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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03화 (403/424)

403화 여왕, 페로세르핀 (1)

게이트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위로 생겨난 수십 개의 게이트에선 마수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좀 위험한 듯 싶은데…….”

“이정도로 거대한 마기라니…….”

“대체 안에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오길래…….”

“정말 끝이 없군요…….”

사우스 왕국 군사들도 거듭되는 전투로 지쳐가고 있었다.

트럼프들도 계속해서 싸우며 힘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였다.

미친 듯이 날뛰던 하이트레이스도 지금은 잠잠했다.

“괜찮냐?”

“괜찮다.”

“너무 무리했다 너.”

“상관없어.”

바이헤른과 하이트레이스가 나란히 서서 마수들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강한 마수들 때문에 트럼프들을 포함 지휘관들이 쉴 수가 없었다.

녀석들을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아군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

그런 사이에 아일리시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온다.”

한참 전부터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거대한 마기가 마침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와이번을 닮은 괴수의 머리였다.

놈의 거대한 몸체가 그대로 게이트 바깥으로 뻗어 나왔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자 대지에 거대한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캬아아오오오오!”

놈이 울부짖었다.

괴룡을 올려다보던 아일리시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게…….”

“저거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라. 진짜는 그 위에 있는 자다.”

괴룡을 다루고 있는 작은 존재가 보였다.

사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은 바로 이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인간들이여.

사념으로 모두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마수를 보며 트럼프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놈의 사념이 머릿속으로 전해졌을 뿐인데 몸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가소로운… 너희들의 저항은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적(赤)발의 여인이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그녀가 손을 들자 게이트 밖으로 검붉은 갑주를 입은 기사가 튀어나왔다.

―나의 기사 레이바탄이여. 이곳의 인간들을 내게 제물로 바치거라.

여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붉은 기사가 몸을 움직였다.

콰아앙―――!!!

단지 가볍게 발을 굴렀을 뿐인데 놈이 지나간 곳으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거세게 질주한 레이바탄이 검을 휘두르자 마기가 태풍처럼 지나갔다.

“으음…! 일단은 내가 먼저 막아보지.”

콰아아앙!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바이헤른이었다.

바이헤른의 검과 레이바탄의 검이 부딪혔다.

거친 힘의 파장이 일었다.

바이헤른이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자신이 오히려 놈의 힘에 밀리고 있었다.

거기다 녀석의 검신에서 넘실거리는 마기가 사나운 맹수처럼 자신을 노리고 들었다.

파밧!

그것을 피해낸 바이헤른이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레이바탄은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슈우우우웅―――!!!

휘리링! 팍!!!

이번에 레이바탄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바이헤른이 아니었다.

아일리시의 꽃이 레이바탄의 검을 튕겨내었다.

뒤이어 하이트레이스의 중력 마법이 놈에게로 꽂혔다.

세 개의 중력구가 레이바탄의 몸에 직격했다.

그와아아아아―――!!!

중력구에 몸이 갈리면서도 레이바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놈의 검이 바이헤른의 상단을 때렸다.

먼발치 날아가버린 바이헤른이 바닥을 뒹굴었다.

“끄으으…….”

엄청난 고통이었다.

마치 전신이 다 부서져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

세상이 휘청이며 움직이는 때 귓가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멍청아! 뭐하고 있는 거냐!”

그의 뒷목을 잡고 냅다 던져버린 이는 다름 아닌 하이트레이스였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고 하이트레이스의 마법이 가까스로 레이바탄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대로 바이헤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뻔했다.

레이바탄의 칠흑빛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마기는 삽시간에 퍼져 하이트레이스의 중력 마법을 파훼하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도 갈가리 찢어버렸다.

“제기랄! 뭐가 이렇게 강해!”

네이트워가 어떻게 해서든 레이바탄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그러나 놈을 잠깐 붙잡아두는 게 고작이었다.

레이바탄은 그대로 밀고 들어가 아일리시를 노렸다.

아일리시 또한 노련한 마도사였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법으로 레이바탄의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눈앞에서 아일리시를 놓친 레이바탄이 몸을 돌렸다.

네 명의 인간들.

이들이 아마 이곳에 있는 인간들 중 가장 강한 자들일 터다.

이외의 인간들은 사실상 별 볼 일 없다.

자신뿐만 아니라 여왕인 페르세로핀에게까지 위협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이바탄이 흉측하게 웃었다.

녀석의 웃음이 새어나가자 진득한 마기가 퍼져나갔다.

“저 자식… 지금 웃고 있는 거냐?”

“우리가 어지간히도 만만해 보이나 보지…….”

“부정할 수 없어. 우리 넷이 힘을 합쳐도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거든.”

아일리시가 조금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넷이서 레이바탄 하나에 쩔쩔매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괴룡을 타고 있는 저 마수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저 마수까지 움직였다면 싸움은 훨씬 더 힘들게 흘러갔을 것이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위에 있는 마수가 움직이기 전에 눈앞에 있는 저 녀석부터 쓰러트려야 한다.”

“거기다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수들의 수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이러다 우리가 먼저 당하겠다 제기랄!”

“과하게 많은 병력을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더 데리고 왔어야 했네.”

트럼프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사이 레이바탄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놈이 무식하게 돌진해와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라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나 전위를 맡게 된 바이헤른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으아아!”

그가 마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레이바탄을 공격했다.

그러나 무리였다.

오히려 레이바탄의 반격에 바이헤른의 몸만 튕겨져나갔다.

