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마수왕 위리놈 (2)
다른 기사단원들이 마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마침내 아시테르의 앞으로 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침내 이 순간이 찾아왔구나.
“그러게요. 이쯤에서 순순히 물러나 주는 것은 어렵겠죠?”
아시테르가 마수왕 위리놈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위리놈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늘 아래 패왕은 단 하나뿐이다.
“결국 끝을 보자는 말이로군요.”
―그러기 위해 너도 이곳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위리놈이 자신의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검신에 웅혼한 마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시테르도 자신의 검에 영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후콰아아아아앙―――!!!
콰르르르릉!!!
검과 검이 부딪히고 대기가 크게 일렁였다.
공간을 장악하려는 마기와 영기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 위리놈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놈의 검이 곧은 직선을 그리며 아시테르의 상체를 노렸다.
카앙!!!
검이 튕겨져 나갔다.
반보 내딛은 아시테르가 검끝을 회전시켰다.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 들어간 아시테르의 검이 위리놈을 베었다.
콰아아앙!!!
위리놈의 단단한 날개가 그를 보호했다.
아시테르의 검은 날개에 가로막혀 버렸다.
―위력적인 공격이로군.
위리놈이 자신의 날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날개에 상처가 났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남지 않을 자신의 날개였다.
그런데 아시테르의 검은 닿을 때마다 상처를 남겼다.
그만큼 아시테르의 공격이 위력적이라는 얘기였다.
파아앙!!!
콰구구구구구궁―――!!!
위리놈이 날개를 펼치고, 나선형으로 뻗어나간 마기가 아시테르를 덮쳤다.
공격을 피한 그가 몸을 회전시켰다.
검끝을 따라 흘러간 영기가 거친 파도가 되어 위리놈을 덮쳤다.
손으로 공격을 막아낸 위리놈이 검을 내리찍었다.
쿠우웅!!!
대지에 균열이 일고 마기가 솟구쳐 올랐다.
아시테르는 특유의 발놀림을 선보이며 위리놈의 공격을 피했다.
“우오오!”
“와아……!”
지켜보는 이들은 절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육안으로는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그런데도 아시테르는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때 위리놈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방대하게 퍼진 마기가 위리놈 주변 전체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천하의 아시테르라도 피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콰르르르르르릉―――!!!
엄청난 위력이었다.
위리놈의 공격에 크로마제가 만든 모래 성벽도 부서질 정도였다.
거기다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가이우스도 커다란 충격을 입었다.
“가이우스 형님!”
“가이우스님!”
놀란 단원들이 그의 곁을 달려왔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가이우스가 앞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주군께선……!”
그는 고개를 들어 아시테르부터 찾았다.
다행히 아시테르는 멀쩡한 모습으로 대지 위에 서 있었다.
모두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시테르!”
“우리 대장이지만 진짜 괴물이구만 괴물이야…….”
“다행이긴 하지만… 아무리 아시테르라도 저 괴물을 혼자 상대하기엔 무리겠어.”
자비토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말은 안 해도 아시테르 또한 이곳까지 오는데 상당한 기력을 소모했다.
거기다 그는 전황 전체를 살피며 주변 동료들까지 지키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위리놈과의 싸움을 위해 힘을 아끼라 첨언 해도 소용없었다.
카이드가 창을 어깨에 걸치며 툭 내뱉었다.
“뭣들 하고 있냐. 빨리 주변 떨거지들부터 싹 다 정리하고 대장 도우러 가야지. 우리 대장 혼자 고독하게 싸우게 둘 거냐?”
“아시테르 핑계 대지마 임마. 네가 저놈이랑 싸워보고 싶은 거잖아.”
“야야… 농담하지마라. 저런 놈이랑은 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가 없어.”
카이드가 처음으로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아시테르와 자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카이드 자신은 위리놈 앞에 서기만 해도 저 위압감에 압도될 것이다.
감히 이기려들 수준이 아니었다.
이는 자신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 터다.
말은 안 해도 다른 이들 역시 위리놈을 상대로 그런 느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아시테르가 쓰러지면 안된다.
마수들에게 위리놈이 있다면 인간들에게는 아시테르가 있는 셈이다.
아시테르가 위리놈을 쫓았다.
―역시나 네놈은 나를 즐겁게 해주는구나.
이만한 공격을 쏟아부었음에도 모두 버텨낸 아시테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마수들도 이 정도 공격을 받았더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다.
헌데 한낱 인간일 뿐인 아시테르가 그것들을 모두 버텨내고 반격을 가하고 있다.
콰아아앙!!!
아시테르의 검이 위리놈의 검과 부딪혔다.
커다란 파장이 일었다.
두 존재를 중심으로 대기가 크게 일렁였다.
그 힘에 휘말린 마수들의 몸이 산산조각났다.
가이우스가 어느새 다시 앞으로 나서서 그 파장을 막아내었다.
“가이우스님! 무리하시면 안 돼요!”
율리아가 소리쳤다.
그러자 가이우스가 그녀를 돌아보며 웃었다.
“주군께서 저리 싸우고 계시는데 내가 몸을 사릴 수 있겠나.”
가이우스의 시선이 아시테르를 쫓았다.
처음이었다.
아시테르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저 녀석이 강하다는 거겠지…….”
