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화 카이드의 존재
아시테르의 물음에 위리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삶이란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강해지기 위해 살아왔을 뿐이고 지금 또한 강해지기 위해 새로운 강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그의 고민은 깊지 않았다.
―지금 막 재밌어지고 있는 참이다.
휘콰아아앙―――!!!
위리놈의 공격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아시테르도 반격을 가했다.
둘의 싸움이 또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마수들이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언노운 기사단도 둘의 전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제기랄! 끝도 없이 튀어나오니까 뭘 할 수가 없네!”
욕지거리를 내뱉던 크로마제의 등에 핏물이 튀었다.
어느새 안까지 파고든 마수가 그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크로마제가 만든 모래 요새도 요새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몸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만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것이다.
거기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던 언노운 기사단도 이제는 각자의 난전으로 번졌다.
진형을 유지하기엔 마수들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가이우스는 여전히 정면에서 마수들을 받아치고 있었고 카이드는 율리아의 곁을 지키며 싸웠다.
그의 창날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마수들을 도륙냈다.
이를 지켜보던 율리아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카이드가 언노운 기사단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율리아도 잘 알고 있다.
본래라면 카이드가 나서서 다른 단원들까지 모두 도왔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발이 묶여 이곳만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전투 상황을 모두 지켜볼 수 있는 율리아였기에 카이드의 존재가 다른 단원들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때 생각이 많아진 율리아의 곁으로 카이드가 다가왔다.
전투를 치르면서도 율리아의 표정을 읽은 것이다.
“까불지마. 너도 우리 기사단에 중요한 존재야. 그딴 표정 지을 거 없어.”
카이드가 어지러이 창격을 휘둘렀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마수의 몸에 수십 개의 선이 생겨났다.
그대로 토막 난 마수의 몸이 바닥을 구르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카이드는 멈추지 않고 창을 휘둘렀다.
마치 전장의 사신이라도 된 것처럼 그는 창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 마수들의 목을 취했다.
이제는 자신이 창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창이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분간조차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아가는 힘이 있었다.
“크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카이드가 창을 한껏 당겼다.
전신을 이용해 창을 찌르자 창끝에 응집된 마기가 마수들을 향해 뻗어갔다.
콰직!!!
차라라랑―――!!!
확실히 이전에 비해 위력이 줄어들었다.
그것을 느낄 새도 없이 마수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카이드는 창을 휘둘러 놈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하니 움직임도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당하지도 않을 공격들이 서서히 카이드의 몸에 적중했다.
카이드는 자신이 공격당하더라도 율리아에게 향하는 공격은 모조리 막아주었다.
“저놈, 저런 포지션이 아닌데……!”
먼발치서 이런 상황을 확인한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카이드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쪽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위리놈의 정예들답게 눈앞에 있는 마수들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들이었다.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빈틈을 뚫고 마수들의 공격이 다가왔다.
이미 에스파뿐만 아니라 에이브릴과 라빈, 자비토 등도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진짜 너무 빡세네…….”
그럼에도 에스파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들이 무너지면 아시테르는 그대로 마수들에 둘러싸이게 되고 만다.
“모두 힘내라! 죽어도 죽지 말라고!”
에스파가 처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반키라스가 부상을 입고 바닥을 뒹굴었다.
뒤이어 가이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의 몸이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마수들은 약해진 인간들부터 노렸다.
“으라아아아!”
그때 카이드가 율리아를 끌어안고 움직였다.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는 카이드 때문에 율리아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카이드는 율리아를 한쪽 어깨에 들춰메고 창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이봐 가이우스 형씨! 대장 앞에서 말고는 무릎 안꿇는 것 아니었어!?”
가이우스를 가장 먼저 구해준 카이드가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에 가이우스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당연한 말을.”
“그래! 그렇게 나와야 가이우스지! 이름부터 겁나 강하게 생겼잖아 가.이.우.스!”
카이드가 가이우스에게 율리아를 넘겼다.
가이우스가 한 팔로 율리아를 받아 안았다.
“잠깐만 맡길게.”
“율리아는 물건이 아니다 이놈아.”
“알아알아. 근데 우리 대장의 동료라는 놈들이 너무 한심한 모습들을 보이니까 참을 수가 있어야지.”
너스레를 떠는 카이드 덕분에 천하의 가이우스조차 순간 피식하고 말았다.
그 사이 카이드의 시선은 다른쪽을 쫓았다.
그는 곧바로 반키라스에게로 달려갔다.
“야 임마. 땅바닥이 그렇게 푹신하냐? 안 일어나!?”
카이드의 말에도 반키라스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카이드가 그의 턱을 걷어 차버렸다.
“정신 안 차려!? 땅바닥이 그렇게 좋으면 아예 드러누워 있지 그러냐. 누가 너 지켜주고 구해줄 때까지.”
“시끄럽습니다.”
“왜? 바닥이 편한 것 아니었어? 빨리 누워 멍청아!”
카이드의 도발에 반키라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부상 때문인지 시야가 흐릿했다.
인상을 쓰고 있는 반키라스를 보며 카이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너도 봐줄 만한 얼굴이네. 살아남아라 짜식아. 바닥에 누워있기에는 아직 살날이 창창하지 않냐?”
