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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02화 (402/424)

402화 마녀여왕, 움직이다

쿠우우우웅―――!!!

대기가 커다란 굉음으로 몸서리쳤다.

강한 충격파가 뻗어 나갔다.

이에 발라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웬 놈이냐.”

자신의 검을 막아낸 것은 카이드가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그의 검으로 발라크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콰아앙―――!!!

콰르르르르릉―――!!!

공간이 순간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발라크의 팔에 고통이 전해졌다.

“음!”

발라크가 팔을 빼냈다.

창을 짚고 간신히 서 있던 카이드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야… 되게 든든한 등이 눈앞에 있네.”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무리는 무슨… 이건 무리가 아니라 목숨을 건 전투였다고.”

“바보같기는……..”

“후후.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아직 대장이 여기까지 들어오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반격의 시작이야.”

검을 들고 서 있는 사내, 아시테르가 발라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발라크 또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아시테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힘은…….”

“이 힘에 대해 알고 있나?”

“우리들을 천 년이나 가로막은 힘이다. 모를 수가 없지.”

“이번에도 이 힘으로 네놈들을 막아낼 생각이야.”

아시테르의 전신에서 환한 빛무리가 일기 시작했다.

발라크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마수들이 그를 향해 뛰쳐들었다.

아시테르가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콰아아앙―――!!!

콰라라라라라라랑―――!!!

대지를 쓸어담는 엄청난 기운이었다.

다가오던 십수 마리의 마수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카이드가 실소를 머금었다.

“진짜 괴물이구만, 괴물이야.”

단 일격으로 십수 마리의 마수들을 죽인다.

거기다 아시테르가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니 주변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감히 움직이질 못했다.

갑자기 무거워진 공기에 놈들의 몸이 점점 바닥에 처박히고 있었다.

“그대로 죽어라.”

콰지지직!!! 쩌저적!!!

마수들의 몸이 그대로 찌그러졌다.

강해진 중력 때문에 핏물조차 제대로 튀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다음으로 발라크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만 내려오는 게 어때.”

쿠우우우웅―――!!!

아시테르가 제어하는 중력이 발라크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러나 발라크는 역시나 발라크였다.

놈은 자신의 힘만으로 아시테르의 중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감히 내게 명령하는 것이냐.”

발라크가 손아귀를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 방대한 양의 마기가 뭉치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콰라라랑!!!

단번에 날아간 마기가 아시테르를 노렸다.

아시테르는 간단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발라크의 마기를 쳐내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마기가 대지에 닿자 거센 폭발이 일었다.

그것에 휘말린 수십 마리의 마수들이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발라크를 향해 말했다.

“수하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약한 놈들은 죽을 뿐이다.”

“…그래. 그게 너희와 우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지.”

“인간과 우리들을 비교하지 말거라.”

쿠우웅!!!

대지로 착지한 발라크가 두 날개를 활짝 펴며 검을 휘둘렀다.

강한 풍압에 이어 묵직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아시테르의 검이 놈의 일격을 막아내었다.

발라크는 자신의 일격을 손쉽게 막아내는 아시테르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아시테르님!”

“대장! 괜찮습니까!?”

“주군!”

언노운 기사단 단원들이 서서히 합류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많아지자 일단 뒤로 물러선 발라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어째서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거지?”

발라크가 다른 마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알 길이 없다.

“쓸모없는 것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인간들을 죽여라.”

발라크의 명령에 마수들이 튀어나갔다.

아시테르가 카이드를 부축했다.

“일어설 수 있겠냐.”

“당연하지. 나 아직 안 죽었거든.”

“후훗. 농담할 기운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언노운 기사단을 시작으로 아시테르의 군대가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카이드가 피식 웃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건가?”

“응. 이제 놈들을 몰아낼 시간이다.”

“그나저나 나도 치료 좀 받아야겠는데… 그러고 보니 린이 안보이네?”

“린에게는 따로 부탁해둔 일이 있어.”

“그래?”

“대신에 제가 있잖아요.”

어느새 두 사람 가까이로 다가온 엔류아가 마력을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환한 빛무리가 카이드를 감쌌다.

“아! 그러네. 네가 있었네.”

“돌아오지 않아서 어떻게 된 줄로만 알았어요.”

“어떻게 되긴. 보다시피 형편없이 얻어터졌지.”

“그런 말 말아요. 르노어님과 카일라이드님께 다 들었어요. 혼자서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한 거에요?”

“그야 나는 아주 강하니까!”

카이드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이에 엔류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어요.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요.”

말은 저렇게 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는 카이드는 겉과 다르게 속은 깊은 인물이었다.

벨제부트에서 그가 떠나지 않은 것도 사실은 그들을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에도 카이드는 은근하게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챙기지 않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엔류아는 카이드의 부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앞서 봤던 르노어의 부상도 심각했지만 카이드의 부상도 만만치 않았다.

“이 몸으로 계속 싸운 거예요?”

“당연하지. 그래야 강해질 거 아냐.”

“바보 같기는… 이렇게 해서 어떻게 강해져요?”

엔류아가 볼멘소리로 괜히 카이드의 어깨를 때렸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웃었다.

“야 카이드! 거기서 놀고 있으면 우리끼리 재미 다 본다?”

“흥! 네놈은 그렇게 누워있는 게 제일 잘 어울린다.”

“일단은 휴식을 취해라. 서둘러 회복해서 주군을 위해 싸우는 거다.”

“아아… 다른 사람들 말은 신경 쓰지 마. 하긴, 어차피 내 말도 신경 안 쓰겠구나…….”

