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밤의 일족 간의 전쟁
―카이라프인가.
늑대종의 마수들을 이끄는 절대자.
위리놈에게 인정받는 존재 중 하나였다.
카이라프가 뒤를 돌아 페로세르핀을 바라보았다.
“여왕. 도움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크흐흐흐, 그럴 것 같았다.”
카이라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놈이 명령을 내리자 늑대처럼 생긴 마수들이 무리를 지어 뛰쳐나갔다.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이 기사들의 갑옷을 꿰뚫었다.
뒤이어 커다란 송곳니가 인간들의 목에 서슴없이 박혔다.
“크하하하! 피의 축제다!”
카이라프가 눈앞에 있는 인간을 먹어치우며 소리쳤다.
놈은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하고 날카롭게 돋아난 발톱으로 기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겼다.
어찌나 강한 힘인지 팔을 휘두르는데 십수 명의 병사들이 허공을 날랐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고 그 사이에서 카이라프가 광소했다.
마도사들이 마법으로 놈을 노렸지만 어찌나 빠른지 마법이 닿기도 전에 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놈은 내가 맡는다.”
카이라프를 막기 위해 아그리나가 나섰다.
그러나 그녀의 마법으로도 카이라프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란 힘들었다.
카이라프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지지직!
쩌저저정―――!!! 촤라라락!!!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그리나 주변에 있던 마법기사들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카이라프의 두 눈동자는 아그리나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놈의 날카로운 발톱은 아그리나가 아닌 그녀의 주변 마법기사들을 죽였다.
“저놈이… 날 가지고 놀고 있구나!”
입술을 질끈 깨문 아그리나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허나 아그리나도 연속된 전투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런 아그리나의 마법이 카이라프에게 닿을 리 없었다.
돌연 우뚝 멈춰선 카이라프가 인간의 팔을 물어뜯었다.
“맛있는 먹이는 아껴뒀다가 먹는 편이지.”
아우우우―――!!!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수천을 헤아리는 늑대들이 뛰쳐나와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놈들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법기사들은 물론 사우스 왕국 군사들까지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무참한 살육의 현장에서 기사들은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해 노력했다.
“마녀여왕이 싸우고 있잖아! 더 버텨라! 어떻게든 버텨내!”
“물러서지마라! 물러설 곳도 없단 말이다!”
“싸워라! 여기서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싸워!”
지휘관들의 처절한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사우스 왕국이고 이스트 왕국이고 하는 구분 따윈 상관없어졌다.
이곳엔 마수와 마수가 아닌 자들이 있을 뿐이다.
신뢰 이전에 마수가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등을 맡겼다.
저 수많은 마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방법이든 써야 했다.
무기를 잃고 마수들의 발톱을 들어 싸우는 이도 있었다.
더 이상 마력을 쓰지 못하는 마법기사들도 무기를 주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필사의 의지였다.
그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며 단장들도 물러설 수 없었다.
콰지지직!
“단장님!”
끔찍한 소리와 함께 아그리나의 한쪽 팔이 뜯겨 나갔다.
아그리나의 팔을 문 카이라프가 웃었다.
“맛있구나 인간.”
“…….”
치유마도사가 황급히 달려와 아그리나를 지혈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그리나는 카이라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팔을 잃었음에도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카이라프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그리나가 대지의 성질을 바꿔버렸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카이라프가 뭣 모르고 저 대지를 밟는다면 한순간 틈이 생길 것이다.
그리 믿고 카이라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데, 마침내 놈이 움직였다.
“크아아아악!”
곁에 있던 치유 마도사가 놈에게 붙잡혀갔다.
아그리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움직임을 놓쳤다.
잠깐의 틈 따위도 없었다.
그때 카이라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나? 미안하지만 나는 마기를 밟고 움직이는 존재다.”
핏물이 덕지덕지 묻은 아가리를 벌리며 카이라프가 크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움직인다.
이제 믿을 것은 감이었다.
아그리나가 손바닥을 모아 한쪽 방향으로 날카로운 마력을 쏘아냈다.
콰드드득!
커다란 송곳이 튀어나갔고 카이라프가 그것을 피해냈다.
“감이 좋구나.”
눈으로 읽고 자신을 공격한 게 아니다.
그저 순전히 카이라프의 공격로를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그리나의 공격은 카이로프에게 닿지 못했다.
“죽어라, 인간.”
놈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그리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환한 빛무리가 카이로프의 공격을 튕겨냈다.
뒤이어 날아온 달빛이 카이로프의 몸을 베었다.
“크으윽!”
두 눈을 살벌하게 뜬 카이로프가 달빛의 주인을 찾았다.
유미르가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놈이 있었지.”
겁도 없이 마수들의 세계에 들어와 한바탕 분탕질을 쳤던 유일한 인간.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여주었던 그 인간이 지금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카이라프가 입맛을 다셨다.
“네놈은 특별히 여러 번 씹어 먹어 주겠다.”
카이라프도 유미르 때문에 수많은 동족을 잃었다.
카이라프의 종족은 마수들 사이에서 유난하게 동족에 대한 사랑이 깊은 종족이었다.
그 때문에 카이라프에게 유미르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벌써부터 아그리나에게 흥미가 식은 카이라프가 유미르를 노렸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놈의 공격이 검은 날개에 막혔다.
놀란 카이라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서 비린내가 난다 했더니…….”
검은 날개를 펼친 중년인이 카이라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투콰앙!!!
