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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10화 (410/424)

410화 동료의 죽음

위리놈의 시선이 움직였다.

어느샌가부터 거슬리는 마력이 있다.

“저곳에 있는 녀석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크하하하. 웃기는구나. 마수들끼리 싸우는 꼴이라니.”

위리놈은 뒤편에 있는 데미리우스를 확인했다.

그의 마법에 놀랍게도 수천 마리의 마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한 명의 인간이 저만한 힘을 낼 수 있다니.”

몸이 녹아내리는 마수들부터 시작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마수들까지.

데미리우스의 마법에 당하는 마수들을 보며 위리놈이 인상을 찌푸렸다.

독을 사용하는 마도사 같은데 가만히 두면 아군의 피해는 더더욱 커질 것 같았다.

“일단은 저놈부터 제거해야겠군.”

위리놈이 손짓하자 몇몇 마수들이 움직였다.

붉은 가죽을 뒤집어 쓴 마수들이 데미리우스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은 마수들의 사이를 자유롭게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스치는 인간들이 있다면 모조리 죽여버렸다.

“요란하군.”

위리놈이 턱을 괸 채로 데미리우스 쪽을 쳐다보았다.

조용히 가라는 말이었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인간들을 죽이는 수하들을 보며 혀를 찼다.

덕분에 몇몇 인간들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래도 뭐 상관없겠지.”

데미리우스가 손짓했다.

그러자 가까이에 있던 마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놈들을 풀어라.”

“놈들이라 하시면…….”

“타르탄에 가두었던 마수들 말이다.”

“하지만 대왕님… 놈들을 풀면…….”

“상관없다. 놈들이 날뛰게 내버려둬라. 인간들이 놈들을 죽인다면 그것으로도 좋은 일이다.”

“…알겠습니다.”

마수가 움직였다.

타르탄에 가둬두었던 위험한 마수들은 모두 한곳에 갇혀 있었다.

그가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일찍부터 위리놈이 보냈던 마수들의 공격은 데미리우스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를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함께 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콰아아앙!!!

쿠구구궁! 쿠구구구구구궁!!!

“우습구나.”

커다란 방패를 든 사내가 마수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그는 주변에 보이는 마수들을 보며 투지를 불태웠다.

“내가 바로 웨스트 왕국 철의 방패 로몸이다!”

로몸이 호기롭게 외치며 놈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뒤이어 다른 누군가가 앞으로 뛰쳐나가 마수들을 베어버렸다.

파우트와 아곤이었다.

아시테르와 함께 경쟁전을 치렀던 이들이 이곳에서 활약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웅! 차라라랑!!!

채재재쟁!!!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해서 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군 기사들도 전투에 합류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강력한 마기가 전장에 퍼졌다.

“어!?”

“뭐냐…….”

모두가 흠칫해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누군가 나타나 데리미우스의 복부를 꿰뚫었다.

“크학!”

마법을 펼치던 데미리우스의 입에서 핏물이 한움큼 튀어나왔다.

몸을 부르르 떨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얼굴을 한 마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군.”

“어떻게…….”

“별 것 아니었다.”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뽑은 마수가 뒤편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내었다.

분노한 아곤이 연속해서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마수의 손에 모두 막히고 말았다.

“너희들의 공격 따위론 우리를 막아낼 수 없다.”

양손에 팔 대신 검이 돋아나있는 마수가 눈앞에서 신형을 감추었다.

이에 놀란 아곤이 두 눈을 부릅 떴다.

“조심해!”

파우트가 손을 뻗어 아곤의 몸을 뒤로 빼냈다.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대기를 찢고 지나갔다.

“저 자식… 자기 몸을 숨길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목을 피하고 접근할 수 있었던 건가!?”

“로몸! 데미리우스님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로몸이 커다란 방패로 마수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데미리우스를 지켜주었다.

쓰러진 데미리우스가 피를 한움큼 게워냈다.

“크하아악…….”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거렸다.

뜨거운 고통이 뱃속에서부터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머리의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데미리우스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언젠가 다가올 오늘을 위해 준비한 마법이 있었다.

이것으로 아시테르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데미리우스가 호흡을 갈무리하며 양 팔을 펼쳤다.

마법을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정신력이었다.

그 다음이 바로 마력이다.

다행이 아직 몸에 남은 마력의 양은 상당했다.

문제가 있다면 데미리우스의 생명력 정도.

그는 차분하게 호흡을 내뱉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뭣하시는 겁니까! 일단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로몸이 그런 데미리우스를 말리려 했으나 이미 그는 무아의 지경에 빠져 있었다.

로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말이 데미리우스에게 들리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여간…! 검제님의 동료분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하나 미친 사람들 같다니까!”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살기 위해 발악을 하지 저렇듯 어마무시한 마법을 펼치려 들지 않을 터다.

데미리우스의 주변으로 모이고 있는 거대한 마력을 보며 로몸이 혀를 내둘렀다.

대체 무슨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마법이 발동된다면 마수들에게도 재앙이 될 거란 느낌이었다.

데미리우스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뒤이어 그의 귀에서도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그때 데미리우스의 앞으로 누군가 떨어져내렸다.

―미안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눈이 여덟 개가 달려 있는 특이하게 생긴 마수였다.

놈은 기다란 두 팔을 휘둘러 데미리우스를 막으려 했다.

“어딜!”

