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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09화 (409/424)

409화 언노운 기사단의 진가

쿠우우웅―――!!!

지축을 흔드는 소리.

여기저기 난무하는 비명소리.

핏물이 사방으로 튀고 잘려나간 신체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점점 쌓이기 시작한 시체들이 산을 이룰만큼 거대해졌다.

살아 있는 지옥이 있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을 터다.

전투가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위리놈이 움찔했다.

아드레말라이크가 그런 위리놈을 살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죽었다.”

“예?”

“페로세르핀의 존재가 사라졌다.”

“여왕께서…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그렇다.”

위리놈이 서서히 신체를 일으켰다.

우뚝 솟은 뿔에서 강한 마기가 퍼졌다.

“레이바탄이 여왕님을 보필하고 있었을 텐데.”

“레이바탄도 죽었다.”

“인간들이 그렇게나 강하다는 말입니까?”

“…….”

아드레말라이크의 말에 위리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과연 인간들이 강한 것일까, 그의 수하들이 약한 것일까.

하지만 페로세르핀의 죽음은 확실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인간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아마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위리놈은 이곳에 남았다.

인간들의 최강이 이곳에 있다면, 마수들의 지배자인 자신 또한 이곳에 있어야 했다.

이곳에서 놈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감히 자리를 비우고 이곳까지 쳐들어온 인간들에게 벌을 가할 생각이었다.

마기의 결정체로 이루어진 페로세르핀이라면 레이바탄과 함께 충분히 인간들의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페로세르핀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있었나…….”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페로세르핀에게 상처조차 입힐 수 없다.

그런데도 페로세르핀의 존재가 깔끔하게 지워졌다.

“인간들의 힘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로군.”

백만이 넘는 마수들을 내보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드레말라이크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고 싶으냐.”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제가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고 오겠습니다.”

“후후. 네놈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 아니냐.”

“인간들은 지금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다녀오거라.”

위리놈의 명령이 떨어지고 아드레말라이크가 고개를 숙였다.

페로세르핀을 제외하고 아드레말라이크와 발라크, 레이바탄은 위리놈이 인정하는 최고의 마수들이었다.

실제로 발라크는 인간들을 상대로 위리놈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드레말라이크 역시 그럴 터다.

“기다리고 있다 인간. 어서 이곳까지 와보거라.”

위리놈이 무료한 듯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그런 위리놈의 주변에는 수많은 마수들이 있었다.

모두가 마수들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포식자들이었다.

그 말은 결국, 아직 마수들의 진짜 본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다.

* * *

아시테르가 검 끝을 내려놓았다.

그와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던 발라크가 뒤로 물러났다.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발라크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녀석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시테르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놈은 수하들을 아시테르에게 밀어넣었다.

아시테르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시테르의 주변에도 훌륭한 동료들이 많았다.

이제부터는 언노운 기사단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들을 아낌없이 펼쳤다.

에스파의 화살이 수십 개가 되어 허공을 날았다.

이제는 신궁이라 불리는 에스파였다.

그의 화살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마수들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에이브릴!”

에스파의 외침에 에이브릴이 사슬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사슬은 어느새 열 개가 넘는 수준이 되었다.

그것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수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사슬이 마수들의 몸을 짓이기는 동안, 에스파는 그것들을 이용해 몸을 이동했다.

사슬을 밟고 뛰어오른 에스파가 공중제비를 돌며 화살을 날렸다.

피유우우웅―――!!!

콰르르르르르릉―――!!!

강한 마력을 머금은 화살은 마수들의 몸을 관통해 뿔 달린 마수의 머리통까지 깨부쉈다.

“시작됐구만.”

“신궁님의 특기!”

“진짜 내가 적이었으면 아찔했을 거야…….”

에스파의 장기 중 하나가 바로 적들의 지휘관을 죽이는 것이었다.

전쟁 때도 이런 에스파의 특기 때문에 지휘관들의 사신이라는 이명까지도 붙었다.

에스파는 여기저기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쉬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그런 에스파를 보조해주는 게 바로 에이브릴이었다.

그녀의 마법도 어느덧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감히 어딜.”

에이브릴이 손을 움직이자 대지에서 몸을 일으킨 사슬들이 마수들의 몸을 후려쳤다.

사슬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마력은 마수들의 질긴 가죽마저도 가볍게 베어냈다.

이 광경을 보며 에스파가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워후… 이걸 마냥 좋아해야 하는 걸까.”

허공에 몸이 뒤집힌 채로 에스파가 활을 들었다.

피융!

콰라랑!!!

빠르고 위력적으로 날아간 화살이 에이브릴에게 접근하던 마수의 정수리에 박혔다.

대지에 발을 디딘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딜 감히. 뒤질라고.”

“거, 정도껏 하지. 이미 죽은 것 같구만.”

라빈이 마수를 보다 팔을 휘둘렀다.

커다란 뼈가 마수의 몸을 꿰뚫었다.

라빈은 양손에 뼈를 쥐고 마수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움직임도 이전과는 달랐다.

기이하게 몸을 꺾은 그녀가 뼈를 휘둘렀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감도 안 잡히는 공격에 마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녀가 뼈를 x자로 교차하며 몸을 날렸다.

“무대를 좀 바꿔볼까?”

콰드드득!!!

쿠르르릉!!! 쿠르르르르르르릉―――!!!

라빈이 있는 장소에 수많은 뼈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에스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정도면 전생에 본 드래곤이었던 것 아냐? 뭔 사람의 뼈가 저렇게 커져?”