묵직한 일격에 카이라프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놈의 모습을 본 카이라프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 썩은 냄새는… 밤의 일족?”
“쯧. 마수들의 편에 선 네놈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크하하하하! 이거 아주 재밌는 상황이로구만. 밤의 일족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재밌기는.”
중년인이 뒤편에 있는 유미르에게 손을 건넸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저희들에 대해 자세히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시테르님께서 보낸 지원군이라고만 생각해 주십시오.”
“아시테르가요……?”
“예. 제 주인께서 아시테르님을 따르기로 하셨으니… 아시테르님은 저희들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단안경을 품 안에 집어넣은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그의 주변으로 혈기가 퍼졌다.
붉은 핏물이 아지랑이처럼 번지는 광경에 유미르가 두 눈을 끔뻑였다.
투콰아앙! 콰라라랑!
카이라프의 공격이 핏물에 막혔다.
놈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첨벙대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고혹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이들의 시선을 빼앗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의 등장에 마녀여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가 어째서 이곳에 등장한 것이지?”
“후후. 나 또한 너희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없느니라.”
“밤의 일족은 멸족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군.”
마녀여왕의 말에 레큐니아가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적인 감정은 잠시 넣어둘 시기였다.
“쯧…….”
딱!
레큐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핏방울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붉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늑대 마수들이 하늘 위로 날았다.
“캬아아아오오오!”
“크허어어엉!”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놈들이 레큐니아의 힘에 밀려났다.
카이로프도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리며 레큐니아를 노려보았다.
“참, 우습고도 재밌는 상황이구나. 우리 일족의 원수가 둘이나 있다니.”
레큐니아가 카이로프와 마녀여왕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카이로프에게 머물렀다.
“그래도 다행이군. 한쪽은 완전히 멸족시켜도 되겠어.”
마녀는 건드릴 수 없었다.
아시테르가 마녀들과도 특별한 관계에 있는 걸 알고 있는 이상은 말이다.
그래도 레큐니아는 그녀의 온전한 분노를 카이로프 일족에게 표출해낼 수 있었다.
그녀의 명령에 밤의 일족이 움직였다.
박쥐 떼가 늑대 마수들에 달라붙고 뱀들이 기어올라 놈들의 몸을 물었다.
뒤이어 뱀파이어들이 나서서 늑대형 마수들과 싸웠다.
카이로프와 같은 늑대인간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뱀파이어들에게로 달려들었다.
두 이종족의 전쟁을 보며 인간들이 잠시 뒤로 물러나 숨을 골랐다.
뱀파이어들은 늑대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마수들을 상대로도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를 다루는 마법을 사용했는데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저들은 대체 뭘까요… 이들도 첼룬 왕국에 속해 있는 자들일까요……?”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대체 아시테르는 얼마나 내다보고 이 전쟁을 준비한 것일까…….”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모두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의 전쟁을 지켜보는 가운데, 마녀여왕과 페로세르핀의 전투는 더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사실상 이 둘의 승패가 전쟁을 판가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녀여왕이 아니면 저 괴물같은 존재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가늠조차 잡히질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파콰과과광!!!
연신 폭음이 울리고 마녀여왕과 페로세르핀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밀리고 있는 것은 마녀여왕이었다.
숲이 파괴되고 그녀의 근원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마녀여왕의 마법이 조금씩 늦어졌다.
콰라라랑!
칠흑빛 창을 가까스로 막아낸 마녀여왕이 이를 악물었다.
페로세르핀이 그런 마녀여왕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로구나.
마녀여왕에 반해 페로세르핀의 마기는 계속해서 그 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거기다 페로세르핀의 마기에 닿은 마수들은 한껏 고무되어 더욱 커다란 힘을 내었다.
그에 반해 마녀여왕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후후후. 지친 것이냐?”
어느새 마녀여왕의 곁으로 다가온 레큐니아가 페로세르핀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끄거라.”
“자존심 하나는 여전하구나. 그러지말고 내게 도움을 받아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웃기는 소리. 너는 너의 전투에나 신경써라.”
“미안하지만… 저런 짐승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하느니라.”
레큐니아가 한쪽을 가리켰다.
카이로프의 전신은 이미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놈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레큐니아의 수족들이었다.
진조의 뱀파이어들이 카이로프와 늑대인간들을 상대로 선전을 보이고 있었다.
“마녀야. 저 마수는 너의 힘으로 죽일 수 없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저 마수는 영혼체다. 때문에 영혼체를 공격하지 않는 한 절대로 저 여자를 죽일 수 없을 거란 얘기다.”
“뭣이?”
마녀여왕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레큐니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레큐니아가 붉은 입술을 말아올렸다.
“몰랐나보구나. 저 여자의 이름은 페로세르핀. 마수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존재다.”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
“저 여인은 마기가 영혼으로 화한 존재다. 썩어문드러진 마기들의 결정체가 바로 페로세르핀이다.”
“그랬나…….”
어쩐지 싸우면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긴 했다.
그녀의 마법이 분명 정확히 들어갔음에도 페로세르핀은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녀여왕도 의아함을 느끼던 차였다.
“그래도 과연 대단하구나. 마기의 결정체를 상대로 이만한 전투를 벌이다니… 과연 마녀들의 여왕은 여왕이라 불릴만 해.”
레큐니아가 고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붉은 피로 페로세르핀의 공격들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그녀가 마녀여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진짜 여왕인지 가르쳐 줄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