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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04화 (404/424)

404화 여왕, 페로세르핀 (2)

제이스쿠스가 어렵사리 레이바탄의 공격을 버텨주고, 각 트럼프들이 다시 군대의 지휘권을 잡으면서 전황은 조금 전보다는 좋게 흘러갔다.

그러나 계속해서 밀려드는 마수 군단 앞에 사우스 왕국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해가 뜨면 시작되고 해가 지면 끝난다.

해가 지면 다음 날 전쟁을 이어갈 것을 무언의 약속으로 삼는다.

하지만 마수는 그런 것 따위 없다.

오히려 이들은 해가 없는 때를 더더욱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밤낮 할 것 없이 전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군사들이 점점 지쳐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이스쿠스도 레이바탄을 상대하면서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다른 방법 따윈 없다.

그가 알기로 사우스 왕국의 국왕은 이번 전쟁에 참여할 때도 다른 왕국들에 조건을 건 것으로 알고 있었다.

거기다 왕자 중 한 명은 후일을 도모하겠다며 비밀리에 군사를 키우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일을 다른 왕국의 인사들이 모를 리 없다.

‘결국 우리 사우스 왕국은 끝까지 최악의 이미지를 가져가고 있다는 말이지.’

이유가 어찌 되었건 비밀리에 군사를 키우는 행위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런 상황에 어느 누가 사우스 왕국을 돕기 위해 올 수 있겠나.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지.”

레이바탄의 공격을 튕겨내며 제이스쿠스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사우스 왕국은 다른 왕국들에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정복욕을 감추지 못해 늘 다른 왕국들의 경계를 사온 것이다.

특히나 이스트 왕국과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사우스 왕국이 이스트 왕국을 점령했을 때, 사우스 왕국 귀족들은 이스트 왕국 사람들을 하나같이 천대했다.

그들의 하늘이 무너지고 자신들의 하늘이 우뚝 올라섰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의 패악질 때문에 이스트 왕국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사우스 왕국 사람이라고 하면 이를 간다.

다른 왕국과의 상황이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헌데도 사우스 왕국 왕족들과 귀족들은 언제든 자신들이 그들의 뒤를 노려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국운이 다한 건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제이스쿠스가 택할 길은 아주 극명해졌다.

그런 사우스 왕국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전에 나라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 죽자.

어차피 일평생 나라를 위해 살아왔던 몸이다.

이제와 다른 것들을 찾는다고 해도 찾아지지 않을 터다.

그리고 찾을 필요도 없다.

어쨌든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이곳에 있었으니까.

콰아아아앙―――!!!

거대한 철검 수십 개가 레이바탄을 향해 떨어졌다.

놈은 우뚝 서서 검들을 쳐냈다.

“이게 다냐.”

레이바탄이 제이스쿠스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기술들은 제법 쓸만해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은 한참 모자라다.

“이게 너의 한계라면. 이만 죽거라.”

레이바탄이 검 끝에 거대한 마기를 뭉쳤다.

놈을 따르는 칠흑빛 마수들이 포효하며 사우스 왕국 군사들을 도륙했다.

이를 악문 제이스쿠스가 거대한 요새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으로 지킬 수 있는 자들은 지킨다.

“하이트레이스!”

“예. 말씀하십시오.”

“후퇴해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놈들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러니 일단은 물러나라.”

“하지만 제이스쿠스님, 뒤로 물러설 곳도 없다는 것… 잘 알고 계시질 않습니까.”

“그래도 너희들만큼은 이곳에서 모두 죽어선 안 된다. 너희들은 사우스 왕국의 미래다. 너희를 여기서 잃을 순 없다.”

“싫습니다, 제이스쿠스님.”

바이헤른도 거부한다는 표정으로 자리했다.

제이스쿠스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부리는 자존심 따위가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폭풍 같은 마기가 불어닥쳤다.

제이스쿠스가 이를 악물고 그것을 막아내었다.

엄청난 힘에 제이스쿠스의 마력이 밀리고 있었다.

“크으윽……!”

입가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두 팔이 떨려오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후들거렸다.

아직까지도 놈에게 이런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순간 시야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제이스쿠스가 일부러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자신의 마법이 무너지면 그 뒤엔 십수만의 군사들이 있다.

저 괴물 같은 녀석은 자신이 쓰러지자마자 다른 군사들을 향해 질주할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끔찍하고도 참혹한 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오!”

“와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귓가에 군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레이바탄은 아직 건재했다.

그렇다고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괴물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진 않은데 군사들의 엄청난 함성이 전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이스쿠스님! 지원군입니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지원군이 왔습니다!”

바이헤른의 말에 제이스쿠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욕심 많은 사우스 왕국의 국왕이 지원군을 보냈을 리 없다.

아일리시가 제이스쿠스를 부축해주었다.

그제야 제이스쿠스는 자신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음을 깨달았다.

“이스트 왕국 깃발이에요.”

“뭣…? 이스트 왕국에서 지원군을 보내왔다고……?”

“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이 확실합니다.”

제이스쿠스가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말이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이었다.

아그리나와 그녀의 기사단이 마수들을 상대로 마법 폭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일섬 마법기사단을 이끌고 온 알렌시아가 전격 마법을 선보였다.