성인 남성 만한 날카로운 뼈들이 계속해서 대지 위로 치솟았다.

그것에 휘말린 마수들은 그대로 꼬챙이가 되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라빈은 수많은 뼈들 사이로 어지럽게 움직이며 마수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녀의 활약을 보며 군사들이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키에에에에에!”

“캬아아오오!”

공중에 수많은 마수떼가 나타나 인간들을 공격하려 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자비토가 앞으로 나섰다.

“시끄러워 죽겠네. 내 즐거운 구경을 방해하지 마라.”

자비토의 주변으로 수많은 송곳들이 생겨났다.

그것들이 일시에 날아가 하늘을 나는 마수들을 공격했다.

마수들의 날개에 사정없이 구멍이 뚫렸다.

바닥으로 추락한 놈들은 군사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당해야 했다.

뒤이어 자비토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그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눈앞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와아…….”

“허어……?”

지켜보던 이들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저 수많은 마수들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마수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피조차도 안 보이는데?”

“그냥 흔적도 보이질 않아.”

“저게 바로 이스트 왕국 군단장님의 아들…….”

“학살의 자비토…….”

기사들의 얘기를 들은 자비토의 귀가 빨개지고 있었다.

그러자 반키라스가 키득키득 웃었다.

“또 부끄러워하는 것 봐라.”

“시끄러, 임마.”

“그나저나 학살의 자비토가 뭐야!? 설마 그거 본인이 지은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하긴…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니지. 으하하하. 그나저나 너무 웃기네.”

곁에 있던 크로마제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도 학살이 낫지… 나는 모래지옥이래…….”

“뭐야, 그럼 너 그동안 우울해 있던 이유가 설마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거냐?”

“모래지옥이 뭐냐, 모래지옥이…….”

“으하하하! 나도 별명 하나 생겼던데?”

“넌 뭔데.”

“폭식!”

반키라스의 마력이 움직였다.

다른 마도사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마력은 정말로 특별했다.

자아를 가진 반키라스의 마력이 주변 마수들을 사정없이 집어삼켰다.

“솔직히 말하면 라빈 누님보다 가끔은 네가 더 괴물같다니까…….”

라빈은 자신의 뼈를 꺼내 전투를 치른다.

그런데 반키라스는 그의 마력이 주변 많은 것들을 먹어치운다.

거기다 마수들을 씹어먹고 있는 저 광경이야말로 제일 기괴한 장면이었다.

“너도 안 먹히게 조심해라.”

“나는 모래라 먹어도 소화가 안 돼.”

크로마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반키라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다.

“설마 웃으라고 한 얘기냐?”

“스승님께선 늘 말씀하셨지. 전투 중에도 웃음을 잃지 말라고.”

그때 먼발치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하! 죽어! 죽으라고!”

“너넨 다 뒤졌다! 내가 부활했거든! 으하하하하하!”

라빈과 카이드의 목소리였다.

라빈은 자기 뼈를 휘두르며 마수들을 도륙내고 있었고, 엔류아에게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했던 카이드는 완전히 살아나 마수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반키라스가 입가를 실룩거렸다.

“저렇게?”

“미쳤냐… 그냥 스승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고뇌해볼게, 내가.”

“그나저나 아시테르 형도 대단하네.”

“스승님이야 뭐… 더 말할 필요가 있냐.”

그들의 시선이 아시테르 쪽으로 향했다.

압도적이어도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아시테르의 주변은 이미 마수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손에 죽은 마수가 몇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아시테르의 검이 빛을 발할 때마다 수십, 수백의 마수들이 죽어나갔다.

심지어 그를 돕기 위해 언노운 기사단이 발 벗고 나서고 있음에도 아시테르의 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슈와아아아아―――!!!

프스스스스스슥.

그때 한쪽에서 마수들의 몸이 대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반키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리우스 형님이 움직이셨나보다.”

“아주 제대로겠네.”

“솔직히 말하면 데미리우스 형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지.”

“그건 그래. 시간만 벌어다주면 데미리우스 선배님만큼 확실한 마도사가 없지.”

녹빛의 운무가 전장에 퍼졌다.

그 안에 갇힌 마수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몸이 녹아내리고 강한 독이 놈들의 내부를 파괴했다.

독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수들이 발버둥쳤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데미리우스는 거미 같은 마도사였다.

조용히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린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에 걸려든 적들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적들이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칠수록 거미줄은 점점 더 먹이를 옭아매는 것처럼, 데리미우스의 마법도 그러했다.

독무에 휩싸인 마수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데미리우스의 마법에 수백, 수천의 마수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을 보며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데미리우스를 처음 만난 날부터 이런 광경을 그려왔을 터다.

데미리우스도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웃었다.

“세상을 등지고 어둠 속에 숨어만 있던 내 진가를 알아봐 주고 다가와 준 사람이 대장이었습니다. 이제 그에 보답할 차례입니다.”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잿빛 마력과 녹색 마력이 동시에 마수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군사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마수들의 발밑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다.

웅덩이에 빠진 마수들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잿빛 운무가 마수들을 무차별로 집어삼켰다.

“이것은 착란(錯亂)을 일으키는 마법입니다.”

데미리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수들이 저들끼리 치고받기 시작했다.

광란에 빠진 마수들이 동료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광기를 일으키는 데미리우스의 마법에 같은 편에 선 인간들도 어느새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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