하이트레이스의 마법도, 아일리시의 마법도 소용없었다.

놈의 검이 대지를 가르고 그 여파에 휘말린 아일리시와 하이트레이스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네이트워가 무언가를 해보려 해봐도 소용없었다.

콰아아앙!!!

“크학!”

네이트워도 고통 어린 신음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무려 네 명이었다.

트럼프 네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음에도 저 마수 한 마리 어쩌지 못했다.

“제기랄…….”

“이럴 수가 있나…….”

쓰러진 트럼프들 사이에서 레이바탄이 웃으며 서 있었다.

놈이 마기를 발출해 네이트워의 목을 베어버렸다.

“네이트워!”

“아…….”

“이런 젠장아아앙!”

목을 잃은 네이트워의 몸이 발버둥치다 잠잠해졌다.

그것을 지그시 밟고 선 레이바탄이 입을 열었다.

“나를 더욱 즐겁게 해 보아라. 너희들은 너무나 약하다.”

“닥쳐!”

잔뜩 흥분한 바이헤른이 검을 들고 앞으로 질주했다.

하이트레이스도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놈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가지고 놀았다.

“참을 수 없어……!”

두 눈에 살기가 가득해진 하이트레이스가 커다란 중력구를 소환해 내었다.

그것을 본 바이헤른이 일부러 화려한 움직임을 가져가 놈의 시선을 빼앗았다.

아일리시가 틈을 이용해 그녀의 마법으로 레이바탄의 움직임을 묶었다.

“지금이야!”

“지금!”

바이헤른과 아일리시가 동시에 외쳤다.

커다란 중력구가 레이바탄의 위로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폭발의 중심에 있던 레이바탄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일리시와 바이헤른, 하이트레이스가 마른 침을 삼켰다.

긴장되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때, 한 번 더 폭발이 일었다.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레이바탄을 보며 아일리시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아…….”

바이헤른도 이를 악물었다.

하이트레이스조차 이번엔 인상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저 녀석을 죽일 수 없는 건가…….”

바이헤른이 절망 어린 눈빛을 보였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레이바탄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흉악하게 웃은 놈이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처형식을 진행하려 했다.

이번엔 눈앞에서 귀찮게 하던 검사 차례였다.

놈이 커다란 검을 들어 휘두르려는 순간.

콰아앙―――!!!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와 레이바탄을 때렸다.

레이바탄의 신형이 휘청이고 그 사이 거대한 철검이 놈의 팔을 찍었다.

기이이이이―

레이바탄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공격한 자를 쫓았다.

“쯧… 겨우 마수 따위에게 그따위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냐? 한심하구나, 너희들도.”

걸걸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아일리시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목소리는… 제이스쿠스님!?”

“뭐냐. 그동안 내 목소리고 까먹은 거냐?”

제이스쿠스가 파이프를 물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하이트레이스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 갈겨버렸다.

팍!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하이트레이스의 머리가 흔들거렸다.

“지휘관의 고개가 그렇게 가벼워서야 쓰겠느냐.”

“제이스쿠스님…….”

“고개를 들어라. 네놈들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너희를 따르는 수만의 군사들이 사기를 잃는다.”

제이스쿠스가 뒤편의 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파아앙!!!

대지를 박찬 레이바탄이 검을 내리찍어 제이스쿠스를 노렸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난 강철방패가 그것을 막아내었다.

“거, 성격 급한 새끼로구만.”

제이스쿠스가 레이바탄을 노려보며 파이프를 빼냈다.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심상치 않다.

헌데 진짜 문제는 바로 뒤편이었다.

뒤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야말로 진짜배기였다.

“이놈이야 어찌어찌한다 해도… 저 뒤에 있는 괴물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콰아아앙!!!

제이스쿠스가 만들어낸 강철 주먹이 레이바탄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레이바탄이 자세를 고쳐잡으며 검을 말아쥐었다.

가아아아악―――!!!

쿠우우웅―――!!!

거친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놈이 저렇듯 포효하는데도 제이스쿠스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잘 들어라. 우리들이 동요하는 순간 병사들과 기사들도 그 마음을 읽고 만다. 그러니 함부로 표정에 너희들의 마음을 드러내지 마라.”

제이스쿠스가 만들어내는 강철 방패와 검이 레이바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늘에선 세 자루의 창이 떨어지고 있었다.

콰과과광―――!!!

콰르르르르르르릉―――!!!

계속해서 울리는 거친 폭음에도 제이스쿠스는 차분하게 전황을 살폈다.

“아일리시. 너는 지금 바로 오른쪽으로 빠져라. 우군을 지원해. 그리고 바이헤른. 너는 뒤로 빠져서 치료부터 받아. 하이트레이스. 너는 내 후방을 맡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제이스쿠스의 명령은 빠르고 간결했다.

그가 무언가를 더 하려 하기도 전에 레이바탄의 반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놈의 공격은 제이스쿠스의 방패를 쉽게 뚫어내지 못했다.

“호오… 내 공격으로는 흠집도 안 나는 거냐.”

제이스쿠스가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다행히 레이바탄의 공격은 제이스쿠스가 막아낼 만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놈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할 순 없다.

결국 지치는 것은 자신이 될 터다.

거기다 저 위에 있는 괴물까지 움직이면 사우스 왕국군은 그야말로 전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흐음…….”

최악의 경우 제이스쿠스는 자신을 희생해 이들을 살릴 생각이었다.

그것이 후배를 위한 선배의 마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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