여기저기 떨어지는 뇌전이 마수들을 한바탕 휘저어놓았다.

“마수들을 모조리 죽여라!”

“놈들이 감히 인간들을 넘보지 못하게 하라!”

“가자! 우리들의 목숨을 불사르는 거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 위협받고 있는 사우스 왕국 군사들을 도와 마수들을 함께 무찔렀다.

콰아아앙―――!!!

레비아탄에게도 강한 공격이 쏟아졌다.

“또 보는구나.”

“너는…….”

레이바탄의 두 눈이 커졌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은 얼마 전 마수 세계를 뒤집어 놓았던 인물이다.

위리놈은 잔뜩 분노해 저 사내를 잡아 사지를 찢고 살점 하나하나 뜯어먹을 것을 약속했다.

사내가 레비아탄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네놈이 여기 있다는 말은… 저 위에 있는 게 페로세르핀이라는 말인가.”

“감히 그 천박한 입으로 여왕님의 이름을 담지 말거라.”

“천박하기는 솔직히 너희가 더 그렇지 않나?”

“…….”

슈파아앙!

콰라라라라라랑―――!!!

레이바탄이 있는 힘껏 일격을 내질렀다.

어느새 검을 수평으로 들어 올린 유미르가 그것을 막아내었다.

마기와 영기의 충돌로 대기가 들썩였다.

엄청난 힘의 파장을 느끼며 아그리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유미르!”

“나는 괜찮으니까 일단 사우스 왕국 친구들 먼저 봐줘.”

“정말 괜찮은 거냐?”

“솔직히 이놈도 버거운 상대긴 한데… 진짜 문제는 사실 저 위에 있거든.”

레이바탄은 페로세르핀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이끄는 마수 군단의 대장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레이바탄이었다.

막강한 신체 능력과 방대한 양의 마기.

거기다 놈은 검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녀석이었다.

“더 성가신 건 네놈의 그 고유능력이지…….”

마수들에게는 특이한 능력들이 존재했는데 레이바탄의 마기는 주변 모든 것을 부식시켰다.

거기다 놈의 그림자가 몸을 일으키며 새로운 레이바탄을 만들어내었다.

“네놈을 상대하는데 방심할 순 없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레이바탄을 보며 유미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콰아아앙―――!!!

레이바탄의 공격을 피해내며 유미르가 전장을 살폈다.

사우스 왕국 군사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전투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곳에 레이바탄과 페로세르핀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페로세르핀은 아직 흥미가 동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그녀는 이곳에 흥미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페로세르핀의 마기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칠흑빛 운무가 하늘 위로 쌓이고 있었다.

“저 여자를 막아내려면…….”

레이바탄이야 자신이 어떻게 해본다 치지만 페로세르핀은 조금 다른 얘기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검은 저 여자에게 닿질 않는다.

“감히 나를 상대로 한눈을 파는 것이냐.”

레이바탄의 검이 대지를 내리찍었다.

조금 전까지 유미르가 있던 곳이었다.

콰아아아앙―――!!!

슈라라라라랑―――!!!

달빛이 넘실거리고 레이바탄의 하단을 빛무리가 베어 넘겼다.

유미르는 옆에서 닥쳐오는 공격을 피해내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이번엔 분신이 공격을 막아내었다.

두 마리 모두 레이바탄이다.

일전에 하나는 단순한 분신일 거라 생각했다가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는데 말이야…….”

레이바탄은 두 개의 몸에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특이한 마수였다.

문제는 두 개의 몸 모두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네놈이 제 발로 이곳에 나타나다니… 어지간히도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유미르의 존재를 확인한 페로세르핀이 사념을 전달해왔다.

그러자 유미르가 진저리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생각을 바로 전하지 말아주겠어?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이라 네 목소리가 머리에 울리면 소름이 끼친다니까…….”

―그 가증스러운 여유도 여전하구나.

페로세르핀이 유미르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지금 그녀에게 유미르는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장난감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 분명했다.

그게 분하긴 했지만 유미르의 입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

“너무 그렇게 안심하고 있지 마. 우리 세계에도 너만큼이나 성격 머리 안 좋은 여왕이 있거든.”

―뭐라?

“안 그래도 지금쯤 여기로 오고 있을걸? 그 여왕님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기 영역에서 난장판 피우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

“그건 나를 말하는 것이냐?”

뒤편에서 서늘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미르가 피식 웃었다.

모른 척 하기에는 너무나 강하고, 고결한 마력이었다.

유미르는 이미 이곳으로 마녀여왕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만이 페로세르핀의 상대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유미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마녀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여왕님.”

“네놈은 조금 바뀐 것 같구나. 어비스 던전의 물이 너를 그렇게 바꾼 모양이지?”

“아하하하! 제가 어비스 던전에 있었다는 걸 알고 계신 겁니까?”

“네 아들이 말해주었다.”

“아아, 아시테르가요…….”

유미르의 얼굴에 잠시 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아시테르의 얼굴이 떠오르니 순간 그리운 감정도 스쳐 지나갔다.

마녀여왕이 고개를 들어 페로세르핀 쪽을 바라보았다.

페로세르핀도 괴룡의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녀여왕이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

“불쾌하구나. 한낱 마수 따위가 날 내려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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