에스파부터 데미리우스까지 모두가 카이드에게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카이드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쯧. 이 인간들이 갑자기 기고만장해서는…….”

그래도 싫지만은 않았다.

툭툭 던지는 말 같아도 안에는 자신을 걱정하는 말투였다.

그래, 이런 것 때문에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아시테르가 카이드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고생했다. 잠깐만 쉬었다가 돌아와.”

“당연하지. 치료만 다 되면 다시 창 들고 날뛰러 갈 거다.”

“그래. 그땐 안심하고 내 뒤를 맡길게.”

말을 마친 아시테르가 다시 전장으로 뛰어갔다.

* * *

웨스트 왕국군이 있는 전장에서 잠시 이탈한 린은 아시테르의 부탁을 받고 마녀여왕을 만나러 왔다.

아마 세아츠리스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마녀여왕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만나러 온 이유가 무엇이냐.”

바깥은 마수들이 계속해서 게이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숲에선 비명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마녀들도, 인간들도, 이종족들도 모두 한데 힘을 합쳐 놈들과 싸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거겠지?”

마녀여왕의 말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왔던 것들을 마녀여왕 앞에 내놓았다.

“이것들 좀 봐주시겠어요?”

“음?”

마녀여왕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린이 내놓은 것 중에는 마도서도 있었다.

“내게 마도서를 내미는 것이냐? 설마… 네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아닙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봐주세요.”

린의 부탁에 마녀여왕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작은 식물 줄기들이 뻗어나가 책을 가져왔다.

책 안을 살피던 마녀여왕의 표정에 순간 변화가 스쳤다.

“이걸… 어디서 찾아낸 것이냐.”

“이스트 왕국 어느 곳에 있는 던전에서 찾아냈어요.”

“내게 이것을 갖고 온 이유는… 기간티아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냐? 하지만 아쉽게 되었구나. 기간티아는 이곳에 없다.”

“기간티아가 뭐죠?”

“기간티아는 본래 우리들의 숲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마녀여왕은 기간티아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대 여왕이 기간티아와 함께 자취를 감추면서 더 이상 그것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 책에는 마녀들만이 읽을 수 있는 고대 룬어로 기간티아를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나타나 있다.

“이 책에는 기간티아에 대한 여러 가지가 적혀 있다. 하지만 기간티아는 더 이상 마녀숲에 없어.”

“그… 기간티아라는 그 골렘. 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뭐라…?”

“이스트 왕국에서 이 책을 가져왔는데. 그곳에 기간티아라고 불리는 그 골렘이 있어요.”

“거기에 기간티아가 있다는 말이냐?”

잠시 고민을 하던 마녀여왕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책을 덮은 그녀가 린에게 그것을 다시 돌려주었다.

“가져가라.”

“예?”

“기간티아가 그곳에 있다고 한들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숲을 떠날 수 없어.”

마녀여왕의 말에 담긴 의미를 린은 곧바로 이해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세아츠리스를 바라보았다.

세아츠리스도 고대 룬어를 읽을 줄 알았다.

“훗.”

마녀여왕은 린이 자신의 뜻을 곧바로 이해한 것 같아 따로 부연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기간티아는 마녀여왕이 숲을 지킬 때 사용하던 고대 병기였다.

선대 여왕이 기간티아를 움직여 무언가를 봉인했을 때도 그런 용도였으리라.

그녀는 세아츠리스를 바라보았다.

만약 세아츠리스가 다시 기간티아를 움직여 이곳으로 가져온다면, 자연스럽게 그녀는 자신의 뒤를 잇게 될 것이다.

세아츠리스가 고대 룬어를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린은 일부러 자신을 찾아왔다.

심지어 린은 지금 마녀여왕이 이곳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런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날 찾아온 이유는 아마 세아츠리스 때문이겠지.’

마녀여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곤 그녀가 곧바로 길을 열어주었다.

“가거라. 기간티아가 있다면 분명 이번 전쟁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여왕님.”

“후후. 이곳이 걱정되어서 그러느냐? 그런 어쭙잖은 생각은 말거라. 내가 이곳에 있잖느냐.”

잠시 머뭇거리던 세아츠리스가 마녀여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마녀여왕이 자신의 마법으로 세아츠리스와 린을 단숨에 숲 밖까지 내보냈다.

마녀숲을 관장하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마법이었다.

쿠우우우우우웅―――!!!

숲을 울리는 소리가 한바탕 들려왔다.

밖은 지금도 온갖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했다.

마녀숲 여기저기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탓에 마녀들이 쉴 곳도 부족했다.

“여왕님.”

“퀴노.”

“게이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세아츠리스랑 웨스트 왕국의 공주를 바깥으로 내보내도 괜찮으신 겁니까.”

“기간티아는 정말로 우리 마녀들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만약 세아츠리스가 정말로 기간티아를 데려올 수 있다면 마녀숲은 다시 살아날 거야.”

“…….”

콰트로 중 유일하게 남은 마녀가 바로 퀴노였다.

마녀여왕의 제자이자 한때 세아츠리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녀였다.

“어디, 어느 손님이 오는 건지 마중이나 한 번 가보자꾸나.”

마침내 마녀여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곳에 앉아 숲을 조정하던 그녀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벨르노.”

마녀여왕이 곁에 있는 아이를 불렀다.

두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벨르노가 고개를 들었다.

“네 역할이 중요하다. 각 지역에 있는 아군 군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여왕님. 맡겨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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