“거 세상 다 산사람처럼 말씀하지 좀 마요. 그쪽한테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말대답 따박따박 하는 것 보니까 컨디션이 돌아왔나보네.”
카이드는 이제 반키라스를 두고 크로마제 쪽으로 향했다.
사실 반키라스보다 크로마제가 더 문제였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진 크로마제는 정말 본능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에 카이드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야! 대장이랑 던전에서 살아남는 것도 했다며? 근데 정신력이 이것밖에 안 돼?”
“후우… 죄송합니다… 제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한계는 극복하라고 있는 거야.”
카이드가 크로마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의 창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마수들의 몸에 순식간에 구멍이 생겨났다.
이를 본 크로마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선배님은… 지치지도 않습니까?”
“뭘 지쳐 이 정도 가지고.”
“이게 말이 안 되는데…….”
“야. 정신력에 지지 마라. 네가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진짜 한계로 찾아오는 거야. 그러니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라.”
카이드가 크로마제의 머리를 쓰다듬고 앞으로 나아갔다.
온갖 하얀 뼈들이 넘쳐나는 장소였다.
그 속에서 라빈이 뼈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 칼에 잘도 맞겠다.”
라빈의 뼈검을 가볍게 쳐낸 카이드가 혀를 찼다.
순간 휘청인 라빈이 다시 중심을 잡았다.
“뭐야 왜 왔어!?”
“너도 참 취미가 고약하다. 네 뼈로 넘쳐나는 곳에서 이렇게 싸우고 싶냐?”
“전투광인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놈의 기사단은 뭔 말을 못 하게 해.”
카이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라빈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왜 온 거야?”
“왜 오기는. 너희 상태 점검하러 왔지. 너 지금 네 팔에 날붙이 박혀 있는 것도 모르지?”
카이드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제야 라빈도 자신의 팔뚝에 날붙이가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움직이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먼저 죽기 싫으면.”
“뭐라는 거야.”
“그리고 네 애인도 잘 챙기고.”
카이드가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비토도 만신창이가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 이번 전투의 재발견은 바로 자비토였다.
그의 주변은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자비토는 압도적인 마법 실력을 선보이며 마수들을 모조리 사냥해버렸다.
말 그대로 전투가 아닌 사냥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수들도 자비토에게만은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다만 이제 자비토도 한계에 다다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와라. 내가 죽더라도 나를 공격하는 놈들은 모조리 다 죽이고 죽을 거다.”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자비토가 마수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마력 탄환들도 마치 마수를 감시하는 모양새였다.
크륵―
마수 하나가 움직이자 마력 탄환이 여지없이 날아갔다.
탄환에 구멍이 뚫리자 다른 마수들도 낮은 울음을 터트릴 뿐 함부로 움직이진 못했다.
그 묘한 긴장감 속에서 카이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모습을 드러냈다.
“와, 살벌하네 정말.”
“여긴 왜 온 거냐.”
“같은 질문도 지겹다 정말. 너도 내가 뭐라하면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뭐라 할 거냐?”
“당연한 말을.”
“서운하네 정말.”
카이드가 마수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 때문에 마수들도 잔뜩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다들 치열하게 움직이는데 너희는 뭔데 쉬고 있어?”
카이드가 창을 꼬나 잡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콰르르르릉―――!!!
창격으로 마수들을 휘어잡는 카이드를 보며 자비토가 혀를 찼다.
“쓸데 없는 참견을.”
“내비둬. 저렇게 사람을 챙기는 것도 저 녀석 방식이니까.”
“이래서 내가 저놈을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다니까.”
자비토의 주변을 맴돌던 마력 탄환이 모습을 감췄다.
카이도가 저렇듯 나서준 이유도 자비토가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물론 잠깐의 휴식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적 여유를 되찾기엔 충분했다.
그때 커다란 폭음이 울리며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검을 든 아시테르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서 있었다.
바닥에 앉은 위리놈이 피를 게워냈다.
―크흐흐흐. 즐겁구나 즐거워.
온갖 상처를 입은 위리놈이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 또한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된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나의 이 즐거움이 오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싫다.”
아시테르가 검을 겨누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한 차례 호흡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의 몸이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콰과과곽!!!
촤라라라랑―――!!! 스가가각!!!
날카로운 소리가 연신 울리며 위리놈의 팔이 잘려나갔다.
뒤이어 그의 날게에도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언노운 기사단도 이 광경을 보며 환희에 들끓었다.
“드디어!”
“우리 대장이 이겼다!”
“역시 해낼 줄 알았다니까!”
“아시테르 최고다!”
그들이 환호하며 외쳤다.
쓰러진 위리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좋은 공기로군.
위리놈의 몸에서 붉은 핏줄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핏줄은 근처 마수들의 몸에 꽂혔다.
꾸르르르―――!!! 꿀렁!
놀랍게도 위리놈의 핏줄은 마수들의 마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수들의 마기를 흡수한 위리놈이 금세 상처를 회복했다.
팔이 잘렸던 부분도 다시 자라나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위리놈이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놀랐나? 이게 나의 진정한 힘이다.