이드의 공격은 마수의 날개까지 뚫지는 못했다.
“또 간다아아!”
카이드가 창을 번쩍 들어 찍어누르려는 때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그의 몸을 때렸다.
쿵!
철퍼덕!
“크학!”
피를 한움큼 뱉어낸 카이드가 바닥을 뒹굴었다.
뭐에 공격을 당한 건지 모르겠다.
“제기랄… 뭐였냐 방금.”
카이드가 입가에 핏물을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수많은 마수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아… 맞다. 여기 너희 진영이었지.”
정신을 차려보니 적들의 한 가운데다.
그래도 뭐 상관없었다.
카이드는 창을 똑바로 거머쥐고 조금 전까지 상대하던 마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이드에게 흥미를 느낀 마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발라크다. 네놈의 이름은 뭐냐?”
“카이드다.”
“그렇군.”
슈콰아아아아―!
발라크가 두 개의 날개를 펼치니 엄청난 마기가 피어났다.
순간적으로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카이드가 입가를 실룩거리며 두 눈을 더욱 강하게 떴다.
“사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뭐 그런 유치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
“비슷하다.”
발라크의 주변에 아공간이 열렸다.
그곳에서 칠흑빛 도끼를 꺼내든 발라크가 그를 향해 질주했다.
후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일격을 내질렀을 뿐인데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치 거대한 태산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흐으읍!”
힘을 주고 있는 카이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마기를 끌어 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
세 갈래의 마기가 회전하며 발라크의 팔뚝을 타고 올라갔다.
발라크가 커다란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카이드의 마기가 터져나갔다.
“제기랄…….”
상대에게 공격이 통하질 않는다.
반면 놈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버티는 카이드의 몸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쉽지 않네 이거…….”
그때 카이드가 있는 곳에 거대한 그림자가 생겼다.
휘릭!
콰앙!!!
간발의 차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당할 뻔했다.
퍼억!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구리에서 뜨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눈앞에 또다시 적의 공격이 다가온다.
카이드가 창을 들어 올렸다.
파카앙―!
콰라라랑―――!!!
창을 들어 연신 방어했지만 카이드는 형편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내몰릴 순 없었다.
다시 반격을 가해야만 한다.
끼기기기긱…….
그러나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창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창대가 바닥을 긁었다.
카이드가 초점 흐린 눈으로 적을 쫓았다.
“제기랄…….”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데미지가 거듭 쌓이다보니 마침내 카이드의 몸도 버텨내질 못했다.
휘청이는 그를 보며 발라크가 검을 내렸다.
“끝인가.”
“누가… 끝이래…….”
카이드가 부들거리는 팔로 창을 들어 올렸다.
이제 보니 그의 몸은 어느새 피투성이로 물들어 있었다.
마수들의 피와 뒤섞이다보니 그게 자신의 피인 줄도 몰랐다.
카이드가 발라크를 올려다보았다.
강하다.
지금까지 상대해봤던 그 어느 마수보다도 강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지쳐 있었다곤 하나 상대에게 이렇다 할 상처도 입히질 못했다.
“그렇게 상심할 것 없다. 인간 주제에 나를 상대로 이만큼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니. 하지만 이만 끝내도록 하지.”
휘이잉―!
발라크가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콰르르르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