로몸의 움직임이 한발 더 빨랐다.

그는 방패를 들어 마수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휘리링!

콰드드득―――!!!

그 순간 로몸의 팔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크아아악!”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로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거대한 마수가 수염을 흩날리며 움직였다.

마른 장작처럼 생긴 몸에서 뻗어나간 팔들이 데미리우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데미리우스!”

“데미리우스님!”

데미리우스가 있는 곳은 후방이었다.

그가 중요한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아시테르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그의 곁에 붙여주었다.

심지어 그를 치료하기 위한 치유 마도사들도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데미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배치된 아곤을 포함한 실력 있는 기사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위리놈이 내보낸 마수들은 그 조차도 관리하기 힘든 마수들이었다.

하나같이 괴팍하거나 독특한 생김새를 지닌 녀석들이었다.

“후하아아아아…….”

숨을 크게 들이마신 작은 소년이 해맑게 웃었다.

녀석이 두 팔을 휘두르자 수십 명의 군사들이 그 자리에서 피를 쏟아내며 죽어버렸다.

“제기랄… 이런 괴물이…….”

바닥에 엎드려 몸을 부르르 떨던 페레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마수가 나타나고 벌써 수백의 사람들이 죽었다.

녀석의 마기로 이어진 가느다란 실에 걸리면 여지없이 베여나간다.

“언노운 기사단과 정예 병력들에 알려야 한다… 이곳에 놈들의 진짜 정예 병력들이 나타났다고……!”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놈들은 갑자기 후방에 나타나 인간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군대 진형의 허리가 끊길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그야말로 사방에서 적을 마주하게 된다.

더군다나 저토록 강한 마수들이 뒤를 친다면 아군의 피해는 더더욱 심각해질 터였다.

웨스트 왕국군이 타르탄의 마수들을 상대로 분전을 벌이고 있었다.

뒤를 이어 첼룬 왕국의 군사들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발대로 합류한 첼룬 왕국 군사들은 눈앞의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밖도 밖이었지만 어비스는 더더욱 처절한 전쟁터였다.

“웨스트 왕국 군사들을 도와라!”

“뭣들하고 서있는 거냐!? 부상병들을 옮겨!”

“우측이 무너지고 있다! 쟈칼 부대는 우회해라!”

“인간들을 지켜!”

뒤늦게 합류한 첼룬 왕국 군사들 덕분에 후방에 있던 웨스트 왕국 군사들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투명한 상태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마수와 몸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리는 마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목의 살점을 뜯어먹는 초소형 마수 등.

타르탄의 마수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투를 즐기며 인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첼룬 왕국의 정예 병력이 합류해도 그들을 막아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기라아알!”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막아내며 아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언제까지도 놈들에게 끌려다닐 순 없었다.

거기다 최전방의 아군이 후방으로 달려와 도와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인 일이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최전방의 아군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했다.

“우리들이 이렇게 나약했던가……!”

“크아아악!”

카일리어의 총애를 받고 있는 기사 중 한 명인 뤼밥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기마병들도 악전고투를 이어가고 있으나 곧 전멸에 이르렀다.

화르르륵!

콰라라라라랑―――!!!

그때 전장에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 후방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렸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검제께서 저 앞에 계신다! 뒤에 있는 놈들이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말라!”

“웨스트 왕국의 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로얄나이츠들이 하나둘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왔던 플레임이 과감히 마수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라테어가 군사들을 이끌고 마수들을 상대했다.

그들을 보며 아곤이 눈을 빛냈다.

로얄나이츠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바깥의 승전보나 다름 없었다.

“이곳은 내가 지켜냅니다.”

그때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있던 데리미우스가 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녹빛 안광이 한순간 폭사되고 엄청난 마력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데미리우스의 손짓에 이끌려간 마력이 한 순간 몸집을 불렸다.

“그와아아아!”

“크허어어엉!”

“키에에에! 키에에!”

마수들의 위로 또다시 잿빛 운무가 퍼졌다.

이미 그것에 대한 공포가 온몸에 각인된 마수들이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겁에 질린 마수들의 모습만큼이나 아군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었다.

잿빛 운무 속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대지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 잿빛 운무가 퍼진 공간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뒤이어 놈이 여러 장소를 넘실대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을 확인한 데미리우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피슉!

피슈슈슛!!!

그의 전신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올랐다.

“데미리우스 형!”

뒤늦게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달려왔던 에스파가 그를 보며 울부짖었다.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핏물을 뒤집어 쓴 데미리우스가 에스파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스파…….”

“형! 이게 무슨…! 치유 마도사! 뭣들하고 있어!? 빨리 치유 마도사를 불러와!”

에스파가 쓰러진 데미리우스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데미리우스가 희미해진 눈동자로 손을 들어 올렸다.

“에스… 파… 나는… 대장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형! 당연한 말을…이 전쟁에서 형만큼 활약한 사람은 없다고!”

“…다행… 이네…….”

데미리우스가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미 그의 눈동자에는 세상이 비치지 않았다.

손을 툭 떨어트린 데미리우스가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 아아…! 으아아아!”

축 늘어진 데미리우스의 몸을 부여잡고 에스파가 처절한 울음을 터트렸다.

데미리우스가 죽고, 그가 만들어냈던 잿빛 운무가 서서히 걷혔다.

운무가 걷히며 그곳에 있던 수많은 마수들의 시체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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