카이드나 다른 이들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아시테르를 도우러 가고 싶은 마음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다들 마음만 서두를 뿐 전황의 상황은 전혀 뒤집히지 않고 있었다.
쿠아아앙!!!
그때 가이우스가 두 다리로 대지를 굴렀다.
마수들에게 받은 웅혼한 마력 덕분에 대지가 한 차례 울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모두 중심을 잃지 마라. 우리들이 뒤를 든든히 받쳐 줘야 주군께서도 마음 편히 싸울 수 있지 않겠나.”
가이우스의 말에 크로마제와 반키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세아츠리스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던 크로마제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맞아맞아. 급할 필요 없지. 급할 필요 없다.”
혼자 되뇌이며 중얼거리던 크로마제가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잔뜩 흥분해서 여기저기 날뛰던 마력이 조금씩 갈무리 되는 느낌이었다.
반키라스도 자신의 마력이 전해오는 강한 의사를 느꼈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미친 거 아니냐 너.”
자신의 마력과 대화를 나누는 반키라스를 보며 자비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에스파가 하늘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너희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날뛰어라! 그 뒤는 내가 맡아볼게!”
에스파가 활을 고쳐잡으며 무수히 많은 화살을 쏴댔다.
공중에서 저리도 많은 화살을 쏘는 것도 신기한데 화살은 정확하게 마수들의 미간에 꽂혔다.
바닥에 발을 내딛은 에스파가 가이우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감사해요. 본래 그게 제 역할이었는데.”
“누가 한들 뭐가 중요하겠나.”
“그래도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짜… 한층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네요.”
“인생은 성장의 전진인 것을.”
가이우스가 커다란 장막을 펼쳤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마기가 가로막혔다.
알고 있다.
이곳의 모두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는 것을.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율리아도 자신의 마력이 바닥났음을 알려왔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잘 했더라면…….”
“아니.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죄송하대?”
“시건방진 소리하지 마라. 너는 이미 네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계속해서 율리아의 주변을 맴돌던 카이드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그의 창이 여기저기 뻗어나가며 마수들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내었다.
콰라라라랑!!!
콰르르르르릉―――!!! 쿠과과과강!!!
한쪽에서는 지형마저 바꿔버리는 살벌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이쪽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저 싸움에 온정신을 다 집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 혹시 마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온다면, 이제는 우리 말고 대장한테 집중해.”
“네?”
“아시테르 대장이 쓰러지면 끝나는 전쟁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우리 대장이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줘.”
카이드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일전에 드워프에게 갈취(?)한 물건이었다.
마력의 회복을 빠르게 돕는다고 들었다.
그래도 은연중에는 마도사들 중 세아츠리스가 가장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중 그녀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면 전해줄 생각이었다.
헌데 지금은 이 물건이 율리아에게 더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아시테르님은…….”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대장 상태도 지금 안 좋아. 그러니까 대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 너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무조건 대장부터 신경 써.”
카이드가 창을 꼬나잡으며 말했다.
그런 카이드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아시테르의 움직임이 어느새 부자연스러워져 있었다.
툭툭 끊기는 공격의 흐름 속에서 억지로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여기저기 핏방울이 튀고 있었다.
분명 아시테르의 피였다.
위리놈과 검을 섞으며 아시테르의 몸에도 대미지가 누적되고 있었다.
이는 위리놈 역시도 마찬가지.
아시테르의 매서운 공격에 위리놈 또한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놈은 그런 것은 도외시한 채 공격에 나서고 있었다.
쿠우우우웅!!!
마기와 영기가 뒤엉키고 아시테르가 뒤로 밀려났다.
위리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하게 아시테르를 몰아붙였다.
아시테르는 가까스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쿨럭!”
아시테르의 입가에 핏물이 흘러나왔다.
내부가 진탕되어가는 느낌이었다.
후우우우웅―――!!!
아시테르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찬란한 빛이 뻗어나가며 위리놈의 가슴팍을 쓸었다.
잠시 거리를 벌린 위리놈이 위리놈이 피를 닦아냈다.
아시테르도 상처투성이였지만 위리놈 본인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최근 100년 동안 자신과 이렇게 싸운 존재는 아시테르가 처음일 것이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위리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떠냐. 나의 밑으로 들어와 싸우는 것이.
“싫다.”
―고민조차 하질 않는군.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시테르가 다시 평온한 얼굴을 되찾으며 검을 겨누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라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전신이 만신창이인 것쯤은 알 수 있다.
위리놈이 검을 어깨에 걸쳤다.
―나는 네놈이 탐난다.
“몇 번을 말해도 내 대답은 똑같을 거야.”
아시테르의 단호한 답에 위리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는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내 밑으로 오라.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주마. 마수들의 피를 먹으면 불사에 가까운 힘까지 얻을 수 있을 거다.
“언젠가 내가 어비스 던전에서 태어난 것을 두고 신을 원망할 때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더라고. 인간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소중히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 인간을 신은 질투하고 있다던데? 그래서 생각했지. 신이 날 질투해서 어비스 던전에서 태어나게 한 거라고 말이야.”
―흥. 우스운 소리로군. 불사의 몸을 얻으면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 마치 이몸처럼……!
위리놈이 주먹을 꽉 말아쥐며 힘 있게 말했다.
이에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사